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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화 〉1부 (70/110)



〈 70화 〉1부

몇 시간 정도를 더 달리니 초원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강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 강줄기를 따라 날이 어둑해질때까지 내려가기를 다시 몇 시간.
우리는 굽이치는 강물을 등지고 형성된 작은 기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강승호는 분명히 삼각주 위에 세워진 기지라고 했는데, 단지 강줄기를 끼고 있을뿐이었다.
혹시  형, 중학교 다닐때 지리 시간에 졸았나.
애초에 하류 지역조차 아닌데, 삼각주의 개념을 어떤 식으로 알고 있는건지 모르겠네.
한마디 면박을 줄까 하다가 딱히 의미있는 일도 아니고 해서 속으로만 웃어넘긴다.

“환영합니다! 어디보자, 오닉스 헌터즈 분들이시군요. 차량은 한 대가 전부입니까?”

“예. 인원은 셋입니다. 여기 명단이요.”


저 멀리 보이는 초소와 전조등으로 점멸신호를 교환한 뒤 가까이 가니 철제 구조물을 엮어 만든 휴대용 바리케이드 사이로 경계를 서는 굳은 표정의 초병들이 보였다.
왜인지 몰라도 우리가 언덕빼기 너머에서 나타날때부터 소란을 피우며 유난을 떨던 초병들은 내가 내미는 신분증을 보고 우리를 곧바로 통과시킨다.
보통 이런 임시 기지의 경계는 내부에서 머무는 팀끼리 적당히 조율해서 교대로 맡아 서는데, 가슴팍에 달고 있는 표식을 보면 저 초병들은 우리 회사 소속은 아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원래 이렇게 살풍경한 곳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그러게. 최근 새로운 거대괴수들의 출현으로 사냥 난이도가 올라갔다는건 알겠지만 그래도 사람들 표정이 너무 어두운걸?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이 사람들에게 사정이 어떤지 물어보면 어떨까요? 저거 봐요. 다들 우릴 보면서 수군거리고 있잖아요. 말을 걸고 싶어서 안달이  것 같은 표정이고.”


“안에 우리 회사 사람들이 있을텐데 뭘. 웬만하면  친구들한테 듣는게 낫지.”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면서 차를 안으로 몰고 들어가니 금속 골조에 천막을 씌워 만든 가건물 몇 동과 그 주위로 세워진 장갑차량 십수대가 눈에 들어온다.
처음 와보는 곳이었지만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인지 눈치채기는 어렵지 않았다.
작정하고 지어놓은 기지라기보다는 그저 자연스럽게 형성된 임시 거점같다.
차에서 내려 무한궤도로 다져 발목까지 올라오는 풀들이  죽어있는 길을 걸었다.
강승호가 텐트 앞에 세워진  대의 장갑차 사이에 우리 차를 솜씨좋게 끼워넣어 세웠다.
초소에서 연락이 갔는지 오닉스 사의 마크 패치를 어깨에 붙인 삼십대 중후반 정도 되어보이는 헌터가 가운데 막사에서 나와  차에서 내린 우리에게 반갑게 말을 건다.


“어떻게 알고 벌써 지원을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환영합니다. 1팀장입니다. 명성쪽 친구들이 성공했나보군요? 사실 반쯤은 이판사판으로 나간거였는데.”

“어... 저희는 지원을 온게 아니라 별도의 원정을 온건데요. 이번에 신설된 7팀을 맡은 최지홉니다. 그런데 지원이라니, 이 부근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모르고 오신겁니까? 아이고, 이런. 그러니 이렇게 피해가 컸지.”

안타깝다는  신음을 흘리면서 조의를 표하는 1팀장을 제지하면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오해가 있는건지 대충은 이해가 간다.
  대에 인원이 겨우  명이니 이게 완편된 팀이라고는 선뜻 생각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고, 많이 쳐줘야 이십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내가 팀장이라고 소개하니 기존 팀장의 유고로 차순위 지휘권자가 임시로 팀장지위를 승계받았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1팀장과는 안면이 없는지 뒤에서 얌전히 듣고 있던 윤기정도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에게 신설 7팀은 원래 3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내가 초대 팀장이라는 것을 설명했다.
당연히, 그는 경악한다.


“그러니까, 탱커 둘에 딜러 하나? 그걸 회사에서  하나로 인정을 해줬다구요?”

“단독 사냥능력이 있으면 되는거지, 머릿수가 중요한게 아니니까요. 아무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겁니까?”


“오면서 아무 일 없었습니까?”


“글쎄요. 주요 괴수 서식지는 피해가며 온다고 왔지만 서너번 돌아다니는 괴수들과 맞닥뜨려 전투를 벌이긴 했죠. 그 중 한번은 쉴롭이라는 신형 거대괴수를 잡았고.”

“쉴롭을 잡았다구요? 자,잠깐만요. 혹시 증명할  있습니까? 부산물 챙겨온거라던가...”


