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0화 〉지옥 (20/101)



〈 20화 〉지옥

"그런데 철거는 왜? 지금은 그냥 도망쳐도 되잖아. 애도 있는데."


저렇게 찾는걸 보면 꼬마가 꽤나 중요한 인물인것 같은데, 그럼 얘만 데리고 나가면 우리의 승리가 아닌가?
왜 힘든 일을 자처하는 거지.

"그냥 놔뒀다간, 문제가 생기니까."
"뭐? 무슨 문제?"
"오라클의 영향력이 유지된다면,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날 뿐이겠지. 게다가, 네 정보를 판 녀석도 여기에 있어. 이름만 알 뿐이지만, 여기에 있는건 확실해."


그런가,  의뢰를 받아들인 것 자체가 나때문인것 같다.
이럴거면 좀 더 철저히 해서 나한테 걱정이나 끼치지 말지.


그나저나, 과격하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누군지 특정할 수 없으니 다 죽인다니.


또라이같긴해.

이거, 그냥 테러행위가 아닌가 싶지만…….
어차피 여기에 더이상 선량한 사람은 없을 것 같으니까 상관은 없으려나.


우리는 은밀히 움직이며, 꼬마를 찾기 위해 흩어진 사냥조들을 하나씩 암살하는 세찬을 구경했다.
내가 사람 죽은것에 충격을 그닥 안 받는걸 알고난 후 세찬은 이제 그냥 신경을 안쓰고 목을 찔러대고 있었다.

보기에 참혹한 현장이긴 하다.
방금까지 평범하게 사고하고, 삶에대한 갈망이 있는 육신에서, 생명을 빼앗는다.

그런데 정말이지 이상하게도, 별 감흥이 없다.
정확하게는, 먹기좋게 살이오른 닭의 목을 비트는걸 봤을 때 정도의 감상이랄까.
그것도, TV너머로 보는.

어쨌든 애한테 보여줄 만한건 아니니까 꼬마의 눈은 가려주자.


그나저나 쟤가 팔다리 부숴진 상태에서 저정도로 움직일  있는 새끼였다니.
처먹은 진통제가 너무 훌륭한 물건인건지, 아니면 그냥 저놈이 미친건지 잘 모르겠다.


옛날에는 정말 많이 져준거였구나.
그동안 장난친 것들이 떠올라서 조금 등줄기로 싸한 느낌이 스친다.

이젠 다 까먹었겠지. 음, 그럴거야.
아닌가?
혹시, 내가 장난쳤던거 다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으려나?
돌아가면 사과해야하나…….

아무렆지 않게 살인은 행파던 녀석의 행동이 점점 굼떠지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진통제 약발이 떨어지기 시작했나.

큰일이네. 그냥 도망이나 치자고 몇번 불러봐도, 세찬이는 지금 꼭 해내야만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으……. 모르겠다.

"그래서, 대체  가방은 어디있는건데?"
"이 근처인데. 잠깐."

세찬이 손을 들어 우리를 저지했다.
 3명이 통로 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한명이 세찬이 집에서 들고 나갔던 거랑 똑같이 생긴 가방을 들고, 두명이 그를 따라 걷는 행색이었다.


저걸 대체 어디로 옮기는거지?
뭐, 이제 거기에 도착할  없으니 별로 상관 없지만.

"제기랄, 여기 찾아본다는 새끼들은 다 어디로 간거야?"
"어디서 땡땡이라도 치는거 아닙니까?"
"어이없는 새끼들일세."

그 무리들은 그리 투덜거리며 통로를 지나쳤다.
그런데 저쪽 방향은 아까 세찬이 찔러놓은 시체들이 한가득인데.
시체를 대충 빈 창고에 치워놓기는 했지만, 사방팔방에 튄 피를 보면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거다.

"두명까지는 어떻게 해볼 수 있겠는데. 내 지금 상태로는 세번째는 못 잡아."
"그럼 어쩌지, 난 그런거 해본적 없는데."

