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1부
팀장 포함해서 겨우 세 명으로 이루어진 7팀은 사실 하나의 완편 헌터 팀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 감이 있는 규모였고, 규모가 작은만큼 보안을 유지하는데 유리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회사에다가, 하물며 사장 이하 주요 임원진들이 전부 나와서 귀를 기울이는 와중에 미리 맞춰두지도 않은 말을 가려서 한다는건 거의 불가능하다.
서로 말이 어긋나기라도 하면 곤란하고 그렇다고 말을 아끼는 것도 이상하거든.
결과적으로, 우리 세 명은 이번 모험에서 겪은 일을 가감없이 전부 털어놓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가칭 ‘억제기’라는 유물의 존재를 눈치챈 계기가 뭐라고요? 환상? 예지?”
“환상이나 예지라기보다는 정보를 읽었다고 봐야죠. 요정의 숲 북부 유적지에서 제단에 접촉했을 때 흘러나온 이미지를 전 단순히 피곤하거나 예민해서 본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던겁니다. 제단 자체가 일종의 기록장치였을 확률도 높구요.”
“초능력자들을 죄다 접촉시켜 봐야겠구만. 윤기정 헌터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고 했죠?”
“예. 그냥 네모난 돌덩이던데요. 아무래도 사람을 가리는 것 같습니다.”
“조건은 모르겠지만 자체적으로 사람을 가려서 정보를 환상처럼 보여주는 장치라. 이것 참, 고블린과 페어리들의 사례만 봐도 이 행성 토착문명에 뭔가 신비로운 구석이 있다는건 알 수 있지만 여러모로 예상 외의 일들만 벌어지는군요.”
어떻게 쉴롭의 강화 방어막이 억제기 파손 때문이라는걸 알았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려다보니 처음에 했던 변명, 그러니까 유적지에서 정보를 얻었다는 변명을 되풀이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요정의 숲으로 휴가를 떠난 일까지 해명하게 되었다.
주목받기 이전이었다면 모를까, 이제 와서 ‘진짜로 거기 경치구경하러 간건데요’라고 둘러대봐야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봐도 도저히 의심을 하지 않을수가 없잖아?
그럴듯하게 설명을 하려다보니 복잡한 스토리가 즉석에서 튀어나올리 없다.
결국 나는 유적의 신비로운 파장에 이끌려간 영매 비스무리한 캐릭터가 되고 말았다.
“좋아요, 그건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당장 급한건 회사 업무를 정상화하는거니까. 아무튼 최 팀장 말은, 철수한 헌터들의 업무를 재개해도 문제가 없을거란 말이지요?”
“예. 애초에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쉴롭도 남부초원에서만 출몰하는 괴수였으니까요.”
“다행이네요. 내일부터 정상적인 사냥을 재개하면 손해가 생각했던 것만큼 크진 않아요.”
물론 회사에서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나야 현장에서 전후사정을 대강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하는 소리지, 지구에 있는 회사에선 갑자기 괴수가 강화되어 1팀이 전멸했다는 정보 하나만 갖고 판단을 해야하니까.
오히려 칭찬을 해야겠지.
이런 상황에서는 책임을 지기 싫어서 서로 미루다 결단을 내리는 것이 늦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즉시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헌터 전원 철수라는 결정을 내린거잖아?
이익보다도 인명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니 일선 헌터로서 더없이 만족스러운 일이다.
사실 그냥 연봉과 성과급, 복지조건 등 돈만 보고 내린 결정이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내가 운이 좋게도 믿을만한 회사를 골랐구나 싶은 것이다.
“그러고보니 쉴롭을 처음 발견한게 최 팀장 훈련소있을 때였죠?”
“아마 제가 퍼스트킬 당사자일걸요. 그 때 피니셔가 제 역할을 못 해서 난장판이 되긴 했지만 적어도 방어막을 상쇄한건 저였습니다. 묘한 인연이네요.”
