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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화 〉1부 (30/110)



〈 30화 〉1부

마을 외곽의 공터에서 야영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날이 밝자마자 우리는 원정길에 나섰다.
강 팀장은 오닉스 헌터즈의 이름과 회사의 심볼을 왕을 위시한 페어리들에게 긍정적으로 인식시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기세였다.
두 명의 공격조원과 함께 전투차량 한 대가 빠졌지만 불편한 점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마을에서 자원자를 뽑아 붙여준 길안내의 덕이 컸다.
이름은 들었지만 당연히 알아듣거나 구분하기 힘들고, 임시로 ‘잭’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명명한건 공격조장 박우진이었는데, 말하는게 짹짹거린다고 해서 잭이란다.
그렇게 따지면 페어리들 말하는게 우리 귀엔 죄다 그렇게 들리는데.


“야, 근데 라피드도 그렇고 잭도 그렇고 페어리들은 우리 말하는거 다 구분해서 듣잖냐. 아직 한국어를 못 익혀서 그렇지. 근데 우린 쟤들 말하는게 도무지 구분이 안 가잖아? 따지고보면 언어적으로 우리가 쟤들보다 지능이 낮은게 아닐까?”

“무식한 소리 좀 하지 마요. 음운학에 대해 뭐 알긴 알아요? 원래 영어권 원어민도 한국어 처음 들으면 단어며 음절 구분도 제대로 안 된대요. 페어리랑 접촉한지 얼마나 됐다고.”

“근데 라피드는 대충 우리가 하는 말 다 알아듣고 통역까지 하잖아.”


“그건 라피드가 천재인거죠.”

잭이 마체테를 들고 척척 나뭇가지와 풀을 베며 길을 열어준 덕에 이능을 끌어올리고 산길을 열고 있어야  우리 팀원들은 이런 잡담을 하면서 편히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작 고생하는 잭은 우리가 선물한 예리한 강철 마체테에 완전히 반해서 눈을 반짝였지만.
그러고보니 이곳의 원주민인 페어리들은 방어막을 갖고 있는데다 괴수의 방어막까지 무시할 수 있으니 총기를 가르쳐서 들려준다면 괴수의 씨를 말릴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총을 쏘는 것과 창검을 휘두르거나 던지는 것은 다르니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팀장에게 이런 의견을 제시하여 질문하니 그는 고개를 주억거린다.

“네 말이 맞아. 시험해볼 가치는 충분하지. 하아, 이거 기분이  복잡하네. 만약 페어리들이 방어막을 무시하고 총을 쏠 수 있다면 헌터의 상대우위는 없어지는건데.”

“그래도 총기를 통제할 수는 없잖아요.”


민간언론에까지 공표한건 아니지만 고급 정보형태로 가공된 페어리와 고블린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미 세계 대부분의 나라 정부에 들어갔으니 비밀유지같은건 애초에 물건너 갔다.
우리 나라가 아무리 세계에서 두 손 안에 꼽힐만한 나름의 강대국이라지만 그렇다고 한국이 페어리와의 교류를 독점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럴거란 생각은 전혀 안 들고...
교류가 확대되면 열병기가 전파되는 것도 순식간일텐데.
알몸으로 다니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부족들도 AK류의 소총은 들고 다니잖아.

“그래. 통제할 수는 없지. 어차피 우리가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괜히 오해만 쌓일테니까. 차라리 전폭적으로 협조하면서 무기시장도 한국이 먹는게 나아. 나나 너도 생각하는걸 정부에서 생각 못 할리는 없지. 원래 상정하고 온 대로 별 특이점없는 원시부족이었다면 중국이 얻은 고블린들의 기술에 대항할 기술만 얻어내고 신경 껐을텐데.”

“페어리들에게나 우리에게나 좋은 일이죠. 그나저나 그 공간왜곡결계를 무효화한다는 기술은 어떤 형식이랍니까? 거기 주둔한 군인들이 교대하면서 가져간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돌로 만든 조각상이야. 마을에 세 개 있던 것 중 하나를 줘서 들려보낸다나봐. 그 조각상을 중심으로 일정 반경 안에서는 공간결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 같아.”


“또 조각입니까. 그럼 딱히 기술이랄 것도 없겠네요?”