물리저해만 풀면 나도 주먹 한방에 세찬을 기절시킬 정도의 힘을 낼  있다.
그러니까, 아무렇지 않게 살인도 한다면 할 수는 있을거란 얘기다.
그다지 살인을 하고싶어서 어쩔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필요하다면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정도까지 힘을 낼 수는 없는게 문제.


 괴랄한 개목걸이보다 약하긴 해도, 어째든 흡혈귀 잡으려고 만든 팔찌가 아닌가?
이거 순수하게 근력운동같은거 해서 근육이 붙으면 자의로 뜯어낼  있나?
그런 것에 대한 대책도 마련되어있긴 하겠지.


아무튼, 중요한건 지금 나는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주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4초만 시선을 끌어봐."
"응?"

그렇게 말한 세찬은 곧바로 뒤에 둘에게 미끄러지듯이 달려나갔다.
대체 어떻게 안 들키는거지?
그리고 어떻게 소리가 하나도 안나는건지. 뭐, 밤에 화장실 갈때는 편할것 같다.

그나저나 시선을 어떻게 끌라는건지. 그냥 나가서 말이라도 걸면 되나? 아니면, 춤이라도 춰?
뭐, 그랬다간 4초는 커녕 1초만에 경계당할 거다.
으음, 돌이라도 던질까? 아니, 괜히 잘못 던지면 어그로만 끌릴걸.
그냥 쉽게 생각하자.


세찬이 자리를 잡은게 보이자, 나는 이젠 만능으로 생각되는 인식저해를 몸에 두르며 그들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그리고 맨앞에 가방을 든 남자가  옆을 지나갈때, 나는 슬쩍 발을 걸었다.

"억! 뭐야?"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중1때 한세찬이랑 반에서 참 많이도 치던 장난이었는데.
 경험이 여기서 발휘될줄은.
아무튼 깔끔하게 들어간 발걸기는 겨우 잠시 균형을 잃게 하는 정도였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몸으로 부딪혀 넘어트렸다.


콰당!

"어떤 새끼ㅇ…"

쓰러진 남자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세찬이 목에 못을 던져넣었다.
세찬이 있던 곳에는 이미 두명의 남자가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피웅덩이를 만드는 중이었다.
정말 볼때마다 참, 얘 나랑 같이 살던  한세찬이 맞나 싶다.
이 광경을 보고도 심리적인 동요가 없는 나도 진짜 이상하긴 하지만.
진짜 흡혈귀가 돼서 그런가?

세찬은 이제 완전히 진통제의 효과가 끝났는지, 얼굴근육이  떨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부러진팔로 사람 목에 박힐정도로 강하게 못을 세게 던졌으니, 완전히 무리한거 아니야?

"너……. 너무 무리하는거 아냐?"
"됐어, 가방에 진통제는  있으니까. 가방좀 가져와 줘."


세찬은 이제 더이상 몸을 움직이기 힘든지, 나에게 가방을 가져와 달라고 했다.
나는 뭐, 당연히 가방을 들고 세찬에게 다가갔다.

끙, 이거 꽤나 무거운데.

가방을 세찬의 앞에 내려놓자, 세찬이 몇마디 중얼거리더니 가방을 열었다.
뭐라고 하는지 들리긴 해도 딱히 의미를 알 수있는 말은 아니었다.
뭐 암호같은건가.
가방에서 알약통을 꺼낸 세찬이 뚜껑을 열고 입안에 들이 붓더니, 아작아작 씹어 삼켰다.

"너는 무슨 진통제를 영양제처럼 먹냐."
"시끄러워."


세찬이 나한테 화내는 것처럼 쏘아붙였다.

많이 아픈가, 되게 날카롭네.
그야 그렇겠지만.

잠시후 세찬이 가방에서 총을 꺼내더니, 나한테 내밀었다.
얘도 총을 갖고 다니는구나. 못 말고는 안쓰는줄 알았다.
너무 못에 집착하길래 그만.


"이건 혹시 모르니 네가 가지고있어. 은탄환이고, 7발 장전되어있을거다."
"응."
 




