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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화 〉1부 (16/110)



〈 16화 〉1부

멀쩡히 들어온 길이 막힌데다 온갖 괴수들이 우글거리는 숲에서 길을 잃었다는 최악의 사태에도 오닉스 헌터즈의 3팀 팀원들은 침착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까불거리고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적잖이 감돌던 아까 전에 비해 막상 위기가 닥쳐오니 다들 진중하고 날카로운 태도로 바뀌는게, 무척이나 믿음직스러운 모습이다.
역시 여러번 다녀본 지역이라고 긴장풀고 쉽게 생각하고 있었던게 맞았나보네.


“비상사태다. 기지하고 무전은 닿나?”

“안 잡힙니다. 젠장, 내년에 첫 궤도위성 쏜다는데 일 년만 빨리 쏘지...”


“없는거 아쉬워해서 뭐해? 후우, 무턱대고 구조를 기다릴순 없어. 방향감각이 비틀렸을 가능성이 높으니 일단 여기서 정지한 후 상황을 파악해야 해. 성큰 시체는 버려라. 그거 끌고 다닐 여유는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예상 외로 별거 아닌 일일지도 모르지만 이들은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는게 습관이 된 것처럼 부지런히 움직여 연료와 탄약, 식량의 여유를 확인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능숙한 움직임이 믿음직스럽다.
추측컨대 돌발사태에 휘말려 위기를 겪어본 경험이 처음은 아닌  같았다.

“한 방향으로 쭉 움직인다고 했을 때, 요정의  북쪽은 바다로 이어져. 뉴콤롬버스반도 끄트머리니까. 동쪽이면 한국 기지쪽으로 빠져나갈테니 더할나위 없이 좋고...”

“애초에 그런거 걱정하는게 의미가 있습니까? 요정의 숲이 말이 숲이지 거의 서울시 전체만한 넓이의 땅인데, 빠져나가는걸 최우선으로 둬야지 이런 상황에서 방향까지 신경쓰는건...”

“팀장님, 그보다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게 우선 아닐까요? 나침반이 헛돌고 멀쩡히 지나온 길이 사라지는 현상이 요정의 숲에서 일어났다는 소리는  들어봤습니다. 분명  중심부에서나 출몰하는 성큰이 외곽까지 기어나온 일과 무슨 연관이 있을겁니다.”

“나도 동의해. 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런걸 신경쓸 처지가 아니잖아.”


행렬을 세우고 장갑차 두 대를 이어 기본적인 방어진형을 만들어 놓은채 머리를 맞댄 팀의 수뇌부들이 의견을 교환하지만 마땅한 결론이 나올 리가 없다.
그저 긴장을 유지한 채로 계속 가보는 수밖에 없지.
미국에서 진행한다는 인공위성 프로젝트가  달만 더 빨랐다면 좋았을텐데.
자국 영토 내에 게이트를 보유한 나라들끼리는 정보공유 협정이 맺어져 있으므로 운이 좋다면 위성으로 이상현상을 관측하고 통보해서 구조대를 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뭐, 지금 그런걸 아쉬워 해봐야 의미는 없지만.
오닉스 헌터즈에서 새로 영입한 내 실전경험 측면을 고려하여 중간경로로 설정한 요정의 숲은 원정지로 인기있는 편이 아니었으므로 지나다니는 다른 원정대의 신고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그러니  수 있나.
희박한 확률에 기대어 제 자리에서 대기하기보다는 방향감각의 상실과 공간왜곡 등의 악조건을 감수하고서라도 어떻게든 기동하며 활로를 뚫어보는 수밖에.
예상대로 한참의 논의 끝에 강경호 팀장은 즉각대응 태세로 이동할 것을 지시한다.


“눈 크게 뜨고 긴장 풀지 마. 특이사항 보이면 즉시 보고하고.”

