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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화 〉1부 (37/110)



〈 37화 〉1부

푸르스름한 게이트를 넘어서 도착한 일본 전진기지의 첫 인상은 화려함이었다.
한국 전진기지에 비해 전체적으로 실용성보다 미관에 신경을 많이 쓴  같은 모습이다.
한번 둘러본 것만으로도 나는 이곳이 한국 전진기지보다 규모가 더 큰 것을 알  있었다.

“바로 협곡으로 출발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루 쉬면서 정비를 하시겠습니까?”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시간여유를 넉넉히 잡지 않고 왔으니까요.”

“하루이틀 늦는 정도로 뭐라고 할만큼 엄격하진 않습니다만, 좋습니다. 길잡이를 붙여드리겠습니다. 이 쪽은 사토 지로라고 합니다. 에이엔 헌터즈 소속의 실력자죠.”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길잡이를 붙여준다고 하기에 국가 소속 헌터를 붙여줄 것으로 여겼는데 민간 헌터다.
끌고 온 장갑차 안에 짐을 부리면서 강경호 팀장과 명함을 교환하면서 정중하게 숙이는 사토를 흘깃거리니 윤기정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내게 정보를 전해준다.


“에이엔 헌터즈라고, 일본에서 이계사업으론 원투하는데야. 우리도 신일그룹의 후원을 받고 있으니까 자금력에선 못할게 없지만 역사가  짧잖아? 근데 저긴 일본에서 두 번째였나 세 번째로 큰 게이레쯔가 초창기부터 지원해서 키운 회사래. 이번에 일본 애들이 새로 국유화한 협곡의 거점이 바로 쟤들 쓰던 전진기지를 헐값이 사들여서 만든거라던데.”

“어... 국유화요? 생으로 뺏겼다구요? 와, 그럼 정부에서 몇 푼 던져주고 뺏어다가 우리한테 맡긴건데... 쟤들 입장에선 우리가 곱게 보이지 않을텐데요?”

“그야 외국인들이 끼어들어 밥그릇에 수저 하나 놓는 꼴이니 얄밉겠지.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솔직히 우리가 무슨 잘못이냐? 다 자기들이 제대로 방어를 못 해서 사단이 난거고 제놈들 정부에서 먼저 의뢰한건데. 사실 우린 막차야. 늦게 온 편이지.”


기한에 늦지는 않았지만 아마 여러 나라의 여러 기업들이 먼저 가서 한창 기지를 중심으로 사냥을 하면서 꿀을 빨고 있을거라며 그는 킬킬대고 웃었다.
하긴, 저쪽에서 아쉬워서 제안한거긴 하지만 할 사람은 널리고 널린 달달한 의뢰였다.
정작 힘든 분지 군락소탕은 에이엔 헌터즈를 위시한 일본 기업들의 헌터들이 하고 우리와 외국에서 온 헌터들은 빈 자리를 잠시 맡아서 활동량을 유지하는 셈이니까.
통역인 사토 지로의 사무적이지만 겸손하고 예의바른 태도로 보아 저들도 납득은 한거겠지.
뭐, 사실 납득  했어도 일선 헌터들이 뭘 어쩌겠냐만.


일본 전진기지에서 예의 남부평원의 중심지에 있는 협곡까지는  십여시간이 걸렸다.
지원받은 차량 석 대로 팀원들이 전원 승차하여 빠르게 이동했는데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남부 평원이 얼마나 넓은지 짐작할만 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일본 정부에서 게이트 기지 부근의 안전이 위험하니 어쩌니 하면서 외국 기업들에게 의뢰를 돌린게 좀 이상하긴 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잡생각을 하기엔 달리는 내내 사방에 펼쳐진 푸른 평원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거든.
한국 게이트기지 근처의 평야는 황량하기 그지없는데, 이 놈들 이거 부럽네.
우리쪽엔 근처에 요정의 숲을 위시해서 정글지대가 제법 되고 일본 기지 부근에는 고원과 협곡, 분지 등이 꽤 있는데 어째 중간 평야지대의 풍경은 정 반대다.


