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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화 〉1부 (27/110)



〈 27화 〉1부

주말을 포함해서 나흘이나 되는 휴가를 즐긴 후유증이 모두의 얼굴에 조금씩 드러난다.
우리 팀에서 결혼을  사람은 겨우 다섯이었는데, 그 기혼자들은 푹 쉬고 와서 개운한 총각들과 달리 피로가 전혀 풀리지 않은 기색이다.
놀이동산이라도 가서 놀아줘야 할 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저렇게 피곤할까.

“팀장님! 저 오면서 깜짝 놀랄만한걸 봤는데... 페어리가 우리 회사에 돌아다니던데요?”

“아, 알려주는걸 깜빡 잊었군. 페어리들은 조사가 끝나고 그들이 알고 있는 다른 페어리 마을로 송환될 예정이지만 한 명, 라피드 씨는 신일그룹과 정식으로 계약을 맺었다. 당분간 우리 오닉스에 파견을 나와서 요정의 숲과 관련된 자문을 해주실거야.”

“예? 어... 그게 됩니까, 법적으로?”

“아직은 가계약 형태지만. 국회에서 무슨 법안을 발의한다고 하는데, 이종족에게 인권이 있다는걸 선언하고 페어리들을 외국으로 간주해서 외교관계를 맺는, 그 뭐라더라, 하여튼 정식으로 수교한 외국의 시민에 준해서 대우를 한다고 하더라.”

“오, 그런가요... 근데 라피드라니, 이름이  서구스럽고 익숙하네요?”

“그거 우리 사장님이 지어준거야. 본명은 뭐라더라, 하여튼 발음하기도 힘들고 알아듣기도 힘든 이름이라서. 아무튼 혹시 만나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성대 구조문제인지 말은 못 하지만 한글은  익힌데다 한국어도 간단한건 그럭저럭  수 있으니까.”

“사장님이요? 페어리나 고블린같은 작명에서 대충 짐작은 했는데, 뭐라고 할까...”

“어, 만화에서 따온거 맞아. 우리 사장님이 판타지 마니아거든.”

 알아들었으니 더 말하지 말라는 태도로 강 팀장이 휘휘 손을 내저었다.
그나저나 우리가 구조해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말이 대충이나마 퉁한다는건지.
사실이라면 페어리라는 종족은 대단히 지능이 높은 종족임에 틀림없다.
처지가 처지이니만큼 필사적으로 익혔으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엄청 빠른 속도가 아닌가.


“그리고 지금부터 말하는건 대외비니까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보안서약서 다들 작성했지? 그때 서약한 것에 포함된다고 보면 돼. 페어리들은 고블린의 인신공양 의식과 공간왜곡 결계에 대해 알고 있었어. 수십 세대나 되는 세월동안 숲 안에서 두 종족이 패권을 두고 다퉈온 모양이더라. 공간왜곡결계는 우리가 볼  대단한 오버 테크놀로지지만, 음, 고블린과 페어리들 정도 되는 문명끼리 싸우는데 결정적인 위력을 갖진 못하는 모양이야.”

“그야 그렇겠죠. 냉병기, 그것도 돌도끼 휘두르고 나무창 던지는 애들인데.”

생각해보면 고블린들의 비의는 영락없이 돼지 목에 걸린 진주목걸이 꼴이다.
공간을 왜곡해서 방향감각을 어지럽히고 일정 구역을 외부와 격리하는 기술보다는 차라리 총 한 정, 아니 잘 벼린 강철무기  자루 있는게 훨씬 더 위력적이었을걸.
중국과 교류를 하면서 무기를  받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처리한 고블린들이 죄다 원시적인 무장을 하고 있던걸로 봐선 수량을 넉넉하게 쥐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보니 고블린 놈들도 불쌍한 처지가 됐는걸.
자기네 기술의 가치를 모르고 헐값에 이용당하다가 용건 끝나자마자 솥에 들어간 꼴이다.

“페어리들의 비의 중 그 공간왜곡 결계를 무력화하는 의식이 있다는 것 같아.”

“설마 거기도 산제물이 필요하다거나 그런건 아니겠죠?”


“무슨 광물이 필요하다는  같았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어. 정부에서 각성자 특수부대를 동원해서 루트를 뚫고 정식으로 교류를  예정인데, 곧 알게 되겠지. 아무튼, 페어리들과 동맹을 맺고 고블린 부락을 토벌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 비의를 받아올 계획이래.”