“예. 후우...”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다들 옷과 신발의 끈을 바싹 조이고 장비를 점검하며 심호흡을 한다.
전투차량이 쿠르릉거리는 엔진소리를 내며 굴러가지만 아무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간단한 외상을 치유하는 이능력을 가진 힐러이자 피니셔인 한수호는 대구경 총기와 권총 몇 정을 꺼내 준비해놓고 차 위에 올라가 방탄판 뒤에 자리했고 신체강화능력을 지니고 이번 원정에서 내 전담 실더를 맡은 윤기정은 내 바로 앞에  달라붙어 걸음을 옮긴다.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본격적인 전투태세를 갖춘 오닉스의 3팀은 아까 미리 다 아는 원정로를 산책할 때와는 기도 자체가 완전히 달라서 마치 잘 벼려놓은 칼날같았다.
그러고보면 다들 최소한 십년 가까이 일선에서 구른 경력 좋은 헌터들이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선배들을 힐끔거리며 걸었다.
사실 게이트를 넘어온 이래 오늘 행군이 수월한건 아니어서 아까부터 발이 조금씩 아픈  같았지만 눈치없이 엄살을 부릴만한 계제가 아니다.

“하아... 첫 원정부터 액땜 제대로 하네...”

“선두 컨택트! 1.5미터 가량 소형종, 영장류같습니다. 삼십에서 사십!”

입 밖으로 말소리가 흘러나가지 않도록 작게 투덜거리고 있는데 선두에서 신체강화를 활성화한채로 덩굴과 풀을 헤치고 길을 열던 탱커조 강승호가 정지신호를 보내고 브리핑한다.
윤기정이 평소의 장난기는  뺀 진중한 목소리로 날 격려했다.


“지호야, 알지? 덩치가 가장  놈부터.”

“예.”


몇몇 예외는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덩치가 클수록 방어막의 강도도 높아진다.
그러니 측정불가의 압도적인 데미지를 지닌 내 에테르 칼날은 타겟을 덩치가 큰 순서대로 선정하는게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되는 셈이다.
몇 번이나 들은 지시를 또 듣는 셈이지만 원래 아무리 훈련을 하고 지식을 익혀도 막상 실전에서는 머리가 하얘지는 일이 많지 않은가.
짧게 대답하니 윤기정은 자기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줄테니 긴장 풀라며 웃는다.
거의 내 몸뚱이의   가까이는 되어보이는 근육질의 탱커가 신체강화 이능까지 한껏 끌어올린채 그런 말을 해주니 든든하긴 한데, 뜻밖에도 나는 침착했다.
이건 스스로도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고보면 훈련소에서 실습원정을 나왔을 때도 별로 긴장하지 않고 전투를 치러냈지.
물론 그때는 완전하진 않더라도 교관들에 의해 어느 정도 통제되는 안전한 입장이었으니 지금과 같게 볼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나는 이런 쪽의 재능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전생에서야 뭐, 목숨걸고 싸울 일이 전혀 없었으니 재능이 있더라도  길이 없었겠지.


“처음 보는 미발견 괴수들이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신중하게 사냥한다. 방어조 준비 끝났지? 우진아, 장기전 대비해서 통제해라.”

“예. 민수, 광현. 너희부터 순차사격한다. 절반 아래로 떨어지면 신호하고 물러나.”

강승호가 발견한 괴수들은 도감에서도 본 적이 없던 놈들인데, 강 팀장의 말에 의하면 지금껏 발견되지 않은 신종 괴수라는 모양이다.
명치께에 올 것 같은 작달막한 키에 머리 위로 뿔처럼 불룩 솟은 큰 귀, 전신에 복슬복슬하게 덮여있는 털 등이 특징적으로 보이는데, 실루엣만 보면 사람으로 여길법 했다.
영장류 괴수 중에서도 사람과 꽤 많이 닮은 놈들이네.
녀석들은 이미 우리 행렬을 발견하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달려들고 있었다.
장갑차 엔진소리와 궤도 돌아가는 소리만으로도 기도비닉같은건 당연히 물건너 간 셈이니 들키지 않고 접근할 수 있을거란 생각은 애초에 안 했다.
그래도 선제 공격은 이쪽의 몫이니까.
푸른 빛의 원거리 공격이능이 날카롭게 쏘아져 선두에 선 놈의 가슴께에 부딪힌다.
방어막에 막히긴 했지만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아 당황했는지 달려들던 기세가 살짝 죽는다.

“지호, 사거리 되는대로 자유사격해.”