“문득 든 생각인데 말입니다, 혹시 그 퍼스트킬과 소위 유적의 부름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요? 수많은 헌터들 중 북부 유적지에 끌림을 느낀건 최 팀장 하나가 아닙니까?”
“글쎄요, 그럴수도 있고. 아니면 최 팀장이 강력한 다중 초능력자라서 그럴수도 있죠.”
여러 가지 방향으로 추측을 하면서 다양하게 헛짚는건 내게도 나쁜 일이 아니다.
연구소장을 필두로 임원들이 수군거리며 의견을 나누다가 전택영 사장의 말에 입을 다문다.
“자, 다들 진정해요. 차차 알아갑시다, 차차. 그보다 그 억제기라는 것 말인데, 임시조치를 취했다고는 하지만 언뜻 들어도 어딘가 허술한 감이 있어요. 어떤 이유로든, 그러니까 물살에 못 버티든 물고기가 물어뜯든 해서 다시 내부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이번의 참사가 다시 한번 되풀이될 수도 있다는겁니다.”
“특수군에서 모든 정보를 알아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정부에서 어련히 추가조치를...”
“그렇게 둬선 곤란하죠. 엄연히 우리 오닉스의 헌터들이 발견한 유적인데 두 눈 멀쩡히 뜨고서 정부에다 바칠순 없어요.”
“사장님, 그렇게 말씀하셔도...”
“아, 물론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일정부분 정보를 공유하고 책임을 나누는건 어쩔 수 없겠죠. 하지만 주도적으로 관리하는건 어디까지나 오닉스 헌터즙니다. 아시겠어요?”
“끄응. 예. 이능관리부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외계개발국의 국장이 온건하고 친기업적인 인사니까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을겁니다.”
“내가 직접 현장에 가서 지휘할겁니다.”
내가 짧은 시간이나마 우리 회사 다니면서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전택영 사장은 원래 신일전자의 마케팅부서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유능한 부장이었는데 이능력을 각성한 후 신생 오닉스 헌터즈의 사장으로 영전해 온 사람이라고 했다.
일단 헌터 자격증이 있긴 있는데 훈련소 졸업 이후 괴수를 상대해본 경험은 전혀 없을걸.
사장이 직접 외계, 그것도 게이트 기지 인근도 아닌 남부 초원 한복판의 전초기지까지 행차하겠다고 하니 임원들이 난감해하며 호위대를 꾸려야겠다고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러던 중 강경호 팀장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픽 웃고 의견을 낸다.
“최지호 7팀장을 호위로 보냅시다.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헌터 아닙니까.”
“음, 그래도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막 복귀한 팀을 다시 보내는건 좀...”
“글쎄요. 가만보니 별 고생 안 한 것 같은데요? 승호야, 어떠냐? 지금 힘들어?”
“예? 팀장님, 그게...”
연이은 전투와 행군으로 녹초가 되어있어야 정상이겠지만 그건 진짜로 싸우면서 걸어온 특수군 아저씨들 얘기고, 사실 7팀의 세 명은 무척 멀쩡했다.
두 명이서 교대를 했다지만 서열에서 밀리는 탓에 거의 4분지 3 이상을 혼자 운전한 강승호가 조금 피곤하긴 하겠지만 신체강화 능력자에게 부담이 될 정도의 노동은 아니지.
나도 차 안에서 뒹굴거리면서 왔으니 허리가 뻐근한걸 빼면 생생하고.
바로 얼마 전까지 3팀이었던 탓인지 강승호가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떨떠름하게 웃는다.
“가만히 들어보니 어차피 최 팀장이 가야 안전합니다. 억제기를 방수천으로 대강 둘러놓았다면서요? 어쩌면 벌써 찢어졌을지도 모르죠. 만약 보강공사 인력을 보냈는데 가는 길에 강화된 쉴롭이 툭 튀어나오면 어쩔겁니까?”
