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1부 (51/110)



〈 51화 〉1부

다행히 홋카이도 게이트 기지에 도착할때까지 다시 습격을 받는 일은 없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묵묵히 싸맨 상처를 손으로 누르며 아픈 내색을 하지 않던 윤기정은 게이트 기지의 외벽이 저 멀리 보일 즈음에  이상 참지 못하고 신음을 냈다.


“다 왔어요. 기지에 응급 의료팀이 상주하고 있을테니 조금만  참아요.”

“후우, 일단 피는  멎었어. 팔에 힘은 여전히  들어가지만. 그나저나 걱정이군. 이건 예상 외의 상황이야. 분지 안에서 증거물을 훔쳐왔으니 은신능력이 있는 널 의심하는건 당연하지만, 추궁하는 정도가 아니라 다짜고짜 죽이려 드는건 이상하잖아.”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니까 그렇겠죠. 아까 형이 그랬잖아요, 일단 게이트 기지 안으로 들어가서 외국 헌터들과 접촉하면 보는 눈이 많으니 함부로 하기 힘들거라고.”

“그래, 그러길 바래야지. 우리가 죽인 병력이 협곡 전초기지에서 직접 왔는지 아니면 중간에 다른 거점이 하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게이트 기지에서도 당연히 정보를 공유하고 있을거야. 괜히 기지에서 치료받는다고 미적대지 말고 빠르게 지구로 넘어가자구.”


이거 빨리 치료 안 받고 놔두다가 덧나기라도 하면 골치아플텐데.
그런 걱정이 들었지만 윤기정의 의견도 확실히 일리가 없는건 아니다.
뭐, 신체강화 능력자가 강인한건 상식이니까 게이트를 넘고 한국으로 돌아가 회사와 계약된 믿을 수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때까지  시간 정도는 괜찮겠지.
사실 윤기정 본인도 머리로는 그렇게 판단했으면서도 불안감과 통증은 어쩔 수 없는지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어서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관통상이 아니라 총알이 박혀있는거라서 수술이 필요할거야. 젠장, 이럴땐 몸이 단단한 것도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니까. 차라리 뚫고 지나갔으면 좀 나았을텐데.”

“탱커 아니었으면 그냥 어깨가 통째로 날아가지 않았을까요? 아니, 그 이전에 출혈 때문에 골로 가서 지금 이렇게 이야기하지도 못할텐데. 그나저나 다행이네요. 대구경 화기였으면 아무리 단단한 각성자라고 해도 이렇게 멀쩡하진 못했을걸요.”

“멀쩡하긴 시발. 아파 죽겠구만. 이물감 때문에 팔을 못 들겠어. 그나저나 한국에 돌아가서 수술로 총알을 빼내면 그것도 정황증거가 되겠네.”

아, 듣고 보니 그러네.
괴수의 방어막을 뚫는건 무조건 각성자의 이능력이 필요하지만 방어막이 모두 상쇄되어 사라졌다고 해도 괴수 중에는 지구 토착생물들과 비교를 불허하는 괴물들이 많다.
그래서 훈련소에서 기본지급했던 리볼버나 내가 받은 피스톨같은건 대인 호신용이었지.
피니셔들이 들고 다니는 무기는 기본이 50구경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중소형 괴수들은 특이개체가 아닌 이상 구경이  작아도 자동소총으로 드르륵 긁으면 피떡이 되지만, 그러면 또 사체가 박살이 나서 부산물의 값어치가 떨어지잖아.
그러니 거대괴수용으로 60구경 이상의 자동화기, 중소형 괴수용으로 그보다  작은 50구경 안팎의 단발 화기를 마련해 쓰는게 정석이다.
저지력이 약하고 연사속도가 빠른 5.56밀리의 자동화기를 가져왔다는 것 자체가 괴수가 아니라 사람을 잡을 목적으로 작정하고 준비했다는 정황증거가 될  있는 셈이다.

“근데 너 정말 괜찮냐? 혹시 치유능력같은걸 새로 각성했다던가. 왜,  원정 한번 나오면 새로운 이능을 하나 뚝딱 각성해서 오고 그랬잖아. 이번에도 뭔가 있는거야? 상황이 상황이라 안 물어보고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궁금해서 안 되겠다 야.”


“아 그게... 말씀드리기가  복잡한데요.”


인근에 순찰대가 돌아다니고  멀리 게이트 기지가 보이는 곳까지 왔으니 일단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여겼는지 윤기정은 긴장을 그럭저럭 풀고 물어왔다.
나는 그동안 팀원들에게 내 이능에 대해 딱히 숨기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같이 부대끼면서 사냥하고 전투하다보면 숨길래야 숨길 수 없을텐데 쓸데없는 노력이지 뭐.
내가 파악한 이능의 매커니즘, 그러니까 전생에 하던 게임에 나오는 스킬과 아이템들이라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고 말해봐야 믿지도 않을테니 함구하고 있지만, 그건 감춘다기보다는 굳이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는 것에 가까웠으니까.
수호자의 맹약 아이템 효과도 다를건 없었다.
아무래도 목숨이 직접 달린 종류의 이능이라 마지막 비장의 한 수로 감춰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기왕에 일이 이렇게 된 것, 거짓말로 둘러대는 것도 구차하지.
아이템에 달린 고유효과라고는 해도 사실상 30분의 쿨다운 타임을 가진 부활스킬이나 다를바 없으니까 그냥 이능을 하나  각성했다고 말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치유능력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발동할 수 없고 남한테 써줄수도 없는거죠. 일종의 조건부 부활능력같은데... 아직 자세한건 파악하지 못했어요.”


