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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화 〉1부 (60/110)



〈 60화 〉1부

사냥은 순조로웠다.
사심을 제하고 보면 2팀원들의 실력은 결코 3팀에 못지 않았다.
하긴, 오닉스 헌터즈는 근본부터가 신일그룹에서 작정하고 돈을 들여 노련하고 경험많은 현직 헌터들을 스카웃해서 꾸린 회사이니 어느 팀이든 기본 이상은 하겠지.
장갑차의 적재함은 벌써 절반 이상 차올랐는데, 그 중 상당부분이 마석이었다.
아무리 마석 값이 앞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고 해도 역시 부산물 중 부피 대비 값어치로는 마석만한게 없는데, 아마 가격이 십퍼센트 이하가 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거 기정이  말을 듣기를 잘했구나. 벌써 적재함이 절반 넘게 찼어. 심지어 부피에 비해 값이 헐한 부위는 버리고 마석과 비싼 부산물만 챙겼는데도 말이야.”

“형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 지호 대단하다고 몇 번이나 그랬죠?”


내가 2팀의 전력에 감탄한 것 이상으로 2팀장과 팀원들은 내게 감탄한 것처럼 보였다.
특히  사냥때가 백미였지.
코끼리만한 크기의 괴수였는데, 에테르 블레이드로 한 칼을 먹이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윤기정이 내 옆에서 대구경 총으로 머리를 쏘아 쓰러트린 것이다.
일격에 방어막을 전부 상쇄할 수 있다고 듣긴 들었지만 다 믿지는 못하던 2팀장은 총알을 낭비한다고 불호령을 내리려다가 괴수가 풀썩 쓰러지는걸 보고 입을  벌렸더랬다.


“우진이가 괜히 그런 말을 한게 아니구만. 확실히 공격조는 할 일이 없겠어. 하하하.”

“강 팀장님이 절 이 녀석만 마크하는 전담호위로 붙였거든요? 근데 사냥하다보면 위기상황이라고 할만한게 오질 않더라구요.”


“위기가 안 오면  어깨는? 뭐 넘어져서 다쳤냐?”

“에이, 괴수 잡는거랑 사람이랑 싸우는게 어디 같나요. 멀리서부터  쏴대면서 습격을 하는데 그럼 어쩝니까. 팔 한 쪽 내주고 이긴것도 싸게 먹힌거라니까요?”

첫 쇼크 이후로 단일 개체 상대의 사냥에선 아예 진형도 잡지 않으며 속도를 냈다.
에테르 블레이드가 가르고 지나가면 이어지는 정교한 총격 서너발이면 못 잡을게 없었다.
사정거리가 길다는  외에는 어떤 측면에서도 날 능가하지 못하는 다른 원거리 공격조원들은 그저 길을 트고 경계를 하면서 감탄하기 바빴지.


물론 그들이 활약할 기회도 없었던건 아니다.
효율적인 사냥을 위해 따로 떨어진 괴수를 노리는 것이 정석이지만 이만한 무리를 짓고 이동하다보면 다대다 전투를 안 치를수는 없으니까.
두 번의 전투 중  번은 겨우 십여마리의 중형 괴수였지만 나머지 한 번은 중형 괴수가 무려 오십여마리나 되어서 자칫 실더들의 방어진이 뚫렸다면 위기가 올 뻔 했다.
그 때 따로 지시가 없더라도 절묘하게 알아서 타겟을 분배하고 위협적인 위치에 있는 놈부터 최대한 빠르고 효율적으로 방어막을 벗겨내는 공격조의 솜씨가 아주 일품이었지.
노련한 탱커들의 안정적인 방어 이상으로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그야 그 때도 3초에 하나씩 날아가는 에테르 블레이드가 가장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킬의 위력이 압도적으로 강해서 그런거지 내 기량이라고 하긴 애매했거든.
당장 빗맞춰서 숨통을  끊고 오히려 상처입고 날뛰게  것도 꽤 되고.


“자, 다음 목표는 어디냐.”

이렇게 수월하게 사냥하는게 처음이라 기분이 들뜨는지 2팀장이 밝은 목소리로 합금으로 된 차체를 탕탕 치며 물어보니 안에서 전자지도를 조작하던 사람의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품에서 비닐로 방수처리한 지도를 꺼내 펼쳐보았다.


