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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화 〉1부 (73/110)



〈 73화 〉1부

우리는 해가 기울어 날이 어둑해 질때까지 초원을 돌아다니다가 기지로 복귀했다.
폭탄개미들과의 첫 전투 이후로도 도합 다섯 번의 전투가 더 있었는데, 그 중 네 번은 마찬가지로 폭탄개미였지만 마지막에는 쉴롭을 조우해 세 마리를 사냥하고 마석을 챙겼다.
위치를 보면 계속해서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쉴롭과 전투를 치른 후 복귀를 결정하고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기지에 돌아온 것인데, 돌아오는 동안에는 괴수와 조우하지 않은 것이다.


기지 정남쪽으로 출발한 첫 날의 수색에서 한가지 가설을 세운 나는 이후 일정을 조정했다.
다음 날에는 첫날보다 약간 더 각도를 기울여 남남서 쪽으로, 또 그 다음날에는 남서쪽으로, 나흘째 되는 날에는 되려 남남동으로, 닷새째 되는 날에는 남동으로.
작정하고 기지 아래쪽을 탐사하는 수색동선이었다.
첫날에는 전리품의 절반 가까이를 땅바닥에 버리고 오는 것이 아깝다며 못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강승호가 무덤덤하게 마석만 챙기고 다른 부산물에는 눈길도 주지 않게  정도로 익숙해질 즈음에 이르러, 나는 합리적인 의심에 다다랐다.


“자, 봐요. 우리가 지난 닷새동안 벌인 전투의 위치와 대상입니다. 이걸 보면 남쪽에서부터 쉴롭이 세력권을 넓히며 폭탄개미가 위쪽으로 밀렸다고  수 있어요.”

“중간중간에 쉴롭과 조우한 경우도 많은데...”

“아 그거야 세력간 전선이라는게 지도에 줄 긋는 것처럼 딱 나뉘는게 아니니까 그렇겠지. 한가지 더, 먼저 여기에 머물던 1팀과 다른 회사 사람들은 유니콘과 폭탄개미를 사냥하다가 방어막이 강화된 쉴롭에게 데여서 도망친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죠... 아, 맞네.  위에서 풀 뜯고 다니는 유니콘은 기존에 조사된 서식지도와 큰 차이가 없는 반면에 폭탄개미들은 훨씬 더 북쪽에서 출몰하고 있으니까. 그럼 팀장님 생각엔, 지하에서 거미랑 개미들이 종족전쟁을 벌였을 가능성이 높다는거죠?”


“네. 그렇게 가정하면 쉴롭들을 찾으러 어디로 가야할지도 대충 보이죠?”


닷새동안 조우한 괴수들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내려다보면서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중간중간  튀어나온 쉴롭들을 무시하고 보면 뚜렷한 선이 보인다.
남서쪽은 쉴롭들이 더 많이 치고 올라왔고 남동쪽은 그보다  덜 치고 올라왔는지 훨씬  깊이 내려가서야 폭탄개미의 출몰이 뚝 끊기는 현상이 관찰되는 것이다.


“내일 아침에 다시 출발합니다. 이번에는 야영을 각오하고 훨씬 더 깊이 내려가 볼거예요. 괴수들의 변경된 서식지도를 다시 그리는게 목푭니다.”


“회사에서 좋아하겠네요.”


미발견 괴수를 새로이 발견하거나 그동안 몰랐던 생태를 규명하는 일은 물론이고 이렇게 괴수들끼리의 다툼으로 변경된 서식지도를 새로 작성하는 일도 뚜렷한 공헌이다.
정부에서 간단한 표창이라도 내려줄 사안이고 그만큼 소속 회사의 위상도 올라가는 것이다.
나야 신입이라서 아직 오닉스 맨이라는 정체성은 옅지만 입사 초년차의 신입에게 신설팀을 통째로 맡겨버리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준 회사니 보답을 해야지.


“구조대는 언제쯤 올까요? 분명히 도망간 사람들이 신고를 할텐데.”