뭔가 신기하기는하다.
한국에서 실총을 쥐어보게 되다니 말이야.
군대를 안가봐서 더 신기하다.

 그렇다보니 한번도 실제 총을 쏴본적은 없지만, 대충 겨누고 방아쇠 당기면 나가는건 안다.
게임에선 많이 쏴봤으니까.

하지만 내가 아무리 흡혈귀가 되면서 이런 상황에 심리적으로 면역이 되었다지만, 직접 사람을 쏘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게 더 무서울것 같은데.
사실 지금도 내가 좀 무섭거든.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정신쪽이 바뀌어버린것 같아서.
몸이 바뀐건 백번 양보해서 그냥 그렇다고 치더라도,
머릿속까지 바뀌는건 내 본질의 문제랄까… 그래서  무섭다.

그리고 괴물이나 상대할거라며, 왜 사람이랑 싸우고 있는거냐고.
광고가 실제랑 다르잖아.

내가 총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있을때, 세찬은 가방에서 무슨 두꺼운 펜같은 검은 막대를 꺼냈다.
생긴게 아무리봐도 그, 폭탄 스위치같이 생겨서 나는 즉시 물었다.

"그거 설마 폭탄스위치냐?"
"맞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런데, 그동안 온갖 비현실적인 도구를 봐오다가 갑자기 총, 이제는 폭탄까지.
어쩐지 현대문물을 보니까 반갑기도 하다.
참. 이런걸 반가워하다니.


"그럼 언제 터트릴건데?"
"얘를 찾느라 전력이 분산된 지금. 최대한 빨리."
"폭탄은 언제 설치하고?"
"그건 이미 스팅레이가 퇴근하기 전에  끝내놨을걸."


음, 병원 실려간걸 퇴근이라고 해도 되는걸까.
죽은게 아니니까 은퇴는 아니겠지만…
그런데 분명히 뭔가 좀 더 어려울것 같았는데.
세찬이 찾는데도 얼마 안걸린것 같고, 찾고나서도 뭐 별거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만만한거 아닌가?

"별거 없네. 의외로 사냥꾼 쉬운거 아냐?"
"그야 내가 다했으니까."


세찬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그렇네.
나는 와서 숟가락만 얹고 세찬이만 구해줬다.
아니, 구한것도 아닌가? 세찬이가 스스로 잘 했다.
부목 대는거나 도왔지.
 왜 온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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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세찬과 꼬마는 시설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아까부터 세찬이랑 만난 이후로 꼬마는 한번도 말하질 않았다.
그렇게 세찬이 무서운가.


하긴 무섭겠지. 방금까지 몇십명을 죽였는데.
바닥에 뿌린 피도 몇리터일지 모를 정도다.
내가 이상한거지, 이게 보통 반응이 아니겠는가.
오히려 애 치고는 꽤나 멘탈이 강하네.

따지고보면 세찬이 감금상태에서 풀어줬다고 해도, 사실상 우리가 하는건 납치나 다름 없는데 말이지.
아무말 없이 그냥 복도만 걷고 있기 심심해서 나는 내 다리에 꼭 붙어있는 꼬마에게 말을 걸었다.

"꼬마야, 그러고보니 너 이름을 모르네."
"저, 저는 이름이 없는데요…"
"응? 그럼 다들 뭐라고 불렀는데?"
"그냥… 저를 딱히 부르질 않았어요. 방에서도 처음으로 나오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름이 없어요."


얘기를 듣던 세찬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 이제 남의 이름 함부로 묻지마. 흡혈귀잖아."
"뭐가 어때서. 어차피 이름가지고 뭐 할줄도 모르는데."
"….됐다. 모르는게 약이지."


구체적으로 무슨 짓이 가능한지는 묻지 않았지만, 연구자 말로는 '대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었지.
실제로는 더 끔찍한 일이라고도 했지만, 그건 잘 모르겠고.


"그럼 이런경우엔 어떻게해? 내가 이름 지어주면?"
"그건 이름을 받아들이는 사람 문제겠지."
"저는 딱히 상관 없어요."