군을 동원한다니 우리와는 이미 상관없는 일이지만 다들 눈을 반짝이면서 귀를 기울인다.
비의를 받아와서 그걸로  어떻게 한다는 소리는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선공을 받고서 중국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으니 이후의 전개는 뻔한 일이다.
강 팀장은 ‘아마 공개적으로 발표를 하기보다는 세계 각국에게 비밀리에 제공하지 않을까’하고 추측했는데, 그렇게 되면 중국이 이후 이해대립 지역에서 공간왜곡 결계를 믿고 섣부른 작전을 펼치다가 낭패를 볼 일이 생기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빚을 지워두는 효과도 있을 것이고.


“집중해, 이 놈들아.  들어둬야지. 당장 다음주에 우리가 들어가야 하는데.”

“예? 아니, 우리가 왜요?”

“라피드 씨가 지호한테 깊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더라.  집어서 호위로 함께 가줬으면 한다고 부탁을 하는데 그걸 어떻게 거절하냐?  생각해라. 둘도 없을 기회야. 세계 최초로 이종족과 정식 교류를 하는데, 떨어질 콩고물이 얼마나 달달하겠냐?”

“언제는 요정의 숲 쪽으로는 오줌도 안 싼다면서요.”


박우진이 볼멘 소리를 하면서 비아냥댔지만 얼굴을 보니 당위성은 납득을 한 모양이다.
우리가 정 싫다고 뻗댄다면 나라에서도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굳이 그럴만한 사안은 아니지.
경로 개척은 군에서 이미 수고해주었다고 했으니 오닉스 3팀은 일종의 외교사절단 비스무리한 역할을 하게 될텐데, 상대적으로 편하고 안전한 일인 것이다.


“설마 이번에도 들어갔다가 갇히는 일이 생기진 않겠죠? 두 번이면 모를까, 똑같은걸  번 당하면 그건 답도 없는 천치라던데.”

“고블린들한테 그럴 여유가 없을거야. 음, 사실상 멸종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있거든. 중국에서 증거인멸을 하려고 폭파할 때 독하게 손을 썼나봐. 남은 놈들도 뭐, 오래가진  할거고. 정식으로 선전포고하는건 페어리들과 조약이 맺어진 다음이겠지만 토벌전 자체는 벌써 하고 있대. 각성자 특수부대가 동원됐는데, 이번주 내로 씨를 말릴 기세로 작전 한다더라.”

포로로 잡혔던 페어리들의 증언에 의하면, 중국군이 동시 방문한 곳은 인근의 다섯 부락이니 우리가 목격한 폭발이  모든 곳에서 동시에 있었을 확률이 높단다.
오만가지 고생을 다 했던 요정의 숲에 다시 들어간다는 소리에 구겨졌던 얼굴이  펴진다.
그야 숲에는 두 이종족을 제외한 괴수들도 있으니 백퍼센트 안전을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잘 닦인 길 따라 방문해서 대접받고 오라는 소리니까.

“자, 전달은 여기까지고, 훈련하자 훈련. 아, 지호는 오전훈련 끝나고 나랑 같이 연구소에 좀 갔다 와야돼. 새로운 이능 각성했었지? 그거 측정해야 하니까.”

“지호 이 놈, 해부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매번 싸울때마다 필요한 초능력이 뚝딱 나오는지 원.”


“어... 형, 농담 맞죠? 눈빛이 왠지 진지해 보이는데.”

조회를 마치고 훈련장으로 내려가면서 나는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보여달라는대로 다 보여주면 그만이지 뭐.
내가 운이 좋아서 새롭게 이능을 각성했다는데 막말로 진짜 해부라도 할거야 어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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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직원들은 내 새로운 이능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무척 관심이 많아보였지만, 결국 투명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규명하는데는 실패했다.
처음 시연한 이래 닷새동안  번이나 더 불려가서 각종 장치를 몸에 매달고 은신을 했지만 그들이 밝혀낸거라곤 ‘소리를 완전히 차단해주고 체온까지 어느정도 은폐해주지만 적외선센서를 속일 정도는 아니다’는 사실뿐이었다.
뭐, 나도 대충 그럴거라고 예상은 했지.
인게임 내에서 절대은신 판정이 아니라 탐지장치로 찾아낼 수 있는 판정의 스킬이었으니까.
걸치고 있는 옷과 장비까지 투명하게 만들어주는데다 소리까지 막아주니 오히려 기대 이상의 성능이라고 봐야겠지.
에테르 폼으로 변환하기만 하면 그야말로 유령이 따로 없는 셈이다.

