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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화 〉1부 (104/110)



〈 104화 〉1부

편안하게 관광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다가 울릉도 게이트를 넘으려던 계획은 대폭 변경되었다.
다음 원정은 꽤나 미루어질 것 같았지만 이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예상대로 치유마법은 천사의 손길처럼 만병통치의 권능을 보여주지는 못 했지만 적어도 현대 의학의 지평을 넓힐 가능성을 제시하기엔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이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됩니다. 특정 파장의 파동이 나와 뭔가 영향을 미치는건 확실한데, 대체 어떤 원리로 암세포만 골라서 공격하는건지 모르겠네요. 심지어 면역체계를 교란시키지도 않아요!  파장을 정확히 기록해서 재현하면...”

“소용없을겁니다. 열 마리에게 발현된 파동의 파장이 전부 달라요. 앞으로  많은 동물실험을 거쳐야겠지만 저걸 복사해서 방사한다고 효과가 있을  같지는 않네요.”


“저기... 이제 그만해도 되겠습니까?”


“아,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뭔가 걸리는 부분이라도 있나요? 혹시 사람이 아닌 동물에게 치유마법을 사용하는게 문화적 혹은 종교적으로 금기사항이라던가?”

“그런건 아닙니다.  못하는 짐승이 사람보다 우선할 수는 없지만 어디까지나 실험 아닙니까. 다만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치유마법이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건 충분히 증명된게 아닙니까? 동물에게 사용한걸로 충분하지 않다면 사람에게, 어, 그러니까 범죄자나 노예에게 실험을 해보면 될텐데요. 계속 병에 걸린 짐승들만 가져오시니...”


라크는 여기 모인 학자와 의사들이 치유마법에 대해 분석하는 이유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다른 세계에서  기술이니 섣불리 사람에게 시험하기보다는 동물에게 써서 안전한지 확인하는, 일종의 기미를 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범죄자나 노예에게 써보면 확실하지 않겠느냐는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지고 모두들 눈을 굴리며 입을 달싹거렸다.
음, 소환사들은 분명 승려와 같은 문화와 가치관을 갖고 있었던  같은데.
수양이 어쩌고 자비가 저쩌고 하더니만, 이건 어쩔  없는 시대, 문화적 한계라고 봐야하나?
진척사항을 확인하러 왔다는 청와대 비서관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수습한다.

“하하하, 아무래도 게이트 너머에서 오신 분이니까 문화적으로 다른 면이 많아서 그런겁니다. 자, 박사님들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마세요. 만에 하나라도 정부에서 임상절차법에 어긋나는 연구를 강요할 일은 없으니까요. 저, 그런데 제가 방금 들은게 맞습니까? 암을 정복할 길이 열렸다는 말로 들렸는데요. 아무 부작용없이 암세포만 골라서 없앴다고.”

“반만 들으셨구만. 물론 대단한 일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입니다. 아무래도 개체별로 다른 파장의 파동이 필요한 모양인데, 그걸 정하는 기준이 뭔지도 모르겠고... 저 짧은 파장이 인체 내부에 영향을 미치는 원리도 아직 불명이에요.”

“그거야 앞으로 충분한 시간과 예산을 들여 연구를 하면 되겠죠. 음, 좋습니다. 우선 암. 그리고 또 무슨 병에 효과가 있었죠? 아, 혹시 소아 백혈병같은데도 효과가 있을까요?”

“저기, 백혈병도 암인데요. 혈액암.”

“크흠. 그렇습니까? 제가 문과라 그런 쪽은  몰라서. 아무튼 효과가 있다는거군요?”

그건 문이과 운운하기 이전에 그냥 상식에 가까운 것 같은데.
수첩을 꺼내 메모한 비서관은 의외로 당장의 활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연연하지 않았다.
물론 라크가 치유마법의 이론을 강의하고 시범을 보여주기 시작한게 바로 어제 오후의 일이니 아무리 조급한 사람이라도 하룻저녁만에 뭔가 성과가 나오길 기대했을리는 없지만...
그는 단지 가능성이라도 좋으니 뭔가 그럴듯한 비전을 원하는 것 같았다.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아적은 비서관이 손을 짝 맞부딪히면서 말했다.

