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1부
피엠들은 거대 지네괴수 콰로를 죽인 것보다는 총기의 위력에 더 관심을 보였다.
알고 보니 콰로는 힘들긴 하지만 피엠 전사 서넛이 모여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전투를 벌이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는 수준의 괴수라는 듯 하다.
그러니 내가 봉인을 부쉈던 보이지 않는 칼날을 무수히 뿜어내 콰로의 꼬리부분을 갈아낸 것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 안이었지만 60구경 기관총의 위력은 그게 아니었나보다.
보다 인상적이고 눈에 확 띄는 폭발력을 가진 유탄은 쓰지도 않았는데, 단순히 철갑탄을 쏴대는 기관총이 이 오만할 정도의 자부심으로 가득 찬 전사들의 흥미를 끌다니.
“아무래도 이해를 잘 못 하는 것 같습니다. 끄응. 이거 곤란한데.”
윤기정과 강승호가 콰로의 시체에서 마석과 각 부위 샘플을 챙기며 전장을 정리하는 동안 피엠들과 한참 대화를 나누던 하비에르가 지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총화기는 방어막을 뚫을 수 없어서 언뜻 위력적으로 보이더라도 이 행성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저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정 그러면 그냥 줘버리죠? 대구경 총기가 한두푼 하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눈 튀어나오게 비싼 것도 아니잖아요. 원하는대로 주고 시험해보라고 하면 되죠.”
“그랬다가 이거 안 먹힌다고, 그 쪽에서 하자있는걸 준거 아니냐고 나오면요?”
“나 불러요. 눈 앞에서 방어막 깨드릴테니까. 보여주고 비싸게 팔면 윈윈 아닌가요? 음, 그러고보니 저 친구들, 마을 꼴을 보니까 농사는커녕 유목도 제대로 안 하는 수렵채집 부족인 것 같던데... 뭔가 값진걸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차지하고 있는 입지도 입지고, 무엇보다 저들의 몸뚱이가 가장 큰 재산 아니겠어요? 피엠들의 전폭적인 협조만 받을 수 있다면 고원기지 중심의 개척이 두 배 이상은 빨라질겁니다.”
그거야 그렇겠지만, 무역 역조라는게 그리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닐 것 같은데.
자칫하면 피엠들이 20세기의 구르카 족처럼 용병업으로 먹고 사는 민족이 될지도 모르겠다.
뭐,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그것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결과일지도.
행성개척은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족히 수십년 이상은 가장 핫한 산업일테니까.
하비에르가 총기판매에 관해 말했는지 피엠들이 환호하는게 보인다.
“저렇게 좋을까. 그냥 장난감 쥐어주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을텐데. 쯧.”
잠깐만, 그게 아니지.
피엠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헌터들이 사용하는 날붙이는 방어막을 못 뚫는데 현지 이종족들은 맨손뿐만 아니라 냉병기를 사용해서 자기들끼리 잘만 죽고 죽이잖아.
그럼 총을 지구산 재료가 아니라 이 행성의 재료를 사용해 만들면 되는거 아닌가?
숯이야 나무 태워 만들면 되는거고, 여기도 초석이랑 유황같은건 있을텐데.
물론 현지 광산을 찾아서 채굴하고 시설을 만들어 제련까지 하는게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겠지만 방어막을 무효화할 수 있다면 가성비가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굳이 일본처럼 특수처리한 마석으로 무기를 만든다고 생고생을 할 필요도 없는거 아니야?
너무 간단한 발상이라 내가 처음일 것 같지는 않은데...
뭔가 내가 모르는 다른 제약이라도 있는건가.
“으으, 화물함이 조금만 더 컸으면 좋았을걸. 저거 아까워서 어쩌냐.”
“그래도 챙길만큼은 다 챙겼잖아요. 미련갖지 맙시다.”
장갑차 운전석으로 돌아가던 윤기정이 적재함에 실린 샘플들을 바라보며 울상을 짓는다.