“부활? 아니, 잠깐만. 진짜? 부활? 예수님이 하신 그거?”

“사흘이 아니라 몇 초지만, 네. 대충 그런 것 같아요. 피흘린 흔적만 남고 상처가 전부 말끔하게 사라진걸로 봐서 육체의 시간을 돌리고 뭐 그런 종류같은데, 잘 모르겠네요 저도.”

“야, 너 지금 어떻게 그렇게 태평하냐? 부활? 그건 치유능력이나 방어능력같은거랑은 아예 궤가 완전히 다른거야. 말 그대로 신의 영역이라고. 종교를 만들어도 되겠네 아주.”


음, 놀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도 더 격렬한 리액션이 돌아온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만  것 같기도 하고.
게임에서의 수호자의 맹약 아이템, 그러니까 주요 코어 아이템들을 다 갖추고 몇몇 캐릭터들이 추가 보험용으로 사던 계륵같은 아이템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남아있어서 그랬나.
취향맞는 사람은 알차게 잘 쓰던 아이템이지만 솔직히 삼십분에 달하는 긴 쿨타임으로 인해 사실상 한번 사면 게임 끝날때까지 고유효과를 한번 보고 되파는게 정석인 아이템인지라 활용도가 높다거나 좋은 아이템이라는 소리는 거의  나오는 아이템이었지.
머리로는 무조건 우선구입해야겠다느니 말도 안 되는 오버파워라느니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이미지의 잔상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가볍게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따지고보면 다른 것도 아니고 자그마치 ‘부활’인데.
똑같이 멀쩡하더라도 일정시간 피해면역같은 스킬과 부활스킬은 또 느낌이 전혀 다르다.
내 옷자락이 누가 봐도 과다출혈로 죽을만큼 많은 양의 피로 젖어있지 않았다면 설령 맨 몸으로 총알을 튕겨냈더라도 윤기정이 받아들이는 방식은 전혀 달랐으리라.

“저도 놀라긴 했는데,  신경쓸 필요 있나요. 나쁜 일도 아니고 좋은 일인데. 어떤 이능력을 각성하는지는 전적으로 운에 달린거잖아요?”

“그 운은 어째 너한테만  몰리냐. 하아, 이거 축하를 해줘야 하는데 질투가 나네. 가만, 그렇게 따지면 꼭 좋은것만은 아닌가? 너 조심해라. 그동안 연구소에서 이것저것 측정한다고 별 짓을 다 했잖아? 이젠 검증한답시고 한번 죽어보라고 할지도 몰라. 큭큭큭.”

그는 낄낄대며 웃다가 어깨의 상처에 힘이 들어갔는지 윽하고 헛숨을 들이킨다.
물론 농담이지만 설득력이 있는 진담같은 농담이라서 듣는 나도 식은땀을 흘리게 만든다.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닉스 산하 연구소의 그 열정에 불타는 과학자들에게 부활이능에 대한 정보가 들어가는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로 긍정적인 일이 아닐 것 같다.


“농담하지 마세요. 설마 이만한 이능에 아무런 제한이 없을리 없잖아요. 실험하다가 까딱 잘못하면 진짜로 죽어버릴지도 모르는데, 제가 미쳤다고 협조하겠어요?”

“그건 그렇다. 그런데 죽었다가 살아나는 느낌은 어때?”

“뭐 별거 없어요. 가슴을 맞았는데, 화끈하고 뜨거운 느낌? 의외로 통증도 심하지 않더라구요. 아, 심장이 관통당하는걸 확실하게 감각으로 느끼긴 했죠. 박동이 멎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나고, 음, 그 다음은 다시 몸이 완전히 회복될때까지 아무런 감각도 없었어요.”


“크으, 무슨 임사체험 듣는거같네. 아니지, 진짜 임사체험 맞지. 하하하.”


“어, 음... 지금 말하다 보니까 확실히 좀 섬뜩하네요. 막상 싸울땐 몰랐는데.”


