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일상으로 돌아갔다
"어, 그쪽은…."
기억은 잘 지웠겠지?
그랬을거야.
"……."
하지만 그래도 뭔가 가슴이 두근두근거리는걸.
혹시 내 개목걸이차림을 기억하고 있는거라면…….
"누구…?"
"휴우……. 릴리 스팅레이라고 합니다. 이쪽이랑은 아빠끼리 아는 사이라서 잠시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어요."
"아하, 외국분이셨구나."
아무래도 기억은 잘 지워진 상태인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지혜는 늦은 도민석을 갈궜다.
갈굼을 듣던 도민석이, 사과를 하면서 말을 끊는다.
"아, 미안, 미안해. 그래도 점심은 내가 사잖아."
"그럼, 지각했으니까 디저트까지! 어때?"
"윽……. 알았어."
박다빈의 제안에, 도민석은 어쩔 수 없이 꼬리를 내렸다.
"그럼, 그렇게 해. 대체 어떤 박물관을 가려고 했는데?"
"이왕 가는거, 경복궁으로 생각했어. 유명하니까 인터넷에 참고할만한 감상문 몇개 있을지도 모르고."
괜찮은 제안인것 같았다.
난 경복궁은 멀리서 구경은 몇번 했지만, 들어가본적은 없었으니까.
사실은 뭐, 기대 되지는 않지만.
버스를 타기위해 정류장으로 이동하던중 다빈이 말했다.
"아, 더운데 그냥 택시타면안돼? 버스타는것보다 택시비 나눠서 내는게 더 낫겠다."
그런가?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나에게도 든다.
버스는 좀 복잡하기도 하고, 사람도 많고 태양빛을 가리기도 조금 힘드니까.
따지고 보니 택시가 아니면 안될것같아서 나도 거들었다.
"저도 택시가 좋아요."
"그래, 택시가 낫겠어."
나와 지혜가 맞장구쳤다.
민석은 알겠다며 핸드폰으로 콜택시를 불렀다.
택시는 금방 도착했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리 5명이잖아? 어떻게 한 차로 가? 승용차는 보통 운전자 제외하면 4인이 최대인데.
누구를 트렁크에 실어야하나 고민하던 중…….
가장 먼저 들어간 다빈이 자신의 무릎을 치며 말했다.
"릴리야! 내 무릎으로 올라와!"
"예?"
아, 저런 방법이 있었네.
그런데 애취급 당하는것 같아서 기분이 좀 그렇다.
23살 남대생의 혼이 울고있다.
그렇지만 역시 누구 하나 때문에 택시를 하나 더 부르기도 아깝고.
부끄럽긴해도 이성적으로 판단했을때, 돈은 아끼는 편이 낫다.
내가 고민하고있자 다빈이가 재촉했다.
"빨리, 빨리. 덥지않아?"
"아,네."
나는 결국 다빈의 무릎에 앉았다.
뜨거운 햇빛과 부끄러움중에 고르라면 솔직히 부끄러운게 낫지.
날씨 미친거아니야?
흡혈귀라서 실제로 피부가 타들어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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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야. 경복궁까지 왔는데, 한복 입어보지 않을래?"
"한복이요?"
다빈은 그새 내가 편해진건지 자꾸자꾸 뭘 시키려고 하고있다.
얘가 귀여운걸 좋아하는 취향이라곤 알고있었지만, 그게 나한테도 적용이 되는건가.
물론 나도 객관적으로 이 몸을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직은 완전히 내 몸 같지않아서 철저히 타인의 눈으로 판단 한 결과다.
그런데 갑자기 왠 한복일까?
"저기 한복 대여해준대. 한복입으면 입장 무료라고 들었는데, 어때?"
"그래도 입장료가 더 싸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런데 온김에 한번쯤 입어보고 싶지않아? 릴리는 한번도 안 입어봤을 거 아니야?"
"별로…"
나는 솔직히 의상에 별로 관심이 없다.
지금 입고있는 이 원피스도 결국 억지로 입은것이지, 내가 원해서 입은게 아니니까.