“오, 저깁니까? 그랜드 캐니언이 생각나는 경치네요. 멀리서 봐도  정도면 진짜 높은건데.”

“이 행성엔 절경이 널려있죠. 저 황량한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안쪽의 분지는 또 수풀이 우거진 정글이거든요. 가끔 보면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생태계인가 싶기도 해요.”

“외계행성 아닙니까, 외계. 초능력이나 방어막부터 시작해서 이해 못 할게 한두가진가요 뭐.”


차 안이 답답해서 위쪽의 장갑판에 올라앉아 바람을 쐬다가 저 멀리 보이는 협곡의 입구를 발견하고 감탄하니 통역  안내자 사토 지로가 맞장구치면서 웃었다.
이런 광경이라면 여러번을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전진기지는 절벽으로 둘러싸인 협곡의 입구에 건설되어 있었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 무인감시초소가 있었고 바리케이드가 잔뜩 설치된 기지로 분지 안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길을 완전히 틀어막고 있는 모양새였다.


“어? 저기 절벽 한 가운데 무슨 공사를 하고 있네요? 좀 위험해보이는데...”


“안전에 충분히 신경쓰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인공동굴을 파서 포대를 들여놓고 토치카를 만든다고 합니다. 사실 저건 마무리공사죠.”


그 말을 듣고 보니 크레인에 매달려 위험하게 자재를 나르고 있는 부분 옆으로 십여미터 정도의 간격으로 대여섯개나 되는 총안구가 나란히 뚫려있는게 보인다.
토치카라니, 지금 여기서 무슨 전쟁준비라도 하나?
아니 뭐, 물론 괴수가 웨이브를 이루고 몰려오면 사실상 전쟁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건 아무리 봐도 대 괴수용으로 만든 요새가 아니라 대인용 요새에 가깝다.
이능력자의 초능력이 아니면 꿈쩍도 않는 방어막이 있는데 대포라니, 농담 이상은 못 되지.
 협곡 안의 분지에 무슨 꿀단지를 숨겨놨기에 저렇게까지 하면서 안달복달을 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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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닉스 3팀이 전투의 흔적이 아직 조금 남아있지만 그래도 머물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는 깨끗하게 정리된 콘크리트 건물  동을 배정받아 짐을 푼 것은 저녁때가 되어서였다.
강경호 팀장은 저녁식사 후 일찍 잠자리에 들 것을 주문했다.
다음날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사냥을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데 입구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 무슨 일인가 내다보니 서양인들이 웃고 떠들며 복귀하는게 보였다.
장갑차 위에 주저앉아 조끼 안에 금속 플레이트를 끼워넣던 윤기정은 잠깐 신체강화능력을 활성화하더니 그들의 옷에 붙어있는 패치의 문양을 알아보고 내게 알려준다.
프랑스의 중견 헌터 팀인 비탈 팀이라고 하는데, 배경 색이 붉으니 아마 1팀일 것이란다.
세어보니 머릿수는 열다섯, 아, 지금 막 차에서 내리는 사람까지 열 일곱이었다.
다들 무척 기분이 좋아보이는데, 아마 사냥에서 소득이 괜찮았나보지?
지금 이 시간에 들어오는걸 보면 하루 이상 일정으로 멀리까지 나갔다가 들어오는 모양이다.
그들도 부산을 떨며 출정 준비를 하는 우리를 발견했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준비  끝났습니다. 차량 세 대에 전식은 사흘분, 담수 150리터에 탄약은...”


한국 전진기지에 남은 보급관을 대신해 공격조장 박우진이 물자 현황을 보고한다.
의뢰받은 작전기간동안 필요한 물자는 일본 정부에서 전액 지원하기로 계약이 되어있어서인지 오늘 나가서 오늘 들어올 예정인데도 넉넉하다못해 넘치는 양의 물자를 준비했다.
저걸 끌고 갈 기름값도 다 돈이지만 뭐 어때, 이럴 때 남의 돈으로 호사를 부려봐야지.