“대단히 유용한 능력이야. 사람을 상대할때야 더 말할 것도 없고, 괴수들도 대부분 가시광선과 청각, 후각 등으로 적을 찾으니까. 적외선센서나 초음파레이더 등을 이용하는 괴수가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보고된 바가 없는걸 보면 일반적이진 않거든.”

몇몇 선배들이 헌터보다는 스파이에 어울리는 이능이라면서 혹시 국정원이나 경찰같은데 지원해볼 생각 없냐며 놀렸는데, 내가 각성  했으면 그 날 고블린 부락에서 중국 특수군의 총에 맞아 죄다 죽지 않았겠냐는 반박으로 간단히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은신 상태로 돌아다니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연구소에서는 속도에 주목하지 않아 미처 파악하지 못했지만, 에테르 폼 스킬은 단순히 기척과 신형만 감춰주는게 아니라 이동속도 보너스까지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에테르 블레이드로 적을 격살한  느껴지는 짧은 증가로는 제대로 체감하기 힘들었지만 에테르 폼을 유지하는 동안 쭉 유지되는 몸이 가뿐한 느낌은 꽤나 중독성이 있었다.
이러다가 역으로 평상시에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오닉스 3팀은 원정  휴가가 끝난지 겨우 엿새만에 다시 게이트를 넘었다.
목적지는 요정의 숲 북부의 페어리 부락.
길 안내는 예전에도 한번 우리 팀의 길잡이를 한적이 있는 페어리 라피드가 맡았다.
구조된 다른 페어리들이 조사를 마치고 전부 마을로의 복귀를 선택한 것에 비해 지구에 남아  세력의 교류를 촉진하려는 라피드는 무척 진취적인 페어리임에 틀림없다.


“복수에 불탄다고 하는게 더 맞지 않을까. 알다시피 라피드의 가족과 친척들은 전부 고블린에게 끌려가 의식의 산제물로 희생되었잖아.”


“그건 다른 페어리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다들 안면이 있는 다른 마을로라도 복귀하기를 원한거죠. 전혀 다른 종족의 틈에 끼어서 살기로 한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걸요.”

눈치를 보며 수군거리는 나와 윤기정의 대화를 주의깊게 듣던 라피드가 옷에 달린 큼지막한 주머니에서 글자카드를 만지작거리다가 꺼내서 내게 연이어 보여준다.
부디 보이지 않는 칼날로 고블린들을 모조리 베어달란다.
보아하니 우리가 한 말을 제대로 알아듣진 못하고 복수나 가족, 고블린 따위의 단어만 단편적으로 알아들은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마고 대답했다.
녀석이 내 대답을 듣고 환하게 웃는다.
 놈 이거, 조금만 더 부대끼면 의사소통은 아무 문제없이 원활해지겠네.
영리한건 들어 알았지만 언어습득속도가 정말 장난이 아닌걸.


“팀장님, 행군속도를 좀 더 높여도   같습니다.”


“음, 그게 좋겠군. 방심은 금물이지만 이렇게 깨끗하게 클리어가 되어있는데 지나치게 경계를 하느라 속도가 늦어지는것도 문제지. 아, 수호야. 랑데부 포인트까지 얼마나 남았다고?”


“이대로 가면 세 시간은 걸립니다. 12킬로로 증속하면 두시간 반이면 닿아요.”

“그럼 좀 힘들더라도 그렇게 하자. 우진아, 공격조가 좀만  고생하자.”

