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화 〉1부 (32/110)



〈 32화 〉1부

동굴은 예상대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닌  같았다.
그 뱀 모양의 거대괴수가 무슨 재주를 부려 이렇게 매끈하게 파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풍화되어 깎인 동굴이라면 종유석 하나 없이 이렇게 말끔할 리가 없다.
괴수의 둥지가 맞긴 맞는지 벽면에서는 옅은 비린내가 풍겨왔다.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마라.”


“아직 여유 있어요. 제 이능력의 발동거리는 확실하게 숙지하고 있다구요.”

“안 보이니까 불안해서 그러지. 대체 동굴 각도가 어떻게 되어먹었기에 가시거리가 이래?”

윤기정이 대기하고 있는 곳을 돌아보니 확실히 그렇다.
눈어림으로 보아 이제 겨우 이십여미터 왔는데 내가 선 곳으로는 빛이 거의 들지 않았다.
길이만  미터짜리 거대괴수가 드나드는 입구의 크기에 비하면 채광이 무척 나쁜 셈이다.
나는 윤기정에게 불평 그만하고 튀어나갈 준비나 똑바로 하라고 면박을 줬다.

그렇게 얼마나  깊이 들어갔을까.
슬슬 40미터라는 이동거리가 아슬아슬하겠다 싶은 지점에서 나는 잠깐 갈등했다.
아무리 놈의 움직임이 빠르더라도 설마 십수미터 뛸 여유조차 없을까.
심지어 에테르 폼인 지금은 이동속도에 보너스도 붙어있는데다 은신효과로 인해 괴수가 내 침입을 눈치채지 못했을 확률도 적지 않은데 말이야.
에테르 폼의 이동속도 보너스와 에테르 블레이드의 짧은 이동속도 보너스가 중첩되면  깜짝할 사이에 십여미터 이상을 달려나갈수도 있으니 아직은 안정권이라고 봐야겠지?
가슴에 매달린 무전기에서 치익거리는 잡음이 섞인 무전이 들렸다.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라. 안전이 최우선이야. 슬슬 통신 중단할까? 혹시 모르잖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무전은 계속 열어놓겠습니다. 소리에 민감한 놈 같지는 않아요.”


물론 불확실한 추측만 믿고 소리를 내는건 아니었다.
에테르 폼의 은신효과가 지워내는 기척에는 신형뿐만 아니라 냄새와 소리 등도 포함되니까.
1차원정 끝내고 돌아와 재정비하는 기간에 실험한 바에 의하면 열적외선을 이용한 장치에는 걸리니까 체온마저 완전히 감춰주지는 못하는  같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유령이 따로없지.
단파 무전기로 주고받은 방금의 대화도 아마 내 몸 밖 십여 센티미터를 채  갔을걸?
그렇게 주의를 기울여가며 신중히 열걸음 남짓을  들어간 나는, 수평에 가깝게 절벽을 파고드는 모양새로 뻗어있던 동굴이 급격하게 꺾여 내려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쳇, 여기까지인가.
혀를 차면서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문득 사방에 고인 피웅덩이를 보고 눈을 빛냈다.
바깥에도 녀석이 도망친 길마다 피투성이의 흔적이 널려있었는데 말이지.

“팀장님, 입구에서 오십, 아니 육십미터 쯤 들어온 지점입니다. 동굴이 난 각도가 완전히 바뀌었는데, 아래로 갑자기 뚝 떨어지네요. 괴수가 지나간 흔적은 있는데 아직까지 코빼기도  비치는걸로 봐선 얼마나 깊은지 가늠조차 안 됩니다.”

-그렇게 깊이 들어갔어? 어서 나와. 역시 포기하는게 맞아. 일단 돌아갔다가 화력도 증강하고 인원도 늘려서 다시 오면 안전하게 잡을 수 있을거야.


“글쎄요. 일단 들어와 보시면 팀장님도 생각이 달라지실 것 같은데. 괴수가 지나간 흔적이라는게 다른게 아니라 피웅덩이거든요. 아주 피를 줄줄 흘리면서 간신히 도망간겁니다. 지금까지 추적하면서 본걸 생각하면 그 녀석 덩치를 감안하더라도 허용 출혈량이 아슬아슬할텐데...”


-그래? 괴수들은 보통 생명력이 강한데, 의외로 아직도 지혈이 안 됐단 말이지...


잠시 통신이 중단되고 무전기 너머에서 강경호 팀장이 갈등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도 그럴게, 아무리 안전한 귀환을 추구한다고 해도  원정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는 것과 후퇴하여 법석을 떠는건 페어리들에게 주는 인상 자체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평소라면 민간 헌터팀인 우리가 무슨 인류대표라도 된다고 이종족들 시선을 신경쓰면서 체면을 차리겠느냐만, 아티팩트의 잠재력을 보건대 그 인상에  한두푼이 걸린게 아니다.
가능성이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시도해 보자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젠장. 녀석의 이빨이 아무리 튼튼해도 장갑차의 합금 강판을 뚫지는  하겠지?

