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지옥 (18/101)



〈 18화 〉지옥

세찬이 명함의 문양을 가르키며 말했다.


"이건, 오라클의 문양이야."
"걔들이 대체 뭐하는 놈들인데?
"흡혈귀의 편도, 인간의 편도 아닌 박쥐같은 놈들이지."
"그러니까, 뭘 하는 녀석들이냐고?"
"그 여자가 관심주는  보면, 악마추종자 집단인 것 같기는 한데. 그녀는 악마랑 관련되어야만 움직이니까……."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앞으로 엄청 무거운 배경설정이 설명될게 분명하니까.
세찬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도 아직 자세한건 몰라."
"씨… 그럼 분위기는  잡는데…?"
"그냥."

나는 세찬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뭐하는거야.
괜히 기분만 손해봤네.
아무튼 오라클이라는 단체는 사냥꾼과 흡혈귀 양측에서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배신을 했고, 그 목표가 악마소환이나 뭐 그에 준하는 오컬트적 무언가라는 것만 알 수 있었으며, 악마를 불러내서  할건지도 아직 밝혀진게 없다고 한다.

하긴, 흡혈귀랑 사냥꾼이랑 같이 모여서 쎄쎄쎄하고 등산하자고 모인건 아닐것 아냐.


내 정보 팔아넘기기 말고도 하는게 있겠지.
그런데  하필 내 정보가 팔렸을까?
그런 단체한테 찍히면 앞으로 어떻게 되는거지?

생각은 많이 드는데, 이게 다 무슨소용이냐.
지금 가장 급한건 빨리 집에 가고싶다는 생각이다.
세찬은 명함을 지갑에 끼워넣으며 말했다.


"너는 집에 있어. 결계 쳐둘테니까 절대 나오지 말고. 누가 들여보내달래도 들여보내지 말고."
"다 알지, 나도. 내가 애도 아니고."

그런 당부는 초등학생한테나 하라고.


"아는게 없으니까 그렇지."


칫, 그래도 내가 세찬보다 학벌은 더 높은데.
고등학교 중퇴한 쉑이랑 유명한 대학은 아니지만 공대까지 진학한 나는 학벌로 따지면 엄청난 차이!

……이기는 하지만 별로 의미따윈 없겠다.
지금은 신분증도 없고 졸업장도 없는 완전히 무적자신세.
아니 적도 엄청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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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부터 3일 후. 실버가 준비가 끝났다며 세찬을 불러냈다.
나는 완전무장한 세찬이 신기하게 보였다.
방탄복같은 조끼에 검은 사각형 케이스, 거기에 선글라스까지.
떡대가 합쳐져서 완전 특수부대가 따로 없다.
게임에서 튀어나온 비주얼인걸.

"알고있지? 절대, 나오지, 마."
"알아, 내 몸인데 내가 제일 잘 챙기지."
"그래. 부탁인데, 니네 아빠한테 더 까이기 싫으니까 조심좀 해."
"너나 잘하시지. 위험한 일이라며."
"뭐 한두번 하는것도 아니고."

나는  갔다오라고 인사하고 세찬이 계단을 내려가 보이지 않자, 집에 돌아와 선풍기 앞에 누웠다.
생리도 끝났다.

젠장할, 이제 내 생리주기도 알아야하는 건가.

잠시 누워있다보니 조금 졸음이 온다.


원래 낮은 내가 일어나 있을 시간이 아니긴 하지.
마땅히 할 일도 없구나 싶어서 잠을 잤다.
아무도 없는데 혼자  차려 먹기도 귀찮고, 배도 고프지 않아서 식사를 거른다.

그리고 눈을 떴을땐, 커튼 사이로 비치던 빛이 사라져 밖은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5시간쯤 잤나.

그런데, 세찬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건가.
살쩍 걱정이 되긴 하지만, 알아서 하겠지 싶어서  일을 찾는다.

평소라면 과제를 하거나, 대학친구와 놀러 나가거나 술을 마셨기 때문에 집에 이렇게 멍하니 있을 일이 별로 없어서 시간이 주체가 안된다.