심지어 내가 고른것도 아니고!
그런데 한복은 평소에 입고 돌아 다닐 수 있는옷도 아니고, 결국 한번 입어본 다음에 '와~'하고 말텐데.
어째서 돈을 버리는거야.
"그치만, 솔직히 궁금해서. 지혜야! 한복, 릴리한테 어울리지 않을까?"
"음… 외국인이 입는거 보긴했는데……."
"오, 뭐야 너희들. 한복입게?"
민석이 지혜와 다빈의 말을 들었는지 끼어들어왔다.
"아뇨. 저는 별로 입고 싶지 않은데요. 돈도 아깝고…"
"돈은 신경쓰지마세요. 다빈이가 내주겠죠."
"으, 응? 아…. 물론이지!"
민석의 말에 다빈이 순간 당황해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표정을 풀고 나에게 말했다.
그렇게까지 나한테 입혀보고 싶은건가.
솔직히 더 거절하고 싶지만, 더워 죽겠는데 이 이상 대여점 앞에서 입씨름 하는것도 귀찮아졌기에 대충 한복 까짓거 한번 입어주기로 했다.
그 결과….
"손님은 검은색보다 이 분홍색이 괜찮을것같은데요?"
"와 릴리야, 하늘색도 어울릴거같은데?"
그냥 거절할걸 그랬다.
입씨름이 더 나았을것 같다.
"저기, 박물관 가는거 아니에요…?"
내 물음에 다빈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받았다.
"그런게 중요해? 지금은 이게 더 중요하지."
"이거 완전 마음을 자극하는 조합인데, 새로운 취향에 눈뜰 것 같아. 석주야, 이런애를 대체 어디서 데려왔냐."
"으, 민석이 개 씹덕같아."
나는 도와달라는 눈빛을 세찬에게 보냈다.
"...색동저고리로 타협하자."
그게 녀석의 도움이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이럴땐 대충 아무거나 집어주던가, 됐으니까 빨리 나가자고 재촉하든가, 뭐 여러가지 있잖아?
모든색을 섞어버리는게 어떻게 해결책이야?
"으음… 그냥 룰렛 돌릴게."
다빈이 말했다.
"그래. 그게 낫겠다."
지혜도 말했다.
"그럼 내 의견은 빼줘."
세찬까지 말했다.
"뭘 입든 괜찮을거에요. 릴리"
민석마저 말했다.
"…"
하지만 나는 말하지않았다.
내가 뭐라고 하든지 룰렛은 돌아갔을 터다.
…그 결과는, 분홍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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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은 나만 입게됐다.
하루 대여가 2만원정도. 생각보단 비싸지 않았지만 5명이 전부 한벌씩 대여하기엔 대학생들의 지갑사정이 그닥 밝지 못했다.
그런데 왜 하루씩이나 빌린거지? 1시간이나 2시간으로 빌리면 1만원대 였었는데.
"하루 빌렸으니까, 오늘은 그렇게 다닐까?"
"네?"
이래서구나!
이 여우같은 여자들.
"하하. 릴리, 구미호 알아요? 지금 되게 그 코스프레하는 느낌인데."
"……."
뭐, 요물같은 느낌이긴 하다. 흰 머리, 빨간 눈동자…….
"그럼 한복 입은김에 사진한방?"
그래, 내게 한복을 입힌 이유가 그놈의 사진 때문이겠거니 싶기는 했다.
평소에도 다빈이는 사진 찍는걸 자주 봐 왔으니까.
거절하기도 뭐해서, 그냥 찍으라고 하기로 했다.
"하……. 절대로 어디 올리진 말아주세요…"
"그래 안 올릴게! 눈에만 담기 아까워서 그래 아까워서."
다빈은 눈을 반짝거렸다.
경복궁 앞에서 양산을 단정히 쥐어든 자세를 취해주자, 다빈의 핸드폰에서 찰칵찰칵,하는 효과음이 들려온다.
이때다 싶은지 지혜와 민석도 연신 카메라를 찍어대고있다.
세찬은 웃어제끼기 직전이고.