“어... 그렇지 않을까요? 물론 먹혀서 안에서 소화되면 답이 없긴 하겠지만... 아니지, 기본적인 화생방 방호체계는 되어있잖아요, 우리 차. 교육받을 때 그렇게 들었는데.”


-후우, 좋아. 한번 걸어보자. 대기하고 있어. 지금 들어갈테니까.


물론 그래봐야 무슨 잠수함도 아니고 통째로 거대 뱀에게 잡아먹혀서도 멀쩡할거란 생각은 안 들지만, 어쨌든 내 말에 강 팀장은 마음을 굳히고 결단을 내린 것 같았다.
통신을 종료한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내밀어 거의 90도에 가까운 각도로 급격하게 꺾여들어간 구덩이 안을 내려다보았다.
빛이 들지 않아 새까만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상당히 깊은건 알겠네.
잠시  무한궤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장갑차가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굴러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팀장이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물었다.

“깊이는 얼마나 되는 것 같아?”

“모르겠어요. 경사가 너무 급해서 차를 갖고 내려가긴 무리고, 사람이 내려가려고 해도 고생깨나 해야할 것 같은데요. 내려갈거면  제가 가야겠네요.”

“그렇지. 순간이동을   있는게 너밖에 없으니까. 휴우, 애초에 그런 사기적인 이능력이 없었다면 여기 들여보낼 생각도 안 했을거다. 기정아,  아래 라이트  비춰봐라. 돌아가는 사이즈를 한번 보고 어떻게 할지 상의를 해보자고. 내려가서 유인을 하든 수류탄을 안에다 쏟아붓든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돌아가든 말이야. 파워라이트 있지?”

“예. 차 안에 넣어뒀던 것 같은데.”


장갑차 적재함을 열고 뒤적거리다가 배터리가 사람 머리통만한 손전등을 끄집어낸 윤기정이 혹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절벽에 다가가 아래로 빛을 비춘다.
나도 옆에 가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내려다보았다.
전기를 많이 먹는 파워라이트는 무척 멀리까지 조명을 뻗어서 바닥을 비추었다.
오, 그래도 생각했던 것처럼 까마득하게 깊지는 않네.
한 십미터 후반대 정도니까 이만하면 밧줄 내려서 레펠하듯 절벽 박차고 내려갈만 한데?
아파트 칠, 팔층은 족히 되는 높이지만 불 나면 그런데서도 완강기 타고 잘만 내려오잖아.
물론 진짜로 내려가서 수색을 이어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내려가는건 내려가더라도 만약 전투가 벌어져 후퇴를 해야할땐 어떻게 기어올라오겠어?


“잠깐. 방금 땅이 움직이지 않았어?”

“무슨 소리야. 난 전혀 못 느꼈는데.”

“아니, 여기 말고. 저 아래 말이야. 어어? 봐, 지금 또 꿈틀거리잖아. 조금 더 위를 비춰봐.”


광량은 충분한 것 같아서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라이트를 조금 확산시키니 바닥의 더 넓은 면이 눈에 들어오는데, 과연 티가 날 듯 말 듯 미세하게 꿀렁이고 있었다.
어... 그러니까 저게, 바닥이 아니라 괴수의 동체라는거지?
그러고보니 아까 봤던 거대괴수의 비늘가죽과 유사한 색깔 및 무늬가 눈에 들어온다.
좋아, 그럼 더 망설일 것도 없지.

“팀장님, 혹시  사이에 방어막이 재생됐을지도 모르니 제가 최대사정거리 근처까지만 내려가서 한  더 먹이겠습니다. 덩치가 워낙 커서 저 아래에서 어떤 모양새로 웅크리고 있는지는 짐작도 안 가지만 어쨌든 일방적으로 때릴 수 있는 구도 아닙니까?”

“잠깐만. 그럼 네가 다시 올라올때까지는 공격을 못 하잖아. 자칫 유탄에 맞으면...”

“순간이동이 있잖아요. 내려가서 방어막 벗기고 바로 올라오겠습니다. 여기까지 높이가 한 이십미터 되나? 오차 감안해도 이동거리는 넉넉합니다. 놈이 우릴 눈치채고 공격하려고 하더라도 반전하기엔 공간이 충분치 않은 것 같은데요.”


