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하루살이와 병문안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나는 시체더미 위에서 무언가를 찾고있었다.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보면 알 것 같은데, 그저 감각적으로 무언가를 찾고있는 것만을 알수 있었다.
모든 시체를 전부 뒤져봤지만, 찾던 무언가를 결국 찾을 수가 없었다.
극도의 실망감과 분노, 무엇을 향한것인지 뭐때문에 그런것인지는 이방인인 나로썬 알수가 없었다.
그저 이 상황에 몰입하는 것만이 가능했을 뿐.
다시 수많은 사냥꾼이 들이닥쳤다.
그렇게 나는, 아니 릴리스는 또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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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헉!!"
나는 눈을떴다.
이번꿈은 또 뭐야.
뒤질뻔할 때마다 꿈을 꾸네.
이거 혹시 꿈이 아니라 주마등이 아닐까?
"허억,허억,허으억…"
나는 숨을 가파르게 들이키며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내손?
"이거 뭐야."
팔을 들어보니, 없어야할 손이 자라나있었다.
내가 대체 얼마나 잔거지?
"어. 일어났어?"
"우와악!! 귀신이다아!!"
나는 놀라서 눈앞의 여자를 피하다가 침대 밑으로 떨어져 굴렀다.
여긴 병원인가?
… 아, 아니다. 그냥 판자집이네.
왜 내가 이런 폐가에 있는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내 눈앞에 있는 여자는 분명히…
"당신은 불에타서 죽었잖아요!"
"아하, 그때의 나는 그렇게 죽었군. 알려줘서 고마워."
"뭐라구요…?"
"음, 불에타서 기록해두지 못했던 거구나. 좋아. 그리고?"
"예?? 뭘 그리고에요! 당신 죽었다니까!!"
"으음, 아니. 이렇게 살아있잖아? 자세히 한번 말해봐.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나는 이 혼란을 중재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세찬아! 한세찬!"
"소리 지르지 말어, 그 오빠는 병원에 잘 모셔놨을거니까."
그런가, 하긴 그렇게 다쳤는데 당연히 병원에 가있어야 하는 거겠지.
그럼 이 여자는 대체 뭐야?
이 여자는 분명히 죽는걸 똑똑히 봤다.
"어, 어떻게?"
"어떻게 내가 살아있는지 알고싶어?"
"네!"
당연히 궁금하지! 죽은사람이 되살아났는데!
"내가 각성한 마력식이 좀 이상해서 그래. 뭐라더라? 잠깐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뭔가를 찾더니, 어떤 노트를 꺼냈다. 노트 겉에는 '시간의 마력식에 대해' 라고 쓰여있었다.
"그러니까, 음… 시간의 마력식을 각성해서 신체와 기억이 하루지점에 고정되어서 계속해서 반복하는 상태…라고 하더라구.
그러니까, 루프? 정확히는 역루프. 세상의 시간은 흐르는데, 나의 시간은 하루마다 리셋. 뭐 그런거지. 그래서 어제 내가 뭘했는지는 기록해두지 않으면 몰라."
"시간의 마력식? 역루프? 다시말해줄래요?"
동일한 설명을 몇번 더 들은 후에야 나는 가까스로 이해했다.
어제죽은 이 여자는 지금 루프해서 살아났다.
마력식을 각성했을때 모든 신체정보가 고정되었기 때문에 기억조차 루프의 굴레에 갇혀서 그녀는 시간의 마력식을 각성하기 이전의 상태까지만 기억하고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 이 여자는 오늘이라는 하루가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거창하긴 한데, 결과만 놓고 보면 약간 치매같다.
아무튼 하루마다 계속 여기에서 살아난다는 모양이다.
간단히 말하면 치매걸린 불사신?
그렇게 생각하니까 한방에 이해되네.
뭘그렇게 복잡하게 설명하는거래.
"응. 그래서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있거든. 그러니까 어제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줬으면 좋겠어!"
"일기?"
"어제 죽은거, 일기써야하니까. 빨리 말해줘."
"재촉하지 말라구요! 알겠으니까!"
자기가 자신의 죽음을 기록한다는 이 상황이 너무 아이러니한 나머지 순간 말을 쫓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물음에따라, 짧지만 강렬했던 첫인상을 그녀에게 말해줬다.
