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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화 〉1부 (78/110)



〈 78화 〉1부

강을 등지고 있는 전초기지와 억제기가 발견된 호수는 객관적으로는 그리 가깝지 않았지만 직선거리로 이동할 수 있었기에 체감 거리는 그리 멀지도 않았다.
그 호수가 있던 자리는 원래 별로 특이할 것 없는 멀쩡한 평지였으니까.
어쩌다가 지반이 내려앉아 물이 고였는지, 그런 지형변동이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벌어졌으며 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는지는 아직 알 도리가 없다.
나중에 지질학자들이 분석해서 그럴듯한 가설을 알려주겠지만 지금 추측하기로는 땅 속에 굴을 파며 기어다니던 쉴롭들이 지하수가 고인 곳을 잘못 건드렸던게 아닐까 싶다.


“이 호수 아래에 있다는거죠? 음, 물을 다 빼기엔 호수가 너무 큰데...”

“옆으로 수로를 파서 빼면 의외로 얼마  걸릴겁니다. 그 전에 잠수부를 투입해서 억제기가 부서지지 않도록 보강공사를 해놓아야겠죠. 최 팀장님, 저 안에 괴수는 없죠?”

“그 흔한 물고기나 물풀조차 없는 죽은 호숩니다. 안심하고 들어가셔도 좋아요.”

그 사이에 뭔가 지하에서 기어나와 서식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위험까지 전부 감안하고 재어가며 움직일수는 없는거니까.
잠수부들이 수중 공사를 위해 나는 봐도 어디 쓰는지 전혀 모를법하게 생긴 장비들을 챙겨 호수로 들어가고 공병들이 배수로 공사를 위해 밑그림을 그린다.
특수군 헌터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경계를 시작하고 우리 7팀은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어... 형님, 여기 늘어져서 쉬고 있어도 돼요? 다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잖아요.”


“승호형, 그럼 여기서 우리가 더 할 일이 뭐가 있어? 경계근무도 특수군 아저씨들이  서주는데, 겨우  명이서 끼워달라고 해봐야 혼선밖에 더 빚을까. 괜히 밖에서 얼쩡거리는 것보다 얌전히 차 안에 박혀서 눈에 안 띄는게 돕는거야.”


“큭큭큭, 지호 말이 맞아. 혹시 괴수가 습격해서 소란이 일면 그때 나가서 도우면 되지. 쉬더라도 이 안에서 쉬는게 나아. 밖에서 노닥거리는건  눈치보이잖아.”


거 참, 어쩌면 저렇게 눈치없는 티를 낼까.
아무리 강승호의 경력이 비교적 짧은 편이라고 해도 그건 기본 수 년 단위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 헌터들만 모아놓은 오닉스 안에서의 얘기고 저 형도 어디 가서 밀릴 커리어는 아닌데.
의자 아래의 서랍을 열어 과자를  봉지 꺼냈다.
출발할 때 사장님이 급히 재촉하지 않았으면 맥주라도 두어상자 쟁여놓았을텐데, 아쉽게도 게이트를 넘자마자 곧바로 기지를 나선 터라 미처 그럴만한 틈이 없었다.


“오닉스 7팀은  명만으로 위험구역을 돌아다니며 탐사와 사냥을 하는 팀이야. 음, 뭐 솔직히 말해서 우린 지호한테 얹혀가는 것에 가깝지만, 아무튼간에.”

못내 불편한 기색의 강승호에게 윤기정이 짐짓 엄숙한 어조로 선언하듯 말했다.
자부심에 차서 말하다가 남의 힘을 빌린 위세라는걸 깨달은 듯 중간에 살짝 말이 꼬이긴 했지만, 그는 강승호에게 마음을 좀 다르게 먹어보라는 충고를 하고 싶은 것 같았다.

“크흠. 그러니 이런 사소한 일에 마음쓸거 없어. 사장님이 직접  것 때문에 긴장한건 알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거지. 실력만 있다면 직위고 뭐고 임원들 앞에서 고개 바짝 들고 할 말 다 해도 상관없는거거든.”


