〈 34화 〉교회
"야. 대체 얼마나 퍼질러 자는거야?"
"음… 뭐야?"
내가 또 잠들었나?
언제?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배정받은 숙소, 화장대 앞 의자에 앉아서 팔을 늘어트리고 세상 모르고 자고있던 모양이다.
음…….
이라를 인간으로 되돌려놓고, 왠지 피곤하고 나른해서 의자에 앉아서 잠깐 휴대폰게임을 하던건 기억이 나는데…….
아, 바닥에 휴대폰도 떨어져있네.
난 몸을 숙여서 휴대폰을 집어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어… 어디 긁힌 곳은 없네. 다행이다.
세찬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뭐, 죽은줄 알았다. 대체 왜 그러고 자는거냐?"
"몰라, 여기 온뒤로 좀 잠이 잘오네. 찬송가 때문인가?"
"아, 신성력이 피로를 일으키는건가."
"그래?"
그러고보니 찬송가를 듣다보면 잠이 잘 오기는 해.
나는 그게 그냥 느리고 엄숙한 분위기의 음율이 가져다주는 효과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흡혈귀적으로 받는 효과인 모양이다.
"그런데 이라는 어디갔지?"
"걔? 나도 모르지. 같이 있는줄 알았는데."
"내가 얼마나 잤지?"
"아마 30분정도."
30분이라, 생각보다 많이 잔건 아니네.
그럼 이라도 그리 멀리까지 돌아다니진 않았겠지.
아무래도 이라는 어린아이에 늑대니까, 한곳에 처박혀있는걸 잘 못하는게 아닐까 싶다.
개는 원래 산책을 자주 시켜줘야하는 동물이고, 아이역시 비슷한 정도로 밖을 돌아다니는걸 좋아하니까.
그런데 그 두개가 합쳐진 생물체인 이라라면? 당연히 이렇게 될수도.
게다가 거의 평생을 그 저택에 갇혀지냈던 이라다.
당연히 새로운것에 대한 호기심도 왕성할것이리라.
개한테 산책을 안시켜준다니, 엄연한 동물학대라고.
잠깐. 생각해보니 동물학대 이전에 그냥 아동학대였잖아.
아니, 학대이전에 감금이다.
지금 돌이켜보니 죄질이 상당하군, 에이샤. 언젠가 다시 보게되면 피좀 빨아내고 끝내지 않겠어.
…사실 다시 보게되고 싶은 인물은 아니지만.
어째든, 나는 의자에 파묻힌 몸을 일으켜세웠다.
"찾으러 가야겠지?"
"당연하지. 교회에 늑대인간을 풀어놓을 셈이냐?"
"음…."
생각해보니 그렇네.
나도 21세기 미디어를 자주 접한 사람인만큼, 고딕호러에 대한 지식역시 조금 가지고 있다.
드라큘라, 그러니까 흡혈귀랑 늑대인간은 어느정도 공통점이 있었다.
둘다 은제 무기에 취약하다는 설정아닌가? 고전영화중에 늑대인간을 십자가로 퇴치하는 영화가 있던것 같은데.
그러니 여긴 늑대인간에게도 위험한 물건이 즐비할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흡혈귀 사냥용 도구를 만드는 곳이기도 하고.
"그런데 어디서 찾지."
무작정 탐문수사를 하기엔 조금 막장스러울정도로 교회가 넓은탓에 걱정이되었다.
"일단 녀석이 있을법한 곳부터 찾아봐야지."
"그런데가 있어?"
"늑대인간은 나도 처음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패턴을 예측해보면…."
"예측해보면?"
오, 이렇게보니 탐정같다. 그러고보면 사냥꾼이라는 직업이 흡혈귀만 사냥하는건 아니라고 했었지. 생각해보면 특별한 현장감식같은 일도 사냥꾼이 한다고 들었다. 그런 일을 좋든싫든 8년가량 했으니, 추리력도 발달하게 되는걸까? 게다가,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는 흡혈귀를 잡는다는건 진짜 뛰어난 추리력이 동원되어야만 하는 일일것이다.