"음, '순서가 틀렸다'라고 했다는 말이지? 흠… 소비재료 목록에서 네이팜이랑 테르밋이 줄어들었던 걸 보면 그렇네. 테르밋을 먼저 던졌나보다! 아하하! 이 실수는 냉장고에 붙여놔야겠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멍청하네."
그녀는 포스트잇에 자신의 멍청했던 죽음을 간략히 적어서 냉장고에 붙였다.
냉장고를 보니까, 그런 포스트잇이 꽤 많았다.
몇개 읽어볼까.
'네이팜과 테르밋의 순서를 헷갈림'
방금 써붙인 거다.
'주변에 폭발물 확인을 안함'
'비오는날 고압전선을 자름'
'맹독에 오염된 흡혈귀와 싸우는데 방독면을 안챙김'
'폭염에 니트로글리세린을 챙겨나감'
.
.
.
그중에 눈에띄는 메모는 이것이었다.
아주 크게 써놨네.
'페트병에 있는거 보리차 아님!'
"페트병에 뭐가 들어있는데요?"
"아마 니트로글리세린일걸? 너도 마시지 마."
"그게 왜 거기있어!"
"나도 모르지. 그건 일기에 안써놨더라고."
그녀는 씨익 웃었다.
미친게 분명하다. 냉장고에 니트로글리세린을 보관하는 사람이 어디있어?
"난 경력이 짧아서, 이런 실수가 잦거든. 고치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
"아 그래요."
나는 적당히 대꾸하다가 일어났다.
지금보니까 내 옷이 바뀌어 있었다.
하긴, 그 걸레짝을 입고있을 수는 없겠지.
내가 입고있는 것은 그녀가 입던것으로 보이는 잠옷.
하늘색 땡땡이무늬의 밋밋한 잠옷이었다.
환자복이랑도 비슷한것 같네.
이 여자도 사냥꾼이라서 그런지 키가 커서 나한텐 잠옷이 조금 컸다.
어, 그런데 속옷은 어디갔지?
허전해서 잠옷을 들춰보니 아무것도 안 입고 있었다.
"어, 속옷말야? 그거 역시 네거였구나? 아마 냄새나서 빨았을 거야."
…그렇겠지, 고통때문에 '온몸'에서 '노폐물'이 빠져나갔으니까…
그 노폐물중에 소변이 포함된 사실은 이제 나 말고 이 여자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왜 웃는거지.
나는 그녀의 의미심장한 웃음을 무시하고 말했다.
"그, 속옷지금 어디있나요? 혹시 말랐어요?"
"어. 다 말랐어. 갖다줄까?"
"네, 감사합니다."
집을 가든지, 세찬이 병문안을 가든지 하려면 일단 속옷은 입어야했으니까.
그리고 속옷을 본 나는 경악했다.
"아."
혼자서 가터벨트입고 구경하다가 벗을 틈도 없이 바로 체육복을 입었었지.
그땐 집에 다른 속옷도 없었고.
나 그럼 여태껏 이거 입고 그 난리를 피웠던거냐…?
"저 혹시 이거… 아무도 안봤죠…?"
"누가 본다고? 아마도 나밖에 못 봤을껄."
"왜 의문형이야!"
"왜냐면, 지금의 내가 모르니까! 너 2일만에 깨어난거거든."
뭐!? 2일이라고?!
아, 집에 꼬마는 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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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은 옥상에서 눈을떴다.
팔다리가 고통스러웠지만, 그 고통이 정신을 깨우는데는 적당했다.
그리고 시야를 돌리자 눈앞에 보이는 녀석은 흡혈귀에겐 '바퀴벌레', 사냥꾼들에게는 '하루살이'라고 불리는 흡혈귀사냥꾼.
'한야'가 팔다리에 임시 깁스를 둘러주고 있었다.
"오! 사형! 오랜만."
"아, 하루살이. 네가 해치운거냐?"
"몰라. 기록 안해놨더라고. 오빠가 잡은거 아니었어?"
"그럼 녀석이 어떻게든 한 모양이지……."
무모한 녀석.
아무리 지금은 인간이 아니라지만, 너무 날뛰지 않았나.
세찬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높아진 시야로 주변을 둘러보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야, 김석주 못 봤냐?"
"모르겠는데, 김석주? 아아ㅡ 그, 사신님의 아들도 이제 사냥꾼이 된거야?"
"아차."
한야가 물었다.
세찬은 어디부터 설명해야하나, 생각하다가 그만뒀다. 어차피 내일되면 또 리셋될테니까.