경악하는 1팀장의 앞에서 내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는 사이 뒤에서 듣던 윤기정이 이제 막 주차를 마치고 걸어오는 강승호에게 소리쳐 심부름을 시켰다.


“승호야, 적재함에서 거미눈깔 몇 개만 꺼내와라.”

“예? 아, 네. 잠시만요.”

강승호는 영 내키지 않는 얼굴로 적재함에서 아직도 끈적하게 말라붙은 체액의 흔적이 남아있는 갑각 두어조각과 수많은 쉴롭의 눈 두어개를 꺼내들고 가져왔다.
특유의 악취가 은은하게 올라와 나도 찝찝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돌렸다.
증거를 본 1팀장은 믿을 수 없다는듯한 표정으로 입을 헤 벌린채로 눈을 끔벅거린다.
이거 이상한데?
이 쉴롭이라는 거대괴수가 덩치도 크고 곤충형이라서 움직임이 기민한데다 독성까지 있어 상대하기 수월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좀 어려운 사냥감일 뿐이다.
그야 거대괴수라는게 웬만한 중소기업의 팀에서 섣불리 사냥하겠다고 나섰다간 사상자가 나와 되려 손해만 볼 정도로 위협적인 놈들이지만, 여기 있는 헌터가 몇인데.
하물며 전력도 강한 것이, 우리 회사도 그렇지만 이렇게 멀리까지 원정을 나오는 팀은 대부분 대기업의 후원을 받는 회사에서 노련한 헌터들로 꾸린 주력 팀일 확률이 높거든.
차량 숫자를 보면 한 팀에 두 대에서 세 대라고 쳐도 대충  팀 이상.
이 막강한 전력이 꽁꽁 묶여있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인 것이다.

“대,대단하군요. 대체 어떤 방식으로 사냥한겁니까? 방어막을 뚫을 수 없었을텐데.”


“예?”


“모르셨습니까? 최근 출몰하는 쉴롭들의 방어막이 이상할 정도로 단단해 졌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약 보름 전에 마지막으로 사냥에 성공한 이후로 성공사례가 하나도 없어요.”

“똑같은 종의 괴수가 별안간 방어막만 강화돼요? 그런 사례가 있었나요?”


“없죠. 그러니까 다들  믿고 섣불리 돌아다니다가 당한겁니다. 최초 보고가 들어온 이후로도 희생이 많았던게 무리도 아니지요. 확인된 사망자만 무려 스물 다섯입니다. 피해가 커지고나서야 세  회사가 뭉쳐서 레이드를 시도했는데, 결국 방어막을 상쇄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무려 마흔 다섯 명이나 되는 공격조가 이능을 쏟아부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암울한 목소리로 마치 한을 풀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구구절절한 설명이 이어진다.
최소 C급 이상의 공격이능력자 마흔 다섯명이서 화력을 들이부었는데 A급 신체강화능력자 네 명이서 시선을 끌며 견제를 하다못해 지쳐 탈진할때까지 쉴롭의 방어막에 흠집도 못 내는 믿기힘든 참사를 내며 수십여명이 참여한 합동레이드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 오닉스 1팀을 포함한 다섯 개 회사의 백칠십여 헌터들은 이곳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고 한다.
간신히 따돌려 이곳까지 탈출하긴 했지만 울릉도 게이트 기지까지 복귀할 길이 막막하다고.
아, 그렇겠네.
거미처럼 여러개의 발을 가진 곤충형 괴수인 쉴롭은 이동속도가 꽤나 빠르니까.
물론 아무리 무한궤도로 달리는 장갑차라고 해도 마음먹고 가속페달을 밟으면 거미보다야 더 빠르게 달릴 수 있겠지만 남부 초원에 잘 닦인 도로가 깔려있는게 아니잖아?
일단 포착되어 추적당한다면 결국 따라잡히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오도가도  하고  기지에서 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겁니까?”


“명성 2팀에서 자원자가 나와 전령을 보내긴 했는데... 무사히 도착할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중간에 쉴롭과 조우할 가능성이 너무 높아요. 다행히 쉴롭은 물을 싫어하는 생태를 보이니까 이 기지는 안전하지만요.”
“강줄기를 따라서 이동하는건... 아, 의미가 없겠네요.”

남부 초원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이 강은 북쪽의 울릉도 게이트기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상현상이 발생하고 난 뒤 십여일이 흐른 아직은 물자가 부족하지 않아 수차례 회의를 하면서 상황을 타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지만 점차 절망적인 의견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 와중에 외부에서 조력자들이 들어온 셈이니  반가움이 어떨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정말 쉴롭을 사냥하면서 이상하다는걸 못 느꼈습니까?”

“음, 실은 제 공격이능이 위력이 좀 강한 편입니다. 위력 하나로 S급 판정을 받았을 정도로요. 그래서 강화되었다는 괴수의 방어막을 뚫을  있었던  같습니다.”


