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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화 〉1부 (40/110)



〈 40화 〉1부

이번 습격을 방어하는데 있어서 오닉스 3팀, 정확히 말하면 용맹하게도 홀로 적진에 기어들어갔던 내가 가장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팀장은 공치사를 흡족하게 들으면서 기지 관리관을 숙소 건물 안으로 초대해 차를 권했다.
질 좋은 차는 아니지만 티백의 포장부터 나름대로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자랑하는 홍차를 홀짝이면서 관리관은 몇 가지 서류를 꺼내들고 설명을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야말로 감사하죠. 우리 기지를 여러분들이 구해주신거나 다름없는데요.”

그는 이번 오크들의 습격에 맞서 기지를 방어하는데 기여한 모든 팀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준비할 것이며 특히 전리품 분배에서 오닉스 헌터즈를 최우선으로 배려하겠다고 했다.
어... 오크? 그렇게 이름을 지었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럭저럭 어울리는 이름이긴 한데, 네이밍 센스가 우리 사장님과 별로 다를게 없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름이야 어떻게 짓든  바 아니긴 하지만.
너무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오크들의 습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게 좀 우스웠다.


“큭큭큭, 지호야, 들었냐? 오크래. 가만, 아니지. 어쩌면 저 아저씨가 즉흥적으로 정한 이름이 아닐지도 몰라. 그렇다기엔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잖아. 마치 당연한 보통명사처럼.”

관리관이 돌아서자마자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오크라는 네이밍에 풀썩 헛웃음을 터뜨리던 강경호 팀장이 문득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의혹을 제기한다.
듣고보니 그럴듯한 의혹이라 나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까 생각했던 의문점을 공유했다.


“그렇네요. 그러고보니 저 이종족들, 아, 그러니까 오크들이 우연히 몰려왔겠어요? 누가 봐도 명확한 묙적의식을 갖고 협곡을 넘기 위해 달려들던데. 그리고 마침 폐쇄적이고 자국 헌터들 우선시하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울 일본 정부에서 답지않게 외국 기업들에게 구애를 했고.”

“음, 저 놈들, 일이 이렇게 될 걸 미리 알고 있었다고 봐야할까?”

“에이, 설마요. 그래도 알고 있었다고 하는건 좀 그렇고, 대충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짐작은 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굳이 표현하자면 미필적 고의?”


 단위의 총 병력 수에 비하면 패주한것치고 피해가  편이 아니지만, 그래도 오크들은 왕성하게 공격하다가 왕 혹은 사령관을 잃고서야 수백 단위의 시체를 남기고 물러갔다.
그 놈들 인구가 몇이나 될지는 몰라도, 이 협곡을 지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고 봐야겠지.
그  문 밖으로 나갔던 관리관이 잊고 전달하지 않은 말이라도 있는지 다시 들어온다.

“뭐 다른 용건이라도 있나요?”

“저, 그게... 최지호 헌터가 홀로 기지 밖에 나갔다 오신 일 말입니다만...”

“예? 그게 왜요?”


“그 과정에서 사용하신 이능력에 대해  가지 여쭐게 좀 있습니다. 가시광선을 완전히 투과시키는 투명화 능력이 맞습니까? 따로 제한사항같은건 없나요? 유지력은 얼마나 됩니까?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저희가 정밀측정을 해서 안내를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일본의 이능력 연구소는 세계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니 최 헌터께도 큰 도움이 될...”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라니, 당연히 실례지 이 아저씨야.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제안이라고 생각하냐.
계약할 때 이미 이름과 사진, 소속을 포함한 기본적인 신상정보는 제공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이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의무가 없다.
사실 두  이상의 복수 이능력을 가진 것만 해도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일이니 비장의  수가 될  있었는데, 이건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거기서 한 칼 숨기고 있는다고 희생자를 낼 순 없잖아.
여기까지는 팀장도 암묵적으로 동의한 사항이지만 아예 이능의 상세 스펙을 설명하라고?
이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강경호 팀장이 불쾌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어 가로막으며 그를 사납게 노려본다.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신일그룹에서 운영하는 오닉스 헌터즈의 이능연구소가 다른 곳만 못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관리관님, 용건은 그게 전부입니까?”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결코 귀사의 역량을 얕보려던건 아니었습니다. 사과드리죠. 음, 그래도 최지호 헌터의 투명화 이능에 대해서는 정보를 제공해 주셔야겠습니다.”

“저희가 싫다면요? 댁들이 무슨 권리로 그런걸 요구합니까? 은혜를 원수로 갚는거야 뭐야.”

“저, 그게, 하이난 협정에 의거하면...”