“글쎄. 아마 기약이 없지 않을까? 회사에선 지호  능력을 아니까. 특히 2팀 애들은 네가 괴수들 때문에 위기에 처했다는 말을 믿지 않을걸?”


“맞아요. 우리 회사에선 적극적이지 않을테고 다른 회사에선 자기네 직원들은 다 살아온거니까 정부에서도 쓸데없는 부담을 지고 싶진 않을걸요. 이상현상에 대한 연구야 당연히 진행하겠지만 어쩌면 금역을 지정하고 출입을 통제하는걸로 끝낼지도 몰라요.”


나는 만족스러워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특수군 아저씨들이 구조대라고 와서 어서 돌아가자고 설득을 하고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없을거란 얘기니까 시간은 넘치도록 있다는 뜻이다.
게이트와 외계행성, 괴수들은 아무리 연구를 하더라도 결국은 미지의 존재다.
그러니 당연히 최대한 보수적인 태도로 다룰 수밖에 없지.
내 표정을 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강 눈치챈 강승호의 표정이 검게 죽는다.
거 집에 가고 싶은건 알겠는데 여기서도 딱히 부족한  없이 먹고 자잖아.
나는 반쯤 먹다가 옆에 내려놓은 초콜릿 비스킷을 집어들고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구조대 파견여부에 대한 우리의 추측은 합리적이었다.
앞으로 어떻게든 대책을 세우긴 해야겠지만 누가 봐도 당장은 잡을  없는 괴수들이 출몰하는 땅에 초동조사팀을 자처하며 고립된 세 명의 헌터.
그  명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사지에 들어간다는건 말이 안 되지.
 한 가지 우리가 미처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은, 내가 게이트를 넘기 직전 신일 의료원에서 별 생각없이 벌인 일의 파급력이었다.
막연히 ‘결국에는 들킬게 뻔하니 돌아가면 귀찮은 일이 많아지겠다’라고만 생각했지, 국가 차원에서 나서서 호들갑을 떨 것이라고는 솔직히 생각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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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유웅, 하는 길고 날카로운 소리에 잠에서 깨어 눈을 떴다.
포근한 침낭에서 빠져나와  개나 되는 전열기구로 따뜻하게 난방이 유지되는 텐트 문을 걷고 나가니 밖은 아직 캄캄한 한밤중이다.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사방을 둘러보던 나는 북쪽에서 어렵잖에 근원지를 찾을  있었다.
 하늘 위에서 마그네슘 반응 특유의 눈부신 빛이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저거 조명탄이잖아!”

마찬가지로  자다가 급하게 뛰쳐나온 두 탱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급히 방탄방검복과 각종 보호대를 챙기고 방패를   북쪽 바리케이드로 달렸다.
나도 신발만 대강 꿰어신고서 따라붙었다.
조명탄은 사방을 밝히며 낙하산을 타고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첫 탄이 반쯤 내려왔을  특유의 발사음과 함께 한 발이  발사되고, 북쪽 하늘은 아예 대낮처럼 밝아진다.

“구조신호가 온건가요?”


“구조신호라기보다는 야간전투를 위해서 조명을 밝힌 것 같은데?”

“야간전투라니, 그런 미친 짓을? 하물며 폭탄개미나 유니콘 무리라면 모를까, 쉴롭과 싸우는거면 어떡해요? 평범한 이능력자들은 방어막을 뚫기 어려울텐데.”


“가봅시다. 기정이형,  챙겨요. 승호형은 장갑차 시동걸고. 서둘러요.”


지시에 따라 장갑차로 달려간 강승호는 별안간 동작이 굳는가 싶더니 연료탱크 뚜껑을 보조 연료통을 꺼내 가솔린을 들이붓는다.
람보처럼 탄띠를 몸통에 몇 겹으로 둘둘 감고 기관총을 비끄러맨 윤기정이 그 모양새를 보고 기가 막히다는 듯 웃으면서 혀를 끌끌 찼다.
어제 자기 전에 낮동안  기름을  채워놓은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발 전에 채우면 되니까 귀찮은 마음에 그냥 넘겼나본데, 평소엔 꼼꼼하게  하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깜빡한 날에 비상사태가 터지네.


