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1부
술집과 노래방, 볼링장, 당구장 등의 각종 유흥업소가 밀집한 구역에는 벌써부터 우리가 데려온 이종족에 대한 소문이 쫙 퍼져 있었다.
여기선 인터넷도 안 되니까 누가 단체문자를 돌렸을리도 없는데 신기하게 빠르네.
“뭐 얼마나 됐다고 우리가 데려온 작달막한 이종족들에 대한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데요? 보안상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요?”
“별 수 있냐. 정문 통과할 때 본 사람이 한둘이어야지. 어쩔 수 없는건 어쩔 수 없는거야.”
“지호야, 그런건 윗사람들이 고민할 문제잖아. 우린 그냥 사냥해서 돈 벌면 그만이지.”
돈 벌어서 외제차도 사고 빌딩도 올리고, 그러다 남으면 가족들도 호강시켜주고...
아니, 순서가 좀 이상하지 않나?
그 와중에 가족들 호강시켜주는게 제일 마지막이네.
위스키 한 잔을 스트레이트로 들이키더니 즉시 취해서 떠드는 윤기정을 보고 혀를 찼다.
옆 테이블에서는 도수가 낮은 칵테일과 맥주 등을 시켜놓고 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는데, 귀를 기울여보니 이번 원정에서 얻은 전리품에 대해 논의하는 것 같았다.
기지에서 대기하던 행보관 최종수가 일괄적으로 걷어갔으니 처분이 되는대로 미리 정해진 비율로 분배가 되겠지만, 얼마나 돈이 들어올지를 예상하는건 즐거운 일인 것이다.
“적어도 오륙천은 더 나오겠지? 사체를 제대로 못 챙기긴 했지만 마석을 큰 놈으로 꽤나 챙겼으니까. 아, 그 쥐새끼만한 놈들 몸에 마석이 있었으면 억대도 가뿐했을텐데.”
“우리 인원이 스물이니까 나눠보면 인당 삼백도 아슬하네요. 쩝, 수익이 영 별론데.”
“대신 빨리 돌아왔잖아. 체류기간 넉넉하니까 짧게 한번쯤 더 나갔다 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이번에 세기의 대발견도 했고. 회사 차원에서 성과급을 따로 뿌리지 않겠어?”
수익이 낮다고 불평하면서 한 잔에 몇 만원을 훌쩍 넘기는 술을 홀짝거리는건 좀 모순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뭐, 죽다 살았는데 한 잔 해야지 어쩌겠어.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제대로 챙겨오지 못한 전리품들에 대한 아까움을 토로하던 화제는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어느덧 내 두 번째 이능 각성에 이른다.
“너 지구로 복귀하는대로 바로 검사받아. 이능센터에서 받아도 되고, 회사 연구소에서 받아도 되고. 추가각성을 했는데 당연히 등록해야지. 연봉 자릿수가 달라질텐데 말이야.”
“암. 무려 복수능력자, 그것도 S급 공격기와 이동기의 조합이잖아? 아마 연구실에서 이동기 시연 몇 번 하고 데이터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쏠쏠하게 돈이 나올걸.”
“순간이동이 맞아요. 제가 그때 말했잖아요, 이 녀석 앞을 단단히 가로막고 있었다고. 괴수놈들 못 들이치게 막고 있었던거니까 뒤쪽을 완전히 차단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다 큰 어른 몸뚱이가 빠져나갈 틈은 없었어요. 크으, 순간이동이라니. 그야말로 로망이네. 영화에서 보면 그런 이능으로 은행도 털고 공짜여행도 하고 그러던데. 지호 넌 얼마나 멀리 되냐?”
“그,글쎄요. 기껏해야 삼사십미터 정도가 한계인 것 같은데...”
“엄청 기네! 그 정도면 충분히 은행금고 털 수 있지 않을까? 보이는 곳으로만 이동되지?”
“아, 네...”
단거리 순간이동 능력을 보고서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이 은행털이라니, 평소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건지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아서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보호막의 경우엔 이동 직후에 날아온 칼을 등으로 받으면서도 멀쩡한 모습을 보여 그 존재를 다들 확인했지만 별다른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겨우 2초 가량의 짧은 시간동안만 유지되는거라서 그것만 믿고 탱커역할을 맡길순 없으니까.