음, 계속 꼬마야 하고 부르기도 좀 그런데.
그냥 편의상 꼬마, 애, 꼬맹이 정도로 부르고 있기는 해도…
그럼 이름을 어떻게 지어줘야하지, 성씨는 어떤걸로 하고?
그런 시덥잖은 생각을 하던중에, 꼬마가 물었다.

"그럼 누나는 이름이 뭔데요?"
"누,누나?"
"뭘, 누나지."


세찬이 한마디 거든다.


누나라니…….
하긴, 이제와서 형이라고 부를 순 없긴 하지.
그나저나, 이럴때 나는 김석주라고 말해야되나, 아니면 릴리라고 말해야되나 고민이 된다.
한명은 이름이 없어서 문제, 한명은 이름이 두개라서 문제.


참 웃기는 상황이네.
내 이름을 줄 수도 없고.
뭐, 이름정도야 김석주라고 알려줘도 상관 없긴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이제부터 남한테 이야기할땐 릴리라고 소개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끝까지 그러도록 해야겠지.


나는 고민끝에, 릴리 스팅레이라고 불리는걸 선택했다.

"…이 이름은 좀 쪽팔린데, 릴리라고 불러."
"릴리요? 저는 이름은 잘 몰라도 누나한테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

할말이 없네.
어울린다고 해주는걸 칭찬으로 받아야할지…
기분이 나쁜건 아니지만, 묘하긴 하다.
근데 진짜 어쩌지.
이러다가 김석주는 대체 어디로 가는걸까.
뭐, 세찬이 알고있고 언젠가 정말 괜찮을것 같으면 민석이나 애들한테 알려줘도 괜찮긴 하겠지만…
해놓은 수고가 있다보니 밝히기가 힘들어졌다고 할까.


그나저나, 여기저기 멍들고 부서진 세찬이가 눈에 밟힌다.
만약 이런게 사냥꾼의 일상이면 좀 버거운데.

"너 일하면 이정도가 보통이야?"
"아니, 너네 아빠랑 일할때 아니면 이런건  안하지."

그런가?
그러고보면 이렇게 많이 다친적은 별로 없었던것 같다.
가끔 바이크 타다가 다쳤다면서 온몸에 깁스하고 병원에 입원한적이 몇번 있긴 했는데… 설마 그거 사냥꾼 하다가 다친거였나.

바이크 타는 꼴 보면 진짜 바이크 타다가 다쳤을 수도 있긴 하지만, 이제 의심스럽네.

내가 없을때 세찬이가 무슨 고생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내 각오보다 일은 쉬울지도 모른다.
이제 어차피 사냥꾼은 하게 될 것 같은데… 어쩌겠어.


그래도 이번일은 이걸로 끝이겠지.
게다가 여기서 한번만 꺾으면 바로 내가 들어왔던  문이다.
그런데 왜 얘는 문 앞에서 못 나가고 숨어있었던거지?
살짝 의아했는데,  대답은 쉽게 나왔다.

철컥, 철컥.


"으, 안열리는데?"
"뭐? 비켜봐."

내가 힘이 부족했던건가 해서 세찬이가 당겨봐도 요지부동이다.
혹시 미는건가 해서 밀어봐도 움직이지 않는다.
완전히 막혔어.

"칫, 스팅레이가 분명히 이쪽 결계는 해제했을 텐데…"
"그럼 우리 이제 어떻게해?"

어쩌면, 결계가 고쳐진 모양이다.
내가 들어올땐  좋게 해제된 상태였나?


우리가 안에 있는데 그냥 폭파스위치를 누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여기서 직접 하나하나 다 상대하기엔 우리 전력이 너무 부족하다.
나는 한탄하듯 말을 뱉었다.

"무슨 깡으로 두명이서 여길 온건데…"
"우리라고 처음부터 두명은 아니었지."
"……."


