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1부
오닉스 3팀이 의뢰를 마치고 돌아올때까지는 아직 열흘이 넘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이번 원정의 경우 특정 목표가 있는게 아니라 기간이 약정된 의뢰였으므로 변수가 생겨 더 늦거나 빠르게 마치고 돌아올 가능성도 많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지구에 머무는 외부 지원조 다섯 명에겐 그야말로 휴가나 다름없었다는 것.
일단 출근을 하긴 했지만 지정된 사무실에 하릴없이 모여앉아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등 소일거리로 시간을 때우던 지원팀은 난데없이 들이닥친 우리를 보고 크게 놀랐다.
“유,윤기정 헌터? 최지호 헌터?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아직 복귀 예정일까진...”
“한참 남았죠. 잔말말고 어서 의료팀 불러요. 아, 그 전에 컴퓨터부터 좀 씁시다. 본사에다 보낼 파일이 좀 있어요. 잠깐, 지금 근무 중에 술을 마신겁니까?”
“내버려 둬. 어차피 지금은 할 일도 없잖아. 이 아저씨들은 우리가 복귀하면 그때부터 격무에 시달리는거라고. 아, 그냥 둬요. 일반회선은 못 씁니다. 보안망에 접속해야 하는데, 지원팀 아저씨들은 자격 없는거 알죠? 코드 몰래 훔쳐보면 징계로는 안 끝납니다.”
“그보다 치료부터 받아야죠. 제가 할게요.”
신입이긴 한데 나도 엄연히 헌터라서 사내 보안망 접속코드 정도는 있었다.
윤기정이 못 이기는척 내게 저장장치를 넘긴다.
내가 그걸 받아들고 지원조 아저씨를 고갯짓으로 몰아내며 컴퓨터 앞에 앉는 사이에 윤기정은 간단히 응급처치만 하고 뒤로 미루어둔 치료를 받기 위해 상의를 벗었다.
자다가 허겁지겁 불러온 회사 의료팀의 의사는 그의 상처를 보고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총상이네? 총알도 아직 박혀있는 것 같고. 이거 시간 얼마나 지난겁니까?”
“글쎄요. 한 서너시간쯤...”
“응급처치도 엉망으로 됐고, 상태가 심각해요. 이대로 두면 오른팔을 아예 못 쓸 수도 있어요. 아니, 우리 차에 기본 구급키트가 있을텐데 누가 이렇게 엉성하게 지혈을 한겁니까?”
“그게, 다쳤을땐 장갑차를 안 끌고 와서요.”
기세등등하게 들이닥쳐서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던 윤기정이 의사 앞에서는 확 쪼그라든다.
아니, 잠깐, 그런데 한 팔을 아예 못 쓸 수도 있다고? 탱커가?
“팔을 못 써요? 신체강화 능력자의 회복력까지 감안해도요?”
“아 탱커니까 그나마 여기서 끝난거지, 일반인이었으면 그냥 빼도박도 못하고 팔 한쪽 날리는거요. 총알이 관절하고 힘줄을 제대로 짓이기면서 박혔어요. 회복력이 아무리 좋아도 한계가 있는건데 말이야. 물론 빨리 재건수술을 하면 그런 최악의 상황까진 안 가고 어떻게든 되긴 되겠지만 그것도 확실한건 아닙니다. 아무튼 이거 난 손 못 댑니다. 제대로 수술 잡아야돼요. 가만있자, 이 부근에 외과로 괜찮은 병원이...”
“안 됩니다. 지금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야돼요.”
“윤기정 헌터. 지금 내 말 이해 안 돼요? 잘못하면 팔병신 된다니까? 심지어 댁은 오른손잡이잖아. 지금 이렇게 실랑이할 시간도 없어요. 지체되면 지체 되는대로 멀쩡하게 회복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질겁니다. 아무리 급해도 당신 커리어 전체보다는...”
“급한것도 급한건데, 일본 병원은 못 믿어요. 바로 비행일정 잡아주세요. 최대한 빨리. 여기서 머무는 것도 안심하기 힘드니까요. 그리고 홋카이도에 머물고 있는 오닉스 소속 직원들의 신변안전도 강구해야합니다. 전부 철수하는건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외국계 경호회사를 부른다거나 숙박지를 번화가로 옮기고 외출을 자제하는 정도만 해도 훨씬 나을겁니다.”
평소 실없는 농담을 자주 하던 윤기정이지만 웃음기를 쫙 뺀 목소리로 진지하게 업무상이 권고를 하니 심상찮은 기색을 눈치챈 의사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어린 눈빛은 거두지 않았지만 더 설득해도 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
옆에서 듣고 있던 지원조장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잠깐만요. 대체 무슨 일입니까? 안에서 일본 헌터들하고 시비라도 붙었어요? 아니지, 민간헌터들끼리 트러블이 생긴 수준이 아닌데? 국가소속 팀이라도 건드린겁니까?”
