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8화 〉1부 (68/110)



〈 68화 〉1부

사무실이 배정되고 지원팀이 편성되는 작업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날 따라서 새로 구성되는 팀에 합류하는줄로만 알고 있다가 뒤늦게 무산된 것을 알고 당황한 채명진이 온갖 불평을 내뱉긴 했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구두약속이라는건 언제나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건데 철석같이 믿은 쪽도 잘못이다.
다행히 남들에게 떠벌이고 다니지는 않은 것 같으니 3팀에 남아야 하는 그가 다른 팀원들이나 강경호 팀장과 사이가 어색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같았다.


“너무 휑한데? 지호야, 아니 팀장님. 여기 그냥 휴게실로 아늑하게 꾸미죠? 사무작업이야 지원팀에서 해줄텐데. 크으, 출근해서 여기서 티비보면서 짜장면이나 시켜먹으면...”


“꾸미는건 좋은데 그럴 필요 있을까요? 뭐 얼마나 머문다고.”

“응? 우리 어디 가요? 여기가 우리 사무실 아닌가?”

“아, 아직 말 안 했구나. 7팀은 내일 바로 게이트를 넘어서 원정갑니다. 목적은 울릉도 게이트기지 남부의 초원지대를 한바퀴 도는건데, 마침 1팀이  쪽에 장기원정을 나가서 베이스캠프를 꾸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다음주에나 철수를 한다니까 도움을 받을  있을겁니다.”

무기를 떼어내고 짐칸을 잔뜩 키운 대용량의 차량을 몰고 초원을 달리며 양껏 사냥을 하되 전리품은 1팀에다 떠넘기면서 남부 초원지대를 종횡무진한다는 계획이다.
합류에 문제가 생기면 까짓 마석만 챙기고 괴수시체는 그냥 버리지 뭐.
아, 슬슬 마석광산에서 양산되는 마석이 풀려 시세가 떨어지려나?


“첫 원정을 빨리 가게 될거라는건 짐작했는데...”


앞으로는 지구에서 머무는 시간보다 외계행성에서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질거라는 말에 강승호의 표정이 빠르게 어두워진다.
원정기간이 더 짧아질거라는 이야기는 진작에 했지만 여기까진 예상을  했던  같다.
장기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이나 헌터들 중에는 지구보다 외계행성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게 있지만, 그건 모두 상대적으로 안전한 경비나 순찰업무의 얘기니까.
아직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지역을 돌아다니는 것은 그 자체로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하는 일이며, 단순히 경계하며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괴수를 탐색하고 사냥까지 하는 것은 만만한 업무가 아니라서 사람의 기력을 급격하게 소모시키는 작업인 것이다.
그러니 저렇게 떨떠름한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피니시에  60구경 탄약은  박스 정도, 개인화기는 정비도구랑 탄약까지 각자 알아서 챙기시고. 남는 공간에는 식량하고 연료로 가득 채웁니다. 그럼 얼마나 돌아다닐수 있을까요?”


“사람 셋에 차 한 대니까 소모가 적긴 하겠지만 그래도 두 달 이상은 무리야. 음, 설마 완전히 비상식으로만 꽉 채울건 아니지? 그거 하루이틀이면 몰라도 오래 먹으면 몸 버리는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기간을 늘릴 생각은 없어요.”


“좋아, 그럼 레토르트 식품하고 감미품 위주로 챙길게. 그럼 훨씬 나을거야. 우린 세 명뿐이니 최고급으로만 가져가도 회사에서 뭐라고 하지 않겠지. 총액은 훨씬 적을테니까.”


