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1부
“이 친구야, 대체 그게 어떻게 혼자서 쳐들어가라는 말로 읽히는거야?”
“아,아닌가요?”
“게이트 인근에 군사기지를 만드는건 조약 위반으로 간주할 여지가 있어. 그걸 공론화해서 외교문제로 삼으면 일본 정부의 입장을 꽤 곤란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아마 사장님은 그걸 가지고 보복이라고 표현한걸거야. 신일그룹이 나서면 우리 정부에서도 무시할 수는 없을테니까, 외교부에서 작정하고 물어뜯을 수 있거든.”
그게 또 그렇게 되는건가.
머리로는 어찌어찌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선 영 납득이 안 된다.
그런 물렁한게 어떻게 제대로 된 복수가 될 수 있다는거야?
강경호 팀장이 실소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윤기정도 웃으며 맞장구쳤다.
“설사 직접적인 타격으로 보복을 한다는 뜻이라고 이해했다고 쳐. 넌 어떻게 혼자서 들어갈 생각을 했냐? 당연히 정찰만 하고 지원팀을 기다리는게 정상 아냐?”
“팀장님,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지호 저 녀석, 람보가 따로 없다니까요? 큭큭큭.”
음, 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딱히 할 말이 없긴 하지.
충분히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긴 한데, 결과적으로 큰 부상을 입고 쓰러져서 일이 다 끝날때까지 일주일이나 의식을 잃게 되었으니 변명이라기엔 궁색하다.
“우리 팀은 전부 복귀한건가요? 협곡 기지의 의뢰는... 아, 1팀과 교대했나보죠?”
“아니, 그냥 취소했어. 1팀과 합류해서 함께 복귀했지.”
“예? 위약금이 어마어마하게 걸려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 놈들이 무슨 낯짝으로 위약금을 받아? 복귀통보를 하니까 하얗게 질려서는, 위약금의 위 자도 꺼내지 못하고 알겠다고만 하더라. 아마 이렇게까지 강경대응을 할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나봐. 특수군 한 개 중대가 주둔하는 곳을 박살내버렸으니까. 하핫.”
“소 뒷걸음질에 쥐를 잡은거지.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다음부터는 제발 몸 좀 사려라. 응? 이번 일이야 어찌어찌 잘 풀렸지만 보통은 그러다 변을 당하는거야.”
윤기정이 유쾌하게 웃으면서 날 칭찬하고, 강경호 팀장은 다시 한번 한숨을 푹 내쉰다.
먼저 잘못했으니까 부끄러움을 알고 위약금 요구를 안 했다니, 그럴 리가.
그럴만한 염치가 있었다면 애초에 전령으로 돌아가는 나와 윤기정을 습격하지도 않았을테니 저들이 가만히 있는건 분명 경계심과 두려움때문일 것이다.
게이트 출입을 관리하는게 그 놈들이니 내가 부상으로 의식을 잃고 후송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테고, 그럼 오닉스에서 보복으로 그 기지를 날려버렸다는건 굳이 추론할 것도 없지.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걸 보면 내가 남기고 온 증거가 없거나, 있더라도 일이 커지면 자기들이 더 불리할거라고 여겨서 묻기로 한 것 같다.
“그럼 분지 안의 연구소에 관한건 다 묻어주기로 한건가요? 아, 그건 좀 아닌데.”
“그만큼 받은게 많으니까.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연구소를 제한적으로 개방해서 한미일 삼국 공동 조사단을 꾸리게 될거라나봐. 우리 입장에서도 세상에다 공표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이득이니까. 정부에선 뭐라더라, 통화스왑? 하여튼 경제쪽으로 뭘 더 받았다는 모양이고.”
“그럼 우리 회사는요?”
“그것도 걱정마라. 보너스는 넘치도록 나올거야. 아무렴 우리 오닉스가 사건의 중심에 있었는데 맨 입으로 입을 다물어 주겠다고 했겠냐? 넌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몸조리나 잘 해. 아, 잠깐만. 나 전화 좀 받자. 네, 3팀장 강경홉니다. 아, 전무님. 예. 지금 의료원입니다.”
마시던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다시 병실을 나가는 강 팀장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윤기정이 가져온 캔커피 하나를 내게 건네려다가 흠칫하면서 다시 손을 거둔다.
일주일이나 의식을 잃고 쓰러져 수액을 맞던 환자라는 점을 새삼스레 상기한 것 같다.
정작 내가 느끼기로는 몸이 좀 찌뿌드할뿐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 같았지만.
그는 자기 침상에 털썩 걸터앉아서 입을 열었다.
“가볍게 웃고 넘어가긴 했지만, 이번에 너무 경솔했어 인마. 너도 참, 보통 또라이가 아니네.”
“알아요. 제가 좀 흥분했죠.”
