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교회
교회에서 이름모를 찬송가로 눈을뜨는 경험은 살짝 신선했다.
침대도 상당히 폭신하고, 방 온도도 적당하니 좋았다.
난 부스스한 머릿결을 대충 손가락으로 빗어 정리하고, 휴대폰을 확인한다.
시간은 3시였다.
헉. 침대랑 방이 나무 편안해서 정신없이 잤나본데… 심지어 낮잠까지 잠깐 잤었는데 말이지.
귓가에 들려오는 찬송가 때문일까?
그니저나, 교회라고해서 좀 그랬는데, 숙소는 그냥 평범하게 좋은 숙소였다.
창문이 없다는건 조금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그 편이 좋았고.
난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이라는 지금 세찬이방에 있을것이고, 한야는 어차피 6시가 지나면 자기집에 돌아가버리니, 숙소에 없을거다.
교회에 있으려나?
땀은 안 흘렸지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기도 그래서 혹시 준비된 옷이 있나 하고 서랍을 열었더니 수녀복같은거 뿐이라서 그냥 도로 닫았다.
아무리 내가 이제 옷입는걸로 부끄러워 할 때는 지났다고 해도 수녀복은 좀.
거기다 흡혈귀가 수녀복을 입는것도 웃기네.
이럴 줄 알았다면 갈아입을 옷을 챙겨왔어야 했는데.
난 그저 옷을 챙겨오지 않은걸 아쉬워하며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문을 열었다.
세찬이는 다른 방을 받아서 따로 잔데다, 내가 너무 늦게일어났기 때문에 방에 있지도 않았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교회를 돌아다녀보며, 때때로 사제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세찬이를 찾았다.
결국 찾아낸 세찬이는 이라와 함께 늦은 점심을 하고 있었다.
이라는 역시 내가 없어서 개로 돌아간 상태였고, 그래서인지 밥상 밑에서 그릇에 코를 박고 비빔밥을 먹고 있었다.
개가 저런거 먹어도 되나? 싶지만, 속에 들은건 인간이니까 개밥을 주면 슬퍼할지도.
그리고 세찬은 무려 부대찌개에 라면사리까지 추가해서 먹는 중이었다!
뭐야, 이런 풍경에서 어울릴법한 요리가 아니긴한데, 나도 먹고싶다.
하지만 식욕을 없애버리는 냄새때문에 코를 막고서 최대한 입으로 숨을 쉬며 물었다.
"점심 먹는거야?"
"어, 일어났냐? 이거 받아."
세찬이가 뭔가를 휙 던져서 반사적으로 잡아냈다.
역시, 동체시력, 운동신경, 다 좋아졌는데 왜 한야랑 게임을 하면 못 이길까.
아무튼 받아낸 물건을 확인해보니, 어제 봤던 그 머리핀이었다.
"테스트인가?"
"한번 써보지그래."
그래서 부대찌개를 가져온걸까.
난 숨을 참고 머리핀을 꽂은후, 살짝 코로 숨을 들이켰다.
부대찌개의 매콤한 향기가 느껴진다. 성공인가?
"흐음…. 어, 괜찮은거 같은데?"
"이 냄새는?"
세찬이가 작은 접시에 담아서 내보인것은 다진마늘.
난 긴장하며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전혀 아무런 냄새가 나질 않았다.
"이번엔 마늘냄새만 못 맡게 된것 같네."
"흠, 그런가?"
"아, 안녕하세요."
담임목사가 식당 안쪽에서 삼계탕을 들고 나타났다.
뭐야, 한식 총출동인가.
삼계탕은 특히 마늘향의 국물이 인상적인 음식이니, 테스트로는 더할 나위 없긴 하지만.
"한번 먹어보거라."
"음… 알겠어요."
얼마만에 먹는 삼계탕이냐.
평소 삼계탕을 즐기진 않았지만, 그동안 못 먹어보니 알것 같았다.
나는 그저 이 맛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일상적인것들은, 한번 잃어보고나서야 중요함을 깨닫게된다는것이 퍽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삼계탕을 눈앞에 두고도 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워 찔끔 눈물이 나올뻔 했다.
"후우… 후우…."
이제 흡혈귀가 되며 튼튼해진 몸이 겨우 100도조차 되지 못하는 삼계탕 국물따위에 혀를 데이진 않겠지만, 어쩐지 본능적으로 국물을 불어 식혔다.
그동안 얼마나 먹고싶었는지, 눈앞의 국물의 모습만으로 맛을 상상할 수가 있었다!
"후릅."
……웩.
그런데 생각했던 맛이 전혀아냐.
"이거 기름풀은 소금물같아요."
"흠, 마늘향은 확실히 지워진걸 보니, 향을 특정하는건 성공인것 같구만. 허허허!"
"으으…."
엄청나게 맛없다.
