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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1부 (23/110)



〈 23화 〉1부
방어작전이 공격작전으로 바뀐 셈이라서 강 팀장은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고블린들은 별로 위협적인 적수가  되었지만 저들의 소굴로 쳐들어가는건 이야기가 다르다.
심지어 구출작전까지 해야하니 난이도는  올라가지.
물론 고블린들이 페어리들을 인질로 활용하려고 잡아간건 아닐테니 그 점에선  낫겠지만.
길잡이 페어리를 가운데 두고 페어리들과 한참 낑낑대며 대화하던  팀장이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우리를 집합시켜 상황을 브리핑한다.

“다행히, 음, 이게 다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페어리들이 고블린 부락의 위치를 아는 모양이다. 구출작전을 위해 길안내에 협조하기로 했다.”


“부락이 하나만 있는건 아닐텐데, 고블린 인구가 총 몇이나 된답니까?”

“몰라. 그렇게 상세한 대화는 아직 무리야. 마을이 몇 개인지도 확실치 않은데. 다만 놈들의 성지를 우리가 파괴한 후 다른 곳에서 뭔가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같아. 그냥 화풀이삼아 공격했다기엔 체계적이고 대규모의 습격이었으니까. 아, 그리고...”

브리핑하던 강경호 팀장이 쯧하고 혀를 차더니 꺼림칙하다는듯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중국 놈들도 개입했다나봐. 우리와 꼭 닮은 일단의 무리들이 마을의 방벽을 부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그럴만한 동양인 팀이라면 중국밖에  있겠냐.”

“예? 아니, 그 놈들은 철수했다면서요?”


“철수한 것으로 추측을 했던거지, 우리 측에서. 애초에 한국하고 중국 사이에 명시적으로 오간 말은 아무것도 없어. 하아, 내가 이런게 싫어서 공무원 안 한건데 말이야.”


고블린들의 인신공희에 조력했다는 혐의를 부정했으니 당연히 개입했던 증거를 모두 인멸하고 철수를 했을거라고 여겼지만 아무래도 미련이  남아있었나보다.
그간 함께한 정으로 마지막으로 고블린들을 통크게 도와줬거나, 아니면 저번과 같은 주술의식을 대규모로 펼쳐 숲에 결계를 두르고 시치미를 뗄 생각인건지도 모른다.
우리가 성역을 불태우고 결계를 깬 것은 어디까지나 운이 많이 따라줬던 결과니까.
만약 숲이 공간왜곡결계로 차단된다면 외부에서 깰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저들의 예상 밖으로 빠르게 지원을 나와 허를 찌른 셈이다.


“고블린 마을에서 사람이 보이면, 음... 일단 적으로 간주한다. 되도록 살려서 잡되 무리하지는 말고. 여차하면 그냥 쏴버려. 내가  책임질테니까.”

“그런데  놈들이 우리보다 더 많으면요?”

“우린 장갑차를 두 대나 끌고 왔잖아. 뉴콜롬버스 반도가 아무리 넓다지만 헌터들 다니는 길은 뻔한데, 그 놈들은 최대한 정체를 숨기고 은밀하게 움직여야 했을테니까 중장비를 동원하지는 못 했을거야. 기껏해야 개인화기 정도나 챙겼겠지. 솔직히 현지 이종족이나 괴수들 상대로는 큰 차이가 없잖냐. 그러니까 위험하긴 하겠지만 충분히 제압 가능할거라고 본다.”

괴수와 전투를 벌일 때 가장 중요한건 어디까지나 이능을 집중해 방어막을 상쇄하는 것이다.
일단 방어막만 벗겨내면 지구에서든 이 행성에서든 열병기 앞에서 모든게 평등하니까.
장갑차나 전차, 총과 대포, 미사일 등의 온갖 병기들을 바리바리 실어 다 끌고 와도 개인화기로 무장한 헌터분대와 효율이 비슷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우리 팀만 해도 장갑차는 어디까지나 화물적재량과 험지돌파능력 등의 편의성을 보고 끌고 다니는거지 전투에 투입할때는 단순한 엄폐물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거든.