어... 듣고 보니 그렇네.
간단히 설득당한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별다른 아쉬움없이 새로운 임무를 수락했다.
최악의 경우 전초기지에 있는 식량을 다 까먹을때까지 초원을 헤집고 다닐 각오도 했는데 뭘.
일이 잘 풀려서 금세 복귀를 한 셈이니 바로 다시 게이트를 넘는대도 아쉬울게 없다.
강승호와 윤기정의 표정을 보면 내 팀원들 생각은 좀 다른 것 같지만.
곧 3팀장의 의견이 합당하다는 결론이 나오고 우리는 즉시 다시 게이트를 넘게 되었다.
논의가 끝난지 불과 삼십여분만에 게이트를 통과하며, 전 사장이 내게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최지호 팀장, 미안하게 됐어요. 이번 일만 제대로 마무리되면 섭섭잖게 포상하겠습니다.”
“별 말씀을요. 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요.”
“그런데 말입니다. 문득 든 생각인데, 그 억제기라는거.”
“예?”
“더 있지 않겠습니까?”
“어... 그야 그렇겠죠. 우연히 딱 하나 존재하는게 깨져서 딱 하나 연결된 괴수 한 종만 강화되었다고 보기엔 확률상 무리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찾긴 어려울겁니다.”
다른 괴수들의 방어막은 그대로고 쉴롭만 강화되었던걸로 봐서, 아무래도 인게임 설정과 달리 억제기는 각각의 괴수 종족에 개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듯 했다.
그렇다면 거칠게 추정해서 이 행성에 존재하는 괴수의 종류만큼 억제기가 있을거라고 생각해볼 수 있지만 아직까지 이번 쉴롭 사태와 같은 사고는 보고된 바가 없거든.
설령 거대괴수가 아니라 중소형 괴수가 강화되어 헌터들의 화력으로 어찌어찌 잡아낼 수 있었다고 쳐도 도저히 모르고 넘어갈 수 없는 차이니까 어쨌든 보고는 되었어야 한다.
“아니 아니. 좀 다르게 생각해보세요. 억제기가 파괴되니 방어막이 강화되고 복구하니 다시 약화되었다면...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상태가 사실 정상이 아닐지도 모르잖습니까?”
어라.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그럴 확률이 낮다고 보지만, 얼른 반박하기엔 근거가 없다.
그러니까 어딘가에 파괴된 억제기가 있고, 그걸 찾아내 복구하면 괴수의 방어막이란 것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뭐 그런 상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낮은 가능성이나마 충분히 걸어볼만한 상상이지.
“오, 사장님, 이능력 없이 총화기만으로 사냥이 가능한 미래를 그리고 계시는겁니까? 대단하긴 한데... 그럼 헌터회사의 상대적인 우위가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행성개척이 빨라질테니까 시장은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진 않을걸요. 방어막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까지도 안 바라고, 대폭 약화되는걸로도 충분하잖습니까. 당장 공격조를 절반으로 줄이고 팀을 두 배로 운용한다고 생각해봐요. 기존의 기준으론 위력이 불충분해서 써먹지 못하던 공격형 능력자들이 헌터로 투입될 수도 있구요.”
“확실히 일리가 있네요. 와, 그러고보면 참 제가 역사적인 시대를 산다는게 실감이 됩니다. 페어리들과 아티팩트를 교역할때도 그랬지만, 이계의 비밀이 점차 풀려나가는군요.”
경호원인지 수행비서인지 그도 아니면 젊은 임원인지 모를 부하와 장밋빛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고받으며 게이트를 넘는 전택영 사장을 바라보다가 입맛을 다셨다.
뭐, 열심히 잘 해주면 고맙지.
진짜 저 추측이 맞을지도 모르고,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억제기 탐색을 위해 투자를 많이 하면 그만큼 숨겨진 유적지들이 많이 튀어나올거 아니겠어?