요정의 숲을 가로지르는동안 우리 일행은  한번도 괴수의 습격을 받지 않았다.
아마 저번주에  번이나 왕복했다는 각성자 특수부대가 미리 마을의 위치를 탐색하고 좌표를 찍으면서 정리해둔 루트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던 덕분일 것이다.
사실 괴수와 마주쳐 사냥을 하더라도 전리품을 싣기가 곤란하니 아쉬울건 없다.
숲에 진입하기 전에 유니콘 무리와 조우하여 한차례 전투를 치렀는데, 십여마리 이상을 사냥했는데도 사체는 버려두고 가치대비 부피가 작은 뿔과 마석만 골라 챙겼던 것이다.
넉넉한 장갑차의 화물칸에는 미리 라피드의 조언을 통해 준비한 선물용의 술과 식료품, 옷가지 등이 적재되어있어서 전리품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근데 진짜 너희들도 이런거 먹을 수 있어? 신기하네. 소화기관이 우리랑 똑같은가.”

“페어리들은 피도 우리랑 똑같이 붉잖습니까. 대충 비슷한가보죠 뭐.”

“아, 못 알아듣나. 어... 그러니까 이거 먹어도 배탈 안 나냐? 음, 이게 아닌가.”

잠시 휴식하는 동안 통조림을 하나 따서 안에 든 과일을 후릅거리는 소리를 내며 먹던 윤기정이 갸웃거리면서 물어보니 라피드가 갸우뚱하면서 다시 말해달라며 손짓한다.
대여섯번이나 표현을 바꿔가며 물어보니 그제야 알아듣고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먹던 과일통조림을 낚아채 가더니 한 입에 털어넣고 짹짹대며 밝게 웃는다.
윤기정은 광대 부근을 실룩이며 화를 참다가 통조림을 하나 더 꺼내지만, 공교롭게도  순간에 휴식이 끝나고 곧바로 강경호 팀장의 출발신호가 떨어진다.


“내 말을 대체 무슨 뜻으로 받아들인걸까?”


“왜요, 잘만 통한 것 같던데. 큭큭큭.”

그는 픽 웃는 내게 주먹을 들어보이며 을러대지만 그 꼴을 보던 다른 팀원들 사이에서도 웃음이 번져나가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자기도 그만 풀썩 웃어버렸다.
마치 산으로 피크닉을 온 것같은 행군이었다.
요정의 숲은 저번과 같은 언제나의 모습이었지만 나무 하나하나가 두렵게 보이던게 거짓말처럼 싱그러운 숲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두 시간 반이 조금 지나서, 우리는 한국 각성자 특수부대와 조우할 수 있었다.


“오닉스 헌터즈 맞죠?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오, 저기 페어리도 한 분 계시네. 5군사 1팀입니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오닉스 3팀장 강경홉니다. 그럼 안내 부탁드립니다.”

속칭 각성자 특수부대로 불리는 5군사령부 소속의 군인이라기에 얼굴을 시커멓게 칠하고 위장복을 입은 특수부대를 상상했는데, 군복을 입었을뿐 분위기가 그냥 평범한 헌터와 같아서 뭔가 특수부대 하면 생각나는 살벌하고   기세는 전혀 없었다.
 와중에 자기 이름은 말 안 하고 어물쩡 넘어가네, 계급장도 없고.
지휘관인듯한 군인이  턱 끝으로 가리키니 주변의 수풀에서 십여명이나 되는 군인들이 갑작스레 나타나 우리 행렬 앞에 정렬한다.
그들의 인도에 따라 경로를 약간 수정하여 걷기를 얼마쯤.

“지호야. 저것 봐라. 저 위에 제일 높은 나무.”


“어? 와, 야포 아녜요? 저걸 어떻게 저기다 올렸죠?”

“외계의 생물은 죄다 방어막을 갖고 있잖냐. 이능으로 상쇄하지 않으면 구부러지거나 휘는건 몰라도 잘리거나 부러지지는 않거든. 그러니까 저렇게 활용할 수도 있는거지.”


“아,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그나저나 저 군인양반들, 아예 기지를 차려놨네.”

“아마 오는 중에도 우리가 발견을 못 해서 그렇지, 크레모아지대나 기관총좌같은거 여럿 있었을걸. 혹시라도 중국 놈들이 들이칠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페어리 마을 외곽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음, 마을이라기보다는 반쯤은 군사기지에 가까운 형태였지만.
이걸 겨우 1주일 남짓한 시간동안 꾸려놓았다고?
정부와 군에선 아예 이쪽에다가 전진거점을 하나 더 만들어 놓으려는 심산인가?
한국 전진기지와 달리 게이트도 없으니 보급같은게 만만치 않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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