짭짤씁쓸한데, 그걸 잡아줄 마늘의 향이 없다니.
아니 먹을수야 있긴 하겠지만….
나는 만들어준 성의를 봐서 식사를 시작했다.
뭐, 배는 채워야 하니까.
"뭐, 이번엔 기억속 냄새를 특정할 수 있으면 되겠군. 나중에 사제를 통해 부를테니, 편히 있거라."
"네."
만들어준 목사님께는 죄송하지만, 닭고기랑 건더기만 조금 건져먹고 국물은 다 남겨버렸다.
원래 편식은 하지 않았지만, 맛이 없으면 할 수밖에 없지않을까.
세찬이가 먹던 부대찌개도 조금 먹어봤는데, 부대찌개는 어느정도 먹을만 했지만 어딘가 부족하고 조화롭지 못한 맛이라서 아쉬웠다.
그저 오랜만에 부대찌개의 식감이 느껴져서 좋았다고 할까.
사실은 그래도 나름 만족하는 중이긴 하다.
맛은 없었지만, 먹고싶었던걸 먹을 수가 있었고…….
최소한 이제 길을 걷다가 갑자기 헛구역질은 하지 않을것 아니야?
진짜 마늘향 극혐이었는데.
그런데 이라는 참 맛있게도 먹는다.
구강구조가 바뀌어서 그런가.
챱챱거리면서 흘리긴 해도 되게복스럽게 먹는다.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은 강아지가먹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다던데, 비슷한거 아닐까.
"이것도 먹어."
나는 먹다 남긴 닭고기들을 이라의 밥그릇에 덜어주고 조금만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옷을 안 입고 있으니까, 지금 변신시키면 곤란해 할것 같아서.
"웡!"
이게 요새 또 이쁜게, 내가 큰소리에 자꾸 놀라니까 자기가 성량을 조절해서 작게 짖는다.
혓바닥을 내밀고 헥헥거리는걸 보니 마구 쓰다듬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참아냈다.
아쉽네. 이상태로 유지할수는 없나.
이럴땐 다른 개를 키워볼까 생각이 들지만, 걔들은 이라처럼 사람말을 알아듣지를 못하잖아.
내가 이라가 안 무서운건 말을 알아듣는다 라는 확신이 있어서 그런거다.
이제와서 개한테 물린다고 큰일이 생기지도 않을테지만… 트라우마라는게 그렇게 쉽게 극복이 되나.
"그래그래. 보고있지만 말고. 얼른먹어."
"웡,웡!"
"진짜 개를 키우는건지…."
세찬이가 옆에서 고개를 저었다.
이라는 개도 되고 동생도 되는 포지션이다.
개는 몰라도 예전부터 동생은 갖고 싶었으니까.
세찬, 이녀석은 세찬이는 따지고보면 형같은 놈이고, 관계도 조금 형이랑 비슷할까.
뭐, 생긴건 완벽히 형이다.
그나저나, 한야가 안 보이네.
아마 6시 이후에 신데렐라처럼 그 판자집으로 되감겨 돌아갔을테지만, 다시 교회로 오기는 한걸까?
"한야는 왔어?"
"교회에선 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오늘은 없어."
"그래?"
솔직히 그 사냥꾼은 조금 피곤한게, 매번매번 기억이 초기화되니 당췌 친해지기도 힘들고, 아는척하기도 그렇다.
그녀의 성격이 좋아서 금방 친해지기는 하지만, 매번 만날때마다 호감도가 초기화되는 공략난이도 1수준 히로인 같달까.
게다가 키도 나보다 커서…
왜 내 주변 인물들은 다 키가 큰거야?
나도 160cm정도 될텐데, 160이면 여자 평균키잖아!
요새 사람들을 만나면 전부 올려다봐야해서 욱한다.
요새 키가 작아졌다고 느끼는것도 다 이 키다리들 때문일걸.
난 185cm의 근돼 한세찬을 흘겨봤다.
"키크고싶네."
"뭐라고?"
"암것도 아냐."
아차, 욕망이 새어나와버렸군.
요즘 여자들보다 키가 작으니까 왠지 진것같은 기분이란말야.
나도 이제 여자쪽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이라 옷은 어쨌어?"
"내 방에 있지. 같이 쓰니까."
이라는 왜 아침에 나한테 안 온거지.
난 개 상태가 좋긴 하지만 바닥에서 먹어야하는걸 보면 불편했을것 같은데.
여자 숙소라서 못 들어온거려나.
"그럼 옷 가지러 가자. 이라좀 돌려놓게."
"웡,웡."
"뭐라는 거야?"
"좋대. 빨리가자."
내가 아무렇지 않게 이라의 개언어를 해석하자, 세찬이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해석이고 자시고 할것도 없이 그냥 찍은거지만.