“지호 말이 맞아. 저 비좁은 구석에서 몸을 돌려 다시 나오려면 불편한 것도 불편한거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거야. 다들 준비해. 잔탄을 모조리 쏟아붓는다.”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장갑차에 단단히 앵커를 고정한 후 절벽 끝에 섰다.
벽을  끝으로 밟으면서 로프를 잡고 조금씩 레버를 풀어 안정적으로 내려가는 것은 훈련소때 기본 레펠을 수박 겉핥기로 배운 내게도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꿈틀대는 바닥이 가까이 다가오자 잠깐 고민하던 나는 아예 그 바닥에 완전히 내려섰다.
괴수는 아직까지도 내 접근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녀석의 덩치를 생각해보면 사람 하나가 위에 올라탄 것 정도는 잘 느껴지지도 않겠지.
지형을 살피니 별개의 동굴 하나가 연결되어 앞뒤로 뻗어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대괴수의 원통형 동체가  차서 사람 하나가 들락거릴 틈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내가 올라선 부분이 괴수의 어느 부분일까?
되도록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부위라면 좋을텐데.
가슴팍에 달린 무전기의 버튼을 누르고 소리죽여 강경호 팀장에게 보고했다.

“팀장님, 이대로 아래쪽으로 최대한 길게 베어낸내고 곧바로 순간이동하겠습니다. 제가 사라지면 즉시 화력을 쏟아부어 주세요. 준비 다 되셨습니까?”

-오케이, 언제든 괜찮아. 그런데 너, 안 보이는 곳으로도 순간이동을 할 수 있어?


“아, 그건 확인 안 해봤는데. 아마  될겁니다. 위로 이동할테니 한 분이 잡아주셔야겠네요.”

-혹시 놓칠수도 있으니 넉넉하게 여유분 고려한 높이까지 올라와라. 준비 되는대로 시작해.


그때 땅이 세차게 꿈틀거리는 느낌에 벽에 손을 대고 지탱해 균형을 잡았다.
녀석은 우리를 따돌렸다고 확신하고 자기 굴에 기어들어와 잠이라도 자고 있는게 분명하다.
나는 우선 발을 헛디뎌 떨어질까봐 착용했던 안전장비를 벗어서 올려보냈다.
순간이동을 할  몸에 걸친 장비와 들고 있는 도구 등이 함께 이동하는건 수차례 확인했지만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로프가 연결된 채로 그대로 이동하든 로프 길이 이상으로 이동해서 끊기든 내게 위해가  일은 없겠지만 쓸데없이 모험을 할 필요는 없지.
위를 올려다보며 어디로 이동해야 대기하고 있을 탱커가 날 잡아주기 편할지 가늠해본다.

“후우, 좋아. 지금 올라갑니다. 잘 잡아줘요. 셋, 둘, 하나.”


카운트다운을 셋 센 다음 아래쪽으로 최대한 깊게 에테르 블레이드를 쏘아낸다.
칼날이 비늘가죽과 살을 두부처럼 잘라내며 내 몸을 중심으로 15미터나 파고들어가 놈의 거체를 베어내는 사이에 나는 이미 허공에 붕 떠있었다.
나름대로 조절한다고 한건데 아직 익숙지 않아서 지나치게 멀리 쉬프트해버렸다.
다행히 모자란 것보다는 넘치는게 나았는지, 위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대기하던 윤기정이 팔을 뻗어서 떨어지는 나를 낚아채어 안전구역으로 끌어당긴다.
세로축은 계산이 좀 어긋났지만 가로축이 큰 오차가 없었던게 천만다행이다.
팔이 닿지 않는 위치였다면 레펠장비를 멘 그가 몸을 날려 날 받아낸 다음 다른 탱커들이나 장갑차의 동력으로 끌어당기는 골치아픈 절차를 거쳐야 했을테니까.
그랬으면 아래로 대구경 화기와 수류탄, 소이탄 등을 퍼붓는 지금의 화력투사가 어림잡아 5초에서 10초 가까이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구덩이 아래에서 거대괴수의 샤악대는 비명소리가 메아리쳐 울린다.
그 메아리를 요란한 총성과 폭발음이 폭력적으로 덮어서 지워냈다.
절벽 끝에 서서 아래를 겨누고 연신 방아쇠를 당기는 팀원들과 쉴새없이 수류탄과 소이탄을 까서 던지는 팀원들의 모습이 왜인지 해학적으로 보여서 나도모르게 웃어버렸다.
 때, 겨우 두 번밖에 겪지 못 했지만 결코 잊을  없는 감각이 내 몸을 휘감는다.


“팀장님, 저거 죽은 것 같은데요? 확인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안 돼. 움직임은 멎었지만 위장하고 있는건지도 모르잖아. 안전하게 가자고. 계속해! 아까 계획했던대로 가져온 잔탄을 전부 소모한다고 생각하고.”

“채명진! 38구경은 그냥 놔둬!  정도 펀치력이 어디 간에 기별이나 가겠냐?”


아니, 그러니까 죽은게 확실하다니까요. 경험치 들어와서 레벨업까지 했는데.
그렇게 곧이곧대로 말할  없는 나는 다만 팀원들이 탄을 낭비하는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뭐, 보고 있으니 화려하고 시원하긴 하네.
난 나대로 할 일을 해야겠지.
털썩 주저앉아서 방금의 레벨업으로 어떤 스킬이 올랐는지 확인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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