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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화 〉1부 (74/110)



〈 74화 〉1부

괴수의 방어막이 그 한계를 모를 정도로 강화되어 도무지 뚫리지 않았다는 보고는 세 자릿수의 희생자를 낸 대형 참사와 더불어 게이트 기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쉴롭은 게이트 기지 인근에서 출몰하는 괴수는 아니지만 활동반경에 따라 얼마든지 게이트 기지를 습격할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 최악의 경우 게이트 기지 철수까지 고려했다고.
물론 한국이 보유한 유일한 게이트인 울릉도 게이트에 연결된 기지를 그리 간단히 포기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만약 정말로 습격을 받았다한들 간단히 결단이 내려지진 않았겠지만.


“우선 경계를 강화한 채로 추이를 지켜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는데, 본국에서 넘어온 소식 때문에 계획이 완전히 바뀌었죠. 오닉스 헌터즈의 최지호 씨만은 반드시 살려서 데려와야 한다는 명령이 떨어졌던 겁니다. 이능관리부 장관님이 직접 게이트를 넘어왔거든요.”


“아, 역시  때문에 온거였네.  소령님, 이유는 말해주던가요?”

“자세히 말해주지는 않았습니다만 최지호 헌터의 이능력이 국가를 위해 아주 크게 쓰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젠 알겠군요. 정말 대단한 위력이었어요.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흠집조차 나지 않던 괴수를 단숨에...”

“모르시나보군요.”


아니, 저 아저씨는 아무리 군인이라고 해도 그렇지, 뉴스도 안 보나?
우리가 게이트를 넘기 전에도 신일 의료원에서 일어난 하룻밤의 기적에 대해 언급하는 기사가  있었으니까, 며칠 지나지 않아 팩트체크가 끝나고선 아주 난리가 났을텐데.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들어보니 그는 정말로 치유이능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듯 했다.
아무래도 정부 차원에서 은폐를 했나본데?
요즘같은 시대에 증인만 수십명 이상인 사건이 그렇게 마음대로 은폐가 될까 싶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증인이라고 해봐야 ‘어느날 갑자기 죽을 병이 싹 나았더라’나 ‘나만 그런게 아니라 같은 병원에 있던 불치병 환자들이  그렇더라’ 정도의 증언뿐일테니 작정하고 숨기면 괴담 수준에서 얼버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안달이 나서 귀한 특수군 병력을 오십여 명이나 사지로 몰아넣은걸 보면 어떻게든 살려서 데려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지니, 정부에선 내 능력을 꽁꽁 숨겨놓고 활용하려나보다.

“예? 뭔가  짐작가는 구석이 있습니까?”

“아, 뭐... 그건 중요한게 아니니까 다음에 얘기하죠. 아무튼 애써 절 구하러 오셨다니 감사인사부터 드려야겠군요. 그 과정에서 희생된 분들께도 깊은 사의와 조의를 표합니다.”

인사를 받는 김영찬 소령의 얼굴에는 슬픔과 더불어 약간의 민망함도 감돌았다.
휘하 팀원들을 잃으며 악전고투 끝에 목표지점에 도달하긴 했는데 정작 구출 대상에게서 역으로 구조를 받아 목숨을 건진 셈이니 당당히 ‘구하러 왔소’라고 말하기가  머쓱하겠지.
나는 그에게 설탕을 듬뿍 넣은 따뜻한 인스턴트 커피를 권하면서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살아돌아간 일곱 명의 생존자 중에 오닉스 소속은 없었단다.
팀 하나가 통째로, 그것도 가장 정예인 1팀이 전멸했으니 본사에서도 아주 난리가 났겠지.
남부초원이 거의 금역이 되다시피했으니 임무공백이야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임무 중 사상률이 급격하게 치솟아 회사 신용도가 급락할 것이 뻔하다.
동시에 찝찝한 자책이 가슴 속 한구석을 맴돈다.
만약  사람들의 권유에 응해 함께 돌아갔다면 인명피해는 없거나 매우 적었을텐데.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단단해진 쉴롭의 방어막이 참사의 원인이니 내가 함께 움직였다면 이동중에 습격을 받았더라도 얼마든지 처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떠나지 못하도록 강하게 설득하기라도 하거나.
이건 일종의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참사라고 해도 좋으리라.
최악의 경우엔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아예 못 했던건 아닌데, 막상 정말로 백수십여명이나 되는 헌터들이 몰살당했다고 하니 내가 상황을 너무 안일하게 여기고 그들이 떠나는걸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김 소령님, 이제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이들은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하고 자원한 결사대였다.
그런 결사대에게도 구조대상이 중요한 진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참 정부스럽고 군대스럽긴 하지만 어쨌든 이들마저 복귀 중에 참사를 겪도록 놔둘수는 없다.
김영찬 소령은 크게 한번 한숨을 내쉬더니 내게 되묻는다.

“휴우, 이상현상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하셨죠? 성과는 있습니까?”


“아직 명확한 단서를 잡은건 아니지만 일단 방향은 잡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약이 전혀 없어요. 언제까지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리기가 좀...”