세찬도 비슷했고.

우리는 마치 형제와 같은 사이였다.
어릴때부터 같이 살았고, 서로 말을 안해도 충분히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말을 안하면 어쩐지 어색한게 대부분이다만.
그래서 평소보다 말장난을 많이 하게 된다, 어색함을 주체하질  해서.


집에서 멍하니 컴퓨터와 tv를 전전하며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 꽤 늦었는데, 언제쯤 오려나.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괜히 방해하는거 아닌가 싶어서 관둔다.
사냥꾼이 하는 일이라는게 궁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 호기심은 아직 공포심을 넘을 정도로 크지 않아서 엄두를 못 내겠다.


어쨌든 하루의 일과는 꾸준히 해야지.
한글쓰기 공책을 꺼낸다.
연필의 사각사각거리는 소리가 기분좋게 느껴진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가나다라를 보며 살짝 흐뭇해졌다.
의수마스터 김석주라 불러 주기를.

…그러고보니, 요새 김석주라고 불리질 못하네.

한세찬도 뭔가 의도적으로 내 이름을 부르길 피하는 듯 하다.
얘, 걔, 새끼, 흡혈귀… 등으로 부르지.

걔가 내 이름을 부른게 언제가 마지막이더라?
실버한테는 릴리라고 부르라곤 했지만, 그건 외부인이라서 어쩔수 없는 일이었고, 유디라는 그냥 나를 릴리스라고 부른다.

그럼 세찬은 적어도 나를 김석주라고 불러줘야하는거 아냐?
혹시 그 개목걸이를 빼서 그런가.
그래도 물리력저해 팔찌는 계속 하고 있잖아.

나는 계속 뒹굴거리며 몇판정도 게임을 하다가 때려치웠다.
부캐니, 대리니 핵이니 소리 듣는것도 한두번 들어야 재밌지.
계속 듣다보니 좀 빡이 친다.
흡혈귀의 동체시력으로 '스킬보고 피하기' 따위는 일도 아닌걸.


보여서 피하는데, 합법핵 쓰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게임도 긴장감이 하나도 없어서 지루하다.
으아아, 학교다닐땐 집에 있는게 좋았는데.
매일 쉬니까 이것도 질려버린다.

그래, 밀크쉐이크나 한입 할까?

그건 언제나 정답이었지.
비척비척 냉장고를 잡아 열자, 냉장고에서 쏟아지는 빛이 너무 강하다.
어둠에서   보이는 눈 때문에 한밤중에도 불을 켜지 않았는데, 냉장고의 불빛은 마치 섬광탄처럼 눈을 파고들었다.


"으아,  눈…!"


바닥을 구르며 눈을 한참 비비고나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아이스크림을 꺼낸 나는 팩을 송곳니로 깨물어서 구멍을내고 빨아먹었다.
후음, 이것도 나쁘지 않네.
지극히 흡혈귀스러운 섭취 방법이다.
보는 눈도 없는 지금, 나는 지금 완전히 흡혈귀인 나에 심취했다.


아무도 없다.
생각해보면 되게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평소 언제나 타인과 맞닿은 삶을 살던 내가, 이제 정말 필요한관계를 제외하고는 만남도 최소화 하고 있다.

도민석. 친한 친구지만, 그는 그냥 일반인. 그리고 녀석은 내가 김석주인줄은 꿈에도 모를 걸.
말해준대도 믿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송지혜. 어쩐지 예전부터 거리감이 가깝다 했는데, 날 좋아하는  같다는 말을 들으니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어떻게 해! 나는 아직 받아줄 수가 없는 걸.
젠장, 내가 눈치만 좀 빨랐어도 CC한번 되어보는  였는데.
어쩐지 저번에 민석의 과제때문에 만났을때는 말수가 굉장히 적어진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박다빈, 별로 친하진 않았는데. 참 귀여운 애였다. 그 웃음 테크닉은 집에서 나도 따라하려다가 그걸  세찬의 싸늘하게 식은 '뭐하냐?'에 완전히 포기해버렸다.
흠… 귀여운걸 좋아하기도 하는것 같고.
혹시 얘도 집에서 연습하는건가?


