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5화 〉1부 (65/110)



〈 65화 〉1부

탐색 및 방역 작업은 내리 열흘을 이어진 후에야 마무리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지구로의 귀환이 금지되어 요정의 숲 안에서 생활했는데, 인력이 부족하다는 요청에 응하여 두어번 특수군을 도우러 나가서 쏠쏠한 용돈벌이를 하기도 했다.
본국에서  개 여단이 추가로 지원을 나오기까지 하며 법석을 떤 덕분에 무려 세 개의 비밀창고를 더 찾아내 불태웠는데, 무려 백만  이상을 감염시켜 죽일 수 있는 양이란다.
그런걸 한국의 영역인 요정의  안에 숨겨두고 있었다니, 이거 거의 선전포고 아닌가?
중국이 관련되었다는 물증은 없으니까 대놓고 책임을 묻긴 쉽지 않겠지만.

“페어리들이 안타까워 하더라. 북서부에서 찾은 창고 인근에 귀한 약초와 과일이 풍부하게 채취되는 지역이 있는데, 우리가 거길 다 태워버렸거든.”


“어쩔 수 없죠. 주변 식물들이 죄다 감염이 됐는데. 아무리 전염속도가 느려도 그렇지, 태워서 소독하지 않았으면 언젠가는 숲 전체가 독으로 가득 찼을걸요.”

“그래도 왕이 이해해주니 다행이야. 페어리들에겐 가벼운 감기같은거라서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긴 쉽지 않았을텐데, 아무래도 기정이 녀석이 산송장이 되어가며 투병하는걸  덕분인 것 같아. 나보고 지구인들은 놀랍도록 뛰어난 문명을 가진데다 잘 싸우기까지 하는데 의외로 무척 연약한 것 같다고 그러는데,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더라.”


“이야, 그 쪼끄만 것들이 하다하다 면역력으로 콧대를 세우네.”


“놔둬라. 뿌듯해하는게  귀엽더라. 그 놈이 그래도  나라, 아니지 종족 전체의  아니냐. 눈치도 아주 없는건 아니라서 우리가 페어리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아는 것 같던데 마냥 기쁘지만은 않을거 아냐. 이런걸로라도 자존심 세우라고 둬야지. 큭큭.”

고블린들과 종족의 운명을  전쟁을 벌이면서도 페어리들은 요정의 숲 곳곳에 원시적인 과수원 비스무리한 스팟을 두고 있었는데, 그  하나가 통째로 타버리는 일이 있었다.
하필 창고에서 새어나온 박테리아가 주변 식물들을 감염시켜 퍼져나가고 있었거든.
감염지역을 파악한 뒤 넉넉하게 여유까지 둔 반경을 싹 태웠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나무를 중심으로 한 전염이 비교적 빠르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중국에서 이 박테리아를 개발할 때 외계 식물들을 이용해 대량생산할  있도록 만들었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일단 요정의 숲은 방역이 끝났지만 중국 놈들은 저걸 다 갖고 있을거 아냐?”


얼마나 무서운 질병인지 직접 겪으며 뼈에 새긴 윤기정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한다.
오닉스 헌터즈의 협조에 감사인사도 할 겸 해서 배웅을 나온 특수군 지휘관이  웃었다.
한층  중요도가 높아진 요정의 숲에 새로 주둔하게 된 여단장은 의외로 권위적이지 않았다.

“갖고 있더라도 함부로 쓰진 못할겁니다. 정부에서 세계 보건기구에다 공식보고를 때려버렸거든요. 대놓고 중국 놈들이 만들었다고 하면 외교적 문제가  것 같아서 불명의 테러단체가 제조하고 있었다고 했답니다. 중국 특수군 애들 시신 남은거하고 유류품을 범인들이라고 발표한데다 샘플도 요구받는대로 넉넉하게 보내주고 있다나봐요. 벌써 웬만한 나라에선 다 받아가서 연구에 들어갔다고 하니 반쯤은 무력화됐다고 봐야죠.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사용했다간 자기네가 바로 그 테러집단이라고 자백하는 꼴이 될텐데.”

