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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화 〉1부 (42/110)



〈 42화 〉1부

꽤 많은 물동량이 오가는 동쪽 절벽 근처의 동굴에 접근한 나는 저들이 쉴새없이 동굴 안에서 중앙 연구소로 옮겨오는게 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트럭에 가득 실린 돌덩이들... 아니, 잠깐. 저거 마석 아냐?
곧바로 알아보지 못한건 내가 아는 마석과 형태부터가 달랐기 때문이다.
마석이라고 하면 괴수의 심장이나 기타 주요 장기 부근에 생기는 결석같은건데 말이야.
지금 트럭에 실려나오는 돌덩이는 빛깔은 마석인데  크기가 무슨 사람 몸뚱이만하다.
저만한 결석이 장기에 생겼는데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는 괴수가 있을까.
아니, 물론 거대 괴수라면 불가능한건 아닌데...
거대괴수에게서 나온 마석이라면 저렇게 트럭에 실어나를 정도로 양이 많을 리가 없잖아.

“광산...”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니까 저 안에, 마석 광산이 있다는거다.
목숨걸고 괴수를 잡아서 시체를 해체할 필요 없이 그냥 땅에서 캔다고? 마석을?
활용가능성이 무궁무진해서 국가에 따라서는 아예 전략물자로 구분하는 곳도 있는 신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길이 열렸다는거다.
우리나라는 고사하고 그냥 아무 상관없는 제 삼국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해주겠지만...
일본이?
다른 나라도 아니고 수없이 부딪히던  밉살스러운 이웃, 아니 원수가?
이건 역시  그렇지.
거대한 마석 덩어리들을 짐칸 가득 수북하게 쌓아서 오가는 트럭들을 사진 안에 담았다.
플래시도 안 터지고 촬영음도 나지 않는 카메라라서 발각될 위험은 없었다.


충분한 양의 사진을 찍은 나는 광산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가까이 가보니 멀리서 보던 것보다 체감상 입구의 크기가 더욱 컸는데, 아예 물류 집적소처럼 설비를 잘 갖추어놓고 안쪽으로는 레일까지 놓여있었다.
안쪽에서부터 레일을 타고 작은 열차가 마석을 가득 싣고 오가는 모습과 그걸 익숙하다는  트럭에 옮겨담는 인부들의 동작을 보니 이건 하루이틀  일이 아닌 것 같다.
주변을 한차례 둘러보고 눈치를 보다가 안으로 들어가는 열차 위로 쉬프트하여 몸을 실었다.
정해진 레일 위만 달리는 열차라서 그런지 무인으로 운용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거 대체 깊이가 얼마나 되는거야? 시기를 감안해보면 길어야 한 달 전일텐데...”

일본 정부에서 마석을 무제한으로 쏟아냈다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나 일본은 풍요로운 남부평원 근처에 열린 게이트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게이트 보유국들 중 마석수출량이 별로 많지 않은 편에 속했다.
그러니 이 광산을 발견하고 개발한건 분명 예전에 협곡 기지가 습격당한 이후 분지 안을 청소한다는 명목으로 자국 헌터들을 모았던 일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아니, 잠깐. 그럼 그 헌터들은?
분지 안에서 새로 생긴 괴수군락을 토벌하고 있다는 일본 헌터들은 다 어디로 간거지?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상황에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나는 광산의 전경을 꼼꼼하게 찍었다.
레일은 오래지않아 광산의 최심부에 이르렀다.
솔직히 나는 탄광의 이미지, 그러니까 시커멓게 때가 찌든 얼굴로 곡괭이질을 하는 지친 광부들을 떠올렸지만 막상 채굴이 이루어지는 모습은 놀라우리만치 깔끔하고 체계적이었다.
천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한 기둥과 벽이 떠받치는 가운데 처음 보는 기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간단히 벽을 부수면 인부들이 그 조각들을 모아 측정기 안에 부어넣는다.
그러면 같은 작업복을 입었지만 한눈에 봐도 육체노동자가 아니라 두뇌노동자임을 짐작할 수 있는 다른 기술자들이 측정기를 다루어 순도를 파악하고 일정 기준에 따라 분류한다.
이런 작업이 물 흐르듯 끊기지 않고 진행되었는데, 잠깐 사이에 마석이 수북하게 쌓여갔다.
나는 그 옆에서 소리없이 다만 사진을 찍는데 열중했다.
이 놈들 이거, 우리가 밖에서 고생하는동안 안에서 꿀을 빨고 있었구만?
오크들의 습격 이전에 나갔던  원정때 사냥한 괴수들을 해체해 부산물로 마석을 한 자루 정도 얻어내고는 수확이 짭짤하다며 좋아했던게 다 억울해진다.

