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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화 〉1부 (63/110)



〈 63화 〉1부

무사히 페어리 마을로 복귀한 2팀은 우리가 찾아낸 창고의 위치와 구조를 보고하고 아마 이곳에서 활동하던 중국군의 현지 보급고같다는 추측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줌 정도 담아간 샘플은 마을 외곽에 있는 연구소에 넘겼는데, 보고를 받은 특수군 지휘관이 현장 확보를 위해 출동시킬 병력을 차출하는 짧은 시간동안 연구소에서 샘플의 분석을 마치고 소장이 직접 달려와 당장 접촉자를 격리하라고 소리를 질러댔다고 한다.
알고 보니 창고에 가득하던  하얀 가루는 밀가루가 아니라 세균덩어리였단다.
그것도 보통 균이 아니라 외계 박테리아.
건조된 상태에서는 동면하지만 습기에 닿으면 활성화되는 구조라고 하는데, 연구원들 중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종이라서 연구가  필요하다고.


“가장 무서운건 이 세균들이 저마다 미세한 방어막을 갖고 있다는거지.”

“예? 방어막이요? 세균이?”

“연구소장이 당장 지구로 돌아가 제대로 된 시설에서 연구를 하고 싶다고 날뛰더라. 기존의 학설과는 모순되는 상황이라던데. 일정 세포  이상의 생물체만 방어막을 형성할 수 있다는게 정설이었는데 활성화된 박테리아 중 20퍼센트 가량이 방어막을 갖고 있대.”

그건 듣기만 해도 보통 끔찍한 일이 아니다.
백혈구나 기타 인간의 면역체계로 공격해봐야 세포단위로 방어막을 갖고 있으면 뭘 어쩌겠어.
대체 이런 끔찍한 세균이 어디서 튀어나온거지?
아, 그렇지. 누가 만들었는지는 뻔하지 뭐.

“그런데 원래 세균에 감염된다고 이렇게 증상이 바로바로 나오나요? 이건 뭐, 즉효성이 거의 화학무기 수준인데. 그리고 묘하게  뜨는 느낌이 들던게 마치 마약같기도 하고. 아, 제가 마약을 해봤다는 소리가 아니라 그냥 흔히들 말하는 증상이랑 비슷하던데요.”


“그러니까 특이하다고 난리지. 신경계를 말단부터 교란시켜서 우선 감각이 뒤틀리고 운동능력이 둔해지다가 마지막엔 중추신경을 공격받아 숨이 멎는 구조라더라. 아, 뭐 죽은 사람이 나온게 아니니까 확실한건 아니지만 아마도 그럴거래. 자세한건 제대로 된 장비를 가지고 분석을 해봐야 아는데, 그렇다고 이런 위험한걸 지구로 가져가긴 좀 그렇잖냐.”


“그러고보니 이거 완전 바이오해저드 상황인데...”

“저 사람들 방역복 입고 다니는거 안 보이냐. 휴우, 지금 이 숲에 있는 사람들은 지구로 복귀하는 일정이 전부 중단됐어. 페어리들은 뭐, 만약 유출돼도 별 문제 없을거라더라.”

“예?”

“일정 확률로 나오는 방어막을 가진 균이 아니면 박테리아 자체의 위협은 신경쓸만한 레벨이 아니라는거지. 말단 신경계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다 죽을거래. 그러니까 지구에서 온 사람들은 몸을 사려야 되는데, 현지 종족들은 걸려도 피부 좀 근질근질하다가 마는거지. 페어리들에게 문의한 바로는 비슷한 증상의 풍토병이 있대. 아마  박테리아를 가져다가 뭔가 조작을 해서 방어막을 씌워 위험도를 높인 모양이라더라.”

감염된 사람은 나와 윤기정 둘.
다행히도 사람 사이의 전염력은 높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거의 없다시피 한 모양이다.
그러니 생물병기라기보다는 그냥 화학병기 레벨의 사용 편의성까지 갖췄다는 뜻이지.
그럴거면 차라리 독가스를 쓰는게 낫지 않을까 싶지만 생각해보니 외계 세균 쪽이 발달된 의료기술로 이것저것 대처법과 치료법이 있는 화학무기에 비해 더욱 치명적이긴 하네.

“그러니까 멋모르고 아무거나 주워먹고 그러지 말았어야지. 죽다 살아났으니 교훈을 얻게.”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데요.
그들은 내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이능을 발현하여 병을 이겨낸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나와 달리 소량을 흡입하여 상대적으로 증상이 약했던 윤기정은 구조대가 급파될때까지 의식을 잃지 않았는데, 이송된 후 신체강화 이능을 발현하면 균의 번식과 활동이 급격히 위축된다는 것을 발견하여 상대적으로 상태가 양호하다고 한다.


“그럼 완치까진 얼마나 걸린대요?”