“그렇겠네요. 하여간 음흉한 놈들. 페어리들 잡아다가 고블린의 산제물로 바칠때부터 알아봤지만 그 놈들은 국익과 도덕 사이의 선이란게 없나봅니다. 요즘같은 시대에 세균병기라니.”

“하루이틀인가. 그 놈들은 적반하장이 패시브니까 되려 우리가 일을 망쳤다고 원한을 품고 있을걸. 우리 오닉스 헌터즈야 하이난섬 게이트나 티벳고원 게이트쪽으론 갈 일이 없으니 상관없지만 유제이 애들은 앞으로 좀 험난해지겠어. 걔들 중국원정 많이 다니잖아.”


“그 놈들 사정이 무슨 상관이랍니까. 확 망해버렸으면 속이 다 시원하겠구만.”

“크흠. 뭐,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경쟁사라도 다 조국을 위해 힘쓰는 기업들 아니겠습니까. 아, 거의 다 온 모양이군요. 저희는 숲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이쯤에서 돌아갈까 합니다.”
 좋게 됐다며 일석이조라고 낄낄대던 탱커 하나가 눈치를 보고 웃음을 멈췄다.
크흠, 헛기침을 한 특수군 여단장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2팀장에게 작별을 고한다.
불편한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유제이 헌터즈와 무슨 인연이 있는  같은데?
뭐, 유제이그룹은 신일그룹보다 훨씬 더 이르게 게이트 및 외계산업에 진출한 기업이니 특수군 출신으로 잔뼈가 굵었을 고위 지휘관과 얽혀있어도 이상할건 없지만.

“최지호 헌터, 이번 일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닉스의 전폭적인 협조와 최지호 헌터의 뛰어난 이능력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희생이 생겼을지 모릅니다. 앞으로도 건승을 기원하며 지구까지 편안한 귀환길 되시길 바랍니다.”


“예, 여단장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말하는걸 보면 무슨 훈장이나 표창장같은거라도  분위기인데?
이렇게 더할나위없이 호의적인 분위기가 조성된건 물론 오닉스 사의 공로도 공로겠지만 시간 되는대로 군인들에게도 천사의 손길을 베푼 내 지분이 상당할 것이다.
뭐, 헌터일을 하려면 특수군 고위장교들과 인맥이 있어서 나쁠게 없겠지.
특수군의 여단장  그의 호위대가 마을로 돌아간  머지않아 우리는 숲을 나왔다.
정글지형을 벗어나  트인 평야지대에 접어드니 속이 다 시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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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로 귀환했는데도 휴가는 주말까지 포함해 무려 일주일이나 더 남아있었다.
사실 원래 이렇게 장기 휴가를 자주 주는 편은 아니지만 일본 정부의 의뢰를 받고 협곡에 원정을 간 우리 3팀이 워낙 고생을 많이 한 덕에 신경을 써준 것이었다.
게다가 나와 윤기정은 공식적으로는 휴식을 취한 것이 아니라 별도의 정찰임무를 맡아 요정의 숲으로 가서 임무를 수행한 것이니 연가도 빠지지 않고 돈도 그대로 나온다!
이제 곧 성과급이 어마어마하게 나올테니 겨우 십수일 어치의 봉급 같은건 크게 신경쓸 일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지.
강 팀장은 임무복귀 신고를 하는 나와 윤기정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아니, 페어리 마을 구경하면서 놀고 온다더니?”


“놀고 오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일이 생겼네요. 하하하. 중공 애들이 숲 안에다가 비트를 파고 세균을 저장해놨을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 전에도 2팀하고 같이 사냥다녔다며? 아주 열혈 헌터 나셨구만. 괴수들한테 원수졌냐?”

“어? 본사로 보고 다 들어갔을텐데. 모르세요?”

“알지. 유적지에서 기연이 있었다며. 하아, 그래도 내가 너희 팀장인데, 그걸 2팀장 거쳐서 알아야겠냐? 확실치 않더라도 일단 말은 해뒀어야지.”


