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1부 (35/110)



〈 35화 〉1부

페어리 마을로 돌아온 우리는 기대했던대로, 아니 그 이상의 성대한 환영을 받았다.
아마 장갑차 뒤의 간이 트레일러에 실려 생전의 흉흉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집채만한  대가리가 페어리들에게 무척 깊은 인상을 준  같다.
다듬은 나무에 뾰족하게 깬 돌을 매달아 만든 창을 들고 있는 전사들 중 일부는 우리가 사냥한 뱀 괴수와 마주쳤던 경험이 있는지 턱이  떨어져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 돌아오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어디 다치신데는 없습니까?”

“사장님? 어떻게 직접 여기까지...”
놀랍게도 소식을 듣자마자 게이트를 넘었는지 입단식때 한번 봤던 오닉스 헌터즈의 전택영 사장이 직접 페어리 마을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 아저씨, 각성자긴 한데 전투경험이 없어서 외계행성에는 잘 안 온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오닉스 본사와 나아가 신일그룹에서 이번 일을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나보다.
전 사장은 강경호 팀장을 보고 달려와서 어릴적 잃어버린 형제를 수십년만에 다시 만나기라도  것처럼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며 야단을 부렸다.
 팀장의 어색한 얼굴을 보니 평소 그리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던  같은데.

“강 팀장님, 내가 강 팀장님 사랑하는거 알죠? 믿고 있었다구요. 젠장, 아티팩트라니, 이런건 상상도 못 했는데. 바라는게 있으면 뭐든 말씀만 하세요.”


“아... 네. 페어리 왕과 이야기는 다 된겁니까? 가계약만 해놔서 조만간 정식으로...”

“신일그룹의 이름으로 독점계약 했습니다. 크흐흐, 소식을 듣고 게이트 넘기 직전에 회장님한테 전화로 보고했는데, 그 노인네가 처음엔 무슨 헛소리냐는 식으로 반응하더니  어디 잘못되는건 아닌지 걱정될 정도로 흥분하더군요. 졸도해서 병원에 실려갔을지도 몰라요.”

“저, 사장님. 그런 표현은 조금...”

“아, 내 정신 좀 봐. 이쪽으로 오세요. 마을 영역 바깥에 따로 기지를 꾸려놨습니다. 아직은 가건물만 몇 동 가져다놓은 정도지만  한국 전진기지 못지않은 대규모 타운이 될겁니다. 샤워시설도 있으니까 우리 고생한 3팀원들 씻고 푹 쉬어야죠.”

“원정 보고부터 드리겠습니다. 우진아, 수호야. 너희가 팀원들 인솔해서 휴식하고 있어. 사장님, 페어리 왕에게 의뢰완수 보고를 하러 가야 하는데...”

목표물의 수급을 당당히 드러내고 왔으니 소식이야 진작에 들어갔겠지만 그래도 정식으로 보고를 하고 확인을 받아 못박아두는 절차는 중요하다.
특히 이번 원정처럼 예상 밖의 어려움을 마주하고 극복한 경우 생색을 내도 단단히 내야지.
전택영 사장이 강경호 팀장의 어깨를 한 팔로 감싸안고 개선장군을 맞이하는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페어리 마을 중심부로 들어간 후 우리는 휴식과 정비를 위해 마을 외곽으로 향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실어왔는지 몰라도 대형 컨테이너  동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다.
컨테이너의 배치를 보니 방어에 용이하도록 바리케이드처럼 배치하면서도 페어리 마을의 경계선과 붙은 쪽은 완전히 열려있어 오닉스 헌터즈의 각오가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본사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페어리들과 척을 지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오, 물탱크에 보일러까지 끌어다놨네. 여기까지 운송하는 것도 운송하는거지만 게이트 통과만 해도 한두푼이 들어간게 아닐텐데. 이야, 여기다 작정하고 알 박으려나보다.”

“페어리들에게 환심을 사려면 안전한 집 지어주고 먹을거 잔뜩 주는게 최고 아니겠습니까? 그러려면 필요한 물류량이 장난이 아닐겁니다.”

“그냥 교대로 지구에 데려가서 견학만 시켜줘도 다들 뻑 갈 것 같은데...”