녀석은 외견만 봐서는 별로 머리를 쓸것같은 부류는 아니긴 하다. 겉만 보면 사실 모든걸 힘으로 해결할것만 같은 타입.
그런데 이런 의외의 모습을 보이다니.
"일단 문을 열고 흥미로운게 보일때까지 직진했겠지. 여긴 숙식구역이야. 그러니까 녀석 입장에선 별 볼일 없는 공간이니 없을테고…."
"없을테고?"
설득력이 있었다. 먹고자는 공간은 녀석에겐 별로 호기심이 동할정도의 특별함은 없을것이다.
"이 앞엔 공방, 성가대, 의전실, 대강당 정도로군. 순서대로 찾아보면 나올지도 모르고, 반대방향이긴 하지만 어쩌면 실내정원에 있을지도 모르겠군."
"실내정원이라고?"
교회에 실내정원까지 있단 말인가? 여기 뭐야, 사실 호그와트아냐? 결계라든가, 황동판같은 오컬트 마법스런 도구들도 있고 말이야.
말하는 그림도 어딘가에 걸려있을것만 같다.
"그래, 실내정원."
한세찬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인상을 구겼다.
"…그나저나, 말꼬리 잡는거냐? 왜자꾸 말을 끊고 끝마디를 쳐 따라하는거지? 생각을 못하겠잖아."
음……. 메아리화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걸까.
나름 테크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하면 대화에 집중하는 느낌이 든다고 들었고, 실제로 대학 조별과제할때 자주 쓰던 화법이기도 했고 말이지.
"어…. 별 생각은 없었는데."
"별생각이 없었다고?"
"그래. 별 생각이 없었어."
"별생각이 없었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그렇군."
뭐야, 지금 나 따라하는건가?
역지사지가 뭔지 보여주려는 모양이다.
확실히, 당해보니 좀 기분나쁘긴 하네.
대답을 강요받는 기분이라고할까, 이상한 기분이 들긴해.
"알았어. 그 말투 안쓸게. 됐지?"
"그래."
그런데 왜 난리래, 별생각없이 쓰던 말투를 갑자기 걸고 넘어지니 조금 당황스럽네.
-----------
한세찬은 정원으로 갔고, 나는 공방으로 향했다.
정원은 꽤나 복잡한 구조라서 내가 와봤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거라나.
"여기엔 안왔다구요?"
"네. 강아지든, 어린아이든 본적은 없습니다."
음, 대체 어디로 간거래.
어린아이로 돌려놓은지 얼마 안되었으니 변신하지는 않았겠지만, 혹시 몰라서 둘다 본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게다가 이라는 개로 변하면 좀더 충동적으로 변했기때문에,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것이다.
게다가 이라한테는 개 특유의 냄새가 났기 때문에, 근처에 있다면 냄새로 찾을수도 있긴한데, 내가 이라마냥 늑대인간인것도 아니고, 바닥에 코박고 냄새로 찾는 짓은 못한다. 피 냄새라면 모를까.
피에 한해서는 진짜로 레이더수준의 정확도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
실제로 그 저택에서 한번 해보기도 했고.
지금생각해보니 조금 또라이같은 짓이었군.
피냄새로 길을 찾다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성가대는 어디죠?"
"저쪽으로 가시면 될겁니다. 그나저나, 수습 사냥꾼이신가요?"
"예, 뭐…."
"흠, 어린나이에…. 건투를 빌겠습니다."
내 질문에 답하던 공방의 사제는 조금 걱정스런 시선을 내게 보냈다.
흑색 십자가증표를 보곤 그렇게 생각했나본데, 나는 일부러 그 오해를 정정하지는 않았다.
교회에서 내가 흡혈귀라는 사실을 아는사람은 그 목사나 그 측근인 여사제말고는 없다.