서운한 티를 내면서 면박을 주는 강경호 팀장의 얼굴이 퀭한걸 보니 휴가가 팀원들에게나 휴가지 수뇌부에겐 회사에서 할 일이 아주 많았나보다.
하긴, 우리 팀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원정 몇 번만에 사고를 많이 치기는 했지.
중국 특수군하고 싸우고 일본 특수군하고 싸우고, 새로운 이종족을 발견해 교류의 물꼬를 트고 경쟁국의 마석광산도 발견해 정탐하고 그러다가 미국 중정한테는 뒤통수도 맞고...
아주 영화를 시리즈로 몇 편이나 찍었다.
잔소리를 한참 늘어놓던 강 팀장은 거의 삼십여분이 지나서야 귀가를 허락한다.

“다음주 월요일에 출근하면 돼. 다음주에 정비하고 다다음주에  바로 원정 잡혀있으니까 그렇게 알고. 회사에 인력이 부족해서 헌터들을 아주 바쁘게 굴리려나 보더라.”


“예,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아, 잠깐만.”

“예?”

“우선 기정이 너 어깨 다 회복된거 축하하고... 지호야, 내가 요즘 스트레스때문인지 만성 편두통도 있고 소화도 잘 안 되고 그러거든?”

나는 강 팀장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천사의 손길을 사용했다.
아마 다음주에 다시 출근하면 쿨타임 기다려가며 팀원들 전원에게 한번씩 사용하게 되겠군.
아니, 그 전에 우선 위로 불려가서 사장과 임원들부터 한바퀴 순회해야 할지도 모른다.
귀찮은 일이지만 딱히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상관은 없는데...
혹시 회사에서  헌터가 아니라 질병 치유사로 써먹으려는 수작을 부리면 어떡하지?
싫다는  한 마디면 더 강요할 사람이 없을거라고는 생각하지만 혹시 은근한 권유가 계속될지도 모르니 사장님에게 딱 잘라서 선을 그어놓는게 좋을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마침 최종수 행보관이 커피잔을 들고 들어오다가 날 발견하고 눈인사를 건넨다.
아, 그러고보니 이 아저씨가 서류작업 할게 많기론 강 팀장보다 더한 직책이었지.
원정 때보다 오히려 더 피곤해보이는 그에게 쿨타임이 넉넉하게  돈 천사의 손길을 사용하니 몸이 개운해지는걸 느끼는지 눈을 크게 뜨더니 환하게 웃는다.


“너 그러다 눈에 띄는 사람한테 다 써주겠다 야. 희소가치 몰라 희소가치?”

“아 몰라요 그런거. 원가 생각하면 공짜로 쓰고 다녀도 안 아까운데 뭘.”

우선 집에 가서 부모님한테 쓰고, 가까운 친구놈들도 불러서  한 잔 하면서  돌리고...
친척들 모일 명절은  멀었는데, 제사 때라도 시간을 내볼까?
이런 이능 있다고 광고를 하고 다닐 필요는 없겠지만 말 없이 몰래 쓰면 알게 뭐야.
그냥  컨디션이 갑자기 좋아졌구나, 하겠지.
싱글싱글 웃으면서 본사 건물을 나왔다.
윤기정이 날 집까지 태워다 주겠다며 운전기사를 자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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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텐  사이로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통에 깨어버렸다.
마음껏 잔 것 같지 않아 찌뿌드한 몸을 비틀며 시계를 보니 이른 아침.
어젯밤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느라 좀 늦게 들어왔는데, 몇 시간  잔 것 같다.
눈을 부비면서 세수를 하려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어 스스로에게 천사의 손길을 사용하니 옅게 남아있던 숙취와 함께 피로가 걷히는 상쾌한 기분이다.
크으, 이런 스킬을 소모값 없이 3분에 한번씩 사용할  있다는거지.
아이템에 붙은 스탯같은건 죄다 무시하고 고유기능만 따져가며 선택한 판단이 백번 옳았다.
아직 네 칸이나 남아있는 아이템 창은 또 무슨 아이템으로 채워야할까.
즐겁게 머릿속으로 가상쇼핑을 하면서 침대에서 뒹굴거리는데 핸드폰이 연신 진동한다.