3팀을 나와 새로운 팀에 합류하기로  결정이 잘한 결정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강승호와 달리 윤기정은 아무런 동요없이 원정준비를 꼼꼼하게 체크했다.
우리 팀을 전담으로 하는 지원부서가 꾸려지기 전까지는 직접 소요물자를 계산해서 청구해야 하는데, 윤기정은 행보관 최종수와 친하게 지냈던 덕분에 어깨너머로 배워둔게 많았다.
그의 말마따나 겨우 세 명이서 헤프게 써봐야 스무명에 가까운 다른 팀의 소모량에 비하면 택도 없을테니 보급 신청에서 까다롭게 굴 이유는 없겠지만 그래도 공문은 제대로 넣어야지, 괜히 흠 잡힐 구석을 만들어놔서 좋을게 없다.
항목을 체크하며 품의서를 작성하던 윤기정이 문득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남쪽으로 간다니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건데, 일본 게이트 영역까지 가진 않을거지?”


“당연히 안 갑니다. 근래에 사이가 험악한 것도 있고, 무엇보다 너무 멀잖아요.”

남쪽으로  내려가다보면 홋카이도 게이트와 연결된 일본의 게이트 기지가 나오지만 근 한 달 가까이를 달려가며 그  곳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울릉도 게이트와 홋카이도 게이트는 지구에서는 지척이지만 외계 행성에서는 그 수십배가 넘는 거리가 떨어져 있었는데, 그림자를 이용한 삼각측량을 해본 결과 그 행성이 지구보다 수십배나 큰건 아니어서 게이트마다 연결 위치가 랜덤이라는게 정설이었다.
아, 그러고보니 게이트 너머에서 첫 인공위성을 발사하는게 열흘 뒤니까 우리가 게이트를 넘어갔다가 다시 복귀할때쯤엔 외계 행성의 상세지도가 나오고 GPS도 나오겠네.
충분한 숫자의 위성이 올라갈때까지 당분간 민간에는 안 풀리겠지만.

“그런데 팀장님, 남부 초원은 사실 별로 매력적인 사냥터가 아닙니다. 그 지역에서 그나마 수익성이 좋은게 유니콘 정도인데, 유니콘 서식지는 이미 연구가 끝나서 거의 다 밝혀져 있어요. 당연히 서식지마다 고정팀이 죽치고 있죠. 말하자면 포화상태라는겁니다.”


“뭐, 거기 끼어들어봐야 눈총만 받지 별로 재미는 못 보겠네요.”

강승호가 조심스럽게 설명하지만 나는 한 귀로 흘리며 건성 대답한다.
미안하게도 그의 설명은 이번 원정경로를 계획하는데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아직 말하지 않았지만, 남부 초원으로 향하는 이번 원정의 목적은 애초에 사냥이라기보다는 탐사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돌아다니다가 괴수와 마주치면 잡아야겠지만 적극적으로 찾아다닐 마음은 없었다.


“팀장님. 그렇게 대강 넘어가실 문제가 아녜요. 신생팀의 첫 원정이잖습니까?”

“괜찮아요. 오히려 신생팀이니까 당장은 성과 압박을 안 받는거죠. 경험도 쌓고 호흡도 맞출 겸 해서 가는거니까. 언제까지 얼마 수익 내라, 뭐 이런 얘기 없었잖아요?”


비싼 연봉 받으면서 허송세월을 하면 안 좋게 보이겠지만, 오다가다 마주치는 놈들만 적당히 잡아서 챙겨도 수백, 수천만원대의 액수가 나오니 손해를 보는게 오히려 어렵다.
뭐, 원정을 나선 헌터가 손해를 본다고 하면 사상자가 발생한게 아닌 이상 보통은 시간을 버려 기회비용을 손해봤다는 뜻이라서 소모물자와 인건비만 뽑는다고 될 문제는 아니지만.


“대박은  터뜨려도 좋습니다. 느긋하게 갑시다 느긋하게.”


