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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1부 (58/110)



〈 58화 〉1부


아직 아티팩트에 대한 이야기는 기밀이었지만 페어리와의 교류는 널리 알려진 소식이다.
고블린들의 기술을 빼내고 멸종 수준의 피해를 입힌 중국의 만행을 증거와 함께 공표하고 규탄할 때 피해자 중의 하나로 페어리 종족까지 끌어들였던 탓이다.
물론 당장 전쟁이라도 할 기세로 비난하던 당시의 기세와 달리 겨우 얼마나 됐다고 금세 목소리가 잦아들었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자그마치 그 중국인데,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로 찍어 다음 선거를 망치고 싶지 않은 이상에야 건수를 잡아 물어뜯더라도 심기를 살펴가며 선을 지킬 수밖에 없다.
 넓은 땅덩이에 게이트는 딱 두 개밖에  열려 전만 못하다고는 하지만 그 압도적인 인구수의 시장이 어디 가는건 아니니까.

“그래서 이렇게 외국인들이 많이 보이는거야. 일단 통제를 한다고는 해도 완전히 틀어막을수는 없으니까 차라리 허가를 내주면서 이익을 챙기는게 낫다는거지.”

“아티팩트 문제는요? 아무래도 많이 돌아다니다보면 기밀이 샐텐데.”

“그건 걱정 없어. 페어리 왕이 명령을 내려서 장인들을 모아 북부 유적 부근에 조성한 아티팩트 생산기지로 이주를 시켰거든. 알고 보니까 페어리들이라고 아무나 만들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던 모양이더라. 불만이 좀 생길 수 있으니까 물자 공급을 더 풍족하게 했지.”


“그렇군요. 아, 마침 저희도 그 북부 유적지로 가는 길입니다.”

“오, 그래? 혹시 무슨 감찰임무같은거라도 갖고 왔냐? 안 그래도 사흘 전에 군인 아저씨들 한바탕 난리를 치더라. 상급기관에서 감찰이 왔다고. 기무사에서도 눈 부릅뜨고 있대.”

“형님, 저 기정입니다. 윗분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저한테 그런걸 맡기겠어요?”


“하핫, 그건 그래. 경호 형이 결사반대하겠지. 우리 애는 멍청해서 그런거 못 한다고. 큭큭.”


음, 그건  슬픈 자학으로 들리는데.
상대가 맞장구를 치니까 웃으면서도 눈가에 살짝 짜증이 어리는  같기도 하고?

윤기정이 평소 안면이 있던 오닉스 2팀의 팀장과 잡담을 하는동안 나는 간단히 자기소개만 한 뒤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한발짝 물러서서 숙소 건물을 둘러보았다.
페어리들의 거주지역과는 약간 유리된 곳에 철근 콘크리트로 제대로 지은 건물이었다.
층수는 5층, 객관적으로는 고층이 아니지만 외딴 곳에 불쑥 솟아있으니 무척 높아보인다.
주변에는 철조망과 콘크리트 블록으로 간단한 경계선이 둘러져 있었다.
여긴 오닉스 헌터즈에 불하된, 말하자면 우리 영역이라는거지.
마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면서 따로 자체적인 설비를 짓기도 편한 요충지다.
페어리 마을도 일대 변혁을 겪는 중이었다.
오면서  바로는 원시적인 움집을 짓고 살던 페어리들에게 아파트라도 지어주려는건지 마을 내 여기저기서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석기시대 수준의 원시적인 생활을 하고 있던 페어리들이 갑자기 현대 문물의 세례를 받게 되었으니 정신적인 충격이 어마어마하겠지.
보안 유지를 위해 물자 공급을 늘리니 어쩌니 해봐야 뭐 얼마나 되겠어.
대여섯개 정도 되는 산하의 부락을 전부 합쳐도 도시는커녕 면이나 읍 수준을 간신히 벗어나는 규모의  작은 왕국에서 소비할 수 있는 양이란게 뻔하지.
달라는대로 다 퍼주더라도 사업지출액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을게 뻔하다.

숙소 안으로 두 사람을 안내하며 잡담을 하던 2팀장이 문득 나를 보면서 묻는다.
그는 의외로 내겐 별다른 관심이 없어보였다.


“우리 S급 헌터께선 어떤 요리를 좋아하시나? 시중에 나온 레토르트 제품은 웬만한건 다 있는데.”


“예? 어... 그냥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먹을 수 있을  든든하게 먹어야지. 정글을 헤매고 다니다보면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 할텐데. 기정이 저 놈이야 워낙 튼튼해서 괜찮지만 자넨 공격형 이능 각성자라며?”