“그게, 완치라는게 쉽지가 않나봐. 아무리 이능 지속력이 좋은 탱커라고 해도 영원히 이능을 발현한채로 지낼수는 없는거 아니겠냐. 지금도 한 시간에 십분씩 쉬면서 최대한 오래 버티려고 하고는 있는데, 그 쉬는 시간동안 세균이 다시 불어나서 상태가 악화되었다가 발현하면 위축되어 좋아지고, 계속 그렇게 반복하고 있어. 기정이가 체력 하나는 알아주는 놈이라서 거뜬하게 버티고는 있는데, 휴우. 연구소에서 빨리 무슨 방도가 나와야지.”


뭐야, 그게.
그럼 치료의 기약도 없이 그냥 생으로 버티고만 있다는 이야기잖아.
팀장의 어두운 얼굴이 단순히 바이오해저드 사태에 대한 걱정 때문인줄 알았더니 윤기정이 죽을 날을 받아놓고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너도 좀 더 누워서 쉬어. 나흘이나 앓았으니  상태가 말이 아닐거야.”


“나흘이요?”

어쩐지, 아무리 요정의  현지연구소로 파견나온 연구진들이 유능하다고 한들 잠깐 자고 일어났다기엔 짧은 시간동안 너무 많은걸 알아냈다 싶었지.
그럼 윤기정은 제대로 쉬지도 자지도 못하고 나흘 넘도록 이능을 발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참 대단한 지속력과 강인함이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탈진하겠지.
시간이 없다.
병실로 쓰는 컨테이너로 돌아오던 나는 잠시의 고민도 없이 에테르 폼을 활성화한 후 북쪽으로 최대거리의 에테르 쉬프트를 전개했다.
페어리 마을에 주둔하는 특수군 부대는 비상이 걸려서 미친 듯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야 숲 개간을 잠시 멈추더라도 세균이 저장된 창고를 수색하는게 우선이겠지.
본국으로도 연락이 갔을텐데 지원인력 파견은 어떻게 되고 있는건지 모르겠네.
마을 밖으로 나와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유적지로 가는 길은 다행히 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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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을 철저하게 유지하기 위해 길을 넓게 닦아놓지 않은게 지금으로선 아주 불만이다.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길을 냈으면 차나 바이크를 타고 더 빠르게 달렸을텐데.
체력이 닿는대로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며 에테르 쉬프트를 쿨다운이 돌때마다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동속도는  빨랐지만 그래봐야 기계의 속도만 할리 없다.
그렇다고 차를 빌려올 수도 없었지.
험지주파 능력이 탁월한 차량이더라도 이런 숲을 통과하는 속도는 사람의 행군속도보다 빠르다고 장담하기 어려울테니까.


“후우, 부디 충분한 골드가 모여있기를. 한시가 급한데 사냥하러 나갈 시간은 없다고.”


쉬지 않고 달려 유적지에 다다른 나는 은신상태로 유적 안으로 숨어들며 중얼거렸다.


제단이 있는 방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곧바로 제단 위에 손을 올린 나는 잔여골드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4500골드가 조금 넘는 액수가 찍혀있었던 것이다.
남은 재료 아이템과 조합비를 다 합해서 4000골드니까 충분히 구매하고도 남는다.
남은 돈으로는 체력 재생력을 올려주는 일차 재료아이템을 하나 샀다.
딱히 어떤 최종아이템을 바라보고 계획적으로 구매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공격력이나 주문력 등을 신경쓸 일은 없을테니 방어나 유틸리티 계열의 아이템으로 조합할 수 있는 재료  가장 범용성있고 쓰임새가 많았기에 선택한 것이다.
지금은 일단 돌아가서 윤기정을 치료하는게 중요하니까.
다음 아이템을 뭘로 결정할지는 사태가 마무리된 후 천천히 고민해봐도 늦지 않겠지.

“가만있자. 액티브 아이템을 산건 처음인데, 이것도 스킬을 쓰는 요령과 같을까?”


명확한 사거리가 스펙으로 쓰여있지는 않지만 인게임에서 3분의 쿨타임을 가진 아이템 액티브 효과 ‘천사의 손길’은 꽤나 사정거리가 길었던걸로 기억하는데.
힐러 및 지원 캐릭터의 인기가 없고 서포터도 딜러 아니면 누커가 하던 당시의 메타와  맞지 않아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아이템이었으니 기억이 확실치 않은 것도 어쩔 수 없다.
우선 내게 천사의 손길을 사용해 보려고 마음을 먹으니  끝으로 청량한 기운이 몰려든다.
이 기운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확실치 않았다.
적어도 내 몸 안에서 나오는건 분명한데, 근원이 명치 쪽인지 배인지 느낌이 애매한걸.
손 끝에 뭉쳤던 기운이 한순간 내 전신을 머리부터 발 끝까지 한차례 씻어내고 사라진다.


“허어...”

나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내지를만한 신비로운 감각이었다.
상태이상 해제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대상의 몸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린다는 뜻이다.
게임에선 기절이나 수면, 둔화, 저주, 중독 등의 각종 군중제어기와 디버프를 풀어주는 것뿐이지만 지금  몸에 일어난 현상은 단순히 그런 차원의 효과가 아니었다.
젊은 사람이라도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몸의 미묘한 부조화가 짜맞춰지는 기분.
마치 온 몸의 염증이 모조리 사라진듯한 가벼운 느낌이었다.


