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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화 〉1부 (100/110)



〈 100화 〉1부

중앙 억제기는 쉴롭 사태때 내가 발견하여 복구한 억제기와 완전히 달랐다.
비슷한거라곤 기본구조와 수정을 둘러싼 금속질 외벽 표면에 새겨진 특유의 문양 뿐.
우선 크리스탈이 하나가 아닌 세 개를 모아놓은 형태였고, 외벽도 단순히 덮어 밀폐하는 형식이 아니라 사방의 석벽에 박힌 쇠말뚝과 노란색의 줄로 이어져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노란색의 줄도 금속으로 만든 것 같았다.
마치 광케이블이 생각나는 디자인이다.
설마 이게 다 황금일리는 없을테고, 금속을 이렇게 가늘게 뽑아내어 밧줄처럼 엮을 정도면 금속 제련술과 재료공학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일 것이다.
아차, 또 나도 모르게 지구 기준으로 이 문명을 내려다보면서 평가했네.

“팀장님, 여기 보세요. 이 선을 타고 뭔가 흘러들어가고 있어요. 와, 신기하네.”


강승호가 가리킨 쪽을 보니 뒤쪽에 가려 보이지 않던 케이블이 푸르게 번쩍이고 있었다.
중앙억제기에서 석벽으로 향하는 흐름이다.
나는 저 은은한 푸른 빛의 물결이 마력이라는 것과 중앙억제기가 아직 일부나마 작동하고 있다는 것, 나머지 케이블에도 흐름이 이어지면 완전히 수리가 되리라는 것을 유추했다.

“승호형, 밖에서 소환사 불러와. 골렘은 나중에 베이스로 가져가서 천천히 보라고 하고.”

“아, 난 잠깐 미군들하고 이야기를  하고 올게. 처음부터 대충 예상은 했는데, 그 양반들은 이번 원정에 거의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잖아? 정산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볼 가치가 있어.”


“너무 무리해서 몰아붙이진 말구요. 앞으로도 일 같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윤기정과 강승호가 밖으로 나간 사이 나는 억제기 장치에 손을 얹어보았다.
차가운 쇠의 질감이 가장 먼저 손바닥에 달라붙고, 이어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귀를 기울여보니 안쪽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나는  같기도 하고?
어라, 그런데 이거 소리가 점점 커진다?
고개를 갸웃하는데, 내가 불렀던 소환사가 강승호와 함께 안으로 들어서다가 기겁한다.

“자,잠깐만요. 지금 뭘 어떻게 하신겁니까?”


“예? 하긴  해요? 그냥 신기해서 손을 갖다 댄 것밖에 없는데. 이 장치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는겁니다. 어? 지금 자석처럼 손이 기계에 붙었는데요?”

“바로 물러나십시오! 손 떼실 수 있겠습니까?”

심각한 표정으로, 마치 자력으로  수 없다면 잘라버리기라도 하겠다는 투로 외치는 소환사에게 나는 어처구니없는 심정을 억누르고 혀를 찼다.
자석처럼 붙었다고 했지 언제 강력접착제로 붙여놓은 것처럼 붙었다고 했나?
기묘한 흡인력이 발생한건 사실이지만 물러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하게 당기고 있는건 아닌데.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떼고 물러나니 정작 다급하게 외친 소환사가 눈을 크게 뜨더니 얼떨떨한 목소리로 괜찮냐고 물어온다.
뭐야, 싱겁게. 혹시 민망해서 저러는건가?


“마,마력 역조 현상이 분명한데... 최지호 님, 체내의 마력을 점검해보십시오. 아마 영구적인 손실이 있었을텐데, 손실이 크다면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체내 마력을 점검하라구요? 그건 어떻게 하는건데요?”

“예? 그게, 말 그대로 몸 속의 마력을 끌어모아서...”


“그러니까 제 몸 속에도 마력이 있다구요? 그건 처음 듣는 얘긴데.”