“좋습니다! 지금까지 말씀해주신걸 깔끔하게 정리해서 보내주시겠어요? 오늘 저녁에 대통령님께서 직접 대국민 발표를 하실텐데,  때 자료로 쓸겁니다.”


“발표를 벌써 해요? 뭐라도 확실한 성과가 나온 다음에 하는게 낫지 않을까요?”


“청와대에선 이번 사태에 깊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저녁때 발표를 보시면 아실겁니다. 최지호 팀장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섭섭지 않은 보상을 약속드리죠.”


내 반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두 손을 맞잡으며 감사를 표한 그는 엉거주춤 서있는 라크에게도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더니 그대로 뒤돌아선다.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발표로 해명을 하다니, 이건 너무 과한데.
물론 여당 대표의 치질에서 비롯된 일련의 스캔들, 그러니까 정부가 만병통치에 가까운 S급의 치유이능력자를 숨겨두고 권력자들만 몰래 이용하고 있었다는 스캔들은 작은 스캔들이 아니었고 배남규 의원의 육성이 담긴 녹음이 있는 이상 음모론으로 사그라들 뜬소문도 아니었다.
겨우 하루이틀 사이에 메이저 언론사에서도 기사를 십수개 단위로 쏟아내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말이지.
언론에서 떠들고 야당에서 해명요구하고, 이러는 건수가 뭐 한두개도 아니고.
대통령이 지레 찔려서 대국민담화니 뭐니 하는 식으로 일을 키운다고?


“걱정말고 그냥 어떻게 굴러가는지 보면 돼.”

라크의 호위 명목으로 따라온 윤기정이 하품을 하면서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형도 이런 쪽으론 아는게 별로 없을텐데.
아니지, 그래도 헌터 업계에서 오래 굴러먹으면서 이런저런 경험이 쌓였을테니 뭘 좀 알려나?

“야, 객관적으로 생각해봐라. 페어리 마을과의 교류는 이미 보안 포기하고 언론을 탔잖아. 아티팩트도 공격용은 철저히 관리되지만 일상에서 쓰일만한 가벼운 것들은 조금씩 시장에 풀리고 있고. 그러니까 외계인과의 교류라는건 사람들한테 마냥 낯선 얘기가 아니라는거지. 외계인들의 기술을 응용해서 의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비밀리에 추진한건 보안을 위해서였다, 뭐 이런 식으로 발표하지 않겠냐? 그럼 그 와중에 신일 의료원에서 있었던 일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사람들이 알아서 뒷사정을 상상하게 되거든. 인체실험이니 불법임상이니 하는 식으로 프레임을 잡더라도 누가 불만을 갖겠냐? 어쨌든 죽을 사람들 살아난건데.”

중환자들에게 사전고지도 없이 외계 기반의 치료법을 실험했다면 당연히 불법적인 인체실험이고 어마어마한 인권유린이지만 결과적으로 죽을 사람들 살린건 맞지.
게다가 정부에서도 공식적으론 인정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기적적인 사건으로 남길테니까.
음, 그러면 내 생각엔 사람들이 정부의 폐쇄성에 대해 공포감과 위기감을 갖게  것 같은데.
그쪽으론 나보다 더 잘 아는 전문가들이 회의해서 결정한거니 어떻게든 잘 되겠지 뭐.
그리고 설령 잘 안 되더라도 이미 나하곤 직접적인 관련이 없게 되었으니.


“배남규 의원 말실수는요? 외계인이 아니라 헌터들 중에 다른 힐러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치유 능력자가 있다는 식으로 대놓고 까발렸는데.”


“그런 사소한 오류에 주목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전 세계가 들썩일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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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연구진들의 열정어린 탐구를 받아주느라 녹초가 된 라크를 안가에서 쉬도록 두고 우리는 고깃집에 둘러앉아 회식을 하면서 대통령의 발표를 생방송으로 지켜보았다.
이런 스캔들에 청와대에서 대변인을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 본인이 직접 나와서 입장표명을 하는건 확실히 이례적인 일인지 앵커들도 좀 당황한 것 같더라.