“듣고 보니 그러네요. 사장님 뺨을 친대도 회사에서 팀장님을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죠. 하하하, 이거 갑자기 명진이한테 미안해 지는데요? 그 녀석도 기회가 있었는데.”

“뭐, 어쩌겠냐. 각자 운이 그런거지. 3팀장님이 실더가 부족하니 둘 중 하나만 데려가라는데. 명진이보단 너한테 먼저 운을 띄워놨었거든. 나도 솔직히 친분으로 엉겨붙은거고. 강 팀장님이  지호 이 녀석 전담 호위로 붙여준 그 결정이 로또였어. 큭큭큭.”

엉겨붙었다느니 하는 말을 당사자 면전에서 해도 되나 싶지만 앞으로도 충실하게 잘 모시겠다며 너스레를 떠는 윤기정에게 나는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업혀가겠다는 말을 저렇게 뻔뻔하면서도 밉지 않게 하는 것도 재주다.

그렇게 환풍구와 창문, 해치를 전부 활짝 열어놓고  안에서 군것질을 하며 노닥대기를 얼마쯤, 바깥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빼꼼 내밀어 살피니 잠수부들이 호수 밖으로 헤엄쳐 나오고 있었다.
단순히 작업을 다 마쳤거나 쉬러 나온건줄 알았는데, 분위기를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잔뜩 흥분해서 떠드는 그들에게 다가가 사정을 물었다.


“아 글쎄, 저 아래에 유적지가 있다지 뭡니까? 그리고 그 유적지에서...”

“유적이요? 그야 당연히 있겠죠. 애초에 억제기가 고대 문명의 유물 아닙니까? 특정 괴수 종의 방어막을 전체적으로 약화시키는 어마어마한 기술력을 지닌 문명의 유물인데.”

“그건 우리도 압니다. 계속 들어봐요. 억제기에 내식처리가  합금강판을 덧대고 수중 용접을 하는 도중에 주변을 둘러싼 흙무더기를 건드려 무너뜨렸거든요? 거기서 글쎄 시체가 나왔습니다. 사람 시체 말이에요. 저기 보쇼, 지금 끌고 올라옵니다.”

가장 먼저 올라온 잠수부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과연 그의 말대로 서너명의 잠수부가 시체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었는데,  구도 아니고  구 씩이나 되었다.
키와 덩치가 좀 작지만 고블린이나 페어리, 오크와 달리 아무리 봐도 사람과 판박이다.
난데없는 사태에 모두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서 호숫가로 다가간다.
가까이 가서 보니 물에 좀 불어있기는 하지만 의외로 심하게 훼손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뭐야, 이거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줄곧 물 속에 잠겨있었을테니 죽은지 얼마나 된 시체인지 파악하는게 쉽진 않겠지만 형태가 온전하고 부패도 심하게 진행되지 않아서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얼굴 생김새를 보니 동양인은 아니고 백인은 백인인 것 같은데, 유럽계 백인이라기보다는 중앙아시아나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흔하게 보이는 생김새다.
물끄러미 그 시체를 바라보던 특수군 호위대의 지휘관이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내게 묻는다.

“최지호 팀장님? 혹시 처음 여기 오셨을 때 사람의 흔적이 있었습니까?”

“전혀요. 그야 남부초원은 그간 한국의 회사들이 열심히 개척하던 지역이니까 사람 발길이 닿았다고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여긴 아직 탐사도 안 된 구역입니다.”

“아무리 봐도 한국인처럼 생기진 않았는데...  지역으로 외국용병이 파견된 적이 있나?”


“탐사대가 아닐까요? 여긴 부근에 다른 게이트도 없어서 우리나라가 거의 독점적으로 개척하고 있는 지역 아닙니까? 혹시 비밀리에 들어온 외국의 탐사대일수도...”

혼란스러운 가운데  아랍인이 대체 무슨 연유로 여기서 이렇게 죽어있는지 의견을 나누는 사이에 시체를 간단히 검시하던 군의관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한다.
자기가 말하면서도 스스로 의심스러운 듯 그의 목소리는 떨떠름하기 그지없었다.