“국제협정 있잖아요, 못 데려가죠.”
“아니, 그건 괴수들 넘어가서 혹시 지구에서 자생할까봐 그런거잖냐. 쟤들은 단계가  낮다고는 해도 엄연히 문명을 이룬 이종족인데 경우가 다르지.”

글쎄, 나도 바로 얼마전에 배워서 잘 아는데, 협정에서 금지하는건 종류와 이유를 불문하고 살아있는 생명체의 지구 반입이니까 힘들지 않을까 싶다.
게이트 통과 전에 사람이든 물건이든 죄다 멸균소독을 받는 절차까지 있거든.
괴수뿐만 아니라 채집한 식물같은 것도 말리거나 화학처리를 해서 가져가게 되어있으니까.
그래서 홋카이도 게이트와 연결된 일본 전진기지 같은 경우에는 기지 내에 살아있는 현지 생물들을 연구하는 연구소를 따로 설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이능력이 아니면 벗길 수 없는 보호막은 위협적이었다.
뭐, 이종족의 발견이 워낙 충격적인 일이니까 논란이 되면 국제연합 회의에서 페어리를 사람에 준하여 취급하는 예외조항 하나쯤 만들어주지 말란 법도 없긴 하지.


뜨겁게 데운 물로 샤워를 하면서 몸에 쌓인 땀과 먼지를 씻어내고 잘 마른 옷으로 갈아입으니 온 몸에 개운한 느낌이 돌아 세상이 다 달라보일 지경이었다.
짐은 전부 차량에 싣고 다녀서 홀스터와 방탄방검복을 제외하면 맨 몸으로 홀가분하게 다닌거나 다름없었지만, 역시 하루종일 숲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물며 중간에 목숨이 위험에 처하는 사건도 겪지 않았던가.
어쩌면 페어리들에게 선물받아 착용하고 있는 목걸이와 반지, 팔찌 등의 신비한 힘이 아니었다면 벌써 체력이 다해 탈진해서 널부러져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정이 형, 그거 진짜예요? 원정보너스 200퍼센트?”


“확실히 들었다니까. 사장님이 페어리 왕이랑 이야기하러 가기 전에 그렇게 말했대. 3팀 전원에게 인센티브를 세 배로 지급할 예정이라고. 연차따라 다르겠지만 지호 너도 어림잡아 천사오백은 가져갈걸? 아, 아닌가. S급이니까 오히려 나보다 몫이 더 많으려나?”


“뭐, 대충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 회사엔 수습기간같은 제도도 없잖아요. 스카우트한 분이 가장 먼저 유혹한다고 한 소리가 그거였는데. 큭큭큭.”

물론 그런 고생에 걸맞는 보상이 충분히 들어왔으니 우는 소리를 하며 불평할 생각은 없었다.
이제 갓 입사한 루키라서 연차는 모자라도 이능등급이 다르니 내가 윤기정보다 더 많은 분배를 받을텐데, 그럼 이천, 어쩌면 삼천 넘는 보너스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이 달분 월급과 원정 기본소득을 합산하면 억대를 훌쩍 넘는 액수가 통장에 찍히겠군.
가벼운 차림으로 탄산음료를 한 캔 들고 벤치에 걸터앉았다.
컨테이너 두 동을 오가며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요기를 하는 삼,사십여분 사이에 날은 급격히 어둑해져 하늘에는 어느새 지구와 전혀 다른 별자리들이 깔리고 있었다.
내게는 오히려 지구의 것보다 훨씬  익숙한 밤하늘이다.
그도 그럴게, 훈련소나 회사에서 독도법이나 별자리로 방향을 재는 방법을 배울 때 기준이 되는건 언제나 이 행성의 밤하늘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지구에서 캠핑하다 조난당할 가능성에 대비해서 배우는게 아니었으니까.
알파벳과 숫자로 된 삭막한 이름의 별자리 이름을 더듬거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콜라 한 캔을 다 마시고 노곤한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조금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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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 마을로 복귀한 다음날에 우리는 다시 게이트를 넘어 지구로 돌아왔다.
 괴수의 대가리를 선물받은 페어리 왕은 우리를 완전히 신뢰하기로 결심했는지, 아니면 겁을 단단히 먹어서 그런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전폭적인 협조를 보여주었다.