정말 정신적으로 피곤해진다.
안그래도 낮이라서 힘든데. 이거 언제까지 해야되는걸까.
일상이란거, 생각보다 힘든걸까.
아니, 이건 그냥 내가 평범하지 않으니까 힘든거네.
제기랄.
말투때문에 욕도 못하고.
몇주 만 더 연기했다간 몸도 마음도 릴리가 되어버리겠어.
아주 죽을맛이다.
"이거봐, 어때? 잘찍혔지?"
다빈이 휴대폰을 내밀어 나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하얀 저고리에 연분홍색 고름, 거기에 색을 맞춘 연분홍색 풍부한 볼륨의 치마. 파스텔톤의 편안한 색상의 현대한복을 입고 하얀 양산을 단정히 쥐어 조신한 분위기를 내는.
새하얀 머리카락은 가지런히 땋아져 오른쪽 어깨너머로 정돈되고.
귓볼에 매달린 화려한 은색 십자가 귀걸이가 돋보이며.
그 얼굴은 무표정하고 차갑게 적색 눈동자를 내려뜬 내가 있었다.
아, 이거 그거네. 바닥에 개미를 세던 중에 찍혔나보다.
그런데 사진만 봤을때는 뭔가 분위기가 있다.
다빈이가 사진을 잘찍는건가?
아니면 그냥 내 몸이 분위기를 잘내는 건가?
"네, 사진 잘찍으시네요."
"히히. 모델이 좋아서그래."
다빈은 쑥쓰러운듯 뒤통수를 살짝 긁었다.
지혜도 찍은 사진을 확인하는지 휴대폰을 보며 끄덕이고 있고, 민석은 휴대폰으로 뭘 꼬물거리는 건가, 싶어서 옆으로 가서 봤더니…
내 사진에 동물귀랑 꼬리를 그려넣고 있었다.
아, 이새낀 '진짜'다.
오프라인에선 정상인 척 하지만, 역시 본성은 씹덕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한복을 입으니 더 시원해진 느낌이다.
긴팔이 되어서 그런가?
따가웠던 팔이 이젠 좀 괜찮다.
밝은색이 빛을 반사시켜서 그럴수도.
앞으로 옷은 흰색으로 사야겠다.
나는 잠깐 머릿속으로 흰색 옷을 입은 나를 상상해보았는데, 자꾸 원피스가 연상되는건 좋은 징조가 아닌것 같다.
젠장, 이 몸으로 된 후에 제대로 입은 첫 옷이 원피스라서 그런가.
첫인상이 평생 간다더니, 완전히 각인된 모양인데.
그런데 생각해보니 웃긴데. 은발에 흰피부, 흰색 원피스라니.
그거 무슨 흰색 페인트 뒤집어 쓴 것도 아니고.
눈이랑 입술만 빨갛겠네. 크큭…
"아! 릴리야! 좀만 더 웃어봐!"
"아, 방금 사진껐는데."
"시, 싫어요!"
갑자기 왜이래 징그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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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사실 그다지 볼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단 즐거웠다.
경복궁도 넓어서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도 들었고.
하지만, 즐거운건 즐거운거고. 이제는 좀 피곤하다.
"슬슬 배고프지않아? 릴리야, 먹고싶은거 있어? 민석이가 다 사줄거야."
"으,으응. 뭐, 너무 비싼건 말고…"
민석은 말을 더듬는다.
도민석은 없었을때지만, 악세서리에 대해 설명할 때 내가 부자라고 하기도 했고, 실제로 내 외모가 풍기는 분위기가 조금 고급스러워 보이기때문에 그런지 민석이는 긴장한 듯 보였다.
사실 별로 배는 고프지 않은데. 흡혈귀가 된 이후로 배가 고프다는 느낌은 잘 들지 않는다.
갈증은 더 쉽게 느끼는것 같지만, 그것도 참을 수는 있는 수준이고.
게다가 나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저 마늘 알레르기 있어서, 마늘 들어간건 못먹어요."
그래.
마늘 냄새가 똥냄새로 느껴진다는 사실.