“아니, 그럼 어떻게 마법을 쓰십니까? 방금 전만 해도 전투골렘을 박살내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그제야 서로간 뭔가 오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능력자의 이능력은 ‘각성’한다는 표현 그대로 어느날 갑자기 없다가 뚝딱 생긴 감각을 바탕으로  몸을 움직이듯 자연스럽게 발휘하는 초능력이다.
전생의 게임 스킬을 기반으로 하는 나는 경우가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복잡한 연산이나 절차없이 자연스럽게 발동한다는 점에서는 여타 각성자들의 이능력과 다를게 없었다.
그런데  소환사는 지금 이능력을 두고 당연히 마법의 한 종류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서로 설명이 길어지겠네요. 음, 이 억제기는 이대로 둬도 됩니까? 안에서 소리가 나고 진동도 눈에 띄게 커졌는데, 이러다 쾅 터지기라도 하는거 아닌가?”


“걱정  하셔도 됩니다. 주입된 외부 마력과 공명하는 현상이에요.”

“전문가가 그렇다니 안심이네요. 우선 밖으로 나가죠. 저 밖에 있는 미국 친구들도 죄다 이능력자들이니까 아마 나보다 더 설명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겁니다.”


이걸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일단 미루고 보기로 했다.
밖에 있는 군인들이라고 차근차근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할 수 있을  같지는 않지만.
그러고보니 아무리 며칠 안 됐다지만 이렇게 중요한 정보도 교류하지 않고 뭘 한거야?
이들이 사용하는 마법과 이능력자들의 이능력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마 꽤나 장기간의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뭔가 관계가 있는건 확실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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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군인들은 설명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사람들도 이능력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라 그냥 각성한 능력을 갈고 닦아 실전에 최적효율로 써먹는 것에만 도가 튼 전투원들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수 있는 말이라곤 그저 ‘우린 그냥 주사 맞고 각성했는데요’가 고작이지.
이능력이란 개념에 대해 소환사는 무척 혼란스러워했다.
그는 이능력자의 능력 발동 방식, 그러니까 백퍼센트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방식으로 마법, 그것도 꽤나 고등한 종류의 마법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납득하기 버거운 것 같았다.
어쩌면 마력수련과는 별개로 코피가 터지도록 공부를 해서 얻은 마법적 위계에 대한 회의감과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스스롤 납득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마법을 익히는데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해야하는줄은 전혀 몰랐거든.
마치 스님같은 이미지도 그렇고 가장 위계가 높다는 라크를 포함해서 소환사들이 하나같이 청장년층이라서 몰랐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웬만한 대학원 석박사를 두어번은 따고도 남을 정도로 고되고  양성과정을 거친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었단다.

“꼭 그런 이유때문은 아닐걸? 생각해 봐. 날아서 바다를 건넌다기에 당연히 비행기를  줄 알고 있었는데 맨 몸뚱이가 휘릭 날아오르는거야. 저 사람들 입장에선 대충 그런거 아닐까?”

“음, 그런가. 하긴, 공부를 많이  사람들이라니까.”


지식 및 연구의 전공세분화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이쪽에선 거의 유일한 지식인계층인 마법사나 소환사들이 우리쪽으로 치면 과학자들이겠지.
예컨대 물리학자에게 기존 물리법칙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증거를 들이대면 그야 패닉일테니.


“그리고 우리가 뭘 걱정할 일은 아니니까 깊게 생각  해도 돼. 말도 통하는 사람들인데 학문적인 교류로 이어지는건 당연한 수순이지 뭐. 이능력 연구하는 학자들이 소환사들하고 같이 연구해서 뭐가 됐든 결론을 내는거 기다리면 되는거 아니냐.”

“그건 그런데, 궁금하니까 그러죠. 형은 어떻게 생각해요?”

“글쎄. 네가 손을 댔더니 마력역조가 일어나서 억제기 시설이 공명했다며? 그 소환사가   정확하다면 우리 몸에 마력이 들어있는게 맞겠지. 그럼 이능력이 마법일수도 있는거고.”


그래, 그럴 확률이 높겠지.
지구에서 이능력을 연구한 역사가 그리 길다고 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수많은 천재들이 인생을 갈아넣고도 제대로 된 분석을 못 했는데, 여기선 아예 학문으로 정립이 되어있네.
앞으로 얼마나 급격한 발전이 이루어질지 상상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그 때 윤기정이 실실 웃으면서  추켜세운다.


