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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화 〉1부 (19/110)



〈 19화 〉1부

방향을 정해서 급히 출발한지 겨우 두시간만에, 우리는 요정의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지도를 펼치고 주변 지형에 대조해본 강 팀장은 우리가 진입한 위치에서 약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으로 빠져나왔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에서 헤매인걸 감안하면 겨우  정도만 떨어진 곳으로 나온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팀장님, 아까부터 여쭤보려고 했는데... 얘들은 뭡니까? 혹시 그 놈들 새끼들인가요?”


“아냐. 완전히 다르게 생겼잖아. 서로 다른 종족인 것 같아.”

“형, 들어봐요. 우리도 처음엔 얘들이 한통속인줄 알았거든? 근데 정반대더라고. 지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으면 못 믿을걸. 형이 내려와서 봤어야 돼. 글쎄,  놈들이...”

아직 기지로 복귀한건 아니니까 안전이 완전히 확보되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일단 미로가 되었던 요정의 숲을 빠져나온 것만으로도 긴장이 풀렸는지 다들 표정이 밝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지하에서 목격한 목불인견의 참상을 떠들어대는 말을 들어도 밖에서 주변을 경계하며 대기하던 채명진과 그의 부사수는 그 감정에 통 공감하지 못했다.
그야 사람도 아니고 아무리 지성이 있어보인다고는 해도 영장류 괴수들끼리 죽고 죽였다는데 말로만 듣고서 쉬이 끔찍하다는 감상을 느낄 리가 없지.
희생제물이 어쩌고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건 모종의 주술적 의식으로 인해 요정의 숲에 공간왜곡 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이었다.

“보고하면 관리부에서 믿을까?”

“안 믿으면 어쩌겠습니까. 저도 솔직히 영 믿기 힘든 일이라는건 동의하지만 장갑차 블랙박스랑 팀원들 퍼스널 캠에 찍힌게 죄다 증거 아니겠어요? 특히 하늘이 깨져나가는 장면은 따로 녹화해놓고 싶을 정도로 장관이더만.”


“성큰을 마주친걸 보면 우리가 엉겁결에  중심부까지 들어갔다가 나온게 분명해. 공간왜곡이라. 헛 참. 아직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군. 현실감이 없어.”

“여긴 지구가 아니라 외계행성이잖습니까. 여기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강조하시던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건 항상 긴장 풀지 말라는 의미에서 한 소리였지 인마.”

무형의 불안감이 걷히고 날을 시퍼렇게 세우고 있던 기세도 누그러드니 장갑차를 졸졸 따라오던 이종족 포로들도 덩달아 긴장이  풀리는  배시시 웃는다.
음, 저 종족도 입꼬리를 양 옆으로 끌어올리는 저 표정이 호의적인 표시가 맞겠지?
저 놈들이 여기서 난데없이 우리에게 무모하게 이빨을 드러낼 리는 없으니까.
가만보면 나름 귀여운 구석이 있는  같기도 하고.
말은 안 통하지만 손짓 발짓으로 어떻게 안심시켜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게 이게 웬걸, 조심스레 옆으로 다가서니 녀석들은 깜짝 놀라서 땅바닥에 엎드려 난리다.
고개를 조아리고 짹짹거리며 빠르게 뭔가 말을 하는데,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시선이 모여드는걸 느끼면서 적잖이 당황해서 손사래를 친다.

“막내야, 너 얘들 때렸냐?  많이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

“그럴리가요. 애초에 구출한 다음부터 쭉 대열 중간에 넣어서 데리고 왔잖아요.”

“근데 왜 얘들이 이렇게 납작 엎드려서 이러냐? 암만 봐도 빌고 있는 것 같은데.”

“손 뻗는거 보고 겁먹은거잖아. 지하에서 얘네들 구조한 다음에도 여러차례 전투가 있었거든. 지호가 제일 날뛰었지. 절반 이상은 저 녀석이 반으로 갈라 죽였을걸?”

그거야 좁은 통로에서 박우진의 화염구같은건 의도치 않은 부수적 피해를 가져올 수 있어 사용이 제한되는데다 국소범위를 정밀타격할 수 있는 이능은 보통 파괴력의 절대치가 낮으니까.
에테르 칼날을 3초 간격으로 꾸준히 날려대는 것만으로도 내가 나머지 공격조원들 전부를 합친 것 이상의 전과를 올린 것에는 그런 지형적 조건의 덕분이었다.
음, 그런가, 그래서 겁을 먹었나.
이능을 발현하여 에테르 칼날을 뻗는건 신체의 움직임 없이도 가능한 일이지만 컨트롤에 있어서 약간이나마 더 정밀하게 이미지를 잡기 위해 손짓을 하던게 탈이었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방금 다가서면서 했던 손짓이 비슷하게 보일 여지가 없진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자자, 다들 일어서세요. 음, 말은 안 통하겠지. 얘들아,  분들  일으켜 세워라. 당장은 어쩔 수 없으니까 우선은 기지로 데려가보는 수밖에 없겠다.”


“그거 납치 아닙니까?”