“그렇지. 어제 밤새도록 이야기해 봤지만 만드는 사람도 가리는데다 죄다 주술적인 의식같은거라서... 일단 설명하는대로 받아적긴 했는데, 재현한다고 재현이 될지는 모르겠어.”


즉 재현할 수 있는 과학적인 기술이 아니라 되면 되고  되면 안 되는 주술적인 의식이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연구를 하긴 해야겠지만 당장은 산물을 수입하는 수밖에.
지금 우리가 향하는 북부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는 괴수도 그 조각상에 쓰이는 재료 광석이 나오는 산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냥하려는 것이 아닌가.


“음, 좋아. 10분간 휴식. 서식지 근처니까 따로 떨어져서 나가지 말고.”

“알겠습니다.”


지도를 보면서 나침반을 올려놓고 방향을 가늠하던 강 팀장이 행군을 잠시 멈춘다.
장갑차 안에서 한수호가 간단한 음료수를 꺼내 하나씩 돌렸다.
그는 목에 걸린 목걸이 두 개와 반지를 다섯 개, 귀걸이도 양쪽에 하나씩 하고 있었다.
저거, 다 적용되고 있는건 맞아?
혹시 서로  파장이 부딪혀 간섭을 해서 부작용이 생긴다거나 하는건 아니겠지?
내 시선을 눈치챈 한수호가 씩 웃으면서 반지를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야, 이거 진짜 좋다. 내 이능이 치료잖냐.  몸에다 써본적이  많거든? 그래서  느낌이 낯설지 않아. 라피드는 말 안 했지만 재생이나 치료효과도 분명 있어. 내가 장담한다.”


“치료까지 말입니까? 어... 그럼 이거 지구에 대량으로 공급하면 병원에서 일하는 보조치료사들 일거리 다 끊기는거 아닙니까?”

“에이, 그래도 초능력자의 이능에 비교할 바는 안 되지.”

그답지 않게 입가에 싱글거리는 미소를 달고 있는 한수호의 뒤에서 에너지 드링크를 단숨에 꿀꺽꿀꺽 들이키고 종이팩을 구기던 윤기정이 ‘밥줄 좀 끊기면 어떠냐’하고 대꾸한다.
윤기정의 지론에 의하면, 이능을 각성한 각성자는 모름지기 헌터나 군인을 해야 한단다.
아무래도 그는 보조치료사들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같다.
헌터처럼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아니고 의사나 간호사처럼 오래도록 힘들게 공부를 해서 방대한 지식을 갖춘것도 아닌데 단순히 의사의 지시에 따라 이능을 쏟아붓는 것 만으로도 거의 웬만한 헌터에 맞먹는 연봉을 받는 보조치료사들을 싫어하는 헌터는 드물지 않았다.


“기정아, 이거 그렇게만  일이 아냐. 헌팅 팀에서는 즉효성이 좋은 치료이능이  유용하겠지만, 병원에서 쓰는 수술 후 조리나 재활에선 큰 차이도 없을걸?”

한수호의 말에 윤기정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진짜로 밥줄이 끊기겠네’하면서 마구 웃는다.
와, 이게 진짜로 그 정도라고?
나는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내 몸에 걸친 악세사리들을 쓸어보았다.
우리가 사냥을 끝내고 페어리 마을로 돌아갈 즈음에는 이미 두 공격조원이 지구로 가서 제반사항을 보고했을텐데, 회사에서도 머리를 싸매고 파급효과를 계산하기 바쁘겠네.


“다시 출발한다. 긴장해. 장갑차는 여기 두고 방어선 형성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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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들의 호의를 사기 위해 웬만한 일은 다 하겠다는게 우리의 심정이었지만, 만약 미리 저 광경을 봤다면 조금 다르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버프 아티팩트가 아무리 좋고 돈이 아무리 좋다한들 목숨보다 소중하겠는가.


“쉬잇. 저기 보인다. 후우, 지금까지 우리가 봤던 거대괴수는 거대괴수도 아니었구만.”