일본 특수군 소속으로 추정되는 추적대와의 전투와 내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해 잡담을 나누며 얼마간을  걸으니 멀게만 보이던 게이트 기지 입구까지는 금방이었다.
주변에 지나다니는 원정대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우리는 입을 다물었다.
  명이서 가볍지 않은 부상까지 입은 모양새로 피범벅을 하고 걸어오니 무슨 일인가 싶었는지 다들 우리에게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홋카이도 게이트 기지의 입구는 다양한 국적의 헌팅 팀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원래 일본 정부는 자국 내의 게이트에 대해 너무 폐쇄적이라는 비난을 국제적으로 심심찮게 들을 정도로 높은 통과세를 물리고 있었지만, 요즈음은 예외였다.
기본 요건만 갖추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구 의뢰를 넣는 탓에 대체 자국 헌터들을 모아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온다고들 하던데, 그 내막을 우린 막 알아냈지.
마침 주변 순찰 겸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인 듯 보이는 원정대의 히스패닉 청년이 다가와서 포르투갈어의 억양이 짙게 섞인 서툰 영어로 조심스레 묻는다.


“이봐요, 괜찮습니까? 혹시 부근에 감당하기 힘든 괴수무리가 등장한건가요? 구원을 요청하러 온거라면 내게 말하세요. 즉시  개 팀을 비상동원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만 괜찮습니다.”


“부상이 심각한 것 같은데, 치료를 받으셔야죠. 이봐, 차 안에 자리 좀 비워봐.”


“응급처치만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급히 지구에 돌아가야해요. 협곡기지에서부터 쉬지않고 달려오는 길입니다. 아, 혹시 남는 옷이 있으면 살 수 있을까요?”

“허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후안, 짐칸에 코트가 있을거야. 두 벌만 꺼내와. 아, 돈은 됐습니다. 별로 비싼 것도 아닌데요. 자, 타시죠. 출입관리소까지 태워드겠습니다. 게이트 통과비용은 가져오셨죠?”


안 가져왔다고 하면 통과비까지 대신 치러줄 기세의 친절이었다.
왜 이렇게 과도한 친절을 보이는건지 잠깐 고민해봤는데, 아무래도 기지 인근의 안전지대에서 변을 당했다고 하면 순찰의뢰를 받은 회사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자국 헌터들의 공백기동안 게이트 기지 근처의 안전지대를 유지하라고 알토란같은 임무를 외국기업에게 맡긴건데 트러블이 생기면 앞으로의 신뢰도 면에서 상당히 곤란해지겠지.
물론 윤기정의 총상을 보면 괴수한테 당한게 아니라는걸 금세 눈치채겠지만 헌터들끼리의 분쟁이 있었더라도 어쨌든 안전지대의 치안이 불안하다는데는 변함이 없으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리소에 보고는 하셔야 할겁니다.”

“급히 돌아오다가 습격을 받았을 뿐입니다. 보고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워낙 시간을 다투는 일이라서. 우선 지구로 넘어가 본사에 연락부터 넣어야합니다. 죄송하지만 이건 우리 회사 내부사정이니까 자세히 말씀드릴순 없어요.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브라질 헌터인듯한 히스패닉 청년은 알겠다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행렬로 돌아간다.
차를 얻어탄 덕분에 게이트 출입관리소까지는 편안하게 갈  있었다.
나는 출입관리소에서 트집을 잡으며 게이트를 넘지 못하도록 시간을 끌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그들은 우리를 막으려들지 않았다.
물론 브라질 팀이 떠들어댄 탓에 윤기정이 다친걸 알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긴 했지만 그건 캐묻는다기보다는 걱정과 책임회피에 가까운 어조였다.
협곡과 분지의 군락 토벌 때문에 헌터인력 공백이 생겨 인근의 안전지대 유지가 벅차다면서 엄살을 부리는데, 당연히 그 유지를 도맡고 있는 브라질 팀에는 실례가 되는 말이어서 우리를 데려온 히스패닉 청년이 눈을 부라리며 기분나쁜 티를 내더라.
면전에서 그런 소리를 하다니, 참 눈치도 없지.


“저 놈들끼리도 정보 공유가 제대로 안 되나봐요. 미안하지만 자기들하곤 상관없는 일이니까 문제제기 하지 말아달라는 기색을 팍팍 풍기던데요.”

“일본 관료제 유명하잖아. 우리로서는 잘 된 일이지. 자, 어서 가자고.”


잠깐의 대기 끝에 우리는 게이트를 넘어 지구로 복귀할 수 있었다.
꽤 덥다 싶을 정도의 날씨에 적응되어 있다가 순식간에 홋카이도의 서늘한 바람을 맞으니 피부에 오톨도톨 소름이 돋는다.
이게 건물 안에 있었으면 좀 나을텐데, 국제 협약에 따라 모든 게이트는 위성 감시로부터 은폐되어서는 안 되므로 기둥과 천장이 있는 건물로 둘러칠 수 없었다.


통과 절차는 까다롭지 않았다.
들어갈때에 비해 나올 때 검역이  철저한건 지구가 외계행성보다 더 소중하니까 당연한거고, 그 외에 딱히 질문이 많다거나 꼬투리를 잡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역시 우릴 공격했던  놈들은 일본 내에서도 아주 높은  직속의 비밀조직 비스무리한거라서 일반 관료조직과는 정보공유가  안 되는게 아니냐는 추측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게이트를 통과하고 간단한 검역 절차가 끝나자마자 오닉스의 지원팀을 찾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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