-...이러한 기술적 교류는 여러 제반사항들을 고려하여 철저한 보안을 유지한채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예산의 전용과 같은 비위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철저한 감독으로... ...아직 구체적인 성과를 논하기엔 이른 시점이지만, 각종 불치병 및 난치질환의 치료에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으로 자평하며... ...한편, 최근 논란이  배남규 겨레당 대표가 지위를 남용하여 프로젝트 팀에 압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겨레당 측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와, 형이 낮에 추측한 그대로네요. 근데 정식 외교관계 수립이니 뭐니 하는건  오버 아닌가? 그쪽에 지금 살아남은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아, 그러고보니 원정일정 계속 밀리는 것에 가장 아쉬워할 사람이 라크 씬데 의외로   안 하고 가만히 있네.”

“마력폭주로 잠들어 있으면 신체손상이나 노화같은건 멎는다잖냐. 하루이틀 늦어진다고 해서 살릴 사람을 못 살리고 그럴 일은 없을테니까.”

그래도 내가 라크의 입장이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동포를 구하고 싶어 안달이 났을  같은데.
역시 수양이 깊은 소환사라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냉정할 수 있는건가.


“그나저나 생각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나오는데요?  뭐시기 하는 그 양반을 완전히 쳐내는거 아닙니까 저거? 제기된 의혹을 전부 인정하는거나 다름없는데.”

“야, 자숙 좀 하다가 시선 다른데로 돌아간 사이에 은근슬쩍 다시 튀어나오는 정치인이 한둘이냐? 증거가 너무 명백하니까 말실수  것에 대해 징계 겸 해서 잠깐 묻어놨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등용할게 뻔해. 배남규 의원이 말이 당 대표지 사실상 대통령 수족이거든.”


“오, 그래요? 근데 형은 그런걸 다 어디서 알아오시는거예요?”

“뉴스랑 신문만 꼬박꼬박 챙겨봐도  정도는 다 알아 인마.”

강승호와 윤기정이 언제나처럼 잡담을 하는 사이에 젓가락으로 잘 익은 쇠고기를 석 점이나 한꺼번에 집어서 간장 소스에 푹 담그며 티비 화면을 바라보았다.
막 발표 원고를 다 읽은 대통령이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응시하는데, 형형하게 빛나는 눈에는 강한 자신감이 어려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티비를 지켜보던 고깃집 안의 다른 손님들도 잔뜩 흥분한 것 같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두서없는 잡담들만 들어보면 마치 당장 내일부터 한국의 의료보험사와 병원들은 죄다 문을 닫아도 상관없을 것 같은 분위기다.
짜지도 않은지 쌈장을 듬뿍 찍어서 고기  점을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던 윤기정이 픽 웃으면서 재수도 참 좋다는 어조로 중얼거린다.

“저 양반, 지지율 엄청 오르겠네.”


그러게. 의도한건 아닌데 이거 정치에 개입을 해도 아주 화끈하게 해버린 셈이 됐네.
사실 대충 이렇게 될거라고 예상을 아주 못 한건 아닌데, 파장이 생각보다  빠르고 큰걸.
하지만 나는 어렵잖게 쓸데없는 감상을 끊어낼 수 있었다.
대통령과 현 정권이  좋게 지지율 끌어올리는건 올리는거고, 난  일을 해야지.


“로또 맞은거죠 뭐. 우리 할 일은 다 했으니까 더 신경쓰지 맙시다.”

“으으, 난 지금 대통령 별로 안 좋아하는데. 팀장님, 그냥 팀장님이 기자회견 하면  될까요? 내가 바로 그 이계인들 데려온 최고 공로자다, 정부는 숟가락 올린 것 뿐이다,  이렇게요.”