광산 안에는 더 이상 확인할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나는 열차가 다시 마석으로 가득 차는 것을 기다렸다가 그걸 타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일본 정부에서 은폐하고 있던 마석 광산을 발견한건 큰 성과지만 아직 부족해.
거짓말로 외국 기업들을 불러모아 계약에 없던 위험을 떠넘겼다고 주장할 정황근거가 되긴 하는데, 막상 자기네 영역 안에서 광산개발을 한게 무슨 잘못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무엇보다도 이례적으로 소집한 자국 헌터들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도 아직 모르고.
우선 중앙에 있는 연구소로 보이는 건물로 들어가 정보를 모아봐야겠다.


마석을 싣고 출발할 준비를 하는 트럭 위로 쉬프트하면서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요정의 숲으로 나갔던  번째 원정도 그렇고, 어째 한번 외계로 원정을 나왔다 하면 계획한대로 무난하게 끝나는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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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을 실은 트럭이 십여분을 달려 도착한 중앙의 건물은 역시 연구소가 맞는 것 같았다.
입구에 위병소를 세워놓고 검문을 하는데, 별로 철저하지는 않았다.
하긴, 아까 봤던대로의 간격이라면 하루에도 십수번씩 오갈텐데 그런 일상적인 출입을 두고 매번 철저하게 검문을  리가 없지.
혹시나 해서 위병소 안쪽으로 에테르 쉬프트를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트럭의 짐칸에 편안히 앉은채로 통과하여 집적소까지 그대로 갈 수 있었다.
주변에 산더미처럼 쌓인 마석을 보니 군침이 돈다.
나중에 나올 때 두어주먹쯤 집어서 배낭에 넣어도 티가 전혀  나겠는걸.

마침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듯  무리의 직원들 뒤에 따라붙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직원카드를 찍고 통과하는 곳에 공항게이트처럼 감시장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엑스선에 잡히지 않는건 이미 시험해서 알고 있지만 혹시 적외선 장비일지도 모르니까.
물론 시야가 닿고 빈 공간이 있는 이상 에테르 쉬프트로 순간이동을 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인게임에서도 넉넉하게 느껴지던 40미터라는 거리는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장거리였는데, 이렇게 실내로 잠입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그나저나 대단하네.
이거 컨테이너 가건물이 아니라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제대로 된 건물이잖아?
운송역량이 아무리 충분하더라도 게이트 너머로 자재를 옮기는 비용은 만만치 않을텐데, 이만한 규모의 연구소를 꾸리는데 얼마나 많은 돈과 노력이 들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어디보자, 이 놈들이 무슨 역적모의를 꾸미고 있나.
몰래 들어온 것이니 잠겨있는 곳을 부수고 쳐들어갈수는 없지만 이걸로도 충분하다.
아예 모든 방을 다 들어가볼 생각으로 활짝 열려있는 가장 앞쪽의 연구실부터 발을 들였다.
음, 여긴 사무실처럼 꾸며놨군.
컴퓨터  대와 캐비넷 두어개, 책상  개가 자리한 그다지 넓지 않은 사무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아마 점심을 먹으러 나가서 아직 들어오지 않은 것 같았다.
전장과 벽을 꼼꼼히 훑었지만 이 안에까지 폐쇄회로 카메라를 설치해놓지는 않은  같다.
허벅지에 달린 주머니의 지퍼를 열고 이동식 저장장치를 하나 꺼내면서 입맛을 다셨다.
이럴줄 알았으면 더 넉넉하게 가져올 것을.
일본어로 된 자료를 내가 본다고 알아보기도 힘들테니 그저 용량이 허용할때까지 되는대로 옮기고 운이 따라주어  중 중요한 자료가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뭐, 혹시나 해서 가져오긴 했는데 정말로 쓰게 될 줄은 몰랐으니 이만하길 다행이지.