말 그대로 샘플만 챙긴 수준이라서 콰로의 사체 대부분은 그대로 널부러져 있었다.
워낙 거대한 괴수라서 부위별로 조금씩만 채취했는데도 꽤나 부피가 컸던 것이다.
앞으로 식량과 탄약을 소모할테니 빈 공간은 더 생기겠지만, 아무튼 지금으로선 한계였다.
피엠들은 사체를 남겨두는 일에 대해 아무런 아쉬움이 없는 듯 했다.
이곳은 저들의 영역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니 피엠들은 어쩌면 저 거대한 지네괴수를 종종 사냥하곤 했을런지도 모른다.
고대전사들이야 뭐, 재물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였고.
“간단한 구두협약만 맺었습니다. 물론 제게는 그럴만한 권한이 없지만 말이죠.”
대화를 마치고 돌아와 막 춟발하는 장갑차 위로 뛰어오른 하비에르가 멀쩡한 뒷문 놔두고 위로 뚫린 해치 안으로 기어들어오면서 내게 말했다.
이종족과 총기같은 민감한 물품의 교역에 관한 조약을 맺을 권한은 당연히 없겠지만 피엠들을 이해시키고 당장의 원정에 지장이 없게 하기 위해 일단 장담을 해두었다는 것이다.
내 말대로라면 나쁠 것 없겠다는 계산도 있었단다.
“그러니까 이젠 두말하시면 안 됩니다, 최지호 헌터.”
“걱정마세요. 아 그까짓거 뭐 어려운 일이라고. 총기로 화력시범 보일 때 옆에서 표적의 방어막만 한번 까주면 되는거 아닙니까. 대조군이랑 비교해서 보여주면 저 친구들도 납득하겠지. 그런데 말이죠, 혹시 여기서 총기를 생산하는건 안 됩니까?”
확답을 주어 하비에르를 안심시키며 팩에 든 주스를 건넸다.
받아서 빨대를 꽂고 한모금 쭉 빨아올리던 하비에르가 이어지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아까 떠올린 아이디어, 그러니까 현지에서 이 행성의 재료만을 사용해 만든 무기는 방어막을 무시하고 괴수의 본체를 직접 타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가설을 설명했다.
하비에르는 처음에는 주의깊게 듣는가 싶더니 이내 픽 웃어넘긴다.
”모르셨습니까? 외계광물을 섞어서 만든 날붙이는 이능력을 싣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방어막을 상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는건 아니지만, 그것도 지구인이 써서 그런거지 이종족이 사용하면 완전한 관통이 가능하겠죠. 하지만 생각하시는 것만큼 효용이 크지 않아요. 우선은 가격대부터가 가장 문제고...“
외계행성 산의 물품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종류를 불문하고 지구산 물건보다 비싸다.
각종 동식물은 물론 흔하디 흔한 목재나 석재, 흙 따위도 그런데 하물며 광물은 어떻겠는가.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이 행성의 광산은 철광이 두 개에 동광이 다섯 개랬나 여섯 개랬나.
아무튼 전 지구적인 수요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최고급 헌터장비 중에는 외계산 금속을 합금으로 섞거나 아예 순수 외계철로 만든 것도 있다고 하는데, 딱히 가격대에 걸맞는 효용을 보이지는 못하는 사치품이란다.
“음, 생각해보니 그렇겠네요. 어차피 헌터는 이능력자만 가능한거고, 냉병기로 괴수를 타격한다는건 근접전을 벌이는 신체강화 이능력자라는 얘기니까.”
“방어막 상쇄율이 높으면 이능의 소모가 줄어들어 체력적으로 도움이 되기야 하겠지만, 그거 없다고 사냥 못 하는건 아니니까요. 중소형 괴수들은 어차피 방어막 까는데 별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거대괴수는 칼로 쑤셔봐야 바늘로 코끼리 찌르는 셈이죠.”
“하지만 그건 냉병기 레벨에서의 얘기고, 열병기라면 뭔가 다르지 않겠습니까?”
