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1부 (26/110)



〈 26화 〉1부

오닉스 헌터즈와 계약을  때 기본급과는 별도로 갖가지 옵션이 주렁주렁 붙어있었더랬다.
그리고 첫 원정을 다녀온 지금, 내 계좌에는 수천만원 단위의 거액이 턱 들어와 있었다.
물론 난 다른 팀원들과 달리 국내에 쉰 명도 되지 않는 S급의 이능력자이니만큼 특별히 우대를 받았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역시 우리 회사가 손이 크긴 큰가보다.
나는 핸드폰을 조작해 당장 쓸 용돈만 남기고 부모님께 보낼까 하다가 멈추었다.
이게 꾸준히 들어올 돈도 아니고 연봉하고 별개로 일회성으로 받은 보너스잖아?
원정 나갔다 올때마다 나올거라곤 해도 다음 원정에서도 이번처럼 위험수당에 전투수당에 각종 옵션이 덕지덕지 붙어서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그래, 이건 그냥 내가 쓰고, 월급 나오는거나 꼬박꼬박 갖다드리자.”

막상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이젠 또 뭘 하며 돈을 써야 제대로 사치를 부렸다는 소리를 들을까하는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고민이 뒤를 잇는다.
차나 집같은 스케일은 어림도 없고, 비싼 밥이라도 사먹어야 하나.
전생에 취직 후 첫 월급 받았을때는 인당 삼만원짜리 뷔페에 가서 배가 터지도록 먹는걸로 자축을 했는데, 액수가 백 배가 넘으니 삼백만원짜리 식당이라도 찾아볼까.
방문이 삐걱 열리고 어머니가 노크없이 들어오다가 화들짝 놀란다.

“어머, 벌써 일어났니? 어제 좀 늦게 자는가 싶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일어났네.”

“충분히 잤어요.”

그러게, 내가 잠이 없는 편은 아닌데, 그동안 체력이 생각보다  좋아졌나보네.
훈련소 때부터 꾸준히 운동과 더불어 자의반 타의반의 단련을 했으니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간단히 샤워만 하고 외출준비를 하니 거실에 있던 아버지까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침 안 먹고 어딜 나가?”


“친구들하고 약속 있어요. 아마  늦게 들어올텐데, 기다리지 말고 먼저 주무세요.”


“이 시간에 나가면서?”

“놔 둬요. 거 출장 나가서 온갖 고생을 하고 왔는데, 종일 놀 수도 있지.”

오늘 하루를 통째로 쓸 약속에 대해서 어제 미리 말씀드렸는데, 역시 제대로  들으셨구만.
아버지가 내 역성을 드는 사이에 재빨리 인사를 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언제나와 같은 풍경이  반긴다.
외계 행성에 원정을 나가 목숨 내놓고 싸우던 일이 모두  속의 일처럼 느껴진다.
연락을 받고 나온  한량이 먼저 자리를 잡고 기다리다가 내게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오, 우리 최 헌터님 오셨구만. 자자, 앉아. 먼저 시켰어. 특수부위로다가 우선 5인분 시켰는데 괜찮지? 술은 뭐 먹을래? 오늘 아주 제대로 벗겨먹으려고 왔으니까 각오해라.”


“야, 난 말렸다. 사람이 셋인데 다짜고짜 5인분이 말이 되냐고.”

“자식이, 통도 작다. 인마, 날 벗겨먹으려면 이런데가 아니라 소고깃집으로 불렀어야지.”

젓가락으로 밑반찬을 뒤적거리다가 제 풀에 미주알고주알 자백하는 꼴에 그만 풀썩 웃었다.
메뉴판을 흘깃 보니 그래도 가장 비싼 일인분에 만 오천원 하는 메뉴다.
엊그제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학교 신입생들답게 둘 다 금전감각이 아직 미성년자에 가깝다.
뭐, 오닉스에 입사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도 크게 다르진 않았겠지.
칠만 오천원에다 플러스 알파로 술이며 공깃밥이며 해서 돈 십만원은 가볍게 깨질텐데, 회사에 다니던 전생의 나였어도 큰 마음 먹고 써야 할 액수니까.