뭐, 아빠가 되도록 밝히지 말라고 하시기도 했고, 그 목사도 구태여 이런 사실을 교회 모든 인원에게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흠, 대체 어디로 간거래."
성가대는 각자 자신의 악기를 점검하며 뭔가 떠들고 있었다.
대충 들어보니 각자 파트에 대한 피드백인것 같다.
전문적인 합창, 연주자들이니 뭐 그런것도 하겠지.
사람이란건 원래 여럿이 모여서 한가지 일을 한다고하면 여러번 합도 맞춰야하고 그런거다.
하루아침에 가능하면 Ai나 로보트겠지.
그런게 됐으면 내가 대학교 조별과제 할때도 그렇게 고통받지 않았을텐데.
난 타이밍을 재다가, 조금 대화가 진정될때쯤 불쑥 질문을 건넸다.
"저기요, 혹시 여기로 어린아이나 강아지 못봤나요?"
"어? 그것때문에 기다리시던건가요? 바로 물어보셔도 됐을텐데. 어린아이는 보지 못했는데요."
"그런가요?"
"그런데 강아지라니요? 교회는 애완동물 출입금지일텐데…."
"…실례했습니다."
나는 황급히 그들이 있는곳을 빠져나왔다.
음, 애완동물출입금지라.
이라는 애완동물인가? 생각해보니 그런 느낌이긴 했는데, 인간으로 변하면 동생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걔는 늑대/인간이면서 애완/동생이기도 한거지.
… 이것도 조금 미친것같네.
내 정신상태 괜찮은건가?
그리고 늑대인간이란건 이미 멸종한지 오래된 종족이라고 했으니, 어린아이나 강아지를 연관시켜 생각할 수도 없겠지만.
어째든 이쪽으로 오지 않은건 확실해 보인다고 생각할때.
'지원요청, 목표, 발견.'
갑자기 머릿속으로 강렬한 메세지같은게 떠올랐다.
어, 이게 그 징표의 메세지인가?
신기하네.
그런데 왜 멀쩡한 휴대폰 냅두고 이걸로 연락하는거야? 배터리가 없나?
하고 생각해서 휴대폰을 꺼내보니 부재중 전화가 5통정도 들어와있었다.
음, 무음으로 되어있었나보구나.
휴대폰들고 졸다가 뭘 잘못 건드렸던건가.
크흠.
그리고 도착한 실내정원의 입구에 세찬이 기다리고 있었다.
실내정원, 그것은 일종의 재배실이라고 불러도 될듯하다.
"꽃이 많네. 풀도 많고."
나는 정원에 난 처음보는 빨간 꽃을 보고 향기를 맡아보려고 고개를 내리다가, 세찬이가 머리끄댕이를 붙잡는 바람에 멈췄다.
"아씨, 뭐야?"
요즘 욕을 좀 줄여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욕을 참지 못하게 하네.
녀석이 내가 여성스러운 행동을 하는게 닭살스러워 한다는걸 알긴 하지만, 이건 진짜로 그냥 궁금해서 하는 행동인데.
이제 꽃 냄새도 못 맡게 하려고?
"그거 양귀비야. 헤로인 만드는 재료."
"엇."
난 즉시 고개를 쳐들었다.
한세찬도 머리를 잡았던 손을 풀고 이럴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이래서 너를 정원으로 보내지 않은거다."
"그런데 왜 교회에서 양귀비를 재배하는데?"
"그야, 양귀비로 만드는 헤로인은 강력한 진통제니까."
강력한 진통제?
그거 어디선가 들어본 말인데.
그러니까, 아마도 몇주전에 세찬이가 그런 말을 했었지.
진통제를 아주 센걸로 했으니 괜찮다…….
라고.
……설마?
"너 설마……. 마약도 해?"
"이제와서?"
녀석은 대수롭지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허, 어이가 없네. 담배도 몸에 나쁘니까 끊으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아예 마약까지 하신다고?
"미쳤어, 아주. 금방 뒈지고싶어서 그러지? 너 그거 당장 끊어."