“화약을 만들 초석이 없대요. 자연산은 물론이고 하버 보슈법으로도 합성이 안 된다는데, 그, 뭐라더라, 대기구성도 미묘하게 다르고 무슨 작용이 어쩌고 하던데, 자세한건 저도 모릅니다. 논문이 여럿 나와있으니까 찾아보시는건 어렵지 않을테지만 추천은 안 드려요.”
음, 그렇겠지, 나라고 저 아저씨와 별로 다르지는 않겠지.
옆에서 듣던 윤기정이 ‘내 방패에도 외계산 구리가 좀 섞여있다’며 자랑을 한다.
내구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합금된거라 비율이 적긴 하지만 유의미한 가격차이가 있다는데, 창칼도 아니고 방패에다 방어관통을 붙이는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하긴, 사치품에 합리적인 이유를 묻는 것도 이상하지.
오닉스의 중견헌터로서 돈이 부족하진 않을테니 반쯤은 부적삼아 선택한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째서 헌터들이 이능력 하나만 믿고 괴수에 맞설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꾸준히 달리던 장갑차는 평지를 지나 산맥에 접어들고 있었다.
운전을 하던 강승호가 속도를 줄이더니 이내 완전히 멈추고 곤란하다는 듯 내게 보고한다.
“음, 팀장님. 이거 어쩌죠? 차가 갈 수 있는 길이 아닌데요? 아무리 무한궤도가 험지돌파능력이 좋다고 해도 이런 바위산을 올라가는건 좀...”
해치를 열고 차 위로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니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경사가 오르지 못할 정도로 급한건 아니었지만 길이 너무 좁고 험했던 것이다.
아니, 사실 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지, 저건.
“하비에르 씨,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좀 물어보고 와줄래요? 아무래도 차를 여기다 놓고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 그러려면 사람을 따로 남겨야 하니까.”
“그걸 저들이라고 알까요? 대강의 위치만 어렴풋이 알고 수색을 하는거지, 명확한 좌표를 따서 목표로 찍고 가는게 아니잖습니까.”
“아, 그러네. 쯧, 그럼 혹시 무리를 좀 나눠서 남기고 갈 수 있는지 물어봐요. 하비에르 씨는 통역을 위해 같이 가야 하니 7팀의 두 명 중 한 명이 남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미개척지에 달랑 차 한 대와 사람 한 명만 남기자니 그건 또 너무 불안해서.”
“그럴순 없죠. 알겠습니다. 아마 그 정도 요청은 들어줄겁니다.”
부탁을 전해들은 피엠의 고대전사는 약간 못마땅한 눈초리로 우리의 장갑차를 한번 쓸어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전사 무리를 반으로 나누었다.
우리 쪽에서는 강승호가 자청해서 남아서 차를 지키겠다고 나섰다.
딱히 강요를 한 것도 아닌데 눈치빠르게 윤기정의 마음을 읽고서 그러는 것 같았다.
윤기정은 저 바위산맥 안쪽으로 이어진 협곡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요정의 숲 유적에서의 경험때문인지 따라가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던 것이다.
“형, 너무 기대는 하지 마요. 그럼 실망만 커질텐데.”
“기대는 무슨. 괜한 생각 하는거 아냐. 그냥 내가 승호보다 더 오래 네 전담 실더로 호흡 맞췄으니까 더 능숙하고 자신이 있어서 따라가는거지.”
“아, 그러세요?”
거 공룡이라도 본 열 살배기 남자애처럼 반짝거리는 눈동자부터 어떻게 하고 말하지.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맞는 제단이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환생과 전생의 게임, 스킬과 아이템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으니 그저 우연과 행운으로만 설명을 한 탓인데, 새로운 이능을 각성하려는 의욕을 어떻게 막겠는가.
나와 윤기정, 하비에르 세 사람과 고대전사들, 피엠들까지 합해 열 다섯명으로 무리가 줄었다.