“음,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럴듯하네요.”

하지만 그건 괴수나 이종족들 상대할 때의 얘기고.
방어막이 없는 같은 인간들끼리 싸운다고 가정하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군에서 쓰는 진짜 장갑차에 비하면 손색이 있지만 우리 전투차량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기갑을 상대로 소총 한 자루 꼬나쥔 알보병이 뭘 어쩌겠어?
저 놈들이 고블린 지원하러 들어올  부피가 크고 까다로운데 쓸 일도 없으리라고 예상되었을 대전차 화기를 충실히 구비해서 왔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

“우리 장갑차 제원이 어떻게 된다고 했죠? 피니셔들이 즐겨쓰는 대구경 화기엔 뚫리나요?”

“그야 뚫리겠지. 괴수들 이빨과 발톱을 막으라고 있는 강판인데. 하지만 아무 걱정할 것 없어. 지호 넌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원정 중에 다른 헌터 팀들과 분쟁이 생기는 경우가 아주 없는건 또 아니거든. 다 정립된 노하우가 있고 전술이 있어.”


여기까지 와서 무섭다고 내빼봐야  수 없지만 내심 착잡하다.
 사기적인 위력의 초능력만 믿고 괴수를 사냥하는 헌팅 팀에 입사를 한건데 말이야.
총격전에 투입될거라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는데.
돌이켜보면 훈련소에서도 커리큘럼에 권총사격이 포함되어 있었지.
한수호가 장갑차 안에서 방탄복과 고글, 방탄헬멧 등의 장구류를 꺼내 팀원들에게 나눠준다.

“방검복 안쪽에다 덧대입어. 음, 지호는 개인무장 안 가지고 왔네? 가만있자, 여분으로 뒀던게 여기 어디 있었는데... 아, 찾았다. 사격은 훈련소에서 배웠지?”


“예. 배우긴 했는데...”


자동권총 한 자루와 탄창 세 개를 쥐어주면서 배웠으면 됐지, 하면서 넘어가는 모습을 보니 내가 헌터로 취직을 했는지 용병으로 취직을 했는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총을 받아 훈련소에서 배웠던대로 조정간을 안전에 놓고 홀스터와 탄입대까지 방탄복 옆에 매달고 있는건 어디까지나 현실감이 없어서일 뿐이었다.
대충 예상은 했지만, 진짜 중국 놈들하고 싸운다고?
조선족 깡패나 서해 해적하고 싸운다고 해도 손발이 덜덜 떨릴텐데 아예 극비리에 작전을 벌이는 각성자 특수부대 소속으로 추정되는 애들이랑?
오닉스 3팀의 헌터들이 얼마나 노련하고 숙련된 정예인지는 내가 짧은 기간이나마 함께하면서 익히 느끼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간단한 정비를 마치고 다시 출발하는 순간까지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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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정글을 헤쳐가는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페어리들은 헤매이지 않고 잘도 길을 찾아가며 빠르게 우리를 고블린 부락으로 안내했다.
보아하니 페어리와 고블린은 이미 서로의 영역을 알고 오랜기간 다퉈온 사이인 모양이다.
그러다가 중국의 헌터들이 개입하면서 파워 밸런스가 순식간에 무너졌겠지.
고블린들은 공간왜곡결계를 펼칠 수 있는 주술적 의식을 갖고 있었으니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고블린을 돕는게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사실 뭐, ‘인신공양 의식’이라는 단어를 쓰니까 끔찍하게 느껴지는거지 인명경시 풍조가 만연한 중국인들 입장에선 별로 낯설거나 꺼림칙한 일 축에도 못 들었을테니까.

“정지. 시동끄고 장갑차 중심으로 방어선 만들어. 기정이하고 명진이, 정찰 다녀와.”