“뭐야, 이른 아침부터. 어? 얘들, 벌써 일어났나? 신기하네.”

나랑 똑같이 마시고 똑같은 시간에 들어간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부지런하지?
대학생이면 진탕 마신 다음날엔 아침강의 제끼고, 뭐 그런게 정석 아니었나?
이번 생엔 대학문턱을 밟아본 일이 없지만 나 전생에 대학 다닐땐 그랬던 것 같은데.


이른 아침부터 단체 채팅방에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나 했더니 어제 갔던 고급 술집에서 얼마나 비싼 술을 마셨는지 안 왔던 놈들에게 자랑질을 하고 있다.
그래도 내가 헌터랍시고 지갑 두둑한 티를 내면서 무리를 끌고 다녔는데,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용돈을 타 쓰는 대학생들이 쉽게 들어가지 못할 가게를 주로 탐방했더랬다.
하여튼  자식들, 심성 배배 꼬인거 봐라.
한 놈은 대놓고 사진을 올려가며 자랑을 하고  놈은 계집애처럼 살살 돌려가며 아닌 척 속을 긁어대는게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아니 무슨 술 한 병 값이 몇백만원씩 하냐? 그거 마트가면 삼십 안쪽으로 사는건데.


-야, 그렇게 사는거랑 바에서 먹는거랑 같냐.


-아무튼 어제 진짜 장난 아니었지. 지호랑 현수랑 경쟁 붙어가지고, 중간에 낀 우리만 제대로 호강했지. 우리 지호 휴가 많이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외계 나가가지고 돈 쓸데도 없을텐데 휴가나와서 우리한테 다 쓰고 가야지.


지나간 채팅을 쭉 읽다가 이 대목에서 잠깐 멈췄다.
괴수 잡으며 생고생해서 번 돈 우리한테  쓰라는 아름다운 인성은 둘째치고 나와 현수가 경쟁이 붙었다는 말에 어제의 유치한 돈지랄을 상기해버린 것이다.
음, 역시 술이 좀 과했던게 문제였어.
중간중간에 천사의 손길을 사용하면서 취기를 없앴어야 했는데.
현수 그 금수저 놈하고 굳이 돈으로 자존심 세울만큼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데, 술이 들어간 김에 호기를 부리다보니 피차 열이 올라서 일이 그렇게 되었다.
얻어먹으러 나온 놈들만  받았지 뭐.
현수 그 놈, 용돈으로 해결 안 돼서 신용카드 긁었던 것 같은데 괜스레 미안하네.


“그러고보니 현수녀석 아버지가 임원으로 있다는 회사가 유제이 계열사랬지?”


음, 이제 좀 마음에 안 들어할 명분 하나가 생긴 것 같군.
화장품 파는 회사랬으니까 이쪽 업계하고는 하나도 관련이 없지만 거기서 벌어들인 돈이  유제이 헌터즈에 투자될거 아냐.
혀를 쯧쯧 차던 나는 문득 웃음이 터져나와  웃고 말았다.
입사한지 뭐 얼마나 됐다고 경쟁사 이름만 듣고 껄끄러워 하는지 원.

-오늘도 나와라. 어제보다 더 좋은걸로 배터지게 먹여주마.


-뭐야? 진짜? 와, 지호 저 새끼 헌터회사 들어가더니 금전감각을 잃었나?

-이번에 받을 성과급만 십억대 돈인데 니들 먹는다고 빠진 티나 나겠냐. 한강에서  한바가지 퍼내는거지.


-패기보소. 아니, 근데 보통 저렇게 들어가자마자  쓸어담나?

유치하면  어때, 이런 재미 보려고 돈 버는거지.
호기롭게 채팅에 참여해 어제 못 다한 자랑을 마저 해대면서 낄낄 웃었다.
슬슬 준비해서 낮엔 약속한 문병 다녀오고, 저녁엔 다시 이 놈들 불러모아 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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