원거리 공격조장 박우진의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나는 두 걸음 정도 앞으로 내디뎌 아슬아슬하게 15미터 안쪽에 선두권 무리를 넣고 에테르 칼날을 발출했다.
칼날은 크기 1미터가  안 되어서 횡으로 여럿을 동시에 노리는건 무리였지만 타겟을 앞쪽이 아닌 뒤쪽의 최대사거리에 가깝게 두고 날리면 여럿을 관통하듯 베어낼 수 있었다.

“크르륵...”


돌격하던 선두의 가장 덩치가 큰 녀석과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던 다른 녀석까지 두 마리가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며 피거품을 물고 땅에 널부러진다.

“수호야,  베인 놈!”


나는 원래 설정한 목표를 주시하느라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데, 옆에서 달려오던 다른 녀석도 칼날의 범위에 휘말려 팔  쪽에 상처를 입어 피를 뿌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음먹고 노렸던 정중앙에서 벗어나 살짝 한 방향으로 치우쳐서 날아간 느낌이 있었는데, 오히려  덕에 한 마리를  무력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잘린 것도 아니고 그저 깊은 상처를 입은 수준이라 무력화되었다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상처의 경중과 무관하게 외계괴수가 상처를 입었다는건 곧 방어막이 모두 상쇄되었다는 뜻.
강경호 팀장의 콜에 장갑차 위에 엎드려 자리잡고 있던 한수호가 즉시 반응한다.
타앙, 60구경의 무식하게 큰 탄환이 날아들어 녀석의 머리통을 수박처럼 깨부숴버린다.
그가 쓰는 라이플은 세미오토 형식이었지만 두 발까지도 필요없었다.
지금까지 빗나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속으로 감탄하면서 나는 쿨타임이 막 돌아온 칼날을 다시 한번 날려보냈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세 놈을 한번에 잡는게 아니라  놈의 목을 날리는데 그친다.

“어어?  놈들 도망가는데요? 팀장님, 추격합니까?”


“그럴거 없어. 사냥이 아니라 활로를 찾는게 급하니까. 정리하고 바로 움직인다. 부산물은 혹시 마석 있으면 그것만 챙겨. 음, 아니다.  마리만 통째로 싣자.”


“확실히 그러는게 좋겠죠. 지금껏 보고된  없는 신규괴수 아닙니까. 그런데  마리로 될까요? 연구하기엔 표본이 너무 적은거 아닙니까?”


“그거야 그 사람들 사정이지. 우린 최초발견만 인정받으면 돼.”


냉정한 표정으로 잘라 말하는 지시에 모두들 수긍하고 시체를 갈라 뒤적이며 마석을 찾는다.
이건 새로 발견한 괴수라서 어디에 들어있을지는 종잡을수가 없다.
머리에 들어있을수도 있고 가슴에, 혹은 아예 위장 안에 들어있을수도 있다.
능숙하게 해체작업을 하던 선배들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몇 조각으로 잘리고 불에 타고 총알에 꿰이고 둔기에 으스러졌을지언정 아직 사람 비스무리한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괴수의 사체들이 조각조각 해체되었지만 마석은 나오지 않았다.

“젠장. 이 놈들은 원래 체내에 마석을 품지 않는 종인가? 어... 넌 또 표정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녜요. 하하하...”


“자, 다들 정리하자. 최지호, 머리가 아프진 않아? 이능 잔량은 얼마나 남은 것 같아?”

“아직은 여유가 있어요. 이제 겨우 십여발 쏜건데요 뭘.”