“그나저나 지호 네가 지구 이능력자들 체면을 다 세웠다. 안 그러냐?”

이건 중앙 억제기를 수리할 때 있었던 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놀란건 놀란거고 임무는 임무였으니 소환사는 충격을 미처 감추지 못 하면서도 가져온 짐에서  가지 공구를 꺼내 중앙 억제기의 수리  보강에 들어갔다.
알고 보니 그 수리절차라는게 마력을 가두는 그릇의 안쪽에 새겨진 마법진과 사방 석벽과 연결된 케이블에 손상된 곳이 없는지 체크한 뒤 방전된 마력을 재충전하는 간단한 절차였거든.
지워진 마법진의 일부를 다시 그린 소환사는 달리 손상된 부분이 없다며 재충전에 들어가기 전에 함께 온 오닉스 7팀과 즉응부대 이능력자들에게도 마력주입을 부탁했던 것이다.
별다른 요령은 필요없고, 그저 체내 마력의 통제를 푼 채로 손만 갖다대면 된다나.
그래서야 내가 무심코 손을 댔을때처럼 공명현상이 일어나 뭔가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중간 부분을 열고 서랍식으로 연결된 원판을 꺼내더라.
나는 마력주입이라는 생소한 표현에 다른 사람들이 머뭇거리는 사이 망설임없이 나서서 그 원판에 손을 가져다댔고, 음,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는데,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랬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힘들지 않냐고 묻고서, 이내 다 충전됐다고 손을 떼도 된다더라.

“사실 뭘 한 것 같지도 않아요. 그냥  갖다대고 한  분 정도 기다렸나? 그게 전분데.”


“웬만큼 마력수련을 충실히 한 마법사도 겨우 십수초를 버티기가 버겁다잖냐. 천천히 회복해가면서  시간동안 교대로 충전한다는 물건을 다이렉트로 다 채워버렸으니. 큭큭, 지구의 이능력자들은 마력량이 뭐가 그렇게 괴물같냐고 놀랄 때 내가 다 뿌듯하더라.”


“그래도 나중에 설명 잘 해야돼요. 자칫  세계 이능력자들이 다 나같은줄 알고 있다간 추후 함께 원정을 나간다거나 할  문제가 생길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팀장님이 제일 먼저 나서면 안 됐다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마력 쭉 빨려서 탈진한 다음에 나서서 남은걸 한번에  채워버리는 쪽이 훨씬 임팩트가 있었을텐데.”

“아 나라고 그럴줄 알았나. 호들갑을 떨기에 무슨 느낌이라도 있을줄 알았더니.”


“근데 그 검사, 받아보실겁니까?”

“승호 형은 어떻게 생각해?  한번 받아봐서 나쁠  없다고 보는데. 내가 그래도 생명의 은인인데 해를 끼치려고 들거나 위험한 일을 권하지는 않을거 아냐.”

“위험한 일은 벌써 권했지... 일반적인 이능력자들 같았으면 전투골렘하고 싸울  사상자가 나오고도 남았을걸. 심지어 한 기도 아니고  기가  가동됐을걸로 예상을 했었잖아.”

“아 그거야 우리 팀장님 이능력 쓰는 솜씨를 보고 다 할만하니까 시킨거 아닙니까. 하하하.”


억제기 수리가 끝난 후 소환사는 내게 돌아가면 정밀검사를 한번 받아볼 것을 권했다.
뭐라더라, 무슨 마력 적응도검사라고 했나.
그의 추측에 따르면 아무래도  신체에 무형의 마력이 놀라우리만치 고농도로 밀집되어 있을거라는데,  이능력의 놀라운 위력이 아마 거기에서 기반할거라고 했다.
나도 드러내놓고 말은 안 했지만 내심 그의 추측에 동의했다.
내 예상대로 환영검사의 스킬과 게임 시작 전 골랐던 특성이 그대로 계승되었다면 첫 각성 시점을 기준으로 끊임없이 마력을 빨아들여 응축하고 있었겠지.
명치께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방사하는 형태의 촉진을 통해서, 그것도 확신도 아니고 추측만 하는걸 보니 소환사들에게도 마력의 밀도를 원격에서 탐지하는 기술은 없는 모양이다.
하긴, 그런게 있었으면  만남에서부터 알아봤을테니까.
이건 지구 입장에선 희소식이었다.
이능과 마법의 뿌리가 같고 이능력의 동력이 지금껏 생각해왔던 것처럼 정신력같은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던 마력이라는 새로운 힘이라는 뜻이니까.
당연히 지구에도 마력이 있을 것이고, 마법을 응용한 기술이 머지않아 쏟아져 나오겠지.