“두번째 탄을 보고 발사궤적을 알아냈어. 북쪽으로 약 이백여미터 지점이야.  반대편.”

“게이트 기지에서 여기로 오는 와중에 괴수와 조우했다고 치면 괴수는 그보다 더 가까이에 있겠네요. 그럼 코 앞이네. 승호형은  이렇게 늦어?”

별로 폭이 넓은 강은 아니지만 야밤에 헤엄쳐서 건널수는 없으니 도하 기능이 달린 수륙양용 차량이 필요한데, 진작 기름을 채워놓지 않은 강승호에게 한바탕 잔소리를 해줘야겠다.
내 불평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뒤쪽에서 삐이익, 날카로운 경고음이 난다.
강승호가 장갑차 시동을 걸고 우리를 쫓아오다가 미리 설치해둔 알람 트랩을 건드린 것이다.
차에 타서 플레어 불빛을 향해 달리라고 소리쳤다.


“조심해. 덜컹한다.”

강을 향해 달린 장갑차는 궤도 안쪽의 튜브를 부풀려 한순간에 공기부양정이 되어 물 위를 달렸고, 고출력 엔진에 힘입어 잠깐 사이에 도강하는데 성공했다.
바람빠지는 소리와 동시에 다시 쿠르르, 궤도 구르는 소리가 나며 진동이 심해진다.
그러나 해치 밖으로 몸을 내밀고 있던 나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바로 앞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총성이 들리지 않았던 것은 아직 괴수의 방어막을 벗기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직’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겠네.
쉴롭이 긴 다리를 휘두를때마다 합금방패를 든 실더들이 이리저리 튕겨나가고 틈을 보아 달려들어 덥석 물어뜯으면 방검복따윈 아무 소용도 없이 사람이 으스러진다.
설령 몸을 빼더라도 독니에 작은 상처라도 났다간 몇  지나지 않아 쓰러져버린다.
그동안 뒤에서 공격조가 필사적으로 이능을 쏟아붓고 있었지만 쉴롭의 방어막은 도무지 상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사람들 사이로는 절망이 넘실거렸다.

“자,잠깐만. 지호야, 너 그거 쓰려는거 아니지? 저기서 함부로 썼다간 괴수뿐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같이 갈려버릴거야.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잡아나가야 해.”


“걱정마요. 꼭 그렇게 한꺼번에 터뜨려야 하는건 아니니까.”


에테르 필드를 쓸 때마다 블레이드 무한 난사로 공간 전체를 갈아버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줘서 그런가, 내가 해치 바깥으로 몸을 빼니 윤기정이 기겁해서 날 말린다.
그 때는 아무런 제한 사항이 없었으니까 그런거고.
저렇게 사람과 괴수가 섞여있는데 미쳤다고 앞뒤 안 가리고 전부 베어버리겠어?나는 그들이 에테르 필드, 알려지기로는 이능 폭주에 대해 가진 오해를 풀어주기로 했다.
차를 박차고 뛰어내리며 전장으로 쉬프트.
에테르 필드를 전개하는 것과 동시에 에테르 블레이드 시전.
여기까지는 똑같지만 무제한으로 난사하는 것이 아니라 범위 안에서 전투중인 사람들이 휘말려들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쉴롭을 썰어나간다.
범위 안의 공간 전체를 초토화시키는 임팩트는 없었지만 그래도 3초의 쿨다운타임 제한 없이 연이어 나가는 블레이드는 무적처럼 보였던 쉴롭을 두부처럼 썰어내며 제 역할을  했다.

“이 쪽으로 달려요! 뭐 하고 있습니까? 걸리적거린다니까요!”

눈치빠른  탱커가 장갑차 조명을 최대밝기로 켜 위치를 알리며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얼이 빠져있던 정체모를 헌터들이 정신을 차리고 그 쪽으로 달릴때쯤에는 이미 대부분의 쉴롭들이 토막나서 땅에 널부러져 있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야 6초가 지나고, 에테르 필드의 장판이 모두 걷혔다.