아니,  말은 만약 돌아가겠다면 호위를 해주겠다는 소리였는데.
나는 더 말을 꺼내지 않고 그의 책임감에 감명을 받았다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뭐, 잘 된 일인가.
어차피 탈진한 사람들 상태를 보아하니 여기서 좀 쉬면서 회복을 해야할테니.

“충분히 견딜 수 있습니다. 동행한 군의관은 무사하니까요. 아마 기지 내에 응급 의료설비도 마련되어 있을겁니다. 제 임무는 최지호 헌터를 안전하게 호위하여 데려가는겁니다. 뭐, 호위는커녕 되려 보호받는 입장이 되었지만요. 조사를 계속하시겠다면 저희도 남아서 조력하겠습니다.”


기왕 일이 이렇게 된 거, 조사에 협력해서 다른 방법으로라도 체면치레를 하겠다는거군.
부대의 명예같은 사정은 솔직히 내  바가 아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저씨들, 게이트 기지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뭔가 본 게 있을지도 모르는데다 여러 괴수들에게 습격을 받은 위치와 정황만 해도 서식지도를 그리는데 쓸만한 정보다.
우선 지금까지 하던대로 쉴롭의 세력권을 추측해서 이동방향과 원점을 가늠해보고 그 중심부를 향해 한두차례 정밀탐색을 시도한 후 소득이 없으면 이 사람들을 호위해 귀환하자.
쉴롭들은 물을 싫어해 강을 끼고 있는 이 기지엔 접근하지 않으니 섣불리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안전에는 신경쓸 필요가 없겠지.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합시다. 소령님도 눈을 좀 붙이시죠.”

마음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커피잔을 내려놓고 마주 악수를 하는 김영찬 소령의 눈이 몹시 지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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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나는 중상자 두 명에게 대놓고 천사의 손길을 사용했다.
굳이 애써서 숨기지도 않았다.
단순 골절도 아니고 거대괴수에게 차여 으스러지다시피 한 뼈가 한순간에 멀쩡하게 붙어버리는 장면을 보고 특수군 대원들은 상부의 결정에 대해 완전히 납득하는  했다.
그야 저런 이능이라면 우리 모두의 목숨보다도 가치가 있겠지, 하고 중얼거리는걸 들었다.
조금은 자조적인 목소리더라.
특히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군의관은 무척 묻고 싶은게 많은 눈치였다.
국가고시에 합격해 의사 자격증이 있는데다가 공교롭게도 치유이능까지 각성해서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다 살린다는 고급인력이었지만 내 이능은 여러모로 그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그는 천사의 손길이 어느 정도의 손상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했다.

“뉴스 안 보셨습니까? 신일 의료원에서 일어난 하룻밤 사이의 기적, 유명할텐데.”

“어... 인터넷에서 그런 소리를 한번 본 것 같긴 한데, 그냥 뜬소문인줄 알았습니다. 원래 인터넷엔 온갖 기괴한 루머들이 다 돌아다니잖습니까.”

“제대로 작정하고 정보 통제에 들어갔나보군요. 우리나라 검경, 아니 이 경우엔 국정원인가? 아무튼 나라에서 일을 철저하고 확실하게 처리한다니 세금이 아깝진 않겠어요. 하하하. 제가 게이트를 넘기 전에 신일 의료원에서 한바탕 대규모 시험을 해봤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실패사례가 없죠. 목숨만 붙어있으면 무조건 치료할 수 있습니다.”

“휴우, 이능력에 대해 아직 밝혀진게 많지 않긴 하지만, 이건 정말이지 믿기 힘드네요.”

주변에서 대화를 엿듣던 군인들은 이젠 멀쩡해진 중상자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부서진 뼈만 멀쩡해진게 아니라 여기저기 달고 있던 잔부상과 그 외의 두통, 변비, 디스크 등의 지병, 나아가 혹시 있었을지도 모르는 잠재적 중병까지 모조리 사라진 두 명의 행운아들은 전에 없이 개운해진 몸을 활발히 놀려 짐을 나르고 있었다.
김영찬 소령이 헬멧 캠과 배터리를 챙겨서 합류해  네 명이 탐사에 나설 예정이었다.
그동안 다른 인원들은 기지를 지키며 군의관의 통제에 따라 개인정비를 취할 것이다.
저들은 차량을 모두 버리고 도망치면서 전투를 벌이던 중 우리에게 구조받았다.
그러니 여기서  먹고 쉬면서 체력을 회복해야 나중에 복귀길 행군을 견디지 않겠는가.
여기서 며칠이고 기약없이 머물수도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당장 내일 떠나게  수도 있는데.

“그럼 저녁때까지  부탁합니다. 무전망은 열어두겠지만 얼마나 멀리 나가게 될지  수 없으니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당황하지 마시구요.”

“물론입니다. 부디 소득이 있길 바랍니다.”