울릉도 게이트에서 남쪽으로 펼쳐진 초원은 유니콘 서식지가 군데군데 있긴 하지만 익히 알려진대로 그리 인기있는 사냥터가 아니니 그만큼 탐사도 꼼꼼하게 되지 않은 지역이다.
탐사라는게 결국 헌터들의 서브 퀘스트 비스무리한거니까.
물론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는 법이라서 외계의 희귀광물이나 특이한 식생, 부가가치높은 괴수의 서식지 등을 탐색하여 정보로 가공, 판매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헌터들도 있지만 그런 일은 상대적으로 수익이 불안정하니 보통은 사냥이 우선인 것이다.
아, 이제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바뀔지도 모르지.
요정의 숲 북부에서 고대문명의 유적지가 나왔으니까 정부에서 대규모로 프로젝트를 발주해서 고액의 현상금을 걸고 골드러시를 유도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승호야,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마라. 너도 지호 저 녀석 이능 대단한거 알잖냐. 우린 그냥 팀장님만 믿고 가면 되는거야. 정 안되면 기적의 치료사 노릇이라도 해서 팀원들 월급은 주겠지. 큭큭큭. 아, 여기 확인하고 도장찍어줘.”


“오, 그거 좋은데요? 사이비 종교를 하나 만들까. 교주노릇도 은근히 괜찮을 것 같은데.”

어느새 다 썼는지 완성된 품의서를 내게 건네던 윤기정이 그 말에 낄낄대며 웃었다.
나는 서류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도장만 쾅 찍어서 그대로 다시 강승호에게 넘겼다.
윤기정은 나보다 훨씬 더 노련한 헌터니까 필요한건 꼼꼼하게 다 썼겠지.
저 형이 실없는 농담을  하고 언행이 언뜻 덜렁대는 것 같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겪어본 바로는 의외로 중요하다 싶은 일에는 치밀하게 구는 종류의 사람이다.


“팀장님? 이걸 왜 절 주세요?”

“총무팀 가서 제출해요. 내가 갈까요? 명색이 팀장인데.”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막내가 한참 선배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꼴이지만  어때,
계급이 계급인데, 억울하면 먼저 승진 했어야지.
둘이서 한참을 돌아다니며 전우애가 쌓인 윤기정에게 존대를 받는건 역시 너무 어색해서 그만두라고 했지만 강승호까지 형님 대접을 해주겠다는 뜻은 아니었거든.
3팀의 탱커들 중 강승호와 채명진이 스카웃 물망에 올랐던 이유는 윤기정과의 친분도 친분이지만 그 두 명이 팀 내에서 가장 운전을 잘 한다는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본인이 들으면 차라리 그냥 운전기사를 고용하지 뭣하러 숙련된 실더를 꾀어냈냐고 항의할만한 무례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책상에 발을 올렸다.
무력에 자신이 있으니 경로를 짤 때 고민을 별로 하지 않아도 되어서  편하단 말이야.
아, 사무실에다 빔 프로젝터를 하나 가져다 놓을까.
비는 시간에 영화같은거라도 보면서 시간을 때우면 딱 좋을 것 같은데.


---------


걱정 반 기대 반이 섞인 사내 여러 부서의 시선을 뒤로 하고 7팀은 게이트를 넘었다.
출발 전에 집에다 원정 관계로 다시 당분간 외박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니 어머니는 ‘원래 헌터들이 이렇게 자주 자리를 비우냐’며 걱정을 숨기지 못 하셨다.
아버지가 관련 업계에서 일하셔서  분 다 헌터들의 생활상에 대해 아주 무지한건 아니었기 때문에  원정간격이 좀 이상하다는 것쯤은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다.
해서 나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경비 및 순찰 업무다’라고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잘 둘러댔네요. 보통 경비업무 아니면  달 넘게 외계에 머물고 그러지는 않으니까.”

“그거 뭔가 말에 뼈가 있는 것 같은데요, 강승호 씨?”

“에이, 오햅니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거죠.”


“승호야, 우린 그냥 우리  팀장님만 믿고 가면 되는거야. 내가 말 안 해줬냐? 세자릿수나 되는 리저드들을 그냥 한 큐에  베어버렸다니까? 전투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어.”