지시를 받는 과정에서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일선 헌터가 단독으로 외국의 군사기지를 습격해서 파괴하고 수십여명을 죽인 셈이니 작은 일이 아니지.
전후 사정을 고려하면 사내에서 내게 책임을 물으려는 목소리는 안 나오겠지만.
“어깨는 좀 어때요?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들었는데.”
“괜찮아졌어. 물론 이 팔로 방패를 들고 괴수와 맞설수는 없으니 헌터는 그만 해야겠지만 수술이 그럭저럭 잘 돼서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거래. 통증도 잦아들고 있고.”
“다행이네요. 걱정 많이 했... 예? 뭐라구요? 은퇴요?”
“뭘 그렇게 놀라?”
괜찮다는 말만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이어지는 말에 황당해져서 입을 크게 벌렸다.
그건 괜찮아진게 아니고 수술이 잘 된 것도 아니잖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지만 결국 헌터로서의 생명이 끝난다는건데.
윤기정은 픽 웃으면서 충격을 받아 입을 벌리고 있는 내 머리를 가볍게 툭 쳤다.
“이제 고생 끝이라는거지. 내가 말이야, 신도시에 번듯한 건물이 세 채나 있어. 계좌에 모아놓은 돈도 수십억대고. 남은 평생을 있는 사치 없는 사치 다 부리면서 살아도 남을거다. 회사에서 퇴직금이랑 보상금도 넉넉하게 나온다고 하고.”
“그거야 그렇겠지만...”
보상금이고 나발이고 지금 그런게 대수가 아니잖아.
저 형이 그래도 헌터로 십 년 가까이 일한 사람인데 설마 돈이 부족할까.
나는 환자복 사이로 보이는 붕대로 감긴 어깨를 보면서 울적해졌다.
새삼스레 우릴 습격한 일본 특수군과, 그들을 사주한 미국 정보국에 대한 원한이 샘솟는다.
“일본하고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치고, 미국은요? 사과하면서 어떻게 배상해준대요?”
“그냥 돈 좀 줬다던데? 이백만 불이었나. 하여튼 별로 큰 돈은 아니었어.”
“예? 그걸로 끝?”
“그럼 뭘 더 뜯어내겠냐. 자기네가 한 짓이 아니라 자기네 일선 요원이 매수당해서 멋대로 한 짓이라잖냐. 거기다 대고 그게 말이 되냐고 대들어봐야 통하겠어? 뭐, 그나마 걔들도 이번에 네가 벌인 일을 두고 경각심을 가지긴 한 모양이더라. 생각보다는 고자세가 아니던데?”
“꼬리를 잘라내고 돈푼이나 던져주면서 입 닦는게 생각보다 고자세가 아니라니... 대체 평소에는 얼마나 뻔뻔했다는겁니까? 어? 근데 우리 회사, 전에도 미국하고 얽힌 일이 있었나요?”
“중앙정보국이랑 엮인적은 없어. 다만 한 오륙년 됐나? 미국 정부의 의뢰로 미개척지역 탐사를 나선 적이 있거든. 돈 갖고는 장난 안 치는데 기본적으로 태도가 좀 그래. 다른 회사들 이야기 들어보면 중국보다는 훨씬 낫다던데, 그래도 오만하기 그지없더라.”
사실 나랏일하는 양반들이 민간기업을 대할 때 고압적으로 나오는건 어디나 그렇긴 하지.
우리나라도 그런 점에서는 딱히 외국 욕할 처지도 아니고.
그나저나 피터 그 아저씨는 생각하면 할수록 불쌍하게 됐다.
설마 저 놈들이 하는 말처럼 그 아저씨가 독단적으로 매수당해서 정보를 흘렸을리도 없는데, 죽자마자 바로 손절당했다는거 아냐?
자길 죽이면 미국하고 문제가 생길거라며 협박을 하던 목소리가 귀에 선하다.
돌이켜보면 참 공손하고 친절한게, 나쁜 인상은 안 주던 사람이었는데.
“쓸데없는 생각 말아라.”
“예?”
“괜히 앞뒤없이 날뛰지 말란 소리야. 누가 보면 내가 네 친형제라도 되는줄 알겠다.”
“형 때문에 화난거 아닌데요? 공격받은건 저도 마찬가진데.”
꼭 이번에 일주일이나 사경을 헤맨 부상이 아니더라도 습격을 당했을 때 수호자의 맹약 아이템 효과를 발동했다는건 한번 놈들에게 살해당했다는 뜻이잖아?
당연히 내게도 복수의 명분은 있는 셈이다.
뭐, 솔직히 이만큼 했으면 할만큼 했다고 생각하지만.
목숨 하나에 목숨 수십으로 갚았으니 충분하다 못해 넘치지.