“승호형, 출발해요. 바리케이드 치지 않게 조심해서 운전하고, 연료 아끼고. 형은 기어를 너무 느긋하게 넣어서 항상 연비가 스펙보다  안 나와.”

“그러다 크랭크 상하면 그게 더 비싼건데...”


 끝을 흐리면서 투덜거리는 강승호의 변명과 그에게 한 소리 하라며 내게 정보를 전해준 윤기정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뒤섞여  안을 울리지만  묵직한 엔진음에 파묻힌다.
무한궤도 구르는 소리를 배경으로 나는 뒤로 기대어 눈을 붙였다.


얼마쯤 달렸을까.
문득 잠에서 깨어 눈을 뜨니 차 안은 여전히 소음으로 가득했고 허리며 목이 결려온다.
스스로에게 천사의 손길을 사용해 뻐근한 몸을 풀며 기지개를 켰다.
천사의 단지를 구매한 이후 나는 어떤 불편한 잠자리에서 일어나더라도 몸 쑤시는줄 몰랐다.

“이쪽에 뒀던 수통 못 봤어요? 이온음료를 담아뒀는데.”


“아, 그거 여깄어.  잤냐? 이렇게 시끄러운데 아주 세상 모르고 자더라. 큭큭큭.”


“별 일 없었죠? 목적지가 있긴 한데 그건 반쯤은 그냥 임의로 설정한 좌표에 가까워요. 가는동안 뭐라도 특이사항이 없는지 잘 살펴야합니다.”

“염려마라. 우리 군인 아저씨가 사명감에 불타서 근무중이시다.”


그냥 면피를 위해 형식적으로 참여하는줄 알았더니, 각 잡고 제대로 도와주려나보네.


“둘이서 보면 더 확실하잖아요.”

“에이, 여긴 사방이 쫙 펼쳐진 평원인데 굳이? 달리는 속도가 빠른 것도 아니고, 한 명이서도 충분히 놓치는 곳 없이 살펴볼  있어.”

나는 손사래를 치는 윤기정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저 말인즉슨, 어젯밤에 그 고생을 하고 들어온 사람을 위에서 눈 부릅뜨고  바람 맞도록 세워놓고 안에 들어와서 초코바를 까먹고 있다 이거지?
내 시선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윤기정이  먹은 과자봉지를 주머니에 쑤셔넣고 크흠, 괜스레 한번 헛기침을 하더니 비척비척 일어나 교대하자며 김 소령의 엉덩이를 툭 친다.
나는 픽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리고 이온음료를 한모금 마셨다.
운전수인 강승호를 제외하더라도 사람이 둘이나 되는데 굳이 팀장까지 고생할 필요는 없지.
권력이 참 좋긴 좋구만.
그 때, 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던 김영찬 소령이 운전석 쪽으로 탁탁 천장을 두들겨 신호를 보낸다.
강승호가 속도를 줄이다가 차를 멈춰세우고 공회전을 시켰다.

“왜요? 뭐 이상한거라도 있어요?”

아직 목표지점까진 한참 남았는데.
물론 이미 변형된 쉴롭의 세력권에 접어들었으니 뭔가 찾아냈다고 해도 이상할건 없지만.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와 김 소령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저 언덕 아래를 보십쇼. 어... 제가 가진 지형도에 따르면 원래 저 지점에 저만한 크기의 호수는 없었어요. 이쪽도 예전에 탐사가 다 끝났던 지역이거든요.”

그야 탐사가 다 끝난 지역이니 민간기업에서 정식으로 원정대를 파견해 사냥을 했겠지.
 봐도 군용으로 보이는 지도를 보니 그 정확도는 믿어봄직하다.
그럼 저 직경 삼사십미터는 족히 되어보이는 호수가 비교적 최근에 생겼다는 뜻인데...
아직 확신을 가질 단계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원인을 찾은 것 같다.

“가까이 가봅시다 팀장님. 아, 그런데 괴수는 안 보이네요? 숨을만한 곳도 없고.”

“땅 속에 있을지도 모르죠. 쉴롭은 원래 지하에 살던 놈들이라고 하니까.”


“맞습니다. 저희 팀도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전투를 피해가며 움직였지만 휴식  바로 옆의 땅을 파헤치고 나오는 바람에 전투를 치를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의 대화를 듣기라도 한 것일까.
아무리 봐도 흙과 풀이 깔린 땅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곳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장갑차가 접근하는 진동을 느끼고 깨어났나보네요. 상식적으로 그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누가 뭐래? 지호야, 조심해라. 저게 전부가 아닐거야.”

묘한 시선을 받은 강승호가 항의조로 설명하고 윤기정은 장갑차에서 뛰어내리는 내게 걱정어린 주의를 건넨다.
나는 그 충고를 기꺼이 수용하기로 하고 평소와 달리 앞쪽으로 쉬프트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장갑차를 이십여미터 정도 앞서가며 전투를 준비했다.
뒤에서 천천히 굴러오는 장갑차의 소음만큼이나 귀를 따갑게 하는 기성이 앞에서부터 천천히 번진다.
예상대로 쉴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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