거의 동이 트자마자 출발한 우리는 날이 환하게 밝아올때쯤  사냥감과 마주쳤다.
약 30여마리 정도 되어보이는 뿔소 무리다.
처음 발견한 일본의 헌터가 소라고 명명하긴 했지만 소보다는 고양잇과 맹수에 가까운 놈.
음, 무리지어 달려드는 폼이 미국의 버팔로 떼와 비스무리해서 그렇게 지었나?


“공격조 자유사격! 실더들 충돌 대비하고.”

비스듬히 세워놓은 장갑차와 철근으로 된 바리케이드 사이에 탱커들이 자리잡고 방패를 치켜든채 충돌에 대비해 몸을 긴장시키는동안 공격조의 화력이 전방으로 쏟아진다.
아직 15미터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은터라 나는 다만 침을 삼키며 때를 기다렸다.
방어진 바깥에 나가서 먼저  놈을 베어버린 후 에테르 쉬프트로 돌아올수도 있겠지만 그 계획은 쓸데없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며 즉시 반려당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임기응변으로 이뤄진다면 모를까, 지금은 별로 위급한 상황도 아니고.
타앙, 한수호의 저격이 선두에서 방어막을 잃은 괴수 한 마리의 대가리를 날린다.

“충돌한다! 버텨!”

“방패 들어! 승호 기준으로 좌우로 조를 나눠서 옆으로 흘려. 실수하면 공격조 다 죽는다!”

원거리 공격이능을 뒤집어쓴 뿔소들은  나쁘게 화력이 집중되어 방어막이 전부 상쇄된 선두의 한 마리를 제외하면 무사히 방어진에 들이받는데 성공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수백킬로그램짜리 덩치들이 충분히 가속해서 달려와 들이받는 저 충격력을 정면으로  받아내야 한다면 아무리 신체강화 이능력자라도 힘에 부쳐 피해가 나올법 했지만 숙련된 우리 탱커진은 후방 공격조가 위험하지 않도록 간단히 경로를 틀어놓는데 성공한 것이다.
나는 충돌 직전에 에테르 칼날을 뻗어 일격에 두 마리를 격살했는데, 충분히 가속이 붙은 뿔소들이 십여미터를 달려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1초 남짓밖에 되지 않아서 연격을 날릴수는 없었지만 두 마리 모두 앞쪽에서 달리고 있던터라 놈들의 예봉을 꺾는 효과는 확실했다.
충돌 후 마치 흐르는 물이 돌을 만나 옆으로 휘감아나가듯 뿔소들은 달려오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옆구리를 드러낸다.
옆구리에 연이어 공격조의 이능이 쏟아지고 하나둘씩 방어막이 옅어지다가 상쇄된다.
처음에는 높은 자리에서 저격을 하는 힐러 한수호가 피니셔를 맡았지만 데미지가 누적되어 한꺼번에 맨 몸을 드러내면서 너나할 것 없이 총을 쏴대며 뿔소들의 숨통을 끊었다.
나같은 경우엔 뭐, 화기로 마무리할 필요도 없었지.
에테르 블레이드는 방어막을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상쇄시키고도 조금도 기세가 죽지 않아 뿔소의 단단한 육체까지 두부처럼 썰어댔으니 총을 쏠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전투 종료. 부상자 없지? 기정아, 아직 살아있는 놈 있나 더블체크해. 수호야, 탄 소모량 종합해서 확인하고 알려줘. 우진아, 공격조 체력현황 파악하고.”

결과적으로, 서른마리 이상의 뿔소떼를 몰살시키는데는 겨우 십여분이면 충분했다.
총에 맞아 죽은 비교적 온전한 시체들 사이에서 목이 날아가거나 아예 세로로 두 쪽이 나서 내장이 흘러나온 시체들은 눈에 확 띄어서 굳이 세어볼 필요도 없었다.
대충  서너마리... 그럼 절반 정도를 내가 처리한건가.
숨이 붙어있는 놈이 있나 체크하면서 확인사살을 하던 윤기정이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쥔다.