서식지 근처 지형이 좋은 곳에 장갑차를 세우고 후퇴선을 만들어놓은 후 최대한 기도비닉을 유지하며 전진하기를 얼마쯤, 우리는 어렵잖게 목표물을 발견할  있었다.
원래 사냥이 어려운 이유의 절반 이상은 사냥감을 찾아내는 과정  자체라고 했는데, 저 괴수는 우리가 신경을 써서 찾아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크기가 어찌나 거대한지 마치 작은 동산과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뱀, 아니 지네인가? 저기 비늘 사이에 달린 작은 돌기들이  맞지?”


“몰라. 지금 그게 중요하냐. 휴우, 저걸 어떻게 잡지? 지호야,  방에 끝낼 자신 있냐?”

“쏴봐야 알죠...”

각성 이래 기하급수적으로 위력이 올라가 이젠 ‘무한대’라고 표현해도 과장만은 아닐 것이라고 자신하는  입에서도 자신감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머리로는 ‘마력결집의 계산식을 고려하면 에테르 칼날의 위력은 천문학적이다. 제깟놈이 아무리 단단해봐야 한 방이야’라고 생각하고 있어도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몰려오는 것이다.


“길이만 수십미터, 아니 거의 백미터 가까운 것 같은데... 입  벌리면 웬만한 이층집 한 채도 통째로 삼킬 수 있지 않을까요? 팀장님, 설령 방어막을  깎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가진 화력으로 충분할지 모르겠는데요. 코끼리를 바늘로 찌르는 격이 될 것 같은데.”

아프리카에서 야생짐승을 잡는 대구경 사냥용 총도 보통 50구경 정도인데 60구경의, 그것도 분당 백 발 이상이 나가는 자동화기라면 피와 살로  생명체는 뭐든 순식간에 곤죽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화력이지만, 모든건 상대적이다.
영화에서 봤던 거대 아나콘다도 지금 눈 앞에 있는 저 괴수에 비하면 지렁이에 불과했다.


“페어리들이 환송을 한 이유가 있었구만. 다시 못 돌아올거라고 생각한건가?”


“아니, 그보다는 용사가 마왕을 물리쳐주길 바라며 아티팩트를 몰아준게 아닐까요... 잭을 좀 봐요. 표정이 완전히 죽음을 각오한 결사대의 표정인데?”


“어? 그러네. 큭큭큭. 오는 길 내내 쾌활하더니, 비장한 심정을 감춘거였나.”


“이 새끼들, 우릴 사지로 몰아넣다니.”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페어리들에게 원한을 품는건 아직 일렀다.
어쩌면 저 정도로 압도적인 괴물이 있을줄 몰랐던건지도 모르지.
그때, 숨을 죽이고 바람소리조차 거의 나지 않는 속삭임으로 대화하는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기라도 했는지 또아리를 틀고 있던 거대괴수가 꿈틀거리면서 움직인다.
진짜로 목소리나 냄새 등으로 기척을 들킨건지 아니면 우연히 지금 자다가 일어난건지는 몰라도 어쨌든 이대로 있다간 선공권이 날아가게 생겼다.
결연한 표정으로 강경호 팀장이 수신호를 보낸다.
하긴, 이제 와서 뒤돌아 도망을 친다고 따돌릴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저 뱀이 한번 꿈틀거리며 움직여도 수십여미터는 가볍게 나갈 수 있을테니까.


“발사준비해! 뒤로 30미터만 후퇴한다. 방어막만 다 까면 어떻게든 될거야. 수호야, 들리냐? 몸통 맞춰도 소용없을거다. 머리만 맞춰.  놈도 뇌는 있겠지.”

무전기에서 짤막하게 알겠다는 소리가 들린다.
한수호의 침착한 목소리는 아마 저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를 못 봐서 그런거겠지.
실더들이 재빠르게 방어진을 포기하고 공격조원들을 붙들고 뒤로 몸을 날린다.
탱커가 앞에 나서서 시선을 끌며 방어를 해봐야  정도로 체급 차이가 나면 방어가 될 리가 없으니 일격에 즉사하거나 전투불능이 될 것이 뻔하니까.
쉬쉿, 하고 날카로운 기성이 앞에서 터져나온다.
이제야 우리를 발견한 것 같다.
젠장, 아직 안 들킨줄 알았으면 조금 더 신중하게 기다렸다가 움직이는 편이 나았을텐데.


“뱀이 맞나보다.  들어도 뱀 소리잖아?”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어이쿠!”“해,행동양식은 뱀이랑 좀 다른데?”