“잠깐만요. 아무래도 이거,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요?”

“예?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자세한건 제대로 검시를 해봐야 알겠지만, 구강구조가 굉장히 특이해요. 겉으로 보면 사람과 비슷해 보이지만 이빨이  겹으로 빽빽하게 나 있거든요. 보세요.”


마스크를 쓰고 시신의 입을 벌려보이는 군의관의 손짓에 따라 플래시를 비추어보니 확실히 정상적인 위아래 한 줄씩의 치아 외에 안쪽으로 한 겹씩의 이빨이  있는게 보인다.
내가 모르는 유전병이나 희귀병일 가능성도 없는건 아니지만, 군의관도 처음 본다잖아.


“그럼 이게 여기 토착생물이라는겁니까? 이렇게나 사람하고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러게. 확률상 말이 되나?”

“글쎄, 확률을 따지자면 애초에 이 행성 자체가 기적일겁니다. 일정 세포수 이상의 토착생명에게서만 발견되는 기이한 방어막을 제외하면 여긴 지구와 크게 다를바 없는 환경을 가진 행성이거든요. 그러니 문명을 일군 토착생물들이 영장류라는건 이상할게 없죠. 당장 요정의 숲에서 교류를 시작한 페어리들만 해도 영장류잖습니까?”


“어... 그건 그런데, 그래도 이건 사람하고 너무 똑같은데. 입만 안 벌리면 아무리 봐도 영락없이 사람이잖아요. 이렇게나 유사할  있는건가?”

다들 이 믿기지 않는 외계인의 시체를 두고 혼란스러워하며 수군댔지만 우리가 말이 안 된다고 느끼는 것과 별개로 그 증거가 나와있으니 별 수 없다.
당장 해부를 해보고 싶은 눈치의 군의관을 애써 진정시킨 지휘관은 동행한 휘하 호위부대 중 한 팀을 떼어 바디백에 넣은 시체를 지구로 운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운구팀에 공격조원을 보강해 중간에 쉴롭과 조우하더라도 전투를 벌일  있는 전력을 만드는 지휘관에게 전택영 사장이 분명히 선을 긋는 어조로 상기시킨다.


“잠깐만요 대령님. 지구로 보낸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습니다만 저희쪽 지분도 있는건 알고 계시죠? 뭐가 나오면 알려주고 하는 수준이 아니라 연구 자체를 공동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전 그런 일은 잘 모릅니다. 여러분의 호위를 위해 왔을 뿐이에요.”


“그럼 함부로 독단적인 결정을 하시면 안 되지요. 총 다섯 구니까 반씩 나눠서 두 구는 저희 연구소에서 가져가겠습니다. 저희 최 팀장의 공로를 생각하면  정도는 당연한겁니다.”

시체를 두고  지분이 얼마니 너는 얼마나 가져가니 하면서 왈가왈부하는 모습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지만 전 사장은 진지한 얼굴로 협상에 임해 항복을 받아낸다.
오닉스 헌터즈의 연구소의 연구진들은 조만간 외계인 해부까지 하게  모양이다.
나는 바디백에 옮겨진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체 저 놈들이 어디서 왔을지를 상상했다.
이번에는 언뜻 떠오르는게 없었다.
게임 속에서는 아인종뿐 아니라 사람들도 많이 등장하지만 외형적인 특징이 두드러지는 종족이라면 모를까, 디자인상 사람과 구별되지 않는 캐릭터는 무수히 많다.
하물며 이빨이 두 겹이라니, 그런게 인게임 디자인이나 컨셉아트에서 표현이 되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설정에서 콕 집어서 묘사해주지 않았다면 게임하는 사람이 알아차리기는 힘든 특징이다.
아까 보기로는 빽빽하게 들어찬 이빨들이 하나같이 뭉툭한 어금니 모양이었으니 초식성으로 설정된 종족들  후보를 추려봐야하나.
부욱, 지퍼가 올라가고 창백한 시체의 모습이 푸른 천 아래로 사라진다.