“우리 지호, 대단한건 알겠는데... 이거 어떻게 안 되냐? 차라리 깔끔하게 목만 날리던가.”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요. 그리고 목만 날려도 피 엄청 나오는건 똑같을걸요.”

“내장 흘러나와서 똥냄새가 나진 않을거 아냐. 아 씨, 마석도 꺼내야 하는데...”

마정석을 찾아 채집하기 위해 처참한 피떡들 사이를 헤집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은가본데, 유감이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옆에서 칠 때는 목이나 심장같은데를 노려볼수라도 있지, 정면에서 무섭게 달려오는데 거기다 대고 어떻게 급소만 깔끔하게 골라서 도려내겠어?
흰 마스크까지 쓰고 고글을 내린채 투덜거리며 정리작업에 들어가는 윤기정을 보고 픽 웃으면서 탄산음료 하나를 꺼내 캔을 따면서 금속제 바리케이드에 기대어 앉았다.
윤기정은 막내가 팔자한번 좋다고 화를 냈지만 아랑곳않았다.
자기가 운 나빠서 매번 뒷정리 당번 걸리는걸 나보고 뭐 어쩌라고?
공격조에서도 운 없게 제비를 잘못 뽑은 당번 두엇이서 눈치를 보다가 합류하지만 그들이 하는건 어디까지나 잔심부름일뿐 진짜 힘 쓰는 일은 신체강화 능력자의 몫이었다.
탱커들이 비슷한 이능등급과 커리어를 가진 공격조원보다 전반적으로 더 높은 연봉을 받는건 이런 식으로 궂은 일을 더 많이 하는 값도 분명 있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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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소 이후로도 그날 하루동안 남부평원을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도합  번의 전투를 치렀다.
역시 듣던대로 괴수들의 밀집도가 높은 좋은 사냥터였다.
한국 전진기지 근처였다면 이렇게 자주 괴수무리를 맞닥뜨리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홋카이도 게이트에서 외국 국적의 헌터들에게 조금만 더 낮은 통과세를 물렸다면 아마 한국의 헌터들도 자국 게이트보다 이쪽을 더 많이 이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 수고많았다. 소득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괜찮았어. 일본 정부쪽에다 팔면 세금도 떼지 않을거라고 하니까 이번 원정은 두둑한 보너스를 기대해도 될거야. 자, 해산.”


값진 부산물만 골라서 싣고도 적재함을 가득 채워 돌아온 우리는 넉넉한 마음으로 해산했다.
내일 또 사냥을 나서려면 늦게까지 놀지는 못하겠지만 맥주 한잔 정도는 괜찮겠지.
협곡 거점은 게이트에 연결된 전진기지처럼 물자가 풍부하진 않았지만 헌터들의 정신적 전투피로를 풀기 위한 간단한 주류나 담배 등의 기호품은 그럭저럭 구비되어 있다고 했었다.
나는 컨테이너 가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는 보급소에 가서 신분증을 내밀고 맥주 두어 병과 오징어포, 육포, 땅콩 등의 마른 안주를 한 봉지 사서 돌아오다가 박우진과 마주쳤다.
담배를 피우던 그는 픽 웃으면서  끝으로 숙소건물을 가리킨다.


“일찍 자. 지금은 모를수도 있지만 연속으로  번이나 전투를 치렀으니 몸이 멀쩡할 리가 없어. 괜히 당장 괜찮다고 호기부리다간 내일 아침에 일어나지도  할걸.”


“알아요. 금세 먹고 잘겁니다.”


객기를 부리는게 아니라, 요새 나는 체력적인 문제로 큰 탈을 겪어본 적이 드물었다.
특히 젊은 나이 때문인지 회복력이 좋아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지가...
아니지, 오히려 중고등학교 다닐땐 아침마다 무거운 눈꺼풀 때문에 고생했는데?
어쩌면 레벨업 때마다 생명력과 기본공격력, 방어력 등이 소폭 오르는 게임 캐릭터처럼 내 체력과 근력도 조금씩 강화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에이,  먹고 잠  자도 생생하면 좋은거지  따지겠어 따지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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