팀 내에서 내 가치는 어디까지나 방어막을 단번에 상쇄하는 화력에 있는 것이다.
“이 녀석 이거, 또 다음 사냥 나가면 막 이능하나 더 각성하고 그러는거 아냐?”
술에 취해서 지나가듯 한 농담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마냥 웃을수만도 없는 이야기다.
정황상 레벨업을 해서 두 번째 스킬을 찍은걸로 봐야 하는데...
문제는 스킬을 찍는 기준이 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 저번 전투만 해도 잊고 있던 이동스킬을 멋대로 찍어버리는 바람에 무심코 썼다가 적진의 한복판에 자살돌격을 하는 꼴이 되지 않았던가.
가만있자, 두 개를 배웠으니 일반스킬은 하나 남았네.
환영검사의 나머지 스킬 하나가 뭐였더라.
10레벨에나 배우는 궁극기는 한참 먼 일이니 다음 레벨업때는 분명히 그걸 배우게 될텐데.
“아, 생각났다.”
“응? 무슨 일인데?”
“아무것도 아녜요. 훈련소 실습나왔을 때 여기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에테르 검사의 두 번째 스킬은 망령화로, 간단히 말해 쿨타임이 짧은 투명 은신스킬이었다.
팀파이트에서 에테르 쉬프트로 돌진해 딜을 욱여넣고 망령화로 은신하며 어그로 핑퐁을 하면서 다음 쉬프트 쿨이 올 때까지 외줄타기를 하는게 환영검사 팀파이트의 정석.
부가옵션으로 지속시간 안이라도 이쪽에서 선공을 하면 은신상태가 해제되지만 은신중에는 체력회복과 방어력, 저항력이 대폭 상승하기 때문에 준수한 성능의 탈출기로 이름이 높았다.
하여튼 환영검사가 보조스킬들은 하나같이 성능이 사기적이란 말이야.
주력스킬인 에테르 칼날이 애매한 중거리 스킬이라 쉬프트같은 사기적인 탈출기를 진입기로 써야하는게 아니었다면 오버파워 캐릭터로 악명이 높았으리라.
미세한 거리조절과 눈치싸움, 능숙한 어그로핑퐁을 캐릭터 활용의 기본전제로 하니 반대로 잘 쓰는 사람이 잡지 않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로 악명이 높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설계 시에 파워밸런싱이 잘 됐다고 봐야 할까.
“그런데 그거, 쓰기가 무지 애매한데. 음...”
“쓰기가 애매하긴! 말이 삼십미터지, 그게 얼마나 먼 거리인지는 너도 알잖냐. 자주 쓰진 않겠지만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때 목숨줄 하나가 더 생긴 셈인데. 안 그래?”
“크흠. 쓸 일이 거의 없겠다는 뜻이었죠. 전 우리 탱커조 선배들 믿으니까요. 하하하.”
망령화의 지속시간이 내 기억에 2초인가 2.5초인가, 하여튼 엄청 짧았는데.
아, 부가옵션을 활용해서 피곤할 때 피로회복제 대용으로 쓸 수는 있지 않을까?
자세한 수치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언뜻 떠오르는 인게임 플레이의 기억에 의하면 망령화 풀타임으로 쓰고 나면 체력이 거의 2할 정도는 차오르는 것 같았으니까.
앞으로는 막타 잘 쳐서 빠르게 레벨업을 노려봐야겠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앞에 놓인 온더락 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간다.
씁쓸한 나무냄새를 풍기는 위스키를 한모금 마시고 통조림 복숭아 한 조각을 베어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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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오닉스 헌터즈가 요정의 숲 가장 깊은 곳에서 이종족을 발견해 잡아왔다더라는 소문은 말에 발이라도 달린 듯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퍼져나갔다.
아무래도 소식을 듣고 지구로 돌아갔던 헌터들이 입을 싸게 놀린게 틀림없다.
보통 나리분지 게이트로 출입하지 않는 외국의 헌터들이 근래에 주변에서 많이 보였거든.