“오래 걸릴거라고 하더니 금세 왔네. 다행이다.  언제 건너가니?”

“아직 모르겠어요. 잘 먹었습니다.”

아버지는 예정과 달리 일찍 돌아온 것에 대해 무슨 일이라도 있나 걱정스러워 하셨지만 어머니는 그저 집에 돌아와 또 당분간 출퇴근을 한다는 것이 흡족하신 모양이다.
최초 원정과 이번 원정 사이에 일주일 정도 텀이 있었는데, 그 때 아침 아홉시가 넘어서 느지막히 출근을 했다가 저녁 여섯시가 되기 전에 칼퇴근을 해서 아침저녁 식사를 다 집에서 하고 여유롭게 여가생활을 즐기는 내 모습을 보면서 취직 잘 했다고 그렇게 좋아하시더니.

“셔츠가 구깃구깃해서 그게 뭐니? 잠깐 벗어서 줘 봐. 다려줄테니까.”


“됐어요. 제가 이거 입고 일할 것도 아니고, 어차피 가면 편한 옷으로 갈아입을텐데요.”


명시적인 복장규정도 없는데다가 다른 팀원들 보면 그냥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잘만 다녔지만 난 그래도 직장이라고 정장까진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복장에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첫 번째 원정에서 돌아왔을때부터 나는 주로 새로운 이능의 활용에 시간을 쏟고 있었다.
반복숙달을 통해 에테르 쉬프트와 에테르 폼에 익숙해진 것도 상처를 입고 도망친 거대괴수를 쫓아 동굴에 선두로 들어갈 때 자신있게 자원할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특히  스킬은 연속으로 연계될 때 활용도가 대단했다.
토글형 스킬인 에테르 폼을 활성화하는동안 증가하는 이동속도와 에테르 쉬프트의 꽤나  이동거리를 조합하면  기동성은 신체강화 이능력자들보다 오히려 훨씬 윗줄이었다.
오닉스 헌터즈 본사건물 근처의 정류장에 내려서 에테르 쉬프트로 거리를 좁히고 에테르 폼을 활성화한채로 빠르고 편하게 건물에 들어와 은신을 해제하니 먼저 사무실에 출근해서 원정 보고서를 쓰고 있던 박우진이 화들짝 놀란다.


“안녕하세요. 휴가  보내셨어요?”

“엇, 깜짝이야. 휴가라고 해봐야 사흘밖에 더 되냐. 그나마 이번엔 주말 안 낀게 좋았지... 그런데 지호 너는 오늘도 그러고서 온거야? 안 힘드냐?”


“체력이나 정신력 소모가 적은 종류인가봐요. 힘들어서 유지 못 하겠단 생각은 안 들어요.”

“하여튼 복도 많이 받았구만. 그만한 은신성능이면 유지력이 좀 낮아도 유용할텐데...”

에테르 폼은 인게임에서야 상대적인 선공권을 보장하거나 은신탐색 아이템을 강제할뿐 은신상태에서의 일방적인 연속공격이 불가능하다는  때문에 밸런스를 뒤흔들만한 위력은 없어서 소모값없이 온오프 기능만 달려있는 토글형 스킬이었다.
유지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그냥 무한이라고 봐도 되는거지.
심지어 내가 지금껏 얻은  가지 스킬을 연계하여 발동해보며 시험한 바로는 쿨다운만 잘 맞물리게 관리하면  스킬 사이에 별도의 발동 딜레이는 전혀 없더라.
애초에 쿨링 타임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생각하면 당연한거지만, 쿨타임과 별개의 모션 딜레이나 캐스팅타임 등으로 스킬의 연속시전을 제한하는 게임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감사하게 여겨도 될 일이었다.


“아무튼 유지력이 받쳐준다면 자주 쓰는게 좋긴 하지. 자기 이능력에는 완전히 숙련되는게 중요하니까.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인마, 내 간이 다 떨어지잖아. 기척  내고 다녀.”