“건드리긴, 되레 우리가 공격받았구만. 자세한건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지호야, 난 아무래도 치료받으러 한국에 가야 할 것 같아. 혼자 돌아갈 수 있겠어?”
“당연하죠. 혼자면 오히려 더 빠를걸요?”
“그거야 알지. 내 말은, 길 잘 찾을 수 있겠냐고.”
“저도 독도법이랑 방위계 보는 방법은 다 배웠어요. 걱정말고 가서 요양이나 잘 하세요. 의사선생님 표정 안 보여요? 잘못하다가 진짜 후유증남으면 어쩌려고.”
보안 클라우드에 가져온 저장장치에 담긴 자료를 전부 업로드하면서 나는 가슴을 탕탕 쳤다.
신입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믿음직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저 확고한 신뢰의 기반은 역시 그동안 보여준 강력한 이능력들이겠지.
어쩌면 그 중에서도 오늘 알게 된 ‘부활’능력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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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조장은 유능하게도 순식간에 바로 출발하는 비행일정을 잡는데 성공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원래 비행기 좌석 예약하고 그러는건 한참 전에 해야 하는 것 아니었나?
혹시 목돈 나가는걸 감수하고 전세기같은걸 빌렸다면 좀 빨라질지도.
윤기정이 치료를 위해 팀 닥터의 구박을 받으며 한국으로 돌아간 후 나는 그저 기다렸다.
클라우드에 모든 자료를 업로드하고 보안회선 전화로 빨리 방침을 정해서 지시를 내려달라는 요청을 본사에다 한지 두 시간이 지나도록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아마 회의가 길어지나봅니다.”
커피와 빵 등의 다과를 가져다주던 지원팀 아저씨가 추측했다.
앉아서 기다리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잡담을 나누다보니 그도 대강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물론 구체적인 이야기, 그러니까 외계 괴수의 방어막을 뚫는 무기라든지 오크들을 대상으로 하는 생체실험같은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그 외에도 이야기보따리는 넘쳐났다.
그들은 마치 첩보소설을 보는 것처럼 손에 땀을 쥐고 내 이야기에 집중했던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비밀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일본하고 마찰을 겪게 될 일이잖습니까. 어디까지 물어뜯고 어디까지 건드려야 할지 생각이 많아지는게 정상이죠. 우리가 앞으로 일본 정부하고 안 보고 지낼 것도 아니고, 영업하다보면 만나는 사람이 다 거기서 거길텐데.”
“중국 쪽하곤 아예 틀어졌다면서요? 망신 제대로 줘가지고.”
“그건 그 놈들이 그럴 짓을 한거지. 애초에 인신공양에 인종청소가 말이 돼?”
어... 따지고 보면 생체실험이나 인신공양이나 잔인하기로는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데.
가져온 정보를 어떻게 다룰지 방침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는 나는 사태를 실제보다 더 가볍게 보고 있는 지원조 사람들을 보며 애매하게 웃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 놓고 있어도 될까요? 우리 헌터들 습격한게 일본 특수군 소속일 확률이 높다면서요? 지금쯤이면 사정을 다 알았을텐데... 가만 있을까요?”
“가만있지 않으면? 여긴 지구야.”
“그리고 일본 홋카이도죠. 마음만 먹으면 사소한걸로 꼬투리잡고 시비걸어서 우릴 싹 다 가둬두고 일을 꾸밀수도 있잖아요. 만약에 대비해서 탈출 준비는 해둬야...”
“그래서 조장님이 발로 뛰고 있잖아. 심상찮으면 즉시 소개하고 철수하면 돼. 3팀 전원이 복귀할때까진 아직 열흘넘게 남았으니까, 그동안 어떻게든 결론이 나겠지.”
“아, 잠깐만요. 최지호 헌터, 여기 메일 온거 아닙니까? 답장같은데.”
본사에서 보낸 답장은 우선 칭찬과 위로로 가득했다.
강경호 팀장의 판단은 휼륭했고 나도 분지 안에서 고생 많이 했으니 충분한 보상을 하겠다, 다친 윤기정은 한국에서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테니 걱정할 것 없다...
스크롤을 죽죽 내리며 건성 읽으니 요지는 간단했다.
다른 팀을 지원으로 보낼테니 여기서 기다리다가 합류해서 다시 게이트를 넘고 협곡기지로 가서 병력을 합친 후 정상적으로 기존의 의뢰를 수행하라는 것.
한 개 팀이면 모를까, 덩치가 더 커진다면 섣불리 수작을 부리기 힘들거라는 판단이다.
가만있자, 그럼 한두개 팀을 보내는게 아니라 오닉스의 열 두개 팀 중에서 대여섯 팀을 보내 아예 대규모 원정대를 꾸릴수도 있겠구만.