"서서히 줄이는 중이야."
"뭐?"
"원래 약은 바로 끊으면 문제생겨."
난 머리를 짚었다.
이 새끼야, 대체 흡혈귀사냥이 뭐길래 그래?
친구란놈이 마약까지 빨아가며 사냥꾼을 하고 있었는데, 가장 가까이에서 붙어있던 나는 그걸 8년동안 모르고 있었다니.
이녀석의 이중생활이 대단했던건지, 내가 진짜 순진하고 둔해빠졌던건지 모르겠다.
"그럼, 설마 여기 있는거 전부?"
"뭐, 그런것도 있고, 아닌것도 있고."
나는 정원을 걸으며 보이는 것들에 손가락질을하며 물었다.
"이 초록색 풀떼기는?"
"코카나무."
"저 잎사귀는 나도 알아. 대마초지?"
"맞아."
"저건 뭐지?"
"하와이안 베이비 우드로즈."
"그건 뭔데?"
"추출해서 LSD로 만드는거."
"시바, 그럼 다 마약재료잖아!"
난 머리카락을 좌우로 붙잡고 오열했다.
겉보기에 푸르고 아름다워보이던 이 정원은 알고보니 그냥 마약밭이었다!
뭔데 이렇게 예쁘게 꾸며놨어?
"마약도 적당히 빨면 사냥에 도움이 돼."
"지랄! 이럴거면 그냥 사냥꾼을 관두고 노가다를 뛰어라! 왜 그렇게 하는건데?"
"흠."
"맞다, 이라는? 걘 이런 마약밭에 냅두면 절대안돼!"
"그거말이지."
세찬은 발걸음속도를 조금 올렸다.
설마?
설마, 설마?
"으아아, 흐헤에에…"
"이라야!"
난 반쯤 개가 된 이라가 바닥을 구르며 침을 흘리고 있는걸 보고말았다.
술을 마시면 개가된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이라는 진짜 개가 되는구나.
이 경우엔 마약인가?
그리고 뭔가 반만 변하니까 조금 늑대인간인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감상을 할때가 아니지.
"미쳤어, 미쳤어! 너 뭐하는거야!"
찰싹찰싹!
나는 앉아서 이라의 등짝을 후리며 소리쳤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왕복으로 뺨을 몇번씩이나 후려도 정신을 못 차려서 결국…….
"신의 이름으로 나에게 가해진 제약을 해제하노니! 나는 어둠속에서도 빛을 바라는 자라!!"
이라를 위로 집어던지며 광기의 저글링을 선사했다.
정원이라서 그런지 천장이 꽤나 높았기 때문에 가능한 짓이었다.
그렇게 날개도 없이 공중을 날던 늑대 and 인간상태의 이라는 안색이 새파래지며 소리쳤다.
"우왁! 악!! 내가 날고있어!!!"
"정신이 들어?"
"누, 누나?"
나는 하늘을 날던 이라를 받아내 바닥에 내려주었다.
"누나, 저 속이… 우우웁…."
"괜찮아? 여기서 대체 뭘 먹은거야?"
난 이라의 등을 두들겼다, 그러자 이라는 내장을 토할듯이 구역질을 해댔고, 난 뒤늦게 아직 봉인을 풀어둔 상태란걸 깨달아서 황급히 주문을 영창했다.
"신의 사슬로써 저를 구속하시어 주소서…."
"우웩,엑! 우우엑! 켁! 콜록!"
정원길 모퉁이 코카나무덤풀에 이라의 토사물이 쏟아졌다.
슬쩍 보니까 여기 풀떼기들을 좀 뜯어먹은 모양이다.
배가 고팠으면 말을 하지.
아니면 그냥 궁금해서 먹어본건가.
애들은 뭔가 새로운게 있으면 일단 입에 넣고 본다고 하던데.
근데 이라가 그렇게 어린애도 아니고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는데.
이제보니 늑대인간도 죽일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