“반갑습니다. 오닉스 7팀장 최지홉니다.”

나는 살아남은 헌터들  우두머리로 추측되는 장년의 남성에게 악수를 건네며 말했다.
어째서 저 아저씨를 지휘자로 추측했냐하면, 헬멧에 소령 계급장을 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능력자 특수군에서 소령이면 대대를 지휘하기엔 너무 낮고 팀 하나를 지휘하기엔 너무 높은 계급이니까 두어개 팀이 모인 임시 특임대겠지?
나는 어렵잖게 그들이 우리를 데려가려고  구조대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트,특수군 102여단 김영찬 소령입니다. 최지호 씨를 구조하려고 급파되었는데...”

그는 구조대상에게 구조된 처지가 어색한지 말 끝을 흐리면서 경악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덩치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탱커인  같은데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다.
전투피로가 뒤늦게 덮쳐오나보다.

전장을 정리하면서 파악한 사상자는 총 스물하나.
그 중 중상자는 쉴롭의 다리에 걷어차여 뼈가 부러진 행운아 둘이었다.
거의 전원이 입고 있는 자잘한 경상은 세지도 않았으니 나머지 열 아홉명의 헌터는 내장이 상하거나 독니에 상처를 입어 모두 현장에서 사망한 것이다.
남은 인원이 서른이 채 안 되니 절반에 가까운 비율이 무력화된 셈이다.


“여길 빠져나간 헌터들이 무사히 소식을 전했나본데, 방어막이 강화된 괴수에 대한 대책도 없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들어온겁니까? 심지어 야간행군이라니.”

“그,그게...”


강을 건너 기지로 들어와서 지친 구조대원들을 쉬도록 했지만 구조대장인 김영찬 소령은 우리에게 일이 어떻게 돌아가길래 이런 무리한 작전을 시도한건지 설명할 의무가 있었다.
기지 가까이에서 전투가 벌어져 우리가 소음에 깨지 않았다면 정말  죽을뻔 했잖아?
쉴롭은 남부에서 천천히 세력권을 넓히며 밀어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지 북부, 그러니까 여기서 게이트 기지로 가는 길에서도 심심찮게 출몰하는 것 같던데 말이야.
자칫 멀리서 습격받아 전멸할수도 있었어.


“너무 위험하다는 의견은 수없이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명령은 명령이니까요.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최지호 씨를 무사히 구출해 와야한다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게이트 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102여단 전체에서 자원자를 받아 쉰 다섯명의 팀을 꾸렸죠.”


“예? 오닉스 7팀이 아니라  하나만요?”

“아, 젠장. 감동받을뻔 했네. 팀장님만 구하러  거였어요?”


"인마, 그럼 네가 뭐가 특별하다고 목숨걸고 구하러 오겠냐?"

뒤에서 인스턴트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붓던 강승호가 불평하고 윤기정이 낄낄 웃으면서 그를 놀린다.
그러니까 나 하나만은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건데, 그 이유는  뻔하지.

그나저나 일이  묘하게 됐다.
이제 본격적으로 방향을 잡고 탐사에 나설 시기인데, 이대로 돌아가야하나?
이 아저씨들을 기지에 내버려두고 돌아다니기도 불안하고, 그렇다고 알아서 게이트 기지까지 돌아가라고 하면 얼마나 더 죽어나갈지 모른다.


“일단 더 자세히 설명해봐요. 이곳 사정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왔습니까? 여기까지 오는동안 전투는 몇 번이나 치렀죠?”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처음 게이트 기지 관리부로 보고가 들어온건 나흘 전이었습니다. 심각한 중상자 다섯 명을 포함한 민간헌터 일곱 명이 복귀했는데, 다섯 명은 곧바로 게이트를 넘어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두 명이 긴급한 사안이라며...”


우선 첫 마디부터가 씁쓸하다.
여길 빠져나간 일행이 몇 명이었는데 겨우 일곱 명이 살아갔다냐.
김영찬 소령은 아직도 얼떨떨한 얼굴로 설명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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