“여기가 알파 3구역이고... 가장 가까운 포인트는 델타 15번구역 쪽입니다. 개척은 됐는데 사냥터로는 안 쓰던 곳이라서 괴수들이 많이 남아있을겁니다.”


가만있자... 여기서 1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구역이구만.
중간에 작은 호수 하나가 있으니 돌아간다고 쳐도 이동시간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다.
옆에서 어깨너머로 지도를 들여다보던 윤기정이 고개를 갸웃하고 묻는다.

“응? 더 먼 곳도 개척해서 정기적으로 돌면서 사냥을 하는데, 왜 거기만 남겨둔거죠?”
“델타 15번이면 아마 늪지대일거야. 차량기동이 까다로워서 잘 안 가는 곳이지만 우린 늪지대 안쪽으로 들어갈게 아니라 주변만 돌면서 청소할거니까 상관없어. 어차피 적재함도 절반 넘게 차서 싹 쓸어담아봐야 부산물 다 가져가지도 못해. 자, 그리로 가자고.”

부산물을 막 챙겨넣고 적재함을 닫은 탱커 하나가 차 앞쪽에 훌쩍 뛰어올라 앉는다.
안쪽에서 시야 가린다며 비키라고 소리치는 운전수의 타박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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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닉스 2팀이 내부 기준으로 분류한 델타 15번 구역은 2팀장의 기억대로 늪지대였다.
서식지 지도는 완성이 된 곳이지만 경계를 늦추기는 곤란한 지역.
자칫 길을 잘못 들어 차가 늪에 빠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값비싼 장비를 포기하고 몸만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을테니 운전수와 정찰조의 신경은 잔뜩 곤두서 있었다.
계획은 늪지대에 진입하지 않고 외곽만 돌며 도마뱀처럼 생긴 소형괴수들을 몰아서 잡는 것.

“이름은 리저드라고 붙였지. 아, 리저드가 영어로 도마뱀이라는 뜻 맞지?”


“아니, 너무 성의없이 붙인거 아닙니까? 왜, 그럴거면 그냥 우리말로 도마뱀이라고 하지.”


“그럼 진짜 도마뱀이랑 헷갈리잖아. 여긴 괴수들만 있는게 아니라 공격성이 높지 않은 야생동물들도 꽤 많이 서식하는 지역이니까. 봐라. 진짜 도마뱀도 있잖냐.”


“어? 그러네. 날벌레도 좀 날아다니는  같고... 혹시 외계 바이러스같은걸 옮기진 않겠죠?”
“모르지. 혹시 모르니까 기피제 발라라. 저 놈들도 냄새는 맡는 모양이더라. 그러고보면 방어막이라는게 참 신기해. 뭘 기준으로 통과시키고 말고가 정해지는지 모르겠다니까.”


사람이 지나가는걸 보자마자 후다닥 달아나는 도마뱀을 보고 2팀장이 껄껄 웃었다.
얼핏 봐도 지구의 도마뱀과는 외형이 상당히 달랐지만 도마뱀 말고는 또 마땅히 부를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을만한 생김새의 파충류 짐승이었다.
그걸 보니 리저드라고 이름붙였다는 괴수는 또 어떻게 생긴 놈일지 기대감이 든다.
그때, 차체 위로 몸을 내밀고 잡담을 하던 2팀장이 얼굴을 굳히고 바깥으로 나와 뛰어내렸다.

“하차! 방어대형으로!”

나는 그제야 앞서가던 정찰조가 정지신호를 보내더니 이쪽으로 달음질쳐 오는 것을 발견했다.
보통은 우리가 도달할때까지 기다리는데 저건 선공을 받았을때의 대처다.
익숙한 구령과 함께 순식간에 탱커조의 방어진이 갖춰진다.
최소한의 긴장감은 있지만 그래도 여유있는 반응이다.

“리저드 성체,  삼십여마리. 거리는 오십미터 정도입니다. 이쪽을 발견했어요.”

“오케이. 뒤로 가서 공격조장 지시 받아라.”


“바리케이드 세울까요?”


