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1부
윤기정은 두 명의 포로를 심문 후 처형하자는 내 의견을 별다른 고민없이 수용했다.
심문이라고 해봐야 특별할건 없었다.
우리 둘 다 일본어를 능숙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거든.
그저 어디서 왔냐, 우릴 노리고 온 것이 맞느냐 하는 정도의 사실확인에 가까운 절차였다.
그 정도는 짧은 영어와 어조, 몸짓 등으로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했으니까.
결론적으로, 서로 그 어떤 오해도 없었다.
그들은 지구로 돌아가 보고하려는 오닉스 3팀의 전령들을 막으려고 온 특작조가 맞았다.
그리고 그들이 선택하려던 방식은 납치와 억류가 아니라 살해였다.
“뭐, 법적으론 인정받지 못하겠지만 이것도 우리 나름대로는 정당방위라는거지.”
타앙, 타앙.
묶여있는 포로들의 머리를 쏘아 사살한 윤기정이 어두운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정작 처음 의견을 냈던 나는 머리까지 올라왔던 전투의 흥분과 열기가 식은 후에는 이건 좀 너무 나간게 아닌가 싶은 마음에 약간 주저했지만, 그의 동작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평소의 유쾌하고 실없는 모습과 달리 지금의 그는 노련한 헌터로 보였다.
“이대로 두고 가도 돼요? 파묻는다거나, 뭐라도 해서 흔적을 지우는게 낫지 않을까요?”
“쓸데없는 짓이야. 대구경 기관총을 쏴대고 장갑차가 폭발하고 했는데 전투의 흔적을 둘이서 어떻게 지우게? 어차피 이대로 놔둬도 누굴 특정할만한 증거는 못 돼. 정황을 따져서 우릴 의심하긴 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증거인멸한다고 의심을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경험이 많나봐요?”
“아예 나라 하나하고 이렇게 싸워본 적은 없지만, 헌팅 팀끼리 갈등을 빚다가 쌓인게 터지고 그러는 경우는 종종 있으니까. 물론 대부분은 괴수 사체의 소유권이나 원정지 이익분배의 우선권을 놓고 다투는거니까 극단적으로는 안 가는데... 세상 일이라는게 꼭 그렇게 돌아가진 않거든. 헌터들 중에는 별 또라이같은 놈들도 많으니까. 사람을 쏠 일도 제법 생기지.”
“훈련소에선 권총사격은 그냥 최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뿐이라고 하던데요. 별로 신경써서 가르쳐 주지도 않던데. 거기 교관들도 다 현역으로 뛰던 사람들인데 왜 충고를 안 해줄까요?”
“실상을 다 말해줬다가 등록 안 하고 도망가면 어쩌려고? 그리고 인마,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마. 이런 일은 진짜 커리어 내내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라니까.”
민간 헌터들끼리의 분쟁이 극단으로 치달아 서로 총질을 하는 일은 이따금 생기지만 이렇게까지 서로 목숨을 내놓고 한 쪽이 다 죽어야 하는 싸움을 벌이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전령을 습격해 죽이는건 업계 나름의 불문율에도 어긋나는 짓이라고.
하긴, 민간 기업들이 부대끼면서 성립된 암묵적 룰 따위에 얽매이기엔 너무 큰 건이지.
생산 및 연구과정에서의 비윤리적 행태는 둘째치고 비각성자가 들고 쏴도 방어막을 뚫을 수 있는 무기라니, 외계산업 전체를 뒤집을만한 대발견이잖아.
그만한 이권의 기밀이 달려있으니 사람의 생목숨이 이토록 가벼워지는 것이다.
역시 공무원이나 특수군같은거 안 하길 잘 했어.
나야 재수없이 말려든거지만 저 아저씨들은 명령을 받고 이런 일을 하는게 일상이라는거잖아?
아마도 일본 특수군 소속일 처참한 시체들을 보니 새삼스레 그런 생각이 든다.
“가자. 시간 더 끌어서 좋을게 없겠다. 어디 다친데는 없지?”
우리는 고철이 된 장갑차를 뒤로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맨 몸으로 떠난 헌터 둘 잡는데 장갑차 두 대와 병력 십수명 만으로도 충분히 과잉투자를 한 셈이니 여기서 더 준비한게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니까.
“안전지대로 들어가면 정기적으로 주변을 순찰하는 팀들이 있을거야. 일단 그 사람들을 만나면 게이트 기지까지 안내를 부탁할 수 있어.”
“게이트 기지 자체가 일본 정부에서 운영하는거잖아요. 다 한통속 아니겠어요?”