괴수 사체를 해체하는건 비위에는 좀 거슬리긴 해도 훈련소때도 여러차례 실습으로 해본 일이니 충분히 익숙해졌는데, 음, 저건 생긴게 사람이랑 비슷해서 그런가, 섬뜩하네.
눈에 띄게 활약하며  놈들 중 과반수 가까이를 베어버린 내가  말은 아니지만.
고깃조각으로 만들다못해 거의 갈아버리다시피 한 잔해를 두고 실망해서 쳇, 혀를 차는 선배 헌터들을 보니 과연 목숨을 칼 끝에 두고 일한다는게 이런거구나 싶어서 감탄이 나온다.
우리 일행은 지금 미지의 공간왜곡 혹은 정신계 현상에 휘말려 외계행성의 숲을 정처없이 떠도는 중인데, 그 와중에 원정수익을 생각하며 저렇게 아쉬워할 여유가 있다니.
물론 걱정한다고 딱히 해결책이 나오는건 아니니까 마음을 편하게 먹고 할  있는 일에만 집중하는게 맞기는 한데, 진짜로 그렇게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멀쩡하다는 내 말에 강 팀장이  웃으면서 뭐야, 지속력도 쓸만하잖아,하고 중얼거린다.
아까 거대괴수와의 전투까지 합해도 아직 스무번도 안 썼는데.
대체 지구력이 얼마나 나쁠거라고 생각한거야?
아, 그러고보니 센터에서 측정할  스무번 정도 쏘고 살짝 머리가 아픈 것 같다고 했었나.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원정대는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나침반은 헛돌고 방위표도 먹통이지만 전투차량에 달린 경로유지 기능을 활용해서 일직선을 유지하는건 어렵지 않았으니 제자리를 빙빙 돌 위험은 없었다.
아직 이 기현상의 원인을  수 없으니 아주 안전하다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계속 가다보면 뭐가 나와도 나오겠지. 안 그래? 이대로 숲 밖으로 빠져나가면 좋고, 자칫 중심부로 잘못 들어가서 힘든 전투를 벌이더라도 말이야, 최소한 숲을 관통해서 지나갈 수는 있다는거니까.”


“요정의  중심부는 웬만한 헌팅 팀들은 다 기피하는 험지인데요?”

“인마, 헌터가 되어놔서 위험을 두려워하면 안 되지.”


“위험을  두려워할 것 같으면 구조대나 타격대같은 공직에 들어갔죠.”

바짝 달라붙어 경계를 풀지 않는 윤기정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잡담을 나누면서 걷기를 얼마쯤, 우리는 아까 첫 만남에서 전투를 벌였던 괴수와 같은 종의 무리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십수걸음 앞서나가던 선두가 보고를  것도 없었다.
우거진 트리라인이 끝나는 곳에서, 우리 모두가 거의 동시에 그 녀석들을 발견했으니까.
음, 그런데 이들을 외계 ‘괴수’라고 불러야 할지 어떨지 모르겠네.
아까 그 놈들은 이렇다할 도구를 들고 있지 않아서 그냥 영장류 형태의 괴수이겠거니 하고 사냥을 했는데, 지금 저 놈들은 저마다 나무와 돌로  도구를 꼬나쥐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무리의 중앙에서 피어오르는 저거, 모닥불 아냐?


“어... 팀장님. 아무리 봐도 저거, 괴수가 아니라 사람같은데요? 이종족인가, 그럼?”

“이럴수가. 요정의 숲에, 아니지,  행성에 불과 도구를 쓰는 지성체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저것들 대체 뭐야?”


강경호 팀장이 입을 벌리고 황당한 표정으로 이종족 무리를 훑어본다.
트리라인이 끝나는 곳이라고 해서 숲을 벗어난건 아니고, 그저 저 이름모를 무리들이 나름의 부락을 이루면서 일정 구역의 나무들을 베어내 만들어진 공터인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저들은 괴수라기보다는 진짜 이종족인 셈이었다.
문명의 기준이 뭐라고 한마디로 딱 정의할 수는 없지만, 강 팀장의 말마따나 불과 도구를 사용하며 부락을 이루고 사는 놈들을 이성이 없는 괴수로 취급하긴 어렵지 않겠는가.
이건 보고하면 곧바로 전 세계 모든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특종이었다.


“놈들이 우리를 발견했습니다! 팀장님, 어쩝니까?”

역사적인 발견은 발견이고, 그와 별개로 우리가 당장 처한 상황은 여유롭지 않았다.
끼익거리는 특유의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 이종족들을 보고 강 팀장은 난감한 기색으로 한숨을 쉰다.
아까 조우한 삼사십 정도 되는 무리도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공격성을 드러냈지.

“후우,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우리가 죽어줄 수는 없잖나?”


기다렸다는 듯 박우진의 화염구가 붉은 잔상을 남기며 휘익 날아가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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