“벌써 원정 나갔다 왔다며? 크으, 멋지다. 사냥은 느낌이 어떻디?”


“어떻긴  어때, 그냥 일하는거지. 어떤건지 알고 싶으면 도축장에서 알바라도  봐. 돈은 많이 버는데, 이게 뭐라고 할까, 별로 보람찬 일은 아닌 것 같아.”

“보람은 지랄, 돈이라도 많이 받는게 어디냐. 자,  잔 받아.”


“난 소주  마신다. 복분자나 백세주같은거 시켜. 아, 이모! 여기...”


“크으, 내가  실수를 했네. 우리 헌터님 모셔놓고, 어? 싸구려 술을 대접하고 말이야. 와인이나 스카치 위스키라도 갖고 왔어야 하는데. 그 뭐냐, 발렌타인? 그런거.”

“뭐래, 내가 사는거거든?”


익숙하게 소주를 한 잔 털어넘기니 약간 역겨운 알콜비린내가 코를 적시는 것과 함께 아스파탐의 미묘하게 찝찝한 단맛이 혀 뿌리를 살짝 건드리면서 식도에 불을 지르고 도망간다.
불판에서 고기가 먹음직스러운 소리와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는동안 술잔을 기울이면서 떠들어대는 것은 전생의 추억이 되살아나서 그런지 꽤나 괜찮은 기분이었다.

“철수 쟤는 철학과 갔다는 소리 이미 들었고... 넌 어디 붙었다고 했더라?”


“난 일   하려고. 야 인마,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내가 너보단 나아. 철학과 나와서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살겠냐? 차라리   고생해서 명문대 유망과 가는게 낫지.”

“걱정마라. 어? 지호가 나 먹여살려 줄거야. 아, 감사합니다. 잔  개만  주세요. 봐라. 거리낌없이 만이천원짜리 술을 사주는 형님인데.”


“지랄. 지호가 미쳤냐, 귀여운 여자애라면 모를까 철수 네가 뭐가 이쁘다고 거머리질을 받아줘? 아아, 젠장. 생각하니까 막막하다. 아버지가 조만간 기숙학원에 넣을거라고 하시던데.”

주제가 미친 듯이 갈팡질팡하는 영양가없는 대화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욱 편안하다.
김철수와 이영진은 내가 원정 나가서 겪은 일들에 대해 ‘썰’을 풀어주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나는 다만 ‘그저 그랬다’고 얼버무릴뿐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굳이 과장을 하지 않고 담담하게 사실만 시간순으로 나열하더라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모험담이 뚝딱 뽑혀나올만한 원정이었지만 말해봐야 녀석들이 믿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나 같아도 막 입사한 신입이 그런 일을 겪고 하물며 주역으로 활약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저 놈 저거 외계 나갔다 오더니 허파에 바람이 가득 들어찼다며 내심 비웃었을테니까.
훈련소 수료후 재판정을 받아 이능등급 S급을 받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딱히 일부러 숨기려고 그런건 아닌데, 공연히 먼저 자랑을 하기가 좀 민망하더라.
그건 장난스레 뽐내는 돈 자랑과는  결이 다른 종류의 민망함이었다.

“아이고, 저거 봐라. 하여튼 우리나란 이래서  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말이야. 기억나? 우리 어렸을땐 일본 비위 거슬리면 경제 폭삭 망한다고 그러면서 눈치 봤잖냐. 미국도 은근히 일본 편만 들어주고. 근데 슬슬 맞먹을만치 크니까 이젠  중국이 지랄이야.”

“새끼, 기분좋게 마시는데 왜 그런 얘길 해서 술맛을 망치냐. 지호야, 쟤 한 대만 때려라.”