강경호 팀장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입을 우물거리다가 말이 나오지 않는지 뒷목을 잡는다.
하이난 협정이라면 나도 학교에서도 배우고 훈련소에서도 교육받아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
게이트 시대의 초기에 이능력을 이용한 연쇄살인 사건이 있었다.
위력은 미약하지만 발현 사정거리가 자그마치 400미터 이상이나 되는 염동력으로 사람을 암살하고 다니던 초능력자가 있었는데, 그저 흔한 심장마비 사망사고로 묻힐뻔 하다가 유능한 수사관이 이능력 측정기기를 활용해서 함정을 파 증거를 잡았었지.
몹시 흥미로운 사건이라서 소설이나 미디어믹스로도 여러번 다루어진 사건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능력자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규정의 정비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형법을 수정하는건 각 나라에서 알아서 할 일이었지만 범죄에 악용될  있는 이능을 지닌 초능력자의 국가간 이동 등에 있어서 국제법을 정립할 필요가 있었고, 하이난 섬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맺어진 협약을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비준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그 협약을 지키라고 요구하는건 전혀 이상할게 없는 일이지만, 문제는...

“아, 그러니까 지금 오닉스 소속 헌터를 범죄자로 몰아가겠다는겁니까?”

그 협정에 의거해서 정보공유 요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무례로 받아들여진다는거지.
대낮에 코앞에서도 눈에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은신을 사용했으니 명분이야 있다.
스파이 행위라거나 도둑질에 활용하기에도  좋은 이능이니까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우리가 대응할 수 있도록 스펙과 한계를 제출해달라고 하면 흠잡을덴 없지만...
그래도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방금 수만 대군 사이에 단신으로 들어가 적장의 목을 따고 기지 전체를 구했는데?


“범죄자라뇨. 꼭 그렇게 극단적으로 받아들이실건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뇨, 어떻게 표현하더라도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군요.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자세한 스펙을 작성해서 공유해드리죠. 이만 나가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모쪼록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아 나가라고!”


강경호 팀장이 화가 많이 난 것 같다.
기지관리관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어떻게든 변명을 해보려고 하지만 차갑게 말을 끊는다.
저 아저씨도 그냥 공무원인데 당연히  위에서 시켜서 하는 일이란건 알지만 원래 이런건 중간에 끼인 사람이 욕받이를 하게 되는 법이다.
목적을 완수한 관리관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허겁지겁 숙소건물을 빠져나간다.
강 팀장이 씩씩거리면서 그답지 않게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로비의 소파 앞 테이블 위에는 반쯤 마신 홍차가 미지근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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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따져보면, 저들이 요구하는대로 은신이능, 그러니까 에테르 폼에 대해 오닉스 연구소에서 파악한 사항과 팀원들이 실전에서 겪으며 느낀  등을 상세한 보고서로 작성해 일본 정부에다 넘겨준다고 해서 당장 무슨 큰 일이 벌어지는건 아니다.
내 두 번째,  번째 이능력에 관한 자료는 지금까지 오닉스 연구소 안에만 머물렀지만 사실 국내법 상으로도 정부 기관에서 요구하면 이능력자에 관한 자료를 제출하는건 거부할 수 없도록 되어있으니까 딱히 기밀유출이라는 것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이건 아냐. 젠장, 이능관리부에 말해서 조치 취하고 기자 통해서 공론화도 해야 해.”

“당연히 그래야죠! 미친 놈들이, 우리가 아주 물로 보이나본데.”


급히 모여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들은 팀원들은 하나같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동료의식도 동료의식이지만 이건 그 이전에 자존심이 달린 문제였던 것이다.
일단 저쪽에서 그렇게 나온 이상 거부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게 더욱 화를 부채질한다.
이능관리부를 통해 정부 차원에서 가벼운 외교적 항의를 한다거나 기자를 불러 해외언론을 통해 기사화를 한다거나 하는 보복방안이 중구난방으로 입에 올라왔다가 사라진다.
불가능한 일들은 아니었다.
오닉스, 나아가 신일그룹 차원에서 나서면 공론화를 하는  정도는 일도 아니지.
한참을 그렇게 씩씩대며 브레인스토밍을 하다가 문득 박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이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요?”


“아 그렇잖아. 쟤들도 바보는 아닌데, 굳이 이렇게 무리한 시비를 걸 이유가 없지. 여기 외국 헌터들도 잔뜩 있잖아. 지금 한창 우리 지호한테 고마워하고 있을텐데 이런 타이밍에? 일본 애들이 외국, 특히 서양쪽 시선 엄청 신경쓰는거 다들 잘 알잖냐.”


“에이, 그거랑 그거랑 별개죠. 나랏일인데.”


“나랏일은 지랄. 객관적으로 봐도 그냥 꼬장부리는거지. 내 말은, 뭔가 숨기는게 있지 않겠냐는거지. 긁어 부스럼이라는걸 알만도 한데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확인해야 할게 있다는거야.”


“에이, 일본 애들 원래 저래요. 완전 꽉 막힌 관료제 국가라서. 아마 매뉴얼에 있었나보죠, 등록된거 말고 다른 이능 있는 헌터 있으면 협정 들이밀고 보고서 받으라고.”