앞으로도 계속 세찬에게 내 연기를 부탁해서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빨리 끊어내는게 얘들에게도 좋은거 아닐까.
나 때문에 혹시 흡혈귀한테 걸리거나… 하지는 않겠지?
아니, 그러면 오히려 더 가까이 둬야 하는건가?
젠장. 모르겠다.
요즘 잘 지내는지도 모르겠고, 종강인데 알아서들 쉬고 있겠지.

집에 혼자 있으니까 혼자 차분히 생각을 하기에 좋은것 같다.
병원은 어쩐지 싱숭생숭해서 뭘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었지.
게다가 병원에 길때마다 정말 심각한 외상이 딸려있어서,  생각할 수도 없었고.


난 떠올렸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건 의  주인데, 나는 그 모든게 너무 많이 바뀐거 아닌가.

의. 옷은 가장먼저 갈아치워버렸다.
어쩌다보니, 필요해서 여성의류를 찾아입게 되었고, 폭주한 유디라에 의해 완전히 과잉구매를 해버렸다.

식. 냉장고엔 이제 한국인 생필품, 김치가 없다.
마늘을 제외하니 먹을게 마땅치 않다.
그래도 아직 디저트는 어지간해선 다 먹을 수 있다.
오히려 단맛은 더 맛있게 느껴지고, 심지어는 피가 주스처럼 느껴진다.

주. 집은 여전히 내 집이지만, 바뀌어버린 키 때문에 원래 조금 낮게 느껴지던 다세대주택이 마침내 제대로 설계되었다는 것 처럼 몸에 들어맞는다.
하지만 창문으로 비치는 강한 햇빛탓에 창문에선 암막커튼이 활약하고 있다.


크고 작은 변화지만, 하루아침에 모두 변해버렸다.

삶에 필요한게 바뀌었으니 나의 정체성도 바뀐걸까?
나는 여전히 김석주라고, 나혼자만 생각하는걸까?
모르겠다.
혼자 생각하면 언제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끝난다.


시발! 내가 석주라고 생각하면 석주인거지! 아 몰라!


쓸데없는걸 깊이 생각해서 우울해지기 싫었다.
즐거운 일만 해도 모자랄 인생인데 말이야.
막말로, 내가 김석주가 아니면 어쩔건데?
자살이라도 할거야?


나는 고개를 젓다가, 빨래바구니에 쌓여있는 옷가지들을 발견하고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오늘 내가 빨래당번이었다.
세탁기에 옷가지를 던져넣고 아예 목욕도 해 버리자 생각해서 입고있던 속옷도 전부 넣고 돌린다.

머리는 여전히 잘 못 감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한손으로도 거품을 내긴   있었다.
머리가 길어서 혼자 하니까 힘드네. 역시.
하긴, 두손으로 할때도 조금 벅찼는데, 한손으로 어떻게 해 이걸.
정말 자를까…

나는 그렇게 목욕을 끝내고 나와보니, 실수했다는걸 깨달았다.
생각해보니, 입을 속옷이 없었네.
생각없이 빨래를 쌓아놓다가 카운트하는걸 잊었…….

아, 하나 있었다.
내 순수한 학술적 호기심으로 구매한 한벌의 가터벨트 속옷 말이다.
음……. 집에 아무도 없다지만… 그런 속옷입기와 알몸으로 있기를 머릿속에서 붙여본다.


……그치? 아무리 지금은 혼자라지만, 알몸은 아웃이지?


나는 서랍 깊숙한곳에 넣어둔  물건을 꺼냈다.
하얀색, 내 순수한 호기심이 거기에 있었다.
살때부터 입은 모습을 상상했었지.
어쩌면 나는 조금 나르시즘에 눈을 뜬게 아닐까?
나는 괜히 주위를 둘러봤다.
누가 있을리는 없지만.
아니, 오히려 지금 누가 있으면 큰일난다. 아무것도 안입었는걸.
그렇게 생각하니 좀 오싹오싹하다.
빨리 입고 티셔츠든 뭐든 걸쳐야지.