“아니, 난 지금 그런 뉴스를 하길래 그냥... 네 뒤에 티비 봐봐. 잠깐만, 리모컨 여기 있네. 지금 손님 우리밖에 없는데 소리 좀 키워도 되겠지?”

익숙지 않은 술을 억지로 즐기는 척하면서 마시던 이영진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런 이야기는 그만두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김철수는 아랑곳않고 리모컨을 찾아 음량을 높인다.
티비에서는 아침 뉴스가 전날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기름기가 절반 넘게 섞인 고기에 파채와 생마늘까지 듬뿍 집어넣은 쌈을  입에 욱여넣던 나도 자연스레 티비에 시선을 집중했는데, 마침 익숙한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마오신 중국 대사가 어제 저녁 청와대를 방문해 정식으로 항의를 전달했습니다. 마오 대사는 한국 국적의 헌팅 팀이 요정의 숲에 파견된 중국의 조사팀을 습격하여 민간조사원과 호위헌터 등 총 스무 명의 사상자를 내고 이를 은폐하고 있다며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은 이능관리부에 지시하여 진상파악과 법적 조치를...


어... 저게 저런 식으로 언론에 나온다고?
증거인멸을 위해 특수부대를 보내놓고 그 놈들 죽었다고 외교라인으로 정식 항의를 하는 중국대사도 대사지만 청와대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도 황당하네.
나야 일선에서 뛰는 노동자니까 윗사람들 생각하는건  모르지만 이거 상황이 심상찮은데.


“얘들아, 편하게 먹고 있어. 나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


양해를 구하고 바깥으로 나와 잠깐 고민하다가 강경호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구로 넘어올 때 ‘웬만하면 숲에서 있었던 일은 남들한테 말하지 말라’는 수준의, 누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당연한 당부만 들었던 터라 지금 저 뉴스가 몹시 당혹스럽다.
신호가 다섯 번이나 갈 때까지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나는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음, 나중에 시간 될  연락해 달라고 메시지를 남겨야 하나.
생각해보니  뉴스로 지금 오닉스 헌터즈의 간부진들도 무척 바쁠 것 같네.
막 핸드본을 얼굴에서 떼려는데 강 팀장이 전화를 받았다.

“강경호 팀장님, 저 최지홉니다. 휴식 중 죄송하지만 급히 여쭤볼 일이...”

-아아,  안해도 알아. 방금 뉴스 봤구나? 아직 팀원들에게 사정 설명을  해서 다들 뉴스를 보면 불안해 할거라고 생각했지. 네가 제일 빨랐어. 아침부터 부지런한데?


“어... 그럼 저거 괜찮은겁니까? 내용 보니까 상황이 꼬인  같던데.”


-안심해라. 중국 놈들이 대책없이 뻔뻔하게 나왔지만 우리에게 불똥이  일은 없어.


강경호 팀장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에서 저렇게 강하게 항의를 하고 나왔으니 일단 체면을 살려주면서 조사를 하겠지만 결론은 이미 나와있는거나 다름없다고 한다.
중국 각성자 특수부대의 시신들을 모두 확보하고 있는데다 페어리 증인들도 있고 고블린들이 잔혹한 의식을 치러 공간왜곡결계를 펼친 흔적도 모두 사진과 영상에 담겼으니까.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대규모의 폭파공작을 시도해 성공했지만 정작  공작원들이 모두 잡혔으니 우리가 첫 진입때 멋모르고 확보한 증거와 연결짓기가 편해진 것이다.


-사실 중국 입장에서 가장 이성적인 대응은 연관성을 부정하는거지. 각성자 특수부대가 민간 헌터나 정규군처럼 신원등록 다 하고 들락거리는건 아니니까 발뺌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했거든. 뭐, 그래봐야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추궁하기도 곤란하고.