복도에서부터 발걸음소리가 가까워지는게, 강경호 팀장이 통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것 같다.
그래서 왜 부활 이능에 대해 보고하지 않았냐고 물어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마 본사의 임원과 통화를 한 것으로 보이는 강경호 팀장이 들어와서 내 어깨를 두드려준다.
“아무튼 수고 많았어. 본사하고 통화하니까 네 연봉기준을 다시 잡으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고 하더라. S급 공격계열 이능력만으로 책정된거니까. 은신과 순간이동 모두 이렇게 활용도가 높다면 당연히 제 값을 받아야지.”
“어... 혹시 연봉이 올라가면 앞으로는 이번 일과 비슷한 종류의 일을 하게 되나요?”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아. 지호야, 헌터 일이라는게 항상 이번처럼 위험하진 않아. 만약 그렇다면 사망률이 지금처럼 낮을 리가 있겠니? 타국 정부와 충돌하는 일은 거의 없어.”
아 나도 알지. 아는데... 첫 원정때 중국 특수군과 전투를 벌이고 이번 원정에서는 일본 특수군과 전투를 벌였으니 다음번에는 미군과 싸우기라도 할지 누가 아냐고.
눈이 뒤집혀서 적진에 쳐들어간 입장에서 할 말이 아니긴 하지만.
강 팀장은 내 우려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3팀에 소속될 것이며, 앞으로도 우리 팀은 괴수사냥을 목적으로 하는 원정을 위주로 참가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유사시에 좀 다르게 활용될 여지는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거겠지.
업무의 변화 없이 연봉이 두 배 가까이 오른다면 그걸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아, 맞다. 팀장님, 혹시 저희 집에다가 따로 연락을 하셨나요?”
“아니. 의사가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거라기에 네가 일어나서 직접 하라고 놔뒀다. 애초에 장기원정 일정이었으니까 집에서 딱히 걱정할 리도 없고 해서.”
“다행이네요. 괜히 쓸데없는 걱정 끼쳐드렸다간 당장 그만두고 나오라고 하실지도 몰라요.”
“어차피 다친걸 말하긴 해야지. 보상금도 잔뜩 나올테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몸을 추슬러야 업무에 복귀할 수 있을텐데. 한 달은 꼬박 입원해 있어야 할거라더라.”
“한달이요? 지금 전혀 아픈데가 없는데... 오늘 바로 퇴원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나더러 그래봐야 소용없어. 의사한테 가서 말해야지. 아무튼 고생 많았다. 푹 쉬어. 3팀의 다음 원정에는 불참하는걸로 이야기가 되었으니까. 한달 하고도 보름 정도 여유가 날거다.”
취직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한달 반의 장기휴가를 받게 되었네.
다사다난한 일을 겪었으니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긴 있겠지만...
아, 혹시 그런 것도 가능할까?
나는 문병을 마치고 나가려는 강경호 팀장을 붙잡고 물었다.
“휴가기간에도 게이트를 넘을 수 있나요? 개인 자격으로는 통과 못 하는걸로 아는데.”
“뭐? 게이트?”
“예. 울릉도 게이트를 넘어서 요정의 숲에서 휴가를 보낼까 하는데... 잘 생각해봐요. 페어리들과 우호적인 교류를 시작했으니 꼭 위험지역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관광지역도 아니지.”
글쎄, 외계 행성도 지금은 최전방이지만 괴수의 개체수가 충분히 줄어들고 안전이 확보되면 식민이 시작되고 관광지로 개발도 되지 않을까?
물론 그는 내 논리에 전혀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지 않을까요? 야, 나도 같이 가자. 은퇴해서 라이센스 만료되면 이 행성은 다시 오지 못할텐데, 그 전에 마지막으로 관광을 하고 싶었거든. 그렇다고 우리 팀을 호위삼아 끌고 다니는건 좀 아닌 것 같고, 페어리 마을 정도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들어 머리가 아픈지 이마를 짚고 인상을 찡그리는 강 팀장의 옆에서 윤기정이 웃으며 내 역성을 들어준다.
강경호 팀장은 이 놈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니, 넌 무슨 세상 다 산 것처럼... 휴우, 알아볼게. 아주 불가능한 얘긴 아닐거다.”
그렇겠지?
물론 괴수사냥의 효율이 비교도 안 될만큼 낮아서 수가 적긴 했지만, 울릉도 게이트 전진기지에 보면 두셋이서 짝지어 다니는 소규모 프리랜서 팀도 아주 없는건 아니었으니까.
나는 요정의 숲 북부의 신전에서 새로 아이템을 구입할 생각이었다.
천사의 단지를 조합할만한 골드가 모여있다면 좋을텐데.
운이 좋다면 천사의 단지가 윤기정의 영구적인 후유증을 회복할만한 수단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