장갑차에 남는 팀은 잘 은폐하고 대기하라고 했는데, 산더미만한 덩치의 피엠 전사들이 있으니 제대로 된 은폐는 무리라며 간이 거점을 만들고 기다리겠단다.
짐을 간소화하긴 했지만 험난한 산길을 걷는건 힘든 일이었다.
신체강화 능력자인 하비에르와 윤기정과 달리 나는 거의 맨 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피엠들의 보폭을 따라잡지 못해서 에테르 쉬프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만 했다.
“그냥 전에 이동하던 것처럼 순간이동으로만 움직이는게 낫지 않겠어?”
“그럴 필요 없습니다. 별로 안 힘들다니까요? 워낙에 저 친구들 보폭이 넓어서 속도차이가 나니까 그런거지, 지쳐서 그런게 아녜요. 형이랑 하비에르 씨도 뛰고 있잖아요?”
“그래도 탱커랑 같나. 예전에 게임할 때 보면 텔레포트나 블링크같은 이동스킬 찍은 마법사들이 기동성 하나는 최고던데, 넌 좋은 이능력 갖고 왜 사서 고생을 해?”
“작정하고 장거리 도보행군할때는 고집 안 부릴겁니다.”
에테르 쉬프트에만 익숙해져 조금만 힘들어도 안 걸어버릇하면 훈련소에서 매일 뜀걸음을 하며 만들어놓은 몸이 쇠하는건 순식간일 것이다.
아무리 신체강화계열이 아니라도 그렇지, 명색이 헌터인데 단련된 몸을 유지해야하지 않겠어?천사의 단지 아이템에 붙은 체력능력치가 영향을 미치는건지 벌써 수십여분째 험준한 바위산을 행군하는데도 의외로 그럭저럭 견딜만하기도 하고 말이지.
“그런데 이거 대체 어디까지 들어가는지 모르겠네요. 위성사진으로 봤을땐 이 바위산맥이 남북으로 백 마일도 넘게 뻗어있는데, 설마 그 길쭉한 산줄기를 다 뒤지려는건 아니겠죠?”
“위성사진? 아, 그러고보니 일정대로라면 얼마전에 위성이 올라갔겠군요.”
“저번주였죠. 사실 아직 테스트 단계인데, 이번 탐색임무를 위해 급히 사진을 찍었답니다. 행성의 크기가 지구보다 20퍼센트 이상 커서 작업이 수월하지 않았다고 해요. 막상 실측이 끝나니 그렇게나 크기차이가 나는데 중력은 또 지구와 비슷하다는 미스테리가 새로 제기되어서 과학자들 머리에 쥐가 나고 있다는 소식을 언뜻 전해들었습니다.”
“크으, 그럼 이제 여기서도 GPS를 쓸 수 있는건가요? 이건 혁명이네.”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죠. 이제 하나를 막 올린건데요. 일단 첫 시험발사가 성공했으니 남은건 시간문제겠지만 지구처럼 궤도가 인공위성으로 뒤덮이긴 어려울겁니다.”
게이트 너머로 재료를 옮겨 조립하고 발사하는 일이 지구에서 쏘는 것처럼 간단하진 않겠지.
어쩌면 장기적으론 여기다 우주기지 하나를 조성하는 편이 더 싸게 먹히지 않을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또 피엠 그룹과 거리가 벌어져 나는 최대거리에 살짝 못 미치는 삼십여미터의 거리를 쉬프트로 건너뛰어야 했다.
내게 맞춰 속도를 늦추던 하비에르가 이능을 활성화하고 한달음에 달려와 말을 잇는다.
너무 낭비를 하는게 아닌가 싶지만 우리가 전투를 벌일 일은 많지 않을테니 상관없겠지.
“음? 저 친구들, 왜 저러지? 뭔가 발견하기라도 했나?”
앞서가던 피엠 전사들이 멈춰있고, 그 중 고대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고 다가가던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납득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펼쳐진 지형이 무척 익숙했던 것이다.
투쟁의 협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