“알겠습니다. 페어리는 다섯은 여기서 보호하고 하나만 데려가겠습니다.”

길잡이 페어리와 잠깐 대화한 팀장은 탱커 둘을 정찰로 앞서보내고 방어선 구축을 지시했다.
철조망을 꺼내 깔고 판넬로 된 금속제 엄폐물을 장갑차 사이에 펼치는 작업은 약 삼십여분 정도 걸렸는데, 그 사이에 정찰을 마친 윤기정과 채명진이 복귀해서 보고한다.

“30미터 정도 전방에 커다란 분지가 있습니다. 저번에 본 것과 같은 땅굴의 흔적을 여럿 발견했는데, 고블린들이 드나드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어, 그런데, 규모가 심상치 않은데요.”

“많아?”

“엄청나게요. 저희가 보는 동안 드나든 것만 수십 단윕니다. 안쪽으로 얼마나 더 뻗어있을지는 몰라도 보통 큰 부락이 아닌 모양입니다. 어쩌면 수백, 수천과 맞닥뜨릴지도 몰라요.”


“일단 철수하고 지원군을 기다려야하나...”

가볍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할만도 한 상황이었다.
혹시 모를 중국 헌터들과의 교전까지 감안해서 평소보다 더 충실한 무장에 고속유탄발사기같은 고화력 대량살상 지원화기까지 챙겨왔지만 그런건 이종족과의 싸움에선 별 의미가 없다.
우리 팀 공격조의 이능화력만으로는 천 단위의 고블린들과 정면으로 싸우기 힘들지.
아무리 페어리들이 잠정적인 우호세력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을 구조하기 위해 우리 목숨을 내놓고 가망없는 싸움을 벌여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묵묵히 간이 방어선 축조에 성실히 임하는 선배들의 모습에서 강경호 팀장이 평소 얼마나 팀원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지를  수 있었다.
그는 오래지 않아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만으로는 무리다. 마을 규모를 처음부터 잘못 예측했어.”

“팀장님, 그럼 철수합니까?”


“그래. 지도작성은 됐을테니까 뒤따라오고 있을 본대에 알리면 우리 할 일은 끝나는거지. 우린 어디까지나 선발대니까.  수 없는 일에 미련을 갖는건 바보짓이야.”

“이미 늦었습니다. 팀장님, 좀 와보셔야 할  같습니다.”


아쉽지만 빠르게 철수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중론이 모아지는 가운데 후방경계를 나갔던 실더 강승호가 급히 돌아와 떨떠름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리고 급조한 방어선 바깥 십수미터 가량을 한바퀴 돌아보면서 우리는 직감했다.
아, 이거  재수없게 물렸구나, 싸울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지나온 후방에 장갑차 무한궤도가 밟고 지나간 흔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바로 얼마 전 바로 이 숲에서 겪었던 현상 그대로였다.


“이거 액운이 껴도 보통 낀게 아닌데...”

늘 유쾌하던 공격조장 박우진이 검게 죽은 얼굴로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한번 죽을뻔했을 때 여긴 뭔가 아니다 했어야 했는데 두 번째 발을 들였더니 이 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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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결계가 펼쳐진 이상 무사복귀를 위해서는 예전처럼 의식을 중단시키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고블린의 주술에 대해  모르지만, 경험적으로 모조리 때려부수고 불태우면 의식이 중단되고 결계가 걷히더라 하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쉿. 장비 결속 더 빡빡하게 해.  놈들이 얼마나 민감한지는 모르겠지만 목숨 걸렸다, 응?”

“죄,죄송합니다.”