차라리 알레르기가 낫지. 그건 내 입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되잖아.
나는 마늘 옆에도 갈 수가 없었다.
진짜 그냥 똥냄새도 아니고, 아주 역한 설사똥냄새가 난다.
아예 마늘요리가 없는 곳으로 가야한다.
"아, 그래? 그럼 떡볶이 어때?"
살짝 고민하던 다빈이 손뼉을치며 말했다.
"그래. 떡볶이 좋네. 매운거 땡겼는데. 석주야, 괜찮아?"
"아, 한쪽으로만 먹으면 될지도."
"그래? 그럼 먹을 수 있지?"
지혜는 세찬에게 물었다. 세찬이는 턱을 좀 움직여보더니, 괜찮을것 같다고 말했다.
"떡볶이 괜찮아요, 릴리? 먹어본 적 있어요?"
"음… 괜찮을거 같아요."
당연히 먹어본적 있지. 한국인이라니까.
물론 사정상 말 해줄수는 없지만.
우리는 근처 떡볶이가게에 들어갔다.
물론, 들어가기전에, 마늘을 넣느냐고 묻는걸 잊지 않았다.
뭐, 마늘 향이 안 나는걸 보니 안 쓰는 것 같지만.
나는 여전히 빌린 한복을 입고있었기때문에 앞치마를 부탁했다.
빌린건데 국물튀면 큰일이니까.
"여기 떡볶이 대짜 하나랑, 모듬튀김이요."
"순대도 시킬까?"
"너무 많은거 아냐?"
"몰라 어차피 민석이 돈인데."
우리는 떡볶이 대, 순대, 튀김등을 시켰다.
메뉴는 금방 나왔고, 나는 잘 먹겠다고 인사한뒤에 젓가락을 들었다.
아, 정말 오랜만에 쥐어보는 젓가락이네.
사냥꾼의 병원에선 뭘 먹지 않았고 집에서는 세찬이랑 같이 죽만 먹었기 때문에 젓가락을 쓸 일이 없었다.
손이 작아져서 그런지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금새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와, 릴리 젓가락질 잘하네. 완전 한국인이다."
"하하하…"
한국인이니까.
몇번이고 생각하지만, 자꾸 저런 당연한걸로 칭찬을 받다보면 머리가 이상해질것 같다.
강아지 재롱떠는걸 보는 인간의 시선이랄까… 그게 느껴진다.
"맛있네요."
떡볶이는 맛있었다.
매콤하고 달달한건 진리인거 아닐까.
개같은 인생에서 먹을만한 음식을 몇개 찾았을 뿐인데, 부정적인 감정이 씻어내려가는 기분이다.
딸기, 밀크쉐이크, 떡볶이… 나는 맛있는것을 마음속 메모장에 적어내려가는 중이었는데, 다빈이 물었다.
"으, 릴리야 안매워? 좀 매운데…"
"전 괜찮은데요?"
별로 매운맛은 느껴지지 않는것 같은데. 오히려 살짝 매콤했다가 금방 가라앉아서 매우 맛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맛있긴한데 좀 맵다. 릴리 매운거 잘먹는구나?"
지혜도 조금 매운 모양이다.
나는 다들 매운건가 싶어서 세찬을 보니 녀석도 괜찮은듯 먹고있었다.
근데 쟤는 매운걸 잘 먹는 편이었다.
잠깐. 나는 원래 매운걸 그렇게 잘 먹지는 않았는데?
다들 맵다는데, 조금 매운척이라도 해야되는거 아니냐, 세찬아.
그러면 이것도 몸의 영향인가?
아무튼 나는 인생의 새로운 즐거움을 찾은 것 마냥, 떡볶이를 집어먹기 시작했다.
입도 작아져서 불편하네. 에휴.
잠시후 일행은 조금 신기한 듯이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지?
매운거 조금 잘 먹는다고 그렇게 빤히 보는건 아니지 않나.
"릴리는 매운걸 잘 먹는게 아니라 그냥 잘 먹네."
"떡볶이가 부족하면 더시켜."