물론 그 자체로도 상당히 무례한 일이긴 한데, 지금 내 상황처럼 기지가 적의 습격에 휩쓸려나갈 위기에서 구해낸 영웅에게 하는 말만 아니라면 어떻게든 납득할만한 수준이다.
특히 일본 정부는 서구 국가들 말고는 은근히 무시하며 깔아보기로 악명이 높으니까.
이번 의뢰를 수용한 기업들을 국적 기준으로 내부적으로 분류해 놓았다면 한국 국적의 오닉스 헌터즈는 꽤나 낮은 쪽에 분류되어 있을테니 매뉴얼에 따라 요구했다고 보면 아귀는 맞는다.
저 놈들 융통성 없는거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까.
그러나 그 의견은 우리 중에서 가장 경험이 많고 노련한 강 팀장이 고개를 흔들며 부인했다.

“아냐. 그래도 좀 이상해. 가만, 혹시 저 놈들, 안쪽에  숨기는거라도 있나?”


“숨기는거요? 아니, 기지 안에 돌아다니는건 아무런 제지가 없던데요. 어제 복귀하고 잠 안 와서 산책 잠깐 했는데, 다른 나라 헌터들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던데.”

“여기 말고. 분지 안에. 이 기지가 협곡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딱 막고 있는 위치잖아. 음, 맞아. 역시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홋카이도 게이트 근처와 남부 평원은 평소에도 값진 사냥감들이 널려있는 금광이나 다름없는데 통과세도 깎아주고 추가로 의뢰비까지 줘가면서 외국 헌터들 부르는게 이상하다 싶었거든. 분지 안에 좀 부담스러운 괴수군락이 있어서 토벌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해도 말이야. 그럼 외국 기업한테 토벌의뢰를 하면 했지, 굳이 공백 감수하고 자국 헌터들 모아서 고생할 이유가 없잖아.”

“어... 듣고보니 그런 것도 같네요. 일본 정부가 갑자기 책임감이 넘쳐서 그랬을리도 없고.”


국익이 걸렸는데 도덕 따지는 나라가 많지 않은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중에서도 일본 정부는 책임 회피로 여러번 곤욕을 치러 악명이 높다.
자기네도 나라의 신용에 타격이 가는걸 알겠지만 뭐 어쩌겠어, 일선 공무원들이 책임을 미루고 복지부동하는게 그쪽 문화인데 하루아침에 체질을 확 바꿀 수 있는건 아니잖아.

“내 예상은 이래. 저 분지 안에 뭔가 있다. 아마도 오크들과 관련이 있을거야.”

“풉. 오크요?”

“아, 못 들었지? 저 징글징글한 이종족들을 오크라고 명명하기로 했대. 좀 웃기긴 한데, 페어리나 고블린 생각해보면 막상 우리가 뭐라고 욕할건  되는 것 같고...”

가벼운 웃음이 좌중을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다.
그렇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우리 사장님 네이밍 센스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라고.
낄낄거리며 웃던 강 팀장이 웃음기를 채 지우지 못하면서도 진지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는 완전히 닫힌 문과 창문에 괜히 힐끔 시선을 주고 목소리를 낮췄다.

“요정의 숲에서 있었던 일 다들 봤잖아. 그동안 별  없다가 갑자기 한꺼번에 터져나오는게 공교롭다고는 생각하지만, 오크들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해.”

“그러니까 팀장님 말씀은, 분지 안에 있다는 괴수군락이 사실 오크들 마을이다?”


“글쎄, 그럴수도 있고. 아니면 놈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성지 비슷한 것일수도 있고. 고블린 놈들 봤잖아, 반쯤 미쳐서 눈 뒤집고 달려들던거. 그 놈들의 공간왜곡결계나 페어리들의 아티팩트처럼 오크들도 뭔가 오버테크놀로지를 갖고 있을지도 모르지. 일본 정부에서 그걸 발견하고 꽁꽁 숨기면서 독차지하려고 하는거라면 대충 이야기는 들어맞아.”


그럴듯한 추측이라 다들 고개를 주억거린다.
이 외계행성에는 우리가 아는 과학적 상식을 파괴하는 요소들이 널려있으니까.
고블린이나 페어리들처럼 오크들도 비록 겉보기엔 석기 후반이나 금속을 간신히 다루는 초기 청동기 정도의 문명수준으로 보여도 다른 방향으로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을런지도 모른다.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무슨 일인지 가서 보고 오면 되죠.”

“어?”

“오크들이 완전히 물러간건지 한번 더 들이칠건지는 몰라도 모든 상황이 마무리되면 다시 사냥을 나가야 하지 않겠어요? 사냥 나가는 원정대마다 일일이 감시를 붙일수는 없을테니까, 나가는척 하고 저만 따로 이능력 활용해서 잠입해볼게요. 누가 알겠어요?”

긁어 부스럼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잘 들어맞을수가 있을까.
그냥 잘 싸워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보상을 이것저것 후하게 안겨줬으면 아무 탈 없이 지나갔을텐데, 도둑이나 스파이로 의심을 했으니 그 의심에 걸맞는 대접을 해줘야 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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