그렇다는건 꽤나 성대하게 실패했구만.
거기다 실버는 혼자만 간신히 탈출했다.
그래서 겨우 악마사냥꾼에게 상황을 알렸고, 그 악마사냥꾼은 나한테만 이 이야기를 한것 같으니…….
사실상 여긴 이제 사냥꾼이 나랑 세찬밖에 없다는 이야기인가.

아니, 그 여자는 여기서 대체 무슨 미래를 봤다는거야?

"으음, 그럼 이 문을 부수는건?"
"폭탄이라도 터트리게? 잘못하면 입구채로 무너질거다."
"정문은? 그쪽으로 나갈순 없을까?"
"멀쩡한 흡혈귀들이랑 정면 승부를 붙자고? 만전의 상태도 아닌데?"
"아니 그럼 어쩌자고?"

답답하네.
꼭 의견도 안내는 놈이 불평은 많이해.


그런생각을 하고있었는데, 문득 자그마하게 소리가 들렸다.
위층에서 들리는 모양이다.
출구가 가까워서 들리는건가.


"….확실히 사냥조로군. 그 사냥꾼한테 당한건가?"
"그런것 같습니다만, 파괴된 결계를 새로 작성했으니 도망치진 못할겁니다."
"한번 가서 확인해보도록하지."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다.
말투로 봤을때 여기 있던 사람들보단 높은 사람들 같네.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한세찬에게 말했다.

"세찬아, 저거 들려?"
"뭐가. 약기운때문에 귀가 먹먹해서 안들려."

음, 세찬은 못 들었나보다.
하긴 나한테도 아주 작게 들리는 거고, 약기운까지 있으면  들을 만도 하지.
이렇게 되면서 나는 청각도 상당히 좋아진것 같으니까.
아무튼 나는 세찬에게 내가 들은 것을 설명했다.

"음, 위층에서 누가 내려오려는 모양이야. 결계도 새로 작성했다는  같은데."
"몇명이나?"
"두명. 아무래도 여기있던 사람들보단 높은 사람들 같아."
"그럼 흡혈귀일지도 모르겠군. 여기 있던 놈들은 다 인간이었으니까."


나도 그럴것 같긴 하더라.
어쩌지? 흡혈귀라면 인식저해도 잘 안통할텐데.
그리고 일반인보다야 힘도 쎌거고, 오감도 좋을거고, 당연히 싸움도 잘하겠지.

왜냐면 그거 나한테도 적용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떻게, 상대 할만해?"
"급습하면 어떻게 한명은. 하지만 분명히 씨끄러워질 텐데…"

이러는 중에도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 위치를 아는건가?
우리는 빈 통로에 몸을 숨겼고, 나는 초조하게 세찬이 건네준 총을 쥐고 있었다.
그때 꼬마가 말했다.


"저기, 아마 여기서 나가는 통로가 하나 있어요."
"응?"
"위에서 흡혈귀들이 다 먹은 사람들을 버리는 곳이 있거든요... 거기를 타고 올라가면 아마도 옥상으로 나갈 수 있을거에요."
"이 건물에 옥상이 있다고?"

밖에서 볼땐 그냥 폐건물 이었는데?
옥상따위 있을리가 없을터다.
그러자 세찬이 설명했다.

"여긴 일종의 이면차원이야. 현실은 폐건물이지만… 아씨, 설명은 나가서 하자. 꼬마야, 안내해."


상황이 이래서 자세한 설명을 듣지는 못했지만 뭐, 대충 알겠다.
아무튼 여기도 뭐시기 차원이라는거지.
이런 고도의 은폐기술이 있으니 평번한 사람들은 흡혈귀가 세상에 있는줄도 모르는거겠지.

"네. 이쪽으로…"


발소리를 피해 창고를 나온 우리는 꼬마를 따라서 통로를 걸었다.
그러자 여기저기 살점붙은 뼈가 널부러진 넓은 창고가 나왔다.
세찬이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지만, 나는 딱히 악취가 느껴지지 않았다.
냄새가 안나니 무슨 다먹은 치킨뼈 보는것 같다… 으윽.
아무튼 그렇게 연결된 통로는, 사람 시체를 버릴때 쓰는 만큼, 사람이 들어가도 충분할 정도의 넓이가 있었다.