"오…"


나도 나름 이 몸으로 생활하면서 적응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좀 세다.

흰 살색을 감싼 더욱 깨끗한 흰색의 가터벨트는, 상상이상의 파괴력을 불러일으켰다.
이런걸 내 맘대로  수 있다니, 지금은 내 몸이지만 이건…….

"이쁘긴 이쁘네…"

이걸 자화자찬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그냥 감상평이라고 해야하나. 내 마음속으로도 혼란스럽다.
세찬이가 내가 이러고 있는걸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으음,  발정나서 달려들거나 그러진 않겠지?

이런 속옷만 입고 있기엔 또 뭐해서 한동안 입지 않았던 내 큰 티셔츠를 꺼냈다.
민무늬 흰색 v넥 티셔츠였는데, 아슬아슬하게 팬티를 가리는 라인도 너무…….


역시 내 취향은 아직 확고히 여성인게 틀림없다.

"음."

슬쩍, 다리를 꼬아 옆으로 섰다.
거울에 흰 벨트스타킹으로 반쯤 감싸인  허벅지가 비춰진다.
오오오… 이건 찍어두고싶을 정도다.
하지만, 사진같은걸 찍는건 변태 같잖아.
나는 벨트스타킹이라도 이만 벗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골반에 손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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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의아하게 거울을 흘겨보니 보인 모습에, 나는 꼴사나운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끄,끼야아아아악!!"


뭐야?  뒤에 누가 있었어!
분명히 방에 아무도 없었는데?
세찬이랑 실버가 결계도 쳐뒀을텐데?
현관 문도 잠궜고, 누가 들어오는 소리도  들었고, 심지어 입기전에 주위도 둘러봤는데?


"누, 누구야? 어떻…게…"

주거침입자? 강도? 도둑?
아무튼 누가 있었다.

"……"

그자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쓰고있던 후드를 벗었을뿐.
그러자 그림자로 가려져있던 얼굴이 드러났고, 나는 한번 더 경악했다.

"악마사냥꾼!"

설마 나를 죽이러 온건가?
결계는 어떻게 하고?
아무런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언제부터 있었던거지?


"뭐,뭐에요. 저,저는 아무것도 안했다구요…."
"……."

그녀는 여전히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느꼈던 압박감이 느껴진다.
이 무력감, 압도적인 공포감이 솟는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그 고요함에 미칠것만 같았다.


"무,무슨 말이라도 해봐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더니 조금 두드리고 나에게 내밀었다.
메모 애플리케이션이었다.
거기에 쓰여진 문장은 다음과 같다.


-다중인격, 배니싱트윈, 정신분열, 기억분리중에 해당하는게?

"예?"

이건  무슨 뜬구름 잡는 말인가, 사냥꾼들은 전부 이런거야? 악마사냥꾼이라고 다른건 없는가보다.
자기만 아는 얘기 진행시키기!
그녀는 휴대폰을 다시 가져가서 문자를 고쳤다.

-너의 의식으로 계속 말을 걸었는데. 다른 사람이 받은것 같아. 미안해.

"아."


-어떤 이유로 말을 할 수 없어. 무서웠나?


"네, 네? 아뇨, 아, 사실 아닌건 아닌데, 음… 네. 무서웠어요…"

솔직히 눈물도 쪼금 나왔다.
진짜 심장 멎는줄 알았다고, 젠장할.
미리 말을 좀 해달란 말이야! 한세찬! 실버! 유디라! 다 존나 싫어지네 갑자기.


나는 다리에 힘이 아예 풀려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으윽, 젠장.

-정말 미안. 급한 일. 네 친구 위험할 수도 있어.

"예? 세찬이가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오래 안돌아온다 싶었어도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생각했는데.
위험하다니?


그녀는 타자가 답답한지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다른 걸 꺼냈다.
무슨 전자 막대기같은 것이었는데, 그녀는 그걸 목에 대고 말했다.
그러자 억양이 없는 기계음같은 목소리가 울렸다.