“평소라면 그랬겠지만 지금 일본의 헌터 역량은 분지 안에 집중투자된 상황 아니냐. 기지 주변을 청소하고 안전지대를 유지하는 임무도 외국기업이 맡고 있을걸. 브라질 쪽 기업이었나? 외국 헌터들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을테니 섣불리 손을 못 쓸거야.”
“휴우. 다행이네요. 아, 잠깐만요. 제 가방 좀 주세요.”
그럴듯한 분석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윤기정에게서 가방을 건네받아 수통을 꺼냈다.
기분 탓인가, 피를 봤더니 입 안에 약간 짭짤하고 비릿한 쇠 맛이 감도는 것 같다.
문득 헌터로 처음 진로를 결정했을 때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전생에는 군대도 다녀왔는데 까짓것 한번 더 간다고 생각히고 몇 년 바짝 벌자, 뭐 대충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지금 돌이켜보면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
돈이야 비교도 안 되게 많이 벌지만 이렇게 진짜로 목숨을 걸고 칼날 위를 걷는 일을 한다면 이게 과연 수지가 맞는건지 애매한 것이다.
물로 한번 입을 헹구고 뱉어낸 뒤 두어모금 들이키고 수통을 다시 건넸다.
피식 웃으면서 받아 자기 가방에 넣던 윤기정이 별안간 얼굴을 사납게 굳히며 날 덮쳤다.
“뭐,뭡니까?”
그 서슬에 뒤로 나자빠져 엉덩방아를 찧은 내가 항의하려다가 타앙,하는 총성에 입을 다문다.
윤기정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고통을 참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어깨가 피로 젖어든다.
경악하여 사방을 살피려는데 그는 내 머리를 땅으로 꾹 눌러 낮춘다.
“젠장. 아까 그 놈들이 다가 아니었던 모양이야.”
“저격? 설마 만일을 대비해서 미리 저격조를 배치해놓은건가요?”
“아니, 그런 것 같진 않아. 두 놈에다가 거리가 약 백미터 정도 되는데, 전문 저격수라기엔 사격거리가 너무 가깝잖아. 그리고 이건 6밀리 아래쪽이야. 만약 저격용으로 쓰는 대구경 총알이었으면 어깨가 통째로 날아갔을걸. 아마 다른 일로 잠시 내려서 떨어졌던 놈들일거야. 잠깐 볼일 보는 사이에 본대가 우릴 발견하고 급하게 따라와 전투를 벌인거지.”
그리고 요란한 총성과 폭발음을 듣고 뒤늦게 따라오다가 본대가 전멸한걸 발견한건가.
윤기정의 추측대로라면 상황은 나쁘지 않다.
약간의 굴곡진 지형이 시야를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뛰어난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을 가진 탱커가 몸을 날리기 직전에 봤다고 하니 머릿수와 거리는 대충 맞을테니까.
“가방에 의료킷 있죠? 지혈부터 하고, 잠깐 여기 있어봐요. 얼른 가서 처리하고 올테니까.”
에테르 폼부터 활성화한 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과연 저 멀리 두 사람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카빈 계열의 라이플을 들고 겨누고 있었는데, 이쪽을 경계하면서 만반의 태세로 다가오고 있지만 그 상황판단에 있어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장갑차에 대구경 기관총까지 동원한 전투에서 십수명의 무리가 전멸했는데 둘이서 뭘 어쩌겠다고 저렇게 당당하게 다가오는걸까?
나는 직선경로를 골라 최대거리로 쉬프트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한 놈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기색이었지만 다른 한 놈이 크게 놀라며 정확히 내 쪽으로 총구를 돌려대고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타앙, 단발의 총성과 함께 에테르 쉬프트의 방어막에 총알이 세차게 부딪힌다.
경악한 내가 잠깐 굳은 사이에 조정간을 단발에서 연발로 바꿨는지 투타타, 요란한 총성이 들리고 방어막에 마치 빗방울이 튀듯 총알이 튄다.
피격을 당해 에테르 폼이 풀리면서 다른 한 놈도 날 정확히 노려 사격을 개시했다.
어,어쩌지.
당연히 은신 효과로 들키지 않고 접근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거침없이 정면으로 쉬프트한 탓에 거리는 50여미터로 가까워져 있었고 주변에 몸을 숨길 엄폐물은 보이지 않았다.
급히 허벅지에 매달린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내 맞사격을 해보지만 역시 너무 멀다.
3초가 지나 에테르 쉬프트의 방어막이 꺼지면 그대로 총격에 노출된다!
젠장, 방어막 강도에는 주문력 계수가 붙어있는데 왜 유지시간은 안 붙고 고정인거야.
속으로 그렇게 불평하다가 아차,하는 생각에 뒤로 소리쳤다.
“나오지 마! 그대로 엎드려서 상처나 잘 보고 있어요! 내가 알아서 할게!”