보통 뱀은 독니로 사냥감을 물어죽이고 삼키거나 몸통으로 조여서 제압하는데, 저 괴수는 꼬리를 치켜들고 이쪽으로 향한 뒤 그대로 내리치는 전법을 구사했다.
콰앙, 나무  그루가 통째로 박살나면서 땅이 울리고 깊은 고랑이 파였다.
다행히 모두들 공격범위에서 넉넉하게 벗어난 뒤였다.
나는 눈어림으로 꼬리 끝과 내 위치의 거리를   앞으로 달려들었다.
 칼만 먹이고 바로 에테르 쉬프트로 빼야지.
내 계획을 눈치챈 윤기정도 쓸데없이 마크를 해준답시고 따라붙지 않고 뒤에 머물렀다.

“키아아악!”

서걱, 꼬리 끝에 선명하게 칼자국이 나면서 소름끼치는 괴성이 터져나온다.
나는 상처에서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급히 몸을 돌려 팀원들이 자리한 곳으로 에테르 쉬프트를 발동했다.


“좋아! 쉴드 다 까였다! 크으, 저런 괴물의 방어막도 단숨에 상쇄하다니.”


“끝난거 아닙니다! 젠장, 저런 괴물은 지구에 있었어도 쉽지 않았을거예요.”


윤기정의 환호성과 함께 따로 지시가 없었는데도 각자 챙겨온 화기의 방아쇠를 당긴다.
묵직한 대구경 기관총의 격발음이 마치 전기톱의 시동을 건 것처럼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역시 신체강화능력자의 힘은 대단해서, 따로 거치를 한 것도 아닌데 단지 어깨에 견착한 것만으로 저 무지막지한 기관총의 반동을 안정적으로 제어하고 있었다.
괴수의 꼬리에 60구경짜리 총알이 단숨에 수십여발 이상 후두둑 틀어박힌다.


“머리! 머리 노려! 놈이 동체를 돌린다!”


터어엉, 수십미터 이상 뒤쪽에서도 단발의 격발음이 들려오는걸 보니 방어선에서 대기하던 한수호도 괴수에게 저격을 박아넣고 있는 모양이다.
숲에서는 가시거리가 짧아 장거리 저격이 무리지만 저렇게 주변의 나무들보다 훨씬 더 높게 몸을 일으켜 세운 괴수를 상대로는 시야 확보가 어려울 것이 없다.

-젠장. 저거 뭡니까?  원근감이 갑자기 망가진건가.


단파 무전기에서 한수호의 경악성이 들려온다.
내가  칼에 놈의 방어막을 모두 깎아낸 것이 사냥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 전제에 불과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저만한 괴수가 게이트를 넘어 지구에 등장했다고 치더라도 순수 보병의 화력으론 어렵고 기갑이나 포병이 동원되어야 제압이 가능했을 것이다.
대포라도 끌고 왔어야 했는데.
우리가 대구경 무기 위주로 챙겨왔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빨이 제대로 박히고 있기는 한건지 확신하기가 어렵다.
피가 터져나와 비늘이 붉게 물들고는 있는데, 아무리 봐도 치명상은 아니란 말이지.
심지어 곧게 솟아 우리를 노려보는 저 대가리에 간헐적으로 박아넣는 한수호의 저격도 일단 겉가죽을 뚫는  같기는 한데 효과가 있는건지 없는건지 녀석은 쓰러질 줄을 모른다.
뱀이라면 비늘 안에는 연한 속살만 있어야 정상 아닌가?


“흩어져! 실더들 담당 마크 잘 해라! 아, 버프! 버프  활성화 해!”

지휘하던 강경호 팀장은 잭이 품에서 조각상을 꺼내 부러뜨리는 것을 보고 뒤늦게 떠올린 듯 가져온 버프를 모두 사용할 것을 지시했다.
나는 허벅지에 달린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한 뼘 조금 넘는 길이의 조각상을 꺼냈다.
급한대로 한 손으로 잡고 손가락에 힘을 주니 어렵지 않게 부러뜨릴 수 있었다.
확 타올라서 보랏빛의 빛무리로 변한 입자가 손에 스민다.
그리고 다음 순간, 윤기정이 몸을 날리면서 나를 옆쪽으로 힘껏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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