“내심 걱정했는데, 이거면 되겠네.”


그리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총상 때문에 찢어진 인대고 외계 박테리아에 당한 질병이고, 이거 한 방이면  끝이다.
어쩌면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의 눈을 띄워줄  있을지도 몰라.
단순히 외상을 아물게 하고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힐러들의 힐보다 훨씬  고등한 차원의, 말하자면 기적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능력이다.
그런 기적을 3분마다  번씩, 어떤 자원 소모값도 없이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능력은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사이비 종교를 만들고 이능력이 아니라 신이 내린 은총이라고 주장해도 믿을 사람이 있을걸?

유적지를 나와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는 내내 들뜬 마음과 걱정스러운 마음이 교차했다.
내가 지금 기적의 치유능력을 얻어서 가는 중이니까  목숨줄만 붙들고 있어라.
죽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회복시킬 수 있을  같으니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쉴새없이 땅을 박찬다.
최대 거리로 쉬프트, 자연스럽게 연결동작을 이어 달리면서 에테르 블레이드를 뻗어 거슬리는 나무를 베어내다가 다섯 번째 칼을 날리기 전에 다시 쉬프트.
체력 재생 옵션이 붙은 아이템을 하나 구매해서 그런가,  때에 비해 별로 지치지도 않았다.
에테르 폼에 붙어있는 이동속도 상승 옵션도 알차게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달리다 걷다 하기를 얼마쯤, 예상보다도 더 빠르게 페어리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 외곽에 있는 특수군 주둔지를 지나 반대편의 오닉스 헌터즈 주둔지까지는 불과 한 호흡.

“최지호 헌터? 대체 어디로 사라졌던겁니까? 이제라도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위에다 보고를 해서 곤란하게 될뻔 했어요.”

“기정이형은 어디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까?”

“예? 아, 그러고보니 아까 윤기정 헌터에 대해 설명을 안 했던가요. 의료진 말에 의하면 이능을 활성화하면 증상이 잦아들어서 면역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어디 있냐구요.”


“따라오세요. 안내해 드릴게요. 휴우,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능발현을 멈추면 신경손상 때문에 마비가 진행된다고 해서 쉬지도 못 하고.”

한탄을 할 기운이 있으면 동작이나 좀 빨리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아직 무사하다니 다행이다.
그래, 나흘을 견뎠는데 유적지에 다녀오는 반나절만에 잘못되었을 리가 없지.
가슴을 가라앉힌 나는 속이 터질만큼 느긋한 동작으로 노크를 하고 병실로 들어가는 이름모를 2팀의 헌터를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
퀭한 눈으로 수액을 맞으며 앉아있던 윤기정이 고개를 들어 날 발견하더니 반색한다.

“일어났다는 소리는 들었다. 북부 유적에 다녀온거지? 어때, 부족하진 않았어?”


“충분했어요. 이제 고생  끝났습니다. 안심하세요.”


 끝에 모인 청량한 기운이 뻗어나가 탈진 직전에 있는 윤기정의 쇠약한 육체를 감싼다.
음, 저 기분은 나도 겪어봤으니 알긴 아는데...
덩치크고 시커먼 남자가 저런 표정을 짓는건 역시 보기가  껄끄럽네.
나도 저랬었나?
앞으로 주기적으로 스스로에게 천사의 손길을 사용해서 건강을 관리할 생각이었는데, 내게 쓰는건 반드시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만 해야겠다.


“이,이건 대체... 최지호 씨가 힐러였나요? 아니지, 분명히 치유이능으로도 어떻게  되는걸 확인했는데. 자,잠깐만 기다려요.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알았죠?”


날 안내해준 헌터가 경악해서 뛰쳐나가는 소란과 점점 편안해져가는 윤기정의 숨소리를 배경으로 나는 이번 사태의 원흉에 대해 생각했다.
음, 그야 물론 일단 일차적인 책임은 내게 있지.
2팀장의 말마따나 그게 뭔줄 알고서 함부로 포대를 찢어 가루를 흩날렸단 말인가.
분명히 내 실수는 내 실순데...
하지만 역시 근본적인 원인이라면 외계의 박테리아를 연구해서 생물병기화하고 우리의 영역 안에다가 몰래 숨겨다놓은 놈들에게 있는게 명백하잖아.
안 그래도 처음 요정의 숲으로 원정을 나왔을 때 우리 팀을 습격했던 일로 내 마음 속의 은원장부에다 이름을 올린 놈들인데, 채무가 갈수록 무거워지는 것 같다.
이대로는 억울해서 얌전히 복귀 못 하지.
숲거미들이 창고를 습격해서 사람을 잡아먹은 시점을 감안하면 아직도 요정의 숲에 잔당이 남아있을 확률이 높다는건데, 소탕작전에 참가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것 같은 기분이다.


아까 뛰어나간 헌터가 호들갑을 떨어댔는지 문 밖으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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