“그럴 시간 없을 것 같은데.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이윽고 내 눈에도  멀리서 기성을 지르며 나무 사이를 헤치고 달려오는 괴수가 보인다.
두 발로 걷는데다 몸에는 비늘같은게 붙어있고, 늪 안에 사는지 얼굴인지 목덜미인지 애매한 부분에는 아가미로 보이는 기관도 보이는게,  괴상하게 생겼다.
내 눈에는 별로 도마뱀하고는 안 닮은 것처럼 보이는데.
윤기정이 왼 손에 든 방패로 내 몸을 가리면서도 시야를 방해하지 않는 각도로 붙어선다.


“사거리 되는 사수부터 자유사격!”

거리가 얼마나 좁혀졌을까, 화려한 공격이능이 하늘을 수놓았다.
리자드들은 움찔하고 돌격하는 기세가 좀 무뎌지긴 했지만 등돌려 도망갈 생각은 없어보인다.
선두에 있던 놈의 방어막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상쇄되고 피니셔의 사격이 뒤를 이었다.
우리 팀의 한수호처럼 솜씨가 깔끔하지는  해서 첫 발에 머리나 심장을 꿰뚫어 끝내지 못하고 세 발이나 연달아 쏘고 나서야 숨통을 끊었지만, 그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선두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무너져 내리는걸 보면 역시 공격조원들의 숙련도가 상당하다.
말하자면  분배가 효율적으로 잘 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이런 점에서는 우리 3팀보다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마침내 내 사정거리, 15미터 안쪽으로 발을 들이는 놈들이 생긴다.
곧바로 쏘아보낸 칼날이 방어막을 마치 없는  지나서 목을 훑고 가니 머리 하나가 허공에 둥실 떠오르고 잘린 경동맥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나온다.
달리던 기세가 있어서 세 걸음정도 더 달려오던 몸뚱이는 허우적대며 무너졌다.
몸뚱이가 무너지고 한 호흡이 지나자마자 다시 에테르 블레이드가 날아가 옆에서 달려오다가 당황해서 발이 꼬인 다른 녀석의 머리도 똑같이 날린다.


“충돌!”

“얘들 공격력은 별 거 없다. 틈새로 새지만 않게 막으면 돼.”

겨우 15미터를 달려오는데 걸린 시간은 수 초 남짓이라서 두 놈을 잡기도 빠듯하다.
두 번째 검격 후  번째를 날리기 전에 선두가 우리 방어진과 충돌했다.
방어진에 합류하지 않고 내 옆에서 상황만 살피던 윤기정이 약간 당황해서 외쳤다.


“어? 뭐야? 지금 몰려온 놈들이 끝이 아닌데?”

“젠장. 방어진 유지한채로 뒤로 조금씩 물러나. 차를 바리케이드로 써서 각을 좁혀야겠어.”

오십여 마리의 리저드 무리 뒤로 다시 백여마리는 족히 될법한 무리가 바글거리며 쏟아져나오는데, 그걸 발견한 2팀장이 혀를 차면서 지시를 번복한다.
방어진이 뚫리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전부 잡아낼 수 있겠지만 탱커들이 지쳐서 실수가 나오면 사상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뒤에서 혹시나 실수로 우리 탱커를 베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면서 약간 뒤쪽의 리저드들을 베어넘기던 나는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하면, 그냥 흡족해하고 있었다.
사냥감이 저렇게 많아!
천사의 단지를 구입할 액수가 모이는 것은 물론이고 잘하면 최종 완성아이템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차 아이템 한두개 정도는 더 살 수도 있을  같다.

“으억! 도,도와줘!”


“팀장님! 진수가! 야, 뭐해? 빨리 이 놈 뒤로 빼고 자리 메워!”

“힐러! 힐러 어딨어! 빨리 와. 야 인마! 자리 비켜줘야지!”

기대감에 부풀어 밝은 얼굴로 연신 에테르 블레이드를 날리는 내 귀에 비명소리가 들어온다.
깜짝 놀라서 살피니 전방의 실더 중 하나가 무슨 실수가 있었는지 방패를 놓치고 허벅지에서 피를 철철 쏟으며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부상자가 빠진 자리를 양 옆에서 메웠지만 아무래도 간격이 벌어져 부담이 가중되는  같다.
힐러가 재빨리 다가가 상처에다 이능력을 쏟아붓는다.
적이 한순간에 세 배로 늘어난 돌발상황에도 약간의 짜증만을 비추던 2팀장의 얼굴에 그제야 다급함이 어린다.
다행히 다들 노련한 헌터라서 혼란이 급속도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

“왜? 무슨 일이야?”