“아직 젊어서 팔팔합니다. 이 정도 고생이야 뭐, 사서도 하는거죠.”


목적지가 명확하니까 요정의 숲을 헤매고 다닐 일은 없겠지만 그건   하는게 좋겠지.
강경호 팀장이 사장님 배려까지 받아가며 우리를 정찰임무로 배정한게 괜히 그런게 아니다.
이 사람들도 지금 큰 고생을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외지에 나와서 일을 하는데 누군 유적지를 구경하러 간다고 하면 심사가 뒤틀릴테니까.
특히 2팀장이면 현장에서 뛰는 헌터 중에서는 1팀장 다음으로 높은거잖아?
아까 강경호 팀장을 형이라고 지칭한걸 봐선 나이는 어려보이지만 직급은 직급이니까.
조금이라도 밉보일만한 언행은 피하는게 낫다.

“다행이군. 그럼 저녁먹기 전에 내가  귀찮게 해도 되겠지? 3팀이 일본 의뢰 때문에 남부평원 쪽에 가서 대활약을 했다며? 내가 또 궁금한걸  못 참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회사 기밀까지는 필요없고, 얘기해도 괜찮은 내용이라도 좀 들려주게.”


“아, 예... 알겠습니다.”

팀원  명을 시켜 맥주를 두 상자나 가져오라고 하더니 2팀장뿐만 아니라 다섯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줄줄이 방 안으로 따라들어온다.
보초나 다른 업무가 없이 휴식 중이던 헌터는 다 모인 것 같았다.
윤기정을 바라보니 픽 웃고 외면한다.


“형님, 소문은 들었죠? 뭘 듣고 싶은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우리 지호가 다 했습니다. 혼자서 제임스 본드 영화를 찍으며 증거를 찾아내 가져온 것도 이 녀석이고 일본 특수군의 습격에 맞서서 스무명도 넘는 일본 놈들을 모조리 죽인 것도 이 녀석이에요. 그  저도 있었는데, 말짱한 얼굴로 아주 살벌하더라니까요? 형님도 조심하는게 좋을겁니다. 우리 지호 성격이 그래요. 평소에는 얌전한데 한번 수틀리면 상사고 뭐고 없을걸요?”

“야,  어차피 이지호 헌터 직속 상사도 아닌데. 오, 왔어? 자자, 시원하게 한 캔씩 하자고.”

음, 내게 별 관심이 없어보인다고 했던거 취소.
이제 보니 관심이 아주 많은데 자제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윤기정 저 형, 아니 저 놈.
나는 잠깐동안 저 놈 어깨를  고쳐줘야 하는걸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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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우리는 계획보다 두 시간 정도 늦게 출발했다.
딱히 다른 이유가 있는게 아니라 그냥 늦잠을 잤기 때문이다.
어찌나 궁금한게 많던지, 저녁을 먹은 다음에도  상자에 스무 병이 든 맥주를 몇 상자나 비우며  늦게까지 방에서 나갈 생각을 않더라.
중간중간 일 있는 사람 나가고 일 끝난 사람 들어오고 하기는 하던데.


“휴, 마을은 엄청 변했더니, 이쪽으론 어째 변한게 없네. 길도 안 닦아놨고.”


“보안때문이겠죠. 북부 유적은 한참 뒤에나 공개한다잖아요.”

“난 솔직히 처음엔 거기 뭐가 있다고 그렇게 꽁꽁 숨기려드나 싶었거든? 왜, 그렇잖아.  행성의 고대 문명이 남긴 흔적이라고 하니까 대단한건 알겠는데, 그냥 공개해서 전 세계의 학자들이 함께 연구하는게 뭐라고 할까, 국격에도 도움이 될거고.”

“처음엔 그랬고, 근데 지금은 아니구요?”


“말이라고 하냐? 이능을 부여하는 유물이라니, 이건 당연히 꽁꽁 숨기고 혼자 먹어야지!”

“어... 아직 그건 확실하지 않은데.”

“너 그 제단에 접촉한 후 부활 이능이 새로 생겼다며? 치료 이능으로 발전시킬 방법도 찾은 것 같고. 그럼 말  했지 인마. 설령 이능 부여가 아무한테나 먹히는 보편적인 효과가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대단한거다. 응? 혹시 연구소 아저씨들이 뭘 찾았을지도 몰라.”