내 전투방식대로라면 소리없이 접근해서 목을 따버려야 하는데 총성이 울리니 일이 틀어진 것을 눈치챘을 것이고, 섣불리 날 구하겠다고 나오다가 변을 당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탱커가 튼튼해도 좀 덜 다친다는 것뿐이지 총 앞에 장사있나.
구경이 작은 권총 정도라면 모를까, 라이플이면 5.56밀리 탄이라도 한 발 한 발에 목숨이 위험한건 탱커나 일반인이나 다를게 전혀 없다.
물론 진짜로 내 목숨이 위험했다면 나 사는게 우선이지 남 위험한거 배려할 틈이 어딨겠어.
저렇게 소리지른건 다 마지막으로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총알을 막는 방어막에 당황했는지 움찔하면서도 놈들은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아예 연발로 죽 긁었다면 수 초만에 한 탄창이 동났을테니 재장전 시간이라고 벌 수 있었을텐데, 조금씩 끊어쏘다보니 3초가 지나 방어막이 꺼졌을때도 사격을 계속되고 있었다.
“허억.”
“지호야!”
몸통을 총알이 꿰뚫고 지나가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배를 뚫은 총알은 내장을 헤집고 지나갔고, 가슴을 뚫은 총알은 심장을 관통해 터뜨렸다.
와, 저 새끼, 명사수네.
허억, 하고 헛숨을 채 온전히 내뱉을 틈도 없이 나는 그대로 즉사하여 고꾸라졌다.
그래, 즉사.
심장에 총을 맞았으면 즉사하는게 맞는거지, 인간적으로.
고꾸라진채로 전혀 통제할 수 없는 몸의 여전한 감각을 느끼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필름이 끊기듯 생각이 툭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걸 보니 다행히 수호자의 맹약 아이템의 패시브 효과가 정상적으로 적용되는 것 같다.
약 2초 가량의 경직이 끝나고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나는 꿈쩍않고 있었다.
에테르 쉬프트의 쿨다운까지는 아직 십여초나 더 기다려야 한다.
저 놈들, 설마 멀리서 시체에다 대고 총을 더 쏘지는 않겠지?
불안한 마음에 머리를 들고 싶었지만 꾹 참는다.
다행히 내 도박은 성공해서, 곧 풀을 밟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놈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확인사살을 하더라도 가까이 와서 하는게 맞지. 잘 생각했어, 이 새끼들아.
영겁과도 같은 몇 초의 시간이 지나고 에테르 쉬프트의 쿨타임이 다 돌았다.
번쩍 고개를 드니 거의 50여미터까지 접근했던 놈들이 기겁하며 다시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늦었지.
나는 이미 40여미터의 거리를 건너뛰어 놈들의 코 앞까지 쉬프트해 있었다.
동시에 에테르 블레이드가 한 놈의 목을 날리고, 빗나가기도 쉽지 않은 근거리 사격으로 권총탄을 얻어맞은 다른 한 놈이 뒤로 쓰러져 피거품을 물고 게르륵거렸다.
“쯧, 살기는 글렀네. 심문도 못 하겠어.”
“깜짝이야! 아니, 형! 내가 꼼짝말고 엎드려 있으라고 했잖아요!”
“어떻게 그러냐, 총소리 들린 것 부터가 일이 뭔가 틀어진건데. 저 두 놈 중에 한 놈이 탐지계열의 이능력을 갖고 있나보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사격솜씨를 보니 제대로 훈련받은 것 같던데...”
“응? 야, 겨우 그 정도 거리에서도 못 맞췄는데 훈련을 받긴 개뿔... 응? 잠깐.”
아, 윤기정은 내가 총에 맞지 않았으면서 맞은 척 연기를 해서 놈들을 속여넘겼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수십미터 이상의 거리에서 봤으니 그렇게 착각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
그는 피로 젖은 내 상의를 그제야 주목하고 말끝을 흐린다.
심장이 관통되며 폭발적으로 뿜어져나온 피 탓에 출혈량이 상당해서 상의가 다 젖는걸로도 모자라 미처 다 배어들지 못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 이게 말이죠...”
“일단 여기서 벗어나자. 지구로 넘어가서 본사에 보고하고 치료도 받는게 우선이니까. 음, 이번 일 다 끝나면 할 말이 참 많겠네. 연구소 사람들이 좋아하겠어.”
“별 거 없어요. 그냥 새로운 이능력 하나 더 각성한 것 뿐인데...”
“이능이 무슨 음료수도 아니고, 자판기에 동전 넣으면 하나씩 뚝딱 나오는거냐? 하아...”
어깨의 총상 때문에 고통스러운건지 배가 아파 못 견디는건지 모를 표정이다.
피거품을 물던 적은 폐에 피가 차올라서 질식했는지 그새 숨이 끊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