지구에서 이능의 사용은 법령으로 통제되며 허가받지 않은 이능발현은 처벌의 대상이 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 그렇다는 뜻이었다.
하물며 공격이능도 아닌 보조이능은 범죄에 사용되었다는 정황만 없으면 사실 대놓고 일상적으로 쓰고 다니더라도 별로 빡빡하게 간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훈련장에서만 쓰는 에테르 블레이드에 비해  늦게 각성한 다른  스킬의 숙련도가 오히려 더 높아졌는데, 그에 비하면 저렇게 군소리를 듣는 것쯤은 가벼운 대가다.

“알았어요, 알았어. 아, 보고서 쓰시는거예요?”


“그래. 사후평가는 중요한거니까. 넌 어제 후딱 쓰고 치웠다며? 그런 식으로 가볍게 넘기면 안 돼. 이랬으면  좋았을거다, 이런 점이 부족했다, 신중하게 생각을 해서 써야지.”

“결과가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는데요 뭘. 훈련장 나가볼게요. 수고하세요.”

서랍에 넣어둔 라커룸 열쇠를 주머니에 챙겨넣고 사무실을 나섰다.
어제 일필휘지로 타이핑해서 한 시간도  되어 제출한 보고서에는 그저 원정 중 있었던 일을 타임라인에 따라 기계적으로 기술하고 뿌듯한 경험이었다고 마무리했지.
마치 책 줄거리를 베껴적고 ‘참 재미있었다’라고 한줄 덧붙이는 초등학생의 독후감 숙제와 같은 꼴이었지만 나는 물론이고 보고서를 받는 강경호 팀장도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사실 박우진도 공격조장으로서 직위에 따른 책임감이 있으니까 저렇게 머리를 싸매고 뭐라도 하나 덧붙이려고 고민하는거지, 애초에 일선 헌터에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었던 것이다.

3팀 전원이 모여서 호흡을 맞추는 전술훈련은 모레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했다.
시간 나는대로 개인훈련을 하며 컨디션과 기량을 유지하라는 업무지시는 있었지만 사실상 프리하게 풀어둔 셈이라, 출근카드만 찍어놓고 밖에 나가서 노는 사람도 적지 않다더라.
나도 눈치를 보아 몸을 빼려면 얼마든지 뺄 수 있었지만 요즈음 나는 몸을 단련하고 격투기와 사격 등을 배우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근거리 속사는 의미가 없다니까요? 지호 씨의 이능은 연사력도 출중한데다 뭐든지 두부처럼 간단히 베어내잖아요. 그러니 사정거리 안에서는 오히려 이능발현을 하는 편이 나아요. 겨우 9밀리짜리 권총탄을 아무리 많이 명중시켜도  효과가 없을겁니다.”

그야 괴수를 상대로 하면 그렇겠지.
나는 사격장 직원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요구하는대로 세팅해달라며 고집을 부렸다.
에테르 쉬프트와 에테르 폼으로 기동력이 출중한데다 은신상태로 접근할수도 있으니 역시 가까운 거리에서 최대한 빨리 여러 표적을 맞추는 연습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알아요. 아는데 그냥 연습할테니까 세팅해 달라구요.”

“크흠. 저도 소문을 들어서 왜 그러시는지 이해가 안 가는건 아닌데, 지호 씨가 저번 원정에서 겪은 일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에요. 헌터는 어디까지나 괴수를 잡는게 일이라구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직원은 전술사격용의 표적지를 근접거리로 배치해주었다.
저 아저씨는 시설관리직이라 게이트 너머로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을테니 저렇게 속 편히 말을 하지만 선배동료들에게 들은 바로는 지나치게 순진한 말이다.
물론 외국의 각성자 특수부대와 목숨걸고 싸우는 일이야 예외적이고 두 번 다시 겪기 힘든 상황이 분명하지만 의외로 헌터들끼리 분쟁이 생겨 싸움이 벌어지는 일은 잦다고 들었거든.
시비가 붙는다고 해서 진짜 총격이 오가는 경우는 그 중에서도 별로 많지 않지만 어쨌든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익힐 이유는 차고 넘치는 셈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센터 공무원한테 속았다니까...”


현직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찾아들었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긴 개뿔, 막상 해보니까 영락없이 목숨 내걸고 일하는 분쟁지역 용병이 따로 없더구만.
이젠 제법 손에 익은 자동권총을 뽑아 안전장치를 풀면서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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