“그런데 발뺌은커녕 거꾸로 우리 사람 죽였으니까 책임지라고 뻗대고 있는건가요?”

-그래.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사장님도 어젯밤 긴급국무회의 하는데 사건 당사자로 불려갔다 오셨거든? 정부에서도 당황한 모양이야. 물론 이쪽에서 대응할건 명확하지. 체면치레 정도는 해줘야 하니까 하루이틀 정도 조사를 하는 시늉을 하겠지만, 조만간 정부에서 우리가 알아낸걸 고스란히 공표할거다. 얼굴에 똥칠좀 해보라지.


“정말 우리 회사가 뭐 뒤집어쓰고 그럴 일은 없는거죠?”

-그렇다니까. 아무 걱정말고 남은 휴가나 즐겨. 다음주 월요일에 출근할 때까진 모든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어 있을테니까.


월요일에 출근하면 간단히 사후평가를 하고 다음 원정에 대비해 훈련하는 나날이 이어지겠지.
강 팀장의 호언장담을 다 믿을수는 없지만 대충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겠다.
뭐, 중국도 중국 나름대로 내부사정이 있어서 그러는거겠지.
뻔히 결론이 나온 일을 가지고 상대방 체면을 챙겨준다며 시간을 끄는 정부도 정부고.
하여튼 정치하는 사람들은 참 피곤하게 산다.

“오, 통화 끝났냐? 누구한테서 전화 온거야?”


“회사. 별거 아냐. 그냥  쉬고 있는지, 별 일 없는지 물어보는 전화였어.”


김철수가 별다른 의심없이 잘 익은 고기를 내 앞접시에 서너점 덜어준다.
티비에서는 아까의 외계관련 뉴스가 끝나고 국내 사건사고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조만간 이종족인 페어리의 발견과 관련된 소식이 공표되면 하루 종일 그 얘기만 하게 되겠지.

“얼른 먹고 일어나자. 내가 그동안 실력 얼마나 늘었는지 보면 깜짝 놀랄거다.”

“늘긴 뭐가, 게임? 이야, 우리 재수생 씨 팔자 늘어졌네. 삼수가 보인다 야.”


“아직 한참 남았거든? 다음달부터 시작해도 충분해.”


“어.  말까지 포함해서 백퍼센트네. 뭐, 내 알 바 아니지. 근데 짝이 좀 안 맞는데... 그냥 삼인큐로 돌려야겠네. 지호야, 너 아이디 아직 휴면잠금 안 됐냐?”


“몰라. 접속해보면 알겠지. 휴우, 배부르다. 이 자식들, 술은 또 왜 이렇게 세?”

“너 훈련소 간다 외계원정 간다 뺑이치는 동안 난 오티 간다 환영회 간다 술을 펐거든. 얘는... 음, 그냥 원래 셌나봐. 재수생 주제에 술자리를 갔을리는 없고.”


“듣는 재수생 서럽게.”


하여튼 이 놈들은 기껏 하루를 통째로 비워서 놀자고 만나도 PC방 당구장 노래방 세 레퍼토리에서 벗어나질 못하는구만.
전생에 내가 즐겨했던 게임은 없었지만 비슷한 형태의 게임은 있어서 플레이타임이 길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실력은 친구들 사이에서 낮은 편이 아니었다.
게임 이야기가 나오니까 자연스레  생각은 스킬 쪽에 미친다.
팀원들이 딱히 추궁하는건 아니지만 역시 다들 내 이능력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겠지.
 가지나 되는 이능력, 그것도 서로 전혀 다르면서 조합되었을 때 위력과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이능력을 각성했으니 이쯤되면 일개 기업이 아니라 국가차원에서 관리하려고 들어도 이상할게 없는 ‘대박’인 셈이다.
물론 오닉스에서는 날 더욱 애지중지하며 자체연구를 하는 쪽으로 결정하겠지만.
아, 월요일에 출근하면 연구소에서 바로 호출이 올지도 모르겠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