나는 문득 의아해져서 꼬마에게 물었다.


"여길 도대체 어떻게 아는거야? 방에만 있었다며?"
"냄새요……."
"냄새?"

확실히, 세찬이가 저렇게 코를 막을 정도면 냄새가  심했겠지. 얘가 있던 방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진 공간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그 흡혈귀 놈들은 이런 곳 근처에 저런 애를 놓으면 어떡해. 뭔가 이유가 있는건가?

저벅, 저벅…….

가까워져가는 발소리에 그런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통로 안쪽에 머리를 집어넣어보았다.


이거, 수직으로 된 통로라서, 세찬이가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여기 올라갈 수 있겠어?"
"괜찮아.30분 정도는…"

세찬이 작은 못을 꺼내서 자신의 팔에 마치 침처럼 꽂는다.
침술에도 조예가 있는지 몰랐는데.
볼수록 다채로운 녀석이다.
저런 끼를 여태껏 어떻게 숨기고 살았대.

그런데 이제보니 통로가 꽤 넓다.
이렇게 쪼그매진 나한테도 조금 큰데, 이 꼬마는 자기 힘으론 절대 못 올라갈  같다.

"꼬마야, 너는 나한테 업혀."
"네?"
"너는 너무 작잖아."
"……."

나도 작기는 하지만, 팔 다리 쭉 뻗으면 떨어지지 않고 버틸 수는 있거든. 세찬이는 지금 자기 몸 건사하기도 힘들테니 제외고.

그렇게 말하니 꼬마는 군말 없이 업혀왔다.
내가 먼저 올라가고, 세찬이 뒤에서 애가 떨어지나 봐주며 올라가기로 하면서, 통로에 들어가 양팔을 뻗어 봤다.

음, 역시 나한테도 살짝 크긴한데, 이정도면 문제없이 올라갈  있을것 같은데.
그런데 고개를 올려다보니 상당히 높은것 같다.
한 30미터정도…?
자세한 수치는 나도  모르겠지만, 이정도면 그래도 할  할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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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 30미터 통로를 수직으로 올라가는건 굉장히 빡센 일이었다.

"흣, 개같은, 물리저해…"


작게 내뱉은 불만이 통로에서 메아리치며 희미해진다.
엄청 올라온것 같은데, 아직도 중간이야…
팔이 저린다.
이 팔찌만 없었어도 이번 일의 난이도가 2배는 쉬웠을텐데……!

앞으로 나 떼어놓고 갈땐 그냥 팔찌 빼달라고 해볼까.
물론 받아들여질리가 없겠지만…….

차라리 이런 일을 앞으로  받는게 맞는것 같다.
세찬이도 교훈을 얻었을걸.
내가 정식으로 사냥꾼이 되어도 악마사냥꾼이 주는 일은 하지 말자.
그때 세찬이 발을 뻗어 등을 반대편에 붙여서 몸을 고정하고 가방에서 뭔가를 꺼낸다.
슬쩍 아래를 보니까, 폭탄이다.

"잠깐, 먼저가고있어. 여기 폭탄좀 설치하게."
"흐읏…윽…."


나는 뭐, 대답할 기력도 없었다.
슬슬 혈류까지 돌려가면서 올라가는 중인데, 점점 힘이 빠진다.
피가 소모되는 기분이 든다.


송곳니가 가렵다. 등도가렵고, 그런거 신경쓰니까 코끝도 가려운것 같다.


하지만 긁을 수는 없다.


나는 세찬이처럼 184cm짜리 몸뚱아리가 아니라서 아까 세찬이마냥 발로 몸을 저렇게 고정하려면 거의 누워야하는데, 그러면 절대 이 통로에서 못 움직이겠지.
지금  폭도 겨우 맞는걸.


아. 175cm의 몸이여, 그립구나.

"누나 괜찮아요?"
"흐윽, 아, 괜찮,아."