한편, 내 뒤를 따라오던 7팀원 두 명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 험담을 주고받는다.
“지호야, 이번 일 끝나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휴가를 받아야겠다.”
“아니, 형님. 그건 당연한거 아닙니까? 뭘 약속까지 받아요? 보통 원정을 나갔다 온 팀은 열흘 이상 지구에서 재정비를 하잖아요.”
“승호 네가 아직 우리 팀장님을 모르는구나. 얘가 집보다 외계를 더 좋아하는 놈이야. 휴가를 요정의 숲에서 보내자고 날 끌고다닌거 보면 모르겠냐? 지금 확답을 받아두지 않으면 또 며칠 안 쉬고 다른 임무를 자청해서 받을지도 몰라.”
“크흠. 힘들면 얘기해요. 팀원들 더 뽑아서 로테이션 돌리면 되니까.”
투정을 부릴만도 하다 싶어서 헛기침을 하고 타협을 제시하니 윤기정이 낄낄거리며 웃고 강승호는 아주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음, 말하고 보니 내가 봐도 진짜로 워커홀릭이 할법한 이야기네.
내가 이렇게 일에 열중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하긴, 말이 회사일이지 사실상 신나는 이계 모험이나 다를바 없긴 하지.
게이트를 넘어 기지에 도착하니 마침 열려있는 남문 바깥으로 한국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쫙 펼쳐진 초원지대의 완만한 굴곡이 펼쳐지며 탁 트인 시야만큼이나 시원한 청량감을 선사한다.
열린 문으로는 거의 백여명은 될법한 대규모 행렬이 막 지나가고 있었다.
“오, 특수군이 제대로 마음을 먹었나보네요. 저거 남부 초원쪽으로 가는거 맞죠?”
“거기 아니면 굳이 남문으로 나갈 이유가 없잖냐. 그나저나 대단하네. 우리나라 정부가 이렇게 의사결정이 빠를수도 있구나.”
“에이, 형님.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하기엔 이게 일 사이즈가 너무 크죠.”
“그런가? 어이쿠, 사장님이 부르신다. 이거 잘못하면 마라톤 경기가 될 수도 있겠는걸?”
글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경주를 하기보다는 합류를 하는게 맞겠지.
한발짝 더 먼저 도착한다고 해서 억제기가 있는 호수의 관리권한이 상품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이쪽은 일개 사기업이고 저쪽은 정부잖아?
방금 지구로 넘어갔던 사람들이 한 시간도 안 되어 중년인 세 명을 데리고 다시 넘어오니 출입을 관리하는 직원이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우리 회사 사장님이라고 하니 눈을 크게 뜬다.
전택영 사장은 따라온 직원 두 명을 닦달하는 중이었다.
“저기 나가는 저 사람들 안 보여? 서둘러. 난 기지 관리관을 만나러 가볼테니까 임 비서는 수속 마치고, 김 부장님은 여기 주둔하는 특수군 여단장님하고 약속 잡아줘요. 지금 바로.”
정부나 우리 회사나 움직임이 참 빠르고 바쁘구나.
게이트 통과 수속을 끝낸 후 게이트 기지 내부의 정비소에 맡겨놓은 차량을 다시 찾아서 물품을 적재하고 출발 준비를 마칠때까지 약 이십여 분.
윗사람 세 분을 모신 오닉스 7팀은 바로 오늘 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무려 세자릿수 단위의 군대가 우리의 뒤를 따랐다.
물론 그 중 절반 가까이는 기초시설 건설을 위한 공병대였지만.
대체 여단장을 어떻게 설득했기에 얌전히 민간 헌터들에게 선도를 맡기고 따라오는거야?
저 아저씨들이 민간 헌터에 비해 돈을 좀 덜 벌어서 그렇지, 아니 오히려 그래서 자존심 하나는 어딜 가도 알아주는 양반들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