…아, 너무 남자처럼 먹었나.
크흠.흠. 식사습관은 쉽게 바꾸기 어렵긴 하지.
나는 입술에 묻은 떡볶이 국물을 휴지로 닦아내고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입은 좀 더 작게 벌리고 천천히 씹어서 삼켜야지.
윽. 신경쓰니 어렵다.
젠장, 무슨 떡볶이를 신경써서 먹고있는거야.
"푸하하! 갑자기 왜그래? 편하게 먹어!"
윽.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거야.
편하게 먹으라니까 그냥 편하게 먹어야겠다.
"젊은 아가씨가 참 복스럽게도 먹네. 이건 서비스야."
떡볶이집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음료수를 돌렸다.
아니… 내가 대체 어떻게 먹고 있었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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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내가 떡볶이를 많이 먹어치워서 민석은 눈물을 흘렸다. 떡볶이를 나혼자 거의 4인분은 조졌으니까. 7만원 좀 넘게 나온것 같다.
아, 배부르다.
배가 부르니 일단 기분이 좋다.
흡혈귀라고 위장이 없는건 아닌모양이다.
배는 고프지 않아도 가끔 배부르게 먹을 필요가 있겠네.
예상보다 많은 돈을 쓰게 된 민석은 디저트는 제발 편의점 아이스크림으로 봐달라고 빌었기 때문에 지금 나는 소프트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하나 핥으며 길을 걷고있었다.
"아, 릴리같은 여동생 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내 연기는 완벽했나보다.
감히 나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그래, 이쁜 인형같은거 집에 데려가고싶은 마음은 이해해.
그래서 나는 '그래요?' 하고 흘려버릴수밖에 없었다.
한복을 반납하고 우리는 버스로 돌아가기로 했다.
"석주야, 종종 연락해! 가끔 과제도 도와주고!"
지혜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버스를 타고 가버렸다.
그러고보니 지혜는 왜 이런데 나온걸까.
재밌기는 했는데, 원래 나랑 지혜의 사이는 저정도로 가까웠던가?
평소에 말을 자주 걸기는 했지만 그정도였다.
그런데 오늘은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드네.
모두 버스를 타고 돌아가니 시간은 2시를 바라보고있었다.
이른시간에 만나서 그런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내 가 피곤해 보이자 다빈이 그만 집에 가자고 제안했다. 진짜 그렇게 피곤해 보이나.
낮에 돌아다니는건 역시 힘들다.
멍하니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세찬이 말했다.
"야. 지혜라고했나? 저 여자애."
"응."
"저거 아무래도 너한테 관심 있지 싶다."
"어? 그래? 뭐 지금 이런 모습이니까..."
세찬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릴리'말고, '석주'한테 말이야."
"에에엥? 뭔소리야?"
"너 진짜 몰랐냐? 존나 둔한새끼네 이거."
"설명을 해봐. 너무 뜬금없네."
세찬은 한숨을 쉬며 오늘 '석주'로 돌아다니며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유난히 오늘따라 가까웠던 거리감, 처음에 나를 경계하는 듯한 행동, 음식선정에도 배려를 받았고, '졸업하는데 아쉽지 않느냐'며 슬쩍 떠보는듯한 말. 최종적으로…
"내가봤을때, 박다빈이라는 저 여자가 도민석을 마크하게 두고, 단 둘이 시간을 내려고 했던 것 같은데. 네가 추가되는 바람에 그럴 수 없었지만."
"어, 어어?"
확실히 하나하나는 별거 아닌거같은데, 합쳐지니까 좀 그러네.
그런데 이걸 세찬이 말하니까 설득력이 없다.
"근데 너 모쏠이잖아, 그걸 어떻게 알……."
앗, 이새끼 이런데까지 그 못 들고왔구나.
"…미안하니까 그 못 도로 집어넣어주라."
"아무튼. 그래서 오늘 되게 불편했으니까, 알아둬."
"그래. 고마워. 지혜는… 생각좀 해봐야겠다."
에휴. 미쳐버리겠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벌써 엄청 꼬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