즉석에서 결정된 운구팀이 게이트 기지로 귀로에 오른 후 잠수부들은 더욱 열성적으로 호수를 들락거리며 억제기 보강공사에 박차를 가했다.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다행히 내가 임시조치로 막아놓은 방수천이 찢어지지는 않은  하다.

“합금강판을 덧대어 놨으니 설령  안에 괴수가 들어가서 작정하고 부수려고 해도 한 세월은 버틸겁니다. 이걸로 끝도 아니죠. 수로를 만들어 호수의 물을 뺄 계획이거든요.”


“아, 여길 마른 땅으로 만들고 연구소를 세운다는 소리는 저도 들었습니다.”

“예. 저 유물을 연구하긴 해야 하는데, 혹시 정확히  자리에서만 작동하는걸수도 있으니까 섣불리 자리를 옮길순 없다고 하더군요. 물건을 가져가지 못하니 천상 사람이 와서 조사하는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여기에 건물을 짓고 눌러앉을 수밖에요.”


“그것 때문에 정부지출이 늘어 국회가 소란스러운 것 같아요.”


옆에서 공사를 구경하던 전택영 사장이 호위대 지휘관과 내 대화를 듣다가 끼어든다.
담배를 한 대 빼어물고 연기를 뻐끔뻐끔 내뿜는 동작이 퍽 만족스러워 보인다.
신일그룹에서 후원으로 돈을 퍼붓는 것에 비해 성과가 미미하다는 소리를 듣던 오닉스 헌터즈가 근래에 역사에 남을 성과를 연속적으로 내고 있으니 사장인 그의 어깨가 으쓱할만도 하지.
여러 유적지를 연구하는 것은 회사의 위상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무형적이고 학술적인 가치니까 셈하지 않는다고 쳐도 페어리들과의 교역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중국군이 비밀리에 고블린과 교류하여 기술을 습득한 것은 이제는 웬만한 나라의 정부라면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어쨌든 비밀은 비밀이니, 공식적으로는 인류 최초다.
페어리들이 생산하는 아티팩트는 그 성능이 군사무기로 쓰일 정도로 위력적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건강제품이나 연구재료 등으로 꽤나 수익을 내고 있다고 얼핏 들은 바가 있었다.
전 사장은 한모금 가득 깊게 담배를 빨아들이고 말을 잇는다.

“안 그래도 특수군의 처우에 대해 말이 많지 않았습니까? 갈수록 지원자가 줄어드는데, 대기업 팀의 연봉처럼 맞춰주는건 말도 안 된다고 쳐도 어느 정도는 임금현실화를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게다가 요정의 숲에 조성하는 연구단지와 신도시, 그리고 이번에는 남부초원에서도 중요한 유물을 발견해  투자가 이뤄져야 하겠죠.”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굳이 미래학자들까지 갈 것도 없이 식견 좀 있다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든 경쟁력이 다 이 행성에 있다고들 하는데.”


“그렇습니다. 보나마나 낭비가 있니 없니 말싸움  하다가 추경예산을 편성해 통과시키겠죠. 감사는 더 빡빡하게 들어갈지도 모르겠네요.”


“이거, 세금이 또 늘겠군요. 달갑잖은 소식이네요. 저같은 공무원들은 다 유리지갑이라서.”

“그건 저도 마찬가집니다. 여기 있는 우리 최 팀장처럼 유능한 헌터는 세율이 올라도 오른만큼 연봉을 인상해 실수령액을 보장해 주겠지만... 저같은 사무직은 어림도 없죠. 큭큭큭.”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장이 그런 소리를 하니까  우습지만,  사람도 위에서 임명받은 월급사장이지 오너는 아니니까 또 아주 없는 소리는 아니다.
신일그룹과 오닉스의 관계는 말이 후원이지 사실상 계열사 아니겠는가.
우리가 그렇게 호숫가에서 작업을 구경하며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어느덧 주변에 천막이 펼쳐지고 꽤나 그럴듯한 숙영지가 완성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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