“그나저나 이거 일이  이상하게 됐는데...”


가장 앞쪽에 있는 컴퓨터의 단말에 저장장치를 꽂고 드라이브를 통째로 복사한 뒤 책상에 놓인 서류들을 무작위로 펼쳐 사진찍으며 중얼거렸다.
복사한 흔적이 컴퓨터에 기록으로 남겠지만 그건 어쩔  없지.
내가 무슨 프로그래머나 해커도 아니고, 그런것까지 신경쓸 수는 없다.
애초에 분지 안으로 잠입하기로 했을 때 기대한건 대강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챌  있는 사진을 찍어가는 정도였는데 일이 상상 이상으로 잘 풀린다.
이럴줄 알았으면 아예 본격적으로 준비를 해서 올걸 그랬어.

“오, 벌써 끝났어? 컴퓨터 좋은거 쓰나보네. 일본 애들은 IT쪽 신경 안 쓰는줄 알았는데.”

나지막히 휘파람을 불며 복사가 끝난 저장장치를 분리해 다음 컴퓨터에 꽂고 있으니 스스로의 모습이 마치 첩보영화에 나오는 스파이라도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사실 첩보요원이 별  있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거지 뭐.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어쩌면 순간이동과 은신같은 이능력이 생긴 순간부터 언젠가는 이런 식으로 활용하게 되는게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컴퓨터의 경우 안타깝게도 안에  자료를 완전히 복사할 수 없었다.
아직 가져온 이동식 저장장치는 두 개나 더 남았으니 용량 문제는 아니고, 사무실 바깥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걸음소리와 인기척이 들렸던 탓이다.
급히 장치를 분리해 주머니에 넣고 서류도 대강 모아서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넣었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 기억력과 눈썰미가 좋다면 뭔가 이상하다는걸 눈치채겠지만 없어진게 없다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의심을 덮어둘 확률이 높을 것이다.
열린 문을 실수로라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방을 빠져나오니 저쪽에서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하나씩 들고 다가오는 직원들이 보였다.


그렇게 건물 1층에 위치한 사무실 예닐곱개를 훑었지만 달리 특이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아니, 따지고보면 평범하다는 점이 오히려 수상한거라고 봐야겠지.
마석광산의 관리에 대한 사무를 처리한다기엔 건물의 규모가 너무 크거든.
운이 좋게도 때마침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들어와서인지 사무실을 돌며 여유롭게 자료를 챙길  있었으니 그 자료들 중 쓸만한게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밖에서 보니 3층까지 있던데, 설마 2층과 3층도 다 이런 식인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진짜로 큰 마음 먹고 광업회사를 여기다가 세운  뿐인가? 아니지, 그럼 수천이나 되는 사라진 헌터들이 말이 안 되는데.”


군락 토벌을 한다고 끌어모아놓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 헌터들이 어디서  하고 있을지 고민하면서 아까 보아둔 계단쪽으로 걷던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저긴 아무것도 없는 빈 골목인데, 없던 사람이 생겼네?
내가 생각에 잠겨 걷느라 잘못 봤나?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렴 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저 좁은 귀퉁이에서 무려 대여섯명이 줄줄이 나오는걸.
빈 골목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사실 감춰진 통로가 있다는걸 나는 어렵잖에 알아차렸다.
굳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모두 지나간  그들이 나온 곳으로 들어가 벽면과 인테리어 등을 살피다가 큰 그림으로 위장된 문이 있다는걸 발견하고 잠시 고민했다.
이걸 열고 들어가는건 너무 위험한데.
공교롭게도 오래지않아  고민을 해결해줄 사람이 등장했다.