그리고 그 때, 나는 공교롭게도 딱 타이밍을 맞춰 레벨업했다.
하루를 꼬박 숲에서 돌아다니며 사냥하느라 쌓인 피로가 걷히고 체력이 회복되는 이 느낌은 벌써 다섯 번째라서 금세 자각할 수 있었다.
동시에 원래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뇌리에 새겨지는 새로운 스킬의 트리거.
마침 시험해볼만한 허수아비는 저 앞에 백마리도 넘게 있었다.
가만있자, 위력을 극대화하려면 스킬 활용순서가  꼬이는게 중요하다.


“형, 저 앞에 잠깐 나갔다 들어올게요. 싹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뭐? 야, 잠깐만...”


나는 윤기정에게 한 마디를 남긴 후 더 듣지 않고 리자드 무리의 중심으로 쉬프트했다.
허공에 갑자기 생겨난 내게 앞으로 달리던 리자드 한 마리가 부딪힌다.
에테르 블레이드가 놈의 몸을 절반으로 가르고, 옆에서 뒤늦게 휘두른 발톱 혹은 손톱은 에테르 쉬프트의 방어막만 긁으며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가로막혔다.
3초가 지나 방어막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내 위치를 기준으로 에테르 필드를 전개했다.
회색의 빛무리가 번져서 반경 30미터의 원형 공간을 채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에테르 블레이드가 단숨에 열 번,  번, 아니 천 번 이상 발현되며 공간을 뒤덮었다.
어... 원래 이게 이런 스킬이 아닌데, 이렇게 되네?
모션 딜레이가 전혀 없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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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검사의 최종스킬인 에테르 필드는 일종의 장판형 버프 스킬이었다.
사용 즉시 모든 일반 스킬의 쿨다운 타임을 초기화하고 6초동안 지정된 곳에 반경 30미터의 구역을 지정하여 그 안에서 이동속도 증가와 에테르 블레이드의 쿨타임 미적용이었나.
물론 모션딜레이가 있으므로 쿨타임을 제로로 만든다고 해도 무한하게 난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6초동안 최대로 사용해봐야 열 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방금 내 운용도 게임 상에서 환영검사가 궁극기를 활용하는 정석 그 자체였다.
에테르 쉬프트로 선진입해서 에테르 필드를 깔고, 이동속도 버프를 기반으로 빠르게 회피기동하여 미묘한 거리를 유지하고 적들의 스킬을 흘리면서 딜을 넣다가 6초가 지나 장판이 끝나면 다시 쿨타임이 초기화된 에테르 쉬프트로 빠져나오는 방식.
언뜻 봐도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고난도 전투방식이지만 그냥 Q 버튼을 꾹 누른채로 무빙에만 집중하면 되니 의외로 파일럿의 역량을 뽑아내기 좋은 스킬이었다.
이건 인게임에서의 이야기.
그리고 현실에 펼쳐진 에테르 필드의 위력이 어땠는가 하면, 그야말로 경천동지였다.


“우욱... 젠장. 내가 비위가 약한 편은 아닌데...”


게임에선 너무 짧게 느껴진 6초는 넉넉하다못해 지루할 정도로  시간이었다.
아니, 6초는커녕 그 절반도 필요 없었을 것 같은데.
생각만으로 발동되는 에테르 블레이드는 한순간에 셀 수도 없이 많은 횟수로 발현되어 공간 전체를 썰기보다는 뭉개는 것에 가깝게 지워버렸다.
작은 큐빅보다도 더 가늘고 잘게 썰린 리자드들의 조각이 후두둑 떨어져내린다.
공간적 한계로 백마리가 넘는 리자드들을 모조리 죽인건 아니었지만, 이 광경을 보고도 멀쩡하게 기세를 올리며 달려들만큼 용감한 놈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패닉에 빠져 완전히 정신을 놓고 꿈틀거리는 놈이 몇 놈, 뒤돌아 도망치는 놈이 또 몇 놈.
겸연쩍게 돌아서니 방어진을 좁히고 악전고투하던 2팀 탱커들의 아연한 시선이 나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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