 




피를 너무 많이 써서 그런가.
걱정해주는 꼬맹이가 내 목에 두른 팔이 너무 탐스럽게 보인다.
달콤한 냄새도 나는것 같고…
아, 안돼. 참아야한다. 흡혈에 맛들리면 큰일 나.
나는 고개를 흔들고 정신을 집중했다.
아빠랑 약속했으니까 사람 피는 절대  빨거다.
그런데 침은 왜 흐르는거냐.

"누나 땀이 심한데. 저 때문에 무리하는거 아니죠?"
"흐, 츠릅. 아, 아냐. 나 괜찮,아."

꼬마의 걱정스런 물음에 나는 흐르는 침을 삼켰다.
몇방울 꼬마의 손에 떨어졌나본데, 땀이라고 생각해줘서 다행이다.


물론 땀도 흐르고 있긴하다만…
겨우겨우 꼭대기에 도착한 나는 꼬마를 올려보내 문, 그러니까 쓰레기 개폐구를 열었다.
통로에서 나온 나는 구르듯이 바닥에 쓰러졌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학…도착…했다…"

와, 물리저해달고 이렇게 운동해본건 처음이다.
마치 모래주머니 달고 격렬한 운동을 한 기분.
진짜 근육 붙는거 아니야, 이거.
그런데 이런 나와 달리 세찬은 너무 멀쩡히 올라오는거 아닌가.


이녀석도 엄청 무거운 가방을 들고있었는데다가, 사지는 박살나서 부목을 댄 상태였는데도!
진짜 초인이다. 미친놈…
쟤도 나같은 팔찌하나 필요한거 같은데.

"근처에 소리는?"
"흐으…안…들려… 후으. 아무도 없나봐…"


귀에 집중해봤지만, 뭐 이 근처엔 사람이 아예 없는것 같다.
다들 지하로 갔거나 파티장에 있는 모양이지.


이제 좀 숨을 돌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는 꽤나 고급스런 분위기다.
나는 조금 짧은 통로의 중간에 붉은 카펫 위에 자빠져있었고, 통로끝에는 커다란 문, 그리고 반대쪽 끝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연갈색 배경에 작게 검붉은 식물줄기와 꽃이 아라베스크 식으로 얽혀있는 무늬가 반복되는 벽지.
벽에 바닥과 이어지는 부분부터 50cm쯤 덮은 반질반질한 목재에도 비슷한 느낌으로 꽃이 조각되어있다.

그런 고급스런 통로 벽, 중간중간 고급스런 등잔이 흰 커버에 씌워져 있지만, 불은 켜져있지 않다.
누가 있으면 불이 켜져있었겠지.
아니, 어차피 어두워도 잘 보이는 흡혈귀라 불을 꺼두나?
그런거면 아예 처음부터 등잔을 달지 않았겠지?


힘들어서 자꾸 딴 생각을 하는데, 세찬이 통로를 걸어가 문을 끼익 열었다.
잠겨있지는 않은건가?
열린 문 너머에는 고급스러운 가구들이 즐비한, 사무실같은 분위기의 방이었다.
마치 왕좌와도 같은 의자가 방 가운데 놓여있었거고, 그 의자 앞에도 상당히 권위적인 디자인의 목재 테이블이 있었다.
그외에 벽난로, 소파, TV, 고급스런 추시계, 커튼이 달린 침대...작살나게 큰 창문과 커튼.


"이건 뭐, 호텔 VIP실이네."
"집무실로도 쓰는 건가? 이건 생각 못한 수익이네."

세찬은 씨익 웃으며 방안을 뒤져댔다.
방의 서랍이란 서랍은  열어보고, 종이뭉치도 마구잡이로 헤집고, 이것저것 다 건드려본 세찬이 갑자기 멈칫한다.


"아, 잠깐만."
"푸. 뭔데."


굳은 세찬의 말에 나는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바람을 불어서 밀어내며 물었다.

"에이샤 그래멀린.  놈이다. 목표."
"여기 한국 맞지…?"


흡혈귀 이름은 영어이름이 국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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