평상시에는 한국 전진기지에 들락거릴 일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다.
영토 내에 게이트가 열리지 않은 나라의 헌터들은 비싼 요금을 내고 외국 게이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동북아의 한중일 3국은 각자 영토 내에 최소한 하나 이상의 게이트를 보유하고 있어서 자국에 열린 게이트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국제협약으로 게이트에 외국인의 출입을 금지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해도 자국 헌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바가지를 씌우는건 당연한 일이니까.
“하루아침에 아주 그냥 인종의 전시장이 되어버렸구만. 코 크고 눈 퍼런 백인에, 피부 까만 흑인에, 느끼하게 생긴 아랍인들도 보이고...”
“형,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혐오발언으로 고소당하면 억울하단 소리도 못하겠네.”
“너 진짜 혐오발언이 어떤건지 모르는구나? 예컨대 말이지. 저 쪽에 모여서 귀에 거슬리는 중국말로 떠드는 저 놈들은 그야말로 바퀴...”
“아아, 진짜. 들린다구요! 신체강화나 감각계열 각성자가 이능발현이라도 하고 있으면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함부로 입 밖에 내는거예요?”
“틀렸단 말은 안 하는구나. 큭큭큭.”
“어...”
대꾸할 말은 마땅치 않지만 아무튼 오해다. 난 누구같은 레이시스트가 아냐.
신체강화 능력자라서 그런가, 윤기정 이 아저씨 아주 세상에 무서운게 없나보구만.
다행히 듣지 못했는지 예닐곱의 중국인 헌터 무리는 별다른 반응없이 우리를 스쳐지나간다.
생각해보면 기지 내에서 이능을 발현하고 다니는 쓸데없는 낭비를 할 사람은 거의 없겠지.
“그나저나 우리 팀장님, 네이밍 센스가 참 귀엽단 말이야.”
“아, 고블린이랑 페어리요? 왜요, 그럭저럭 어울리는 것 같은데. 생김새만 봐도 딱 옛날 판타지영화나 알피지 게임에 나오는 몬스터들 생각나지 않아요?”
새로이 발견된 이종족 둘, 하나는 생포하지 못하고 시체 두엇만 가져왔지만, 아무튼 새로운 종족의 이름을 짓는건 최초발견자인 우리 3팀의 권리였다.
강경호 팀장은 팀원들과 토의를 해서 결정하려고 했지만 당시 늦게까지 2차, 3차의 회식자리를 이어가던 우리는 만장일치로 결정권을 팀장에게 위임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결정된 이름이 고블린과 페어리.
당연히 인신공양의식을 하고 우리에게 덤벼들던 흉측하게 생긴 놈들이 고블린이고 고블린들에게 잡혀있다가 우리를 따라나온 종족이 페어리다.
개인적으로 고블린이야 어쨌든 페어리는 음, 전혀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기왕 결정권을 유보했는데 뭐 어쩌겠는가, 그런가보다 하면서 받아들여야지.
강경호 팀장은 요정의 숲에서 발견한 이종족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지은 것 같은데, 사실 요정의 숲이라는 네이밍도 최초발견한 일본의 어느 헌터가 멋대로 붙인 이름이었다.
그 헌터가 아마 ‘이 숲에는 엘프가 살고 있는게 분명해’라며 붙였더랬지?
엘프는 개뿔, 온갖 혐오스럽게 생긴 괴수들이 꿈틀대고 있더만.
발이 넓은 윤기정이 주워들은 신뢰성 부족한 카더라 소식을 전하며 잘난척을 한다.
“우리가 데려온 페어리들은 지금 대화를 기록하는 중이래. 본국에서 무슨 언어학자며 인류학자며 심리학자까지 온갖 전문가들이 몰려와서 광분하고 있다던데. 어제 봤던 그 사무관이 그러는데, 넉넉잡아 한 달 안에 기초적인 의사소통이 될 정도로 언어분석이 끝날거라고 서울대 교수가 그랬다더라. 신기하지 않냐? 우리랑 성대구조도 다른 애들 언어를...”
“그거 믿을만한거 맞아요? 두 번이나 건너건너 온 정보잖아요.”