"아,아, 음. 내가 그 아이를 보낸곳은 오라클의 만찬장. 악마소환을 위한 인신공양이 벌어지는 장소다. 한세찬. 그 아이는 지금 고립됐어."

"네? 인신공양? 악마소환? 세찬이가 고립됐다구요?"

나는 반쯤 패닉에 빠져서 그녀에게 들은 말의 핵심단어를 반복했다.
세찬은 지금 내 모든걸 알고있는 유일한 친구인데, 그가 위험하다니.
머리에 피가 쏠린다.


"진정하렴, 나는 그 아이가 너를 제외하고 들어갈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너도 같이 그 장소에 있어야 했었는데."

"예…? 제가 있어야 했단 말인가요?"


"그게 정답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아이는 다른 사냥꾼과 함께 갔다. 실버 스팅레이였나?"


"네. 맞아요. 그럴거에요."

"내가  미래에선 너와 그 아이가 함께 그 장소에 있어야했다."

"미래를… 본다구요?"


그녀는 미간을 검지로 문질렀다.
더이상 관계없는 말로 시간을 끌고싶지 않아 보였다.

"그래. 악마에 관해서만, 단편적으로."


"아, 알겠어요."

나도 더이상 시간을 끌어선 안될것 같았다.
이미 꽤나 시간이 지났고, 세찬이 언제부터 고립되었던건지 나로썬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급하게 트레이닝복을 주워입고 그녀에게 말했다.


"실버 스팅레이는 어디있죠?"

"그 아이는 지금쯤 병원에 누워있을테지. 이걸 받으렴."

그녀가 내 손에 세찬에게 건넸던 명함을 꺼내들었다.
초대장이라고 했던가?

"이게 있으면 흡혈귀라도 초대 없이 거길 들어갈 수 있을거야. 장소도 쓰여있단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현관으로 달려나갔다.
그런데 왜, 직접 나서지 않지? 분명히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텐데.
무려 최초이자 최후의 악마사냥꾼이라는 무슨 엄청나보이는 별명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가 직접 나서준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되겠지.

"그, 당신은 어쩌구요? 같이 안가시나요?"


"못간단다. 나는 악마가 없으면 개입   없거든."

그게 무슨 뜻인가.
궁금했지만, 캐묻지는 않았다.
자세한건 물을 시간도, 물을 필요도 없을것 같았으니까.
그녀도 더는 할 말이 없는지, 후드를 다시 집어쓰고 3일전에 했던  처럼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치만 젠장, 차도 없는데.
어쩔수없네, 오늘만큼은 세찬이도 이해해줄거다.

"역시 여기있었군."


세찬이 아끼는 오토바이열쇠는 역시 우산꽂이 아래에 있었다.
여기에 둔다고 모를줄 알았냐.
이미  알고서도 안 건드린거지.
탈 일이 없었으니까 말이야.
녀석이 애지중지하는 온로드용 바이크를 몰아볼 날이 온 것이다.


"칫, 엄청 멀잖아."


나는 헬멧을 뒤집어쓰고 바이크에 올라탔다.
헬멧이 좀 헐렁이는데, 바이크도 좀 크고…
뭐 어때.
나는 이제 흡혈귀잖아, 사고가 나도 죽지는 않을거야.
 아프고 말겠지. 바닥에 누가 은가루라도 뿌려둔게 아니라면.


나는 인식저해를 의식적으로 바이크전체에 두른다.
제대로 된건지는 모르겠다만, 만에하나 과속해서 찍힌대도 벌금은 세찬이 낼거야.

시동을 걸고 쓰로틀을 꺾었다.

콰르릉!!

뭐야, 뭐가 터졌나?했더니 그건 엔진소리였다.


콰곽! 콰르릉!!


어, 이거, 좀 빠른데?
아니, 좀 많이 빠른데?


"으아아! 미친, 이거 불법개조한거아냐?"

왜 애지중지 했는지 알겠다!
이런거 평소에 타다간 죽어!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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