“휴우, 아무튼 가서 검사받고, 좋으면 좋은거고 아니면 아닌거지. 다들 수고했어요.”

“그래, 아직 도착한건 아니지만 일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되겠지. 그리고 고생은 무슨, 일은 우리 팀장님이 다 했는데. 나하고 승호는 교대로 운전하는 것밖엔   없는걸.”


“그게 일이죠 뭐. 덕분에 편히 쉬면서 갔는데.”

처음 팀을 꾸릴때부터 이렇게 될걸 대충 예상은 했지.
그래서 윤기정도 ‘운전기사 겸 잔심부름꾼 찾는거 아니냐’며 반농담으로나마 투덜댔었고.
연봉은 그대로에 성과급은 오히려 늘었고 안전하게 모험도 실컷 하니까 불만은 없지 않을까?

반투명한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눈에 익은 지형들이 하나둘씩 시야에 들어온다.
투쟁의 협곡까지 거의 다 온 모양이다.
소득이 짭짤한 원정이었다.
부서진 전투골렘의 잔해는 원칙적으로 소환사들의 소유였지만 미국이 연구용으로 구매한다고 했는데, 그 대금을 소환사들이 아닌 오닉스 7팀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어차피 협곡의 복구에 필요한건 제한없이 지원받기로 한데다가 소환사들은 물욕이 없다면서 생명을 구해준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다나?약속받은 의뢰비도 적지 않은 액수였는데, 돈을  받는 것도 받는거지만 현지인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과시한다는 측면에서 액수보다 훨씬   도움이 될만한 보답이었다.


“캠프 돌아가면 슬슬 지구로 돌아갈 예정을 잡아보죠. 라크에게서 들은게 있는데, 다음 원정은 울릉도 게이트를 넘어야 할겁니다. 투쟁의 협곡을 하나 더 찾아낼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오, 그래? 그럼 너무 달리면 안 되겠네. 술 한  하려고 했는데.”


“치유능력이 있으니 취하는거야 상관없는데... 그래도 회식은 게이트 넘고 서울에서 합시다. 굳이 물가도 비싼 전진기지에서 사먹을 이유가 없죠.”


“아이고, 우리 팀장님이 돈 걱정을 다 하시네. 이번에 벌어들인 것만 천만불 단위 아냐?”

“잠깐만요. 치유능력이요? 그거 그렇게 하찮은데  써도 되는겁니까? 어... 뭔가 낭비같은데.”


“그런게 어딨어.  수 있으면 숙취제거에도 쓰고 담배 피울때도 쓰고 아침에 찌뿌드할 때도 쓰고 그러는거지. 그리고 술독이 얼마나 무서운건데. 정 찜찜하면 승호 형은 빼줄까?”

“무슨 섭섭한 말씀을. 팀장님, 제가 간이  안 좋아서 그러는데, 하루 한 번씩 꼭 부탁드립니다.”


“간이 안 좋아? 신체강화 능력자가?”

잡담을 하는 사이에 장갑차는 무한궤도를 쉴새없이 굴려 어느덧 협곡의 입구로 접어들고 있었다.
짐칸의 전투골렘 잔해 때문인지 엔진음이 더욱 묵직한 느낌이다.
흘깃 창 밖을 보니 적재함에 들어가지 않는 멀쩡한 전투골렘  기를 차체 위에 통째로 묶어서 싣고 오는 미군의 장갑차가 겨우 십여미터의 안전거리를 두고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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