“아니, 그게 그렇게 간단히 설명이  일이 아닌데... 우리가 호구라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던게 아니거든요. 아니지, 잡은건 잡은거니까... 끄응. 이거 어떻게 생각해야할지 모르겠군요. 혹시 이상현상이 그 사이에 종식된건가?”


잘은 몰라도 그건 아닐 것 같은데.
‘그냥 내 이능의 위력이 너무 강해서 그렇다니까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는다.
첫 각성 이후로 시간이 흐르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을 내 주문력은 사실상 무한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영역에 접어들었을 것이고, 괴수의 방어막이 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해봐야 무한의 주문력이 위력계수로 붙은 에테르 블레이드 앞에서는 똑같이 종잇장일테니까.
문제는 이걸 직관적으로 납득시키기가 어렵다는거지.
잠시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내게 1팀장이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유야 어쨌든 녀석을 잡을 수 있다는건 확실한거 아닙니까. 그럼 더 생각할게 뭐 있습니까? 다들 불러모아서 돌아갑시다. 이거 죽다 살아나는 기분이구만.”

“잠깐만요. 저희는 이제 막 게이트를 넘어서 온겁니다. 그런데 바로 돌아가긴 좀...”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그렇게 답답하다는  가슴을 쳐도 말이지, 이쪽도 답답하긴 마찬가지거든?
아무리 이능을 쏟아부어도 벗겨지지 않는 방어막을 두르고 달려드는 괴수 때문에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한시라도 빨리 여길 벗어나고 싶은 심정은 알겠지만 그건 시간낭비다.
남부초원지대를 영영 포기할 셈이 아닌 이상 어쨌든 다시 돌아와야할거 아냐?
아니지, 설령 당분간  지역을 포기한다손 쳐도 안심할 계제는 아니다.
쉴롭이 활동반경을 넓히면 넓히는대로 마냥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다가 울릉도 게이트 기지 부근까지 활동영역이 넓어지면 어쩌려고?
심지어 내가 훈련소 실습때 그 놈을 최초 발견한건 게이트 기지에서 남쪽으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유니콘 서식지 구역에서였으니 시간이 여유로운 것조차 아니다.

이대로 돌아가면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뻔하지 뭐.
 팀들이 소속된 회사를 거쳐서 보고를 받은 국가에선 특수군을 동원해 조사대를 꾸릴 것이고, 조사대는 쉴롭의 방어막이 강화되어 사냥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낼 것이다.
그러면 사태 발생 이후 유일하게 사냥에 성공한 내게 협조요청이 오겠지.
결국 나는 온갖 호기심과 의문어린 시선을 달고서 다시 남부 초원으로 와야할 것이다.
차라리 지금 초동수사를 해서 사태를 파악해보는게 낫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야기를 들어보니 짐작가는 구석이 아주 없는건 아니었으니까.

“겨우 사체 샘플만 갖고 돌아가기보다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를 해보는게 당연히 더 낫지 않겠습니까? 보급여유도 아직 넉넉하다면서요?”
“조사요? 무슨 조사요? 설마 쉴롭의 방어막이 갑자기 단단해진 이유를 밝혀보겠다는건 아니죠? 우린 헌터지 괴수생태학자가 아닙니다.”

“그래도 갑자기 저렇게 되진 않았겠죠. 최소한 주변에 뭔가 변화가 있었을텐데 뭐라도 그럴듯한 정황을 들고 가서 분석해달라고 요구를 해도 해야지, 이대로 소득없이 돌아가서 덮어놓고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어요. 지금까지 고생 많이 하신건 알겠는데, 조금만 더 고생합시다. 칼이 박히는 이상 그냥 거대괴수예요. 지금까지 수없이 사냥해 봤을거 아닙니까.”


내 설득에 1팀장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 동의한다.
안전만 생각한다면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팀의 평판과 성과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연락이 끊긴 이상 오래지 않아 게이트 기지쪽에서 뭔가 이상하다는걸 눈치채고 사람을 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아마 한 몫을 했겠지.


“휴우... 일단 짐을 풀고 쉬고 계세요.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봐야겠습니다.”

“괜찮다면 저도 회의에 참가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복잡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1팀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내 어깨를 윤기정이  치고 씩 웃으면서 눈짓을 한다.
그 표정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서 나도 픽 웃었다.
내게 마가 낀건지 아니면 거꾸로 행운의 여신이 붙은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어째 게이트를 한번 넘었다 하면 평범하게 계획한대로 사냥만 하고 돌아가는 법이 없어.
어쩌면 마냥 우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게임 캐릭터의 능력을 각성한 것과 이 행성의 비밀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신비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지.

아무튼 중요한건 내가 남들에겐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지식을 기반으로 이번 쉴롭 사태의 원인규명과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게임 내에 쉴롭같은 거미형 캐릭터나 몬스터는 없었지만 비슷한 현상은 떠오르는게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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