“아 그럼 어쩔건데. 가라고 해도 못 알아먹고 계속 따라오잖아. 그리고 자그마치 인류가 처음으로 접촉한 지성이 있는 이종족이라고. 우리가 멋대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냐.”

“확실히 그렇긴 하죠. 음, 이거 생각해보니 진짜 난리가 나겠는데.”

“돌도끼 들고 덤비던 놈들한테 무력하게 잡혀있던걸 보면 문명 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을겁니다. 뭐, 말에 규칙성은 있어보이니까 데려다놓고 연구하면 언젠가 서로 통역은 되겠네요.”

글쎄, 내 생각엔 문명 수준과 별개로 우리가 얻어갈만한건 충분히 있을 것 같은데.
땅굴파고 돌도끼 휘두르던 놈들도 공간왜곡 결계를 펼쳐내는 마당에 얘들이라고 인류보다 앞선 기술 한두가지쯤 갖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잖아.
우선 서로 말부터 배워서 통역을 확보하고 문화에 대한 이해를 하는게 먼저겠지만 역사의 사례들을 볼 때 그게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게 분명했다.
한둘도 아니고 다양한 연령대로 무려 십여 명이나 되는 샘플을 데려가는건데 말이야.
이만하면 기본적인 교류를 시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숫자가 아니겠는가.
최대한 친절하려고 노력하는 손길에 엉거주춤 일어나서 우리를 여전히  먹은, 그러나 한켠으로는 경외감이 느껴지는 눈길로 바라보는 이종족들에게 씩 웃어주었다.
생각해보면 쟤들이 보기에는 영락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의 군대가 따로 없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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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의 숲을 빠져나온 뒤 기지로 복귀하는 동안에는 별다른 전투가 없었다.
사냥이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괴수의 흔적을 쫓아 움직이지 않았던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간을 고려하면 한두번 정도는 전투가 있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요란한 엔진음을 내며 땅바닥에 궤도자국을 길게 늘어뜨리는 장갑차는 어디까지나 전투용이지 아무래도 기도비닉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조우가 없었던건 운이 좋았지.

“집이다! 돌아왔다! 으아!”


“여기가  집이에요? 여기서 살래요?”


“우진이  인마, 무슨 감수성이 그렇게 메말랐냐. 죽다 살아왔는데 기쁘지도 않아? 그저  하는 말이면 어떻게든 말꼬투리 잡아가지고는. 수호야, 쟤 다친거 치료해주지 마.”

공격조장 박우진과 실더 채명진이 언제나처럼 투닥거리며 말다툼을 하는 사이에 얼떨결에 끌려들어간 피니셔 겸 힐러 한수호는 그저 난감하게 웃으며 말을 아낀다.
그래도 타박않고 웃는걸 보면 정신상태를 전투모드에서 일상모드로 바꾸기는 했나보네.
우리 중 가장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주는건 바로 한수호였다.
마치 마음 속에 스위치가 있기라도  것처럼 조용하고 수줍음많은 동네 형같은 느낌의 청년에서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철한 저격수로 바뀌더라.
다른 선배들이라고 마냥 풀어져 있던건 아니지만 그는 요정의 숲을 빠져나온 후에도 긴장을 풀지 않고 주변을 경계하던게  내가 상상하던 노련한 헌터 그 자체였지.

“자,잠깐, 뒤에 오는 저것들은 뭐요?”

“그게 어떻게  일이냐하면... 어, 이걸 뭐라고 설명을 드려야 하나.”

기지 입구의 초소에서 기계적으로 오닉스 3팀의 출입기록을 갱신하던 군인이 혼란스러워한다.
괴수를 산 채로 들여와 연구를 한 사례가 없는건 아니지만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대부분, 아니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괴수는 인간에게 극도로 적대적이고 공격적이기 때문에 산 채로 괴수를 잡는다는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덩치라도 작으면 방어막을 깎지 않고 강제로 물리적인 구속을 해서 끌고 올 가능성이라도 있지, 거대괴수같은 경우엔 이능을 퍼부어 방어막을 상쇄하고 추가로 대구경 탄으로 쏴서 무력화를 시켜야 하니  채로 잡는다는건 말 그대로 운의 영역, 사실상 불가능이지.
중소형 괴수를 잡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라서 희생자가 나오기 십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행렬의 뒤에 졸졸 따라오는 이종족들은 강철 우리에 들어있는 것도, 밧줄로 꽁꽁 묶어놓은 것도 아니고 수갑이나 차꼬로 최소한의 행동제약도 두지 않은 채로 자유롭게 풀려나서 걸어오고 있으니 이런 광경을 처음  병사로서는 기함할 수밖에.
그는 강경호 팀장의 설명을 듣고 난 뒤에도 충격과 공포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했다.
그야 괜찮다는 설명만 듣고 아, 그렇습니까, 하고 넘길 일이 아니니까.


“여,여기서 잠시만 대기해주세요. 사람들 지나다니게 옆으로 좀 비켜주시구요. 통신보안, 통신보안. 정문초소 중사 김철숩니다....”