“젠장. 미리 인수인계한 것도 아닌데 왜 나보고 그러는거야? 비열한 자식.”


아까 여기서 나와 지나간 무리 중 한 녀석이 멀리 뻗지는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씨근덕거리며 제 상사를 욕하며 빠른 걸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칙쇼니 바카니 하는 등의 욕설이 쉴새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솔직히 좀 희극적이다.
안에서  잊고 나와서 챙기러 돌아가나본데, 나로서는 참 고마운 일이었다.
벽에 걸린 그림을 젖히고 벽으로 위장된 문을 여는 녀석의 뒤를 빠르게 밟았다.
솔직히 손이나 눈을 카메라에 대고 지문이나 홍채를 인식해 삐빅거리며 자동으로 열리는 광경을 기대했는데, 그런 영화에나 나올법한 보안체계를 구비해놓을 여유는 없었나보다.
비밀문을 지나니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이어졌다.
아, 역시 지하로 파놓은건가.
점점 더 수상해지는데.
가져온 저장장치의 용량은 이미 가득 찼으니 사진으로 찍어갈 수밖에 없다는게 아쉽다.
회전계단을 약 한 층하고도 반 정도 되는 깊이로 내려오니 지하의 실험실이 보인다.
날 여기까지 안내한 녀석은 가장 가까운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나와서 허겁지겁 도로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가 계단 위로 완전히 사라진 후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두근대는 심장을 다스렸다.
우선 저 관리실에 들어가 서류들을 챙기는 것부터 시작할까?


“크라아악!”


 순간, 안쪽에서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쇠로 쇠를 긁는듯한 소리 절반에 가래끓는 사람 목소리를 절반 섞은듯한 기이한 소리다.
나는 이런 소리를 바로 며칠 전에 들어보았다.
협곡 기지를 뚫기 위해 몰려왔던 오크 놈들이 딱 저런 소리를 질러댔잖아.
곧바로 소리를 따라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역시 비명을 지른건 오크였다.
강철로 된 케이지 안에  마리 혹은 두어마리씩 나뉘어 갇힌 오크들 가운데 한 녀석이 배를 움켜쥐고 고통에 차서 비명을 지르며 굴러다니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오크들은 각자 케이지의 철장을 꽉 쥐고 안타까운 눈으로 그걸 바라본다.
개중에는 아예 묶여서 채혈을 당하는 놈들도 있다.
심지어 자세히 보니 채혈을 당하고 있는건 죄다 어린 오크들 뿐이었다.

와, 진짜 이웃나라라고 있는 것들이 죄다 뒤로 호박씨를 까고 있었네.
중국 놈들은 고블린을 도와 페어리들을 잡아와서 인신공양을 하지를 않나, 일본 놈들은 아예 자기들이 주도적으로 연구소를 차려놓고 생체실험을 하네?
 오크들을 어디서 잡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괴수군락을 토벌한다며 사라진 일본 헌터들이 지금 어디에 동원되고 있는지는 안 봐도 알 만 했다.
이종족들에게 인권을 적용하는게 도덕적으로 맞는건지 어떤지는 판단하기 애매하지만 페어리들과 교류를 한 입장에서 아무래도 거부감이 먼저  수밖에 없다.

가만, 혹시 한국 정부도 민간에 비밀로 무슨 구린 짓을 하고 있는건 아니겠지?
 그야  우리나라 믿지, 믿는데... 중국이고 일본이고 나름대로 현대국가라는 것들이 외계에 나왔다고 서슴없이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 우리만 아닐거라고 확신을 하기가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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