그야 이라는 내가 하자고 한걸 싫다고 한적이 없는걸.
보나마나 좋다는 뜻이겠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을때, 전에 나를 안내해줬던 여사제가 나를 불렀다.
"아, 일어나십니까? 물리저해 목걸이는 방금 완성이 됐습니다."
"생각보다 빠르네요."
정말 후다닥이다.
주문한지 하루만에 만들어내다니.
정말 실력이 좋기는 한 모양이다.
목사가 아니라 무슨 신내림이라도 받은거 아닐까? 기계장치의 신같은 거한테 말이야.
받아든 도구는 물리저해 팔찌는 아니었지만, 목에 차는 초커 형식의 도구였다.
생김새는 검은 띄에 붉은색의 동그란 보석이 달려있다는 점일까.
세찬이한테 팔을 내밀어서 대여한 팔찌를 떼어냈다.
여사제가 도구를 목에 둘러주고, 루비를 돌려 잠그자,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을 가볍게 압박한다.
숨이 막힌다거나, 착용감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감각이 조금 착용감 좋은 개목걸이 같은건 어쩔수가 없나.
그렇기 생각하니 조금 그렇다.
"이건 조금 부끄럽네요…"
"귀하에게 성능을 맞추며 개폐구조를 넣기 위해선 이 형태밖에 없었습니다."
"으음."
나는 시험삼아 손을 뒤었다 폈지만 역시 이래선 잘 모르겠다.
뭔가 부숴도 괜찮을만한게 없나.
주위를 슬쩍 둘러보니, 아까 밥을 먹을때 사용한 숟가락이 보여서 아주 조금만 힘을 줘 봤다.
꿈쩍도 안하네.
제대로 작동하는것 같다.
"이거 제가 필요할때 해제하고 그럴수도 있는거죠? 어떻게 하나요?"
"해제영창을 하시면 됩니다. 받아적을게 필요하신가요?"
"그거 길어요?"
"그렇게 길진 않습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영창이길래 받아적을 것까지…. 뭐, 노래가사도 외우는데 못 외울까.
게다가 흡혈귀가 된 후에 기억력도 좋아진 것 같고.
육체적으로는 전부 좋아졌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영창은 '신의 이름으로 나에게 가해진 제약을 해제하노니. 나는 어둠속에서도 빛을 바라는 자라.'라고 하시면 됩니다."
"네?"
"신의 이름으로 나에게 가해진 제약을 해제하노니, 나는 어둠속에서도 빛을 바라는 자라."
"그, 주문이 이상한데요?"
"아, 번역이 이상합니까? 원문 라틴어는 Dimittere legum parum utilium imponitur me in nomine domini.…"
"아니요! 번역이 이상하다는게 아니라요!"
주문이 상당히 쪽팔리잖아!
"하지만 그게 구속제어술식 자가해제 영창인걸요."
"….."
"다시 말씀드릴까요?"
"아뇨…. 외우긴 했는데요."
한방에 기억은 했다.
단지 조금 충격을 받았을 뿐이지.
여사제는 여전히 싱글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한번 영창해보세요."
"후우…."
정말 해야돼?
이라도 세찬이도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저거, 아닌척 하지만 한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휴대폰 하는척 하는걸보니, 손 아래로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는게 분명하다.
웃기는 일이지.
신도 안 믿는데 신의이름은 무슨!
"시, 신의 이름으로 나에게 가해진 제약을 해제하노니…. 나는 어둠속에서도 빛을 바라는 자라…."
으아악! 얼굴이 화끈거린다. 때늦은 중2병도 아니고, 이런걸 외우고 다녀야한다니!
손가락이 오그라들다 못해 쥐고있던 숟가락의 형태가 꽈배기가 되는것도 모르고 속으로 오열을 하다가, 세찬이가 숟가락으로 내 머리통을 후려쳐서 제정신을 찾았다.
"아악! 뭐야이거?!"
숟가락이거 지금보니 은제였어!
졸라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문지르면서 내 머리통을 은수저로 가격한 한세찬을 노려봤다.
녀석도 나를 마주 노려보며 소리친다.
"상 부숴질뻔했잖아, 멍청아!"
"…."
"술식 재영창도 알려드리겠습니다."
여사제는 나를보며 잠시 목을 다듬더니 짧게 말했다.
"'신의 사슬로써 저를 구속하시어 주소서'라고 하시면 됩니다."
"시, 신의 사슬로써 저를 구속하시어 주소서?"
영창을 끝내자 다시 힘이 빠져나간 듯, 은색 꽈배기가 되어버린 숟가락이 이제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강도가 되었다.
효과는 좋네, 효과는 좋아…
그런데 주문이 되게 종교적이네.
교회에서 만든 술식이니 당연한가….
아니 그런데 흡혈귀같은 반기독교적 괴물이 이딴 주문 외우는거 이상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