간단히 현재의 상태만 밝히면 되겠지.
"그냥, 하얀 머리의 여자애를 찾아. 찾으면 연락하고."
"알았어."
"흩어져서 찾아보지. 이 흔적을 따라가면 있을거다."
"그럼, 먼저 내려갈게!"
폴짝 뛰어내린 그녀가 벽을 짚어 속도를 조절해가며 바닥에 닿는다.
세찬은 먼저 흔적을 쫓아가는 한야를 보다가, 몸을 겨우 일으킬뿐이라 자신은 현재 저런 무브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계단으로 걸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아."
김석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있었으려나, 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대체 어떻게 된거지."
생각해봐도 알길이 없는 일이다.
기억자체가 생기기 전으로 돌려버리는 마력식의 특성때문에, 했던말을 기억을 한다는 사실은 절대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매일 6시에 고정된 장소에서 고정된 상태로 다시 돌아오니 '절대 죽지않는다.'
기억을 하지 못하니 PTSD도 정보누출의 위험도 없고, 죽어서 시체도 남기지 않는다는 특성때문에 어떤 잔혹한 일이든, 실험이든, 잠입이든, 그녀가 가능한 최대한의 일에 한해서는 리스크없이 수행할 수 있는 사기적인 능력이기도 하다.
그 마력식의 각성이 훨씬 더 늦었더라면… 아마 그녀의 능력은 이런 애물단지같은 성능이 아니었을텐데.
잡념을 떨치고 한세찬은 건물에서 뛰어내린 흔적을 발견해
걸어가며 생각했다.
'이번 일은 악마사냥꾼한테 최대한 따져내야겠어. 덩달아, 병원비도 청구하고…….'
흔적을 쫓아 도착한 골목에서, 한야가 세찬을 불렀다.
"찾았다! 여기야."
"아, 그런가."
세찬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다가 한야에게 제지당했다.
그녀의 제지에, 그는 살짝 불쾌감이 묻어져나오는 목소리로 항의했다.
"뭐야? 비켜, 나도 상태를 확인해야할 거 아니야."
"오빠, 혹시 저 애랑 무슨 관계야?"
"관계? 그게 지금 중요해?"
"중요해! 그러니까 빨리 말해."
세찬은 그 말싸움이 귀찮았다.
구구절절히 설명해봤자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고, 그녀를 납득시키는데 걸리는 노력에 비해 얻어지는건 하나도 없다.
어차피 그녀는 기억을 하지 못할테니까.
그래서…….
"그냥 동거인이다."
라고, 굉장히 압축하여 의사를 전달했다.
"아, 그래? 동거인? 그럼 괜찮으려나……. 좋아."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골목을 막은 몸을 치웠다.
그녀의 제스쳐가 굉장히 신경쓰였지만,
그러려니 했다.
지금 녀석의 외형은 확실히 신경을 써야 할 정도니까.
하지만 드러나는 광경은…….
"시, 시발, 뭐야, 왜 저런 꼴이지?"
"왜그래, 동거인이라며?"
"그, 그렇긴 한데."
세찬은 곧바로 시선을 치울 수밖에 없었다.
"옷은?"
"아, 그거. 음……. 못 입혀둘 것 같아서 일단은 벗겨놨어."
그녀가 슬쩍 가리킨 곳에는, 이미 옷이라는 기능을 상실한게 분명한 천 조각들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었다.
불쾌한 냄새도 느껴지는것이, 아무래도 실례를 한게 아닐까 싶다.
확실히, 위급상황에서 충분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은 배변을 조절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있는 사실이니 그다지 놀라운 정보는 아니지만…….
문제는 그 속옷이다.
'대체 왜 저런걸 입고있는거야?'
하얀색의 가터벨트라니, 대체 왜 체육복 아래로 저런걸 입고 있었다는 말인가?
평소엔 드로워즈와 캐미솔만 입고 돌아다니던 건어물같은 녀석이, 저런건 도대체 어디에서 낫길래…….
"야."
"이름만 부르지 마, 기분 이상하잖아."
"시끄럽고……. 쟤는 네가 데려가서 뭐라도 입혀둬라."
"응? 동거인이라면서, 왜? 오빠가 하지."
"아무튼 해."
세찬은 미간을 짚으며 속으로 애국가를 불렀다.
'저런 것'에 욕정한 자신을 질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