“저도 2팀에 있는 친구한테 듣긴 들었는데...”

말꼬리를 흐리는걸 보니 과장이 지나치게 섞인 허풍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눈으로 직접 본 것이 아닌 이상 쉽게 믿기 힘든 일이긴 하지.
그래도 내가 거대괴수의 방어막을 일격에 상쇄해버리는 것을 목격했으니 저렇게 반신반의하는 반응이라도 나오는거지, 평범한 S급 이능력자라고만 알고 있었으면 조금도 믿지 않았을거다.
이런 신뢰의 격차는 두 사람의 태도에서도 명확히 드러났다.
강승호가 적지 않은 불안감을 안고 바짝 긴장을  것에 비해 윤기정은 그야말로 외계에서 캠핑카 여행을 즐기는 것처럼 편안한 얼굴이었던 것이다.
안전에 대한 우려만 없다면 사실 여행과 별로 다를 것도 없지 뭐.

우리는 게이트 기지를 나와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달렸다.
겉에 두른 합금장갑과 적재함에 실린 물자의 무게 때문에 연비는 별로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따로 실은 보조연료까지 포함하면 일천킬로미터 이상을 달릴 수 있는 양이었다.
물론 중간에 1팀의 전초기지에 들러서 재보급은 한번 해야겠지만.
마석엔진이 나온다면 연료보급같은걸 신경쓸 필요없이 반영구적으로 돌아다닐 수 있을텐데, 개발된다는 소문만 무성할뿐 아직 실체가 없었다.
출발 후 세 시간 정도가 지나니 껌을 씹으면서 운전을 하던 강승호가 슬슬 눈치를 본다.
괜스레 뒤쪽을 힐끔거리는게, 아무래도 슬슬 운전 교대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힘듭니까? 지금 기정이형 자는 것 같은데, 깨울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글쎄, 별로  괜찮아 보였지만, 나는 궤도차량 운전같은건 못 하니 해줄 수 있는게 없다.
정 힘들면 자기가 알아서 바꿔달라고 하겠지 뭐.
우물쭈물하던 강승호는 별안간 눈을 크게 뜨더니 다급히 외쳤다.

“전방 두 시 방면에 저거, 괴수 아닙니까? 이 거리에서 저렇게 크게 보이다니.”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과연 먼 거리에서도  눈에  법한 덩치의 괴수가 보인다.
세 시간 정도 달렸으니 안전구역이야 당연히 벗어났지만 공식 지도에 의하면  부근에 거대괴수가 출몰한다는 보고는 아직 없었던걸로 아는데, 신기한 일이다.
야트막한 수풀이 깔린 평탄한 지형이라 저렇게 거대한 생물체가 살기는 적합하지 않은데.

“어디 보자... 맞네요. 거대괴수. 방향 틀어서 저쪽으로 갑시다. 기왕 눈에 띄었는데 잡고 가야지. 거대괴수의 마석은 크기만 큰게 아니라 질적으로 뭔가 다르단 소리도 있잖아요.”

“그건 아직 검증되지 않은 낭설... 아니, 지금 그게 문젭니까? 피해가야죠! 우린 겨우 셋이고, 팀장님 이능이 아무리 세다고 해도 쓸데없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거대괴수라면 방어막을 다 날려도 발악만으로도 장갑차를 부숴버릴수도 있는 놈들이에요.”

“승호야, 진정하고 명령에 따라.”

뒤에서 졸고 있다가 높아진 언성 때문에 깨어난 윤기정이 어느새 상황을 파악하고 말했다.
강승호는 울상을 짓고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차의 속도를 높인다.
장갑차 엔진의 알피엠이 올라가는 소리와 함께 쿠르르 무한궤도 구르는 소리도 높아졌다.
음,  말엔 반박하다가 윤기정의 말에는 곧바로 복종하다니.
내가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일천해서 그런가, 아직 팀장으로서의 권위가 전혀 없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