“승호형, 헛소리 하지 말고 고기나 먹어. 자, 먹으면서 들어요. 아까 라크 씨한테 물어보니까 치유마법에 관한 이론을 전부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기는데 사흘 정도는 걸린다고 하더라구요. 달랑 마법서 하나만 써서 준다고 끝나는게 아니니까 추가로 며칠 더 질의를 받으며 강의를 한다고 했지만, 의외로 원정 일정이 많이 밀리지는 않을 것 같아요. 프로젝트 팀에선 완전히 이해할때까지 계속 있어주길 바라겠지만, 기초만 잡히면 적당히 끊고 나올거라고 했으니까.”


“정부에서 순순히 라크 씨를 보내줄까요?”


“안 보내주면? 지금 우리가 요구하는걸 나라에서 뭐라고 반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강제로 협조를 얻어낼 수 있을만한 사안이 아닌데. 아, 혹시 정부에다 말했냐? 다음 원정 목표가 다른 투쟁의 협곡을 찾아서 혹시 봉인되어 있을지도 모를 소환사들을 더 살려내는거라고?”

“아뇨, 그런 정보를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잖아요.”

투쟁의 협곡에 배치된 소환사들은 하나하나가 전부 뛰어난 마법사들이다.
어쩌면 저번에 엄청나게 운이 좋았을뿐 더 살려낼 수 있는 소환사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헛고생을  확률을 감안하더라도 무조건 가서 찾아봐야지.
나는 라크의 마법 전수일정이 마무리 되는대로 즉시 울릉도 게이트를 넘을 것을 공지했다.
회사에 계획서를 올려 결재를 받고 차량을 비롯해 보급품을 수령하는 일은 평소처럼 윤기정이 도맡아 하기로 했는데, 그는 이번에 욕심을 좀 부려봐도 좋을 것 같다며 음흉하게 웃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최고급품으로만 도배를 해서 받아오마.  참에 총화기도 더 좋은걸로  다 갈고, 방검복도 미국에서 새로 나온게 있거든? 한 벌에  오천불이 넘는건데 그것도 사달라고 품의서 넣어봐야지.”


사고를 친 오닉스 헌터즈에서 우리 7팀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건 저번 플로리다 게이트 원정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때는 급하게 출발하느라 보급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감 놔라  놔라  끝으로 시키며 즐길 여유가 없었지.
아, 그러고보니 성과급도 한 서너배 정도 부풀려서 신청을 넣어놓는게 좋겠다.
즐거워하던 윤기정이 문득 내 팔을  치면서 말했다.

“최지호, 우리 7팀이 이번에 진짜로 대단한 일을 한거야. 치유마법을 본격적으로 현대 과학으로 연구하게 되면 앞으로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냐?”


“음? 뭐, 그렇죠?”

“그러니까 정부에서도 우리한테 뭘 좀 해줘야하지 않겠냐? 예를 들면 세금 혜택이라거나.”

“갑자기? 왜요, 요새 돈 부족해요? 연봉 올려달라고 얼마든지 건의해줄  있는데.”


“돈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지. 그리고 솔직히 헌터 세율, 외국하고 비교해보면 너무 높아.  그러냐? 난 세금 나가는거 볼 때마다 아주 아까워서 죽겠더라.”

글쎄,  외국이 어느 외국인지는 몰라도 한국의 헌터 대우가 세계적으로 봐도 그럭저럭 평균 이상은 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다음번에 오늘 연구소 왔던 청와대 비서관을 만나면 한번 말이라도 해볼까?
정권 지지율이 크게 올라간다면 기분이 좋아진 행정부에서 세금 정도는 깎아줄지도 모르겠다.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혜택을   있는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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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오닉스 7팀의 다음 원정은 며칠은커녕 무려 한 달이 넘도록 미루어지게 되었다.
마치 오래 전부터 진행되던 프로젝트인양 의기양양하게 대국민 발표로 자랑을 한 청와대에서 한 가지 오판을 한 점이 있었다면, 외국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미국이 괜히 소환사들의 존재를 비밀로 한게 아니었지.
특히, 한국이 교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페어리들에게 체계적인 치유마법 따위가 없다는걸 확실하게 알고 있는 나라가 하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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