그렇다고 수백, 어쩌면 천단위가 될지도 모를 압도적 숫자 앞에 달려들어 산화할 수도 없으니 우리가 선택할수 있는건 은밀히 침투하여 의식을 중단시키는 길밖에 없다.
여유가 없으니 현 상황에서 땅굴에 돌입하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힐러 겸 피니셔 한수호만 혼자 장갑차에 후방경계역으로 남겨두고 나머지 인원 전원이 동원되었다.
새로 받아 멘 홀스터와 탄입대가 제대로 몸에 밀착되지 않아 방탄조끼의 플레이트에 닿으며 철그럭거리는 소리를 내자 속삭이는 데시벨로 구박이 쏟아진다.
이런 금속성의 소리는 말소리보다 훨씬 멀리서도 들린다는걸 지식으로는 나도 알고 있었다.
열 다섯발들이 탄창 세 개가 가지런히 꽂힌 탄입대를 바싹 조여매면서 숨을 죽였다.
정글이 끝나는 곳,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정글 한 가운데에 놈들이 개간을 해서 우거진 나무들을 정리해 놓은거겠지만, 아무튼 시야가 확 트이는 곳에 고블린  무리가 보인다.
페어리들을 십수명 줄줄이 묶어서 끌고 복귀하는 놈들인 것 같았다.
어쩌면 소굴은 따로 있고 저 놈들이 들어가는 저 땅굴은 주술의식을 위해 마련된 공간일지도.

“지호야, 네 역할이 중요하다. 다섯 놈이니까 일격에 두 놈씩, 십 초안에 다 잡자.”

“맡겨만 주세요. 후우, 조금 더 가까이 가도  들키겠죠?”

“지금까지의 전훈으로 미루어보면 냄새를 잘 맡는 놈들은 아냐. 소리하고 은폐만 조심해.”

살짝 부족한 사정거리 안에 넣기 위해 수풀을 헤치고 포복으로 조금  전진했다.
만약을 위해 윤기정이 내 바로 옆에 붙어서 따라온다.
놈들을 최대사거리 근처에 걸쳐서 넣은 나는 약간 더 욕심을 부려보기로 했다.
수 미터를 더 전진하여 일직선상에 위치하도록 각도를 잡고, 심호흡 한번 하고, 이능발현.
에테르 칼날이 소리없이 쏘아져 나간다.
십여미터 안쪽에서 넉넉한 사거리를 두고 발출된 칼날은 내가 의도한대로 세 놈을 꿰뚫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채 두 쪽이 나서 후두둑 내장을 쏟으며 무너져내리는 세 마리 뒤로 보이는 페어리 포로들과 남은 두 놈의 고블린은 급작스러운 상황변화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눈만 둥그렇게 뜨고 당황하고 있었다.
그들이 습격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돌로 된 투박한 무기를 곧추세우기까지 겨우  초에서 이  남짓한 시간만 걸렸으니 반응이 늦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가혹하지만, 어쨌든 무기를 들고 대응할 태세를 갖추자마자  번째 공격은 사정 봐주지 않고 날아들었다.

“훌륭해. 젠장, 괴수사냥을 온 거였으면 여기서 상황종룐데. 아무튼 잘했다.”

“저 녀석들이 조금만 더 일렬에 가깝게  있었으면 두 번도 필요없었을텐데. 아깝네요.”

“자식이, 허세는.”

 공격 후 채 몇 초가 지나가기 전에 다섯 마리의 고블린은 모두 여러 조각이 난 것이다.
내 뒤로 따라붙던 길잡이 페어리가 달려나가 포로들을 안심시켰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지르려다 말고 상황을 이해했는지 두 손으로 입을 꾹 막은채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이 애처롭다.


“이거, 가능성 있는  같다. 안 그래? 그 흔한 보초도 안 세워놓고, 아주 군기가 개판이야.”

“쟤들한테 군대라는 개념이 있는건지부터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구조한 페어리들은 후송... 아니다. 그럴 여유 없겠구나. 후우, 다들 준비됐지?”

거 참, 우리도 군인은 아닌데 왜  비유를 그렇게 하는지 몰라.
안 그래도 처한 상황이  전쟁영화에서나 보던 상황이라 착잡한데.
포로들을 뒤쪽의 방어선까지 후송할 시간도 없이, 우리는 그대로 땅굴 안으로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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