“음, 하긴, 이미 쌀이 익어 밥이 됐는데 뭘 어쩌겠어.”
윤기정은 괴수를 잡아 얻었다기엔 너무 큰 마석덩이와 특수처리된 혈석 등의 증거품을 가지고 이미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으며 중요한 정보도 본사에 들어간지 오래다.
아마 우리나라 정부하고도 공유를 하겠지?
회사에서 단독으로 갖고 어떻게 이용하기엔 너무 큰 건이니까 말이야.
그럼 일은 벌써 외교적 영역으로 넘어간 셈이니 이제 와서 일선 팀에게 보복을 하려고 들어봐야 그 의미가 별로 없다.
“뭐라고 합니까?”
“지원팀 보낼테니까 여기서 기다리다가 합류하래요. 으, 이제 다 끝났나. 하여튼 내가 괴수잡는 사냥꾼인지 헐리웃 영화 나오는 첩보원인지 모르겠다니까.”
“큭큭큭,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완전히 제임스 본드가 따로 없던데요.”
“근데 이건 영화가 아니니까요. 막상 실제로 겪는 입장에선 웃음이 안 나온다니까요?”
투덜거리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려다가 문득 휴대폰을 빌려서 전화를 걸었다.
한국과 일본은 코 앞이라서 빠르면 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물론 그건 최단거리 이야기고 여긴 열도 최북단의 홋카이도니까 좀 더 걸리긴 하겠지만, 아무튼 윤기정이 슬슬 한국에 도착해서 수술에 들어갔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인 것이다.
“아, 네. 최지호 헌터 맞습니다. 걱정이 돼서요. 아무 문제 없는거 맞죠?”
-글쎄요. 수술 중이긴 한데, 의사 얼굴이 썩 밝진 않던데요. 물론 생명에 지장은 없을겁니다. 탱커가 어깨에 소구경 총 맞았다고 죽을 일은 없죠. 하지만...
“후우. 알겠습니다. 수술 끝나면 연락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게이트 다시 넘으면 연락이 안 되겠네. 메시지라도 남겨주세요.”
역시 자칫하면 영구적인 후유증이 남을수도 있다는 소리인가.
오른손잡이가 오른팔을 자연스럽게 쓰지 못한다면 일반인이야 좀 불편하고 말겠지만 몸을 쓰는 직종, 특히 목숨걸고 전투를 하는 헌터는 사실상 커리어가 끝난다고 보는게 맞다.
신체강화능력자의 회복력에 치유능력자의 치유, 발달한 현대의학의 삼위일체면 죽기 직전이라도 멀쩡히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언뜻 별 거 아닌 듯 보이는 총상 하나가 영구적인 장애를 남길수도 있다니 사람 몸이라는게 참 복잡미묘한가보다.
“응?”
복잡한 기분으로 앉아있다가 새로 온 메일을 발견하고 눈을 끔뻑거리다 열었다.
그 사이에 회의에서 새로운 결론이 나와 방침이 변하기라도 했나?
아, 이건 회사 공식계정이 아닌데.
전택영... 어, 그거 우리 사장님 이름 아닌가?
오닉스 헌터즈의 사장 명의로 발송된 메일을 가만히 읽다가 나는 씩 웃고서 로그아웃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상황 다 끝났으니 일본이 특수군을 잃은 것에 대해 새삼 보복할 이유가 없다고?
물론 걔들은 그렇겠지.
근데 이쪽에선 선공을 받은 것에 대해 보복할 이유가 차고 넘치거든.
한번 만나서 제대로 대화해본 적도 없는 사장이지만 우리 사장님, 아주 마음에 든다.
일단 마인드가 달라, 마인드가.
암, 멀쩡히 길 잘 가는 여행자들한테 다짜고짜 총을 쏴댔으면 그건 테러나 다름없지.
“최지호 헌터, 어디 가십니까? 지원군 올때까지 대기라고 하지 않았어요?”
“지령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바로 다시 게이트를 넘어야겠네요.”
“혼자요? 아이고, 뭐 이리 빡빡하게 부려먹는지 참. 이런거 보면 헌터분들이 우리보다 돈은 더 많이 받는데 꼭 대우가 좋다고 하기도 힘들다니까요? 그 이상으로 힘든 것 같아 아주.”
“하하하, 그러게요. 등록 준비해주세요. 바로 넘어가야하니까.”
전택영 사장은 이메일 말미에 마음 안 내키면 거절해도 상관없는 임무라고 명시했지만 나는 기꺼이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기로 했다.
사보타주 미션을 받은 것 치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들뜨고 유쾌한 기분이다.
윤기정의 복수를 해줘야겠다.
아니 뭐, 아직 심각한 후유증이 생길거라고 정해진건 아니지만 가능성은 있잖아.
미리 복수하고, 멀쩡하게 회복하면 그때가서 좀 미안해하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