“국내 최고의 전문가라잖냐. 그 정도는 해주겠지. 아무튼 말만 통하면 요정의 숲을 개척하는데 완전히 새로운 국면이 펼쳐질거야. 페어리들은 고블린들과 서식지가 겹치거나 최소한 가까이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한 쪽을 선택해야겠지. 내부의 괴수들에 대한 정보를 받고 고블린 부락을 토벌하면서 들어가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효율적으로 개척을 할 수 있어. 그리고 아마 그 주역은 우리 오닉스가 될거다. 요정의 숲에 어떤 자원들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일그룹은 반드시 이런 로또를 긁어볼테니까. 그러니 우리 팀원들은 마음가짐을...”
“행보관님, 팀장님이 3팀 전원 집합하시랍니다.”
일단 이능각성자이긴 하지만 전투에 적합하지 않아 원정에 참여하기보다는 전공을 살려 3팀의 재무관리나 보급을 담당하고 있는 최종수가 잔뜩 고무되어 한바탕 연설을 늘어놓으려는걸 밖에서 대기하다가 무전을 받은 한수호가 들어와 중단시킨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팀원들이 픽 웃음을 흘리면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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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오닉스 헌터즈 본사와 후원사인 신일그룹에서 파견나온 사람들은 아직도 정부측 공무원들과 입씨름을 하고 있는 듯 했 강경호 팀장은 표정이 밝지 않았다.
의외네, 협상이 잘 안 되나?
아니, 근데 설령 협상이 생각대로 잘 안 되더라도 그렇게 고뇌에 찬 표정을 지을 것까지 있나, 어쨌든 우리가 성과를 올린건 올린건데.
강 팀장을 따라들어온 양복 차림의 남자가 우리에게 종이를 한 장씩 돌린다.
“여기 보안서약서 좀 작성해주시죠.”
“예? 아, 네...”
“이거 의미가 있나? 밖에 고블린이랑 페어리 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던데.”
“쉿. 그냥 얌전히 사인이나 해.”
보안서약서 작성이 끝나자 강 팀장은 무거운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인류 최초로 문명을 이룬 이종족과 접촉한건 우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직 원활하게 대화가 되는 수준이 아니라서 확실하진 않지만 상황을 맞추어보면...”
겨우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 그새 페어리들과 일정 수준의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언어를 분석한거야? 한 달은 걸린다며?
그 서울대 교수라는 양반, 알고보니 허세가 아니라 오히려 엄살이 너무 심했잖아.
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만 잡념은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면서 머릿속에서 싹 사라지고 말았다.
“어... 그러니까 요약을 하자면.”
삼십여분이나 이어진 설명을 묵묵히 듣던 한수호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머리를 긁으면서 반문한다.
“그러니까, 요정의 숲 서쪽에 중국의 비밀기지가 있고, 거기서 나온 특작부대원들이 고블린들을 도와 페어리 부락을 습격하고 납치했다는겁니까? 아니, 걔들이 왜요?”
“우리도 겪어봐서 알잖나. 자그마치 요정의 숲 전체에 공간왜곡 결계를 펼칠 수 있는 주술이야. 그걸 가져와서 분석하면 얼마나 대단한 기술적 진보를 이룰 수 있겠어?”
“요정의 숲 서쪽은 동쪽 루트와 달리 거대괴수 서식지가 겹쳐있는데다 늪지대도 많아서 접근이 불가능하다고 봤던 것 같은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던거지. 오히려 동쪽에서 접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중심부로 들어갈 수 있는 안전한 루트인 것 같아. 위장하는데 공이 많이 들었을텐데.”
그래서 페어리들이 자기네를 구조한 우리 일행도 무척 무서워했던건가.
뜻을 알아낸 단어 몇 가지와 손짓발짓, 그림 등을 통해 이루어진 페어리들의 증언을 한국기지에서 해석한게 맞다면, 우리가 섬멸한 고블린 부락은 일종의 성역이었다.
고블린들도 나름대로 인간을 경계하고 방어를 했지만 그건 그들이 주로 접촉하며 제한적인 거래를 하던 서쪽의 중국인들을 향한 것이어서, 우리가 토벌한 부락은 최후방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