급히 초소 안으로 돌아가서 통제실에 무전을 치는 군인을 보면서 강 팀장이 어깨를 으쓱한다.
우리는 장갑차를 철조망과 바리케이드로 둘러싸인 외벽에 붙여 통로를 텄다.
정문으로 원정을 나가는 헌터들과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헌터들이 신기하다는 시선으로 우리 행렬과 이종족들을 곁눈질하며 수군거린다.
장갑차 위에 올라가 편히 앉아서 수통의 물을 홀짝거리며 쉬는 사이에 기지 안쪽에서 군복을 입은 장교와 양복을 입은 공무원이 헐레벌떡 달려나왔다.

“김 중사, 헛소리를 한 거라면 가만두지 않... 맙소사. 진짜였어! 사무관님, 여기  보세요.”


“박 중령님, 제가 여기 배치받은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저게 가능한겁니까? 괴수가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고 얌전히 통제에 따르는... 어어? 엎드려서 절까지 하는데요?”


“크흠. 오닉스 헌터즈의 강경호 팀장입니다. 우선 기지 출입허가부터 좀 부탁드립니다.”

“아아, 물론입니다. 뭐해? 바리케이드 치워.”


“박 중령님. 그렇게 간단히 허가할 일은 아닙니다. 일단 격리해서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이야, 그러니까 저 놈들이 최초로 인류에게 적대적이지 않은 괴수, 아니 이종족이라는거죠? 오닉스에서 대박을 쳤네, 대박을 쳤어. 신일 주가 엄청 오르겠구만.”

저마다 둑이라도 터진 것처럼 떠들면서 아무도 남의 말은 안 듣는 것 같은데.
강경호 팀장이 말려보려고 하지만 사무관과 중령, 그리고 마침 지나가다가 이 놀라운 사태에 대해 알게  다른 팀의 헌터들까지 모여들어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다.
한바탕 난장판이 지나간건 기지 안에서 무려 2성장군과 국장급 인사가 튀어나와서 장내를 정리하고 우리 일행을 기지 중앙의 건물로 안내한 뒤였다.
강경호 팀장은 중대한 문제를 3팀 단독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면서 게이트 너머의 오닉스 헌터즈 본사에 연락할 것을 요구했고, 최종수 행보관은 3팀 전원에게 두둑한 금일봉을 내렸다.

“지구로 복귀하진 않을거야. 신청한 체류기한이 많이 남았으니까.”


“하긴,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요정의 숲을 나와서 협곡 쪽으로 한바퀴 크게 돌고 있어야 할 시간이죠. 어? 근데 그럼 짧게 원정 한번 더 나가는겁니까?”


“글쎄. 그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일단 쉬고 있어. 여기 기지 내 물가가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당분간은 충분히 여유롭게 쓸만큼 넉넉하게 넣었으니까. 신입 환영회라도 다시 해.”

“와, 웬일로 우리 행보관님이 이렇게 후하게 인심을 쓰실까?”

물론 다들 고액연봉을 받는 헌터들이니 새삼스레 성과급이라고 받은 용돈은 문자 그대로 술값을 좀 보조해주는 수준에 불과해서 어디까지나 기분만 내는 것에 가깝다.
불안한 눈초리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살피는 이종족들을 손짓발짓으로 통제해가며 전진기지 중앙의 관리국 건물 안으로 몰아넣는동안 그들을 인계한 우리는 두둑한 봉투를 하나씩 받아들고 희희낙락하면서 시가지 쪽으로 돌아선다.
음, 뭔가 모양새가 마치 노예를 잡아와서 팔아넘기는 상인같은 구도인데.
그래도 웬만해선 저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확률은 높지 않을 것이다.
간단한 신체검사와 채혈검사 정도는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상적인 나라에서 운영하는 전진기지에서 처음 접한 외계인이라고 대뜸 해부를 하려고 들지는 않을테니까.
그리고 사실, 산 제물로 인신공양 의식에 바쳐질 운명이던 사람들을 구해냈는데 잠깐 신체가 구속되고 불편을 겪는다한들 그보다 더 불행해질 수가 있겠는가.
나는 여기까지 데려오면서 미약하게 생길락말락하던 책임감을 가볍게 털어냈다.


“행보관님? 지금 바로 게이트 건너가서, 본사에 법무팀 파견요청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지금 통과비용같은걸 따질때가 아니죠. 자자, 다들 걱정말고 어서 가서 쉬어. 불의의 사고를 겪어서 전투피로가 만만치 않을텐데.”

뭐, 여기서부터는 오닉스 헌터즈 수뇌부와 나아가 우리를 후원하는 신일그룹의 높으신 분들이 알아서 정부와 협상을 하든 양보를 하든  일이겠지.
슬쩍 봉투를 열어보니 누런 오만원짜리 지폐가 두툼하게  움큼이다.
열 장, 아니 스무 장은 되는 것 같은데?
숙소는 팀 차원에서 예약할테니 따로 돈  일이 없을테고, 술값하라고 주는 용돈이 이 정도면 확실히 돈이 많이 돌긴 도는 모양이다.
그러고보면 훈련소 실습을 나왔을 때 잠깐 마주쳤던 헌터들도 수백만  단위의 목돈을 무슨 오락실에서 동전 쓰듯 턱턱 던져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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