글쎄, 내 생각엔 아무리 천재들이 모여있어도  거 못 찾았을 것 같은데.
이 행성에 존재했던 고대문명이라는 키워드에서 방어막이나 게이트, 이능력 등 여기서 기원한 신비현상들과의 연관성을 추정하는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거지만, 과연 성과가 있을까?
민간에 개방하고 학계에서의 위상을 높이는 쪽으로 활용하는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싶은데.
뭐, 유적지 인근에 아티팩트 생산공장을 만들거라고 했으니 그건 물 건너 간 셈이지만.
정부 입장에선 그저 보안을 요하는 시설을 한 구역에 몰아서 인력 낭비를 막고 관리하기 편하게 하려는 심산이었을텐데, 어쩌면 나중에 곤란해질지도 모르겠다.
우리 정부가 성과 안 나오는 연구기관에 예산 계속 부어줄 정도로 인내심이 높던가?


“기대하는건 좋은데,  됐을 때 너무 실망하지나 말아요.”

“그래. 애초에 반신반의하면서 온 길이니까 안 돼도 본전이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 눈빛은 그게 아닌데?
내가 새파란 막내 신입인데 언제부터 날 그렇게 철썩같이 믿었다고 저러는지 원.
심지어 내가 확언을  것도 아니고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애매하게 흘린건데.


유적지 입구에 도착하니 땅으로 비스듬히 파인 동굴 입구에는 위장막을 펼쳐놓았고 인근에 참호형의 진지에 몸을 숨기고 있던 특수군 초병이 총을 겨누며 정지시킨다.
물론 다른 팀도 아니고 구렁이처럼 생긴 거대괴수를 쫓다가 녀석이 둥지로 쓰고 있던  유적지를 처음 발견한 오닉스 3팀의 일원이니만큼 통과에는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임무교대를 하러 왔냐고 묻기에 잠깐 확인할 것이 있어 왔다고 하고 동굴로 들어왔다.

“오, 내부에 조명을 달아놨네요? 안쪽에 발전기라도 하나 들여놨나?”


“글쎄, 지하에서 태양광 발전같은걸 할 수 있을리도 없고 화력발전기는 소음이 너무 심해 기도비닉에 안 좋을텐데. 대용량 배터리를 여럿 가져다놓고 보급해가며 쓰지 않을까?”


몇 걸음 떼지 않았을 때 안쪽에서 기지개를 켜며 나오던 연구원  명이 우리를 발견했다.
경계심같은건 전혀 없는 얼굴로 반색하면서 친근하게 말을 걸어온다.

“어? 오닉스에서 새로 오신 분들인가봐요? 얘기 못 들었는데.”

“오래 안 있을겁니다. 간단히 체크할 것만 하고 나갈거예요.”


“그래요? 아쉽네요. 매일 같은 얼굴들만 보다보니 질려서 뉴페이스가 필요했는데. 아, 잠깐만요.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외길이긴 한데 내부에 꽤 넓은 광장이 있거든요. 들여놓은 설비가 좀 있어서 자칫하면 헤맬수도 있어요. 누굴 찾아오셨나요?”


“저, 그게...”


“괜찮습니다. 사람을 찾아온게 아니라서요.”

애써 사양하니 눈에 피로가 매달린 연구원은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가던 길을 간다.
밖으로 나가는걸 봐선 우리가 보지 못했을뿐 동굴 바깥에 숙소나 편의시설같은게 있나보다.
일 끝나고 페어리 마을로 돌아가기 전에 거기서 좀 쉬어야겠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일이라 얼마 전의 기억을 더듬어 제단을 찾는건 어렵지 않았다.
유적지의 석조 부조같은걸 떼어다 옮긴게 아닌 이상 있던 자리에 있겠지.
부근에 정부 소속 혹은 오닉스 연구소 소속의 몇몇 연구원들이 비파괴검사를 위해 이것저것 장비를 사용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그들  평범한 사각형 돌덩어리처럼 생긴 제단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게임에서 본 스타팅 및 리콜 포인트에 있는 제단과 똑같은 모양의 제단을 보고 내게 확인을 받은 윤기정은 크게 심호흡을  뒤 다가가서 눈을 딱 감고 손을 내밀었다.


“읏! 뭐라도 나와라! 음... 지호야, 이 제단이 맞아? 비슷하게 생긴 다른 돌이랑 헷갈린건 아니고?”

“확실해요. 저리 비켜봐요.”

나는 웃음을 참으면서 그를 옆으로 밀어내고 제단 위에 손을 올렸다.
상점창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실망하여 쯧, 하고 혀를 찼다.


“턱도 없이 부족하네.”


“응? 뭐가?”

“형, 일단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죠. 사냥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대충 이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천사의 단지는 조합비도 비싼 편이니까, 골드가 부족할거라는 예상을 못 한건 아니다.
애초에 그래서 한 달이나 되는 예상 체류기간을 잡은거고.
아무래도 사람의 목숨 값이 괴수보다 훨씬  싼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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