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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화 〉1부 (15/110)



〈 15화 〉1부

요정의  초입에 다다를때까지 원정팀은  번의 전투를 더 치렀다.
불행히도 세 번째 전투에서 경상자가 하나 나왔는데, 괴수에게 직접 피해를 받은게 아니라 급격한 기동을 버티지 못하고 발을 헛디뎌 구른 탓에 나온 부상이었다.
훈련이 부족하다며 강경호 팀장이 몹시 화를 내더라.

“기정아, 내가 지호 잘 마크하라고 얘기 했냐 안 했냐. 어?”


“아니, 괴수한테 맞은 것도 아니고 그냥 넘어진건데...”


“넘어져서 머리라도 깨지면? 사람 몸이 얼마나 연약한지 알아? 샤워하다가 뒤로 자빠져도 재수없으면 뇌진탕으로 죽는게 사람이야.   던져서라도 잡아줬어야지. 그리고 지호야, 너도 마찬가지야. 입사하고 얼마  됐으니까 훈련 부족한건 이해하는데, 그래도 그 정도 움직였다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헛디디는게 말이 되니?”

어... 팀장님, 아껴주는건 좋은데 말씀이 좀 이상합니다? 살짝 나 욕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그 한심한 헌터는 다름아닌 나였다.
나도 할 말이 아주 없는건 아니다.
차라리 그냥 내버려두고 무빙샷으로 쏘라고 했으면 충분히 여유있게 피할 수 있었다고.
괜히 윤기정이 날 잡아끌며 강제로 회피기동을 한 탓에 당황해서 실수를 한 것이다.
음, 물론 이건 내 입장이고, 윤기정의 입장에선 위험에 처한 동료를 도왔다고  수도 있지만.
전장 정리를 끝내고 다시 출발한 후로도 잔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팀장님, 요정의 숲입니다.”


“차량정지. 잠시 정비하고 도보로 들어갑니다. 야, 일어나. 넌 재주도 좋다. 이렇게 흔들리는데 잠이 솔솔 오냐? 우진아, 일어나라니까. 얘들아, 다들 긴장  해.”


한참동안 팀원들에게 훈계를 하던 강경호 팀장이 바깥을 둘러보러 나간 사이에 한창 잔소리를 듣던 윤기정이 실실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 친다.
다른 팀원들의 표정을 보니 그냥 이런게 일상인 것 같아서 나도 픽 웃으며 마음을 놓는다.
밖에서 하차명령이 떨어지고 장갑차 바깥으로 나가니, 와, 공기부터가 다르다!
마치 휴양림에 와 있는 것 같은 상쾌한 공기.
겨우 십여미터 앞부터 울창하게 우거진 삼림을 보니 그 신비로움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차원게이트를 통해 넘어가는 수백, 어쩌면 수천 수만광년이나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는 외계행성의 식물이 지구와 똑같이 산소를 내뿜는 광합성을 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긴, 그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돌연 각성하는 이능력부터 시작해서 게이트, 괴수침공,  행성에서만 형성되는 방어막까지 말이 되는게 하나도 없긴 하지만.

“지호야, 숲 지형을 통과할 때 주의할 점이 뭐라고 했지?”

“가시거리가 짧아 돌발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특히 독충이나 뱀처럼 괴수로 분류되지 않는 토착생물들도 경우에 따라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훈련소에서 잘 배웠네.”

마석이 없어 괴수로 분류되지 않는 토착생물들에게도 방어막은 있다.
극히 미약해서 이능의 잔향만으로도 퍽퍽 터져나가는 종잇장같은 방어막이지만 어쨌든 방어막은 방어막이라서 이능이 아닌 지구산 화력으로는 뚫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온갖 동식물이 뒤엉켜 살아가는 정글은 원정대에게 험난하기 그지없는 지형이다.
괴수를 사냥할때만 힘을 쓰는게 아니라 온갖 사소한 일에도 방어막 상쇄를 위해 이능을 발현해야 할 일이 많다보니 금세 지치고 휴식 주기도 훨씬 더 잦아지는 것이다.


“지호 넌 웬만하면 힘 아껴라. 거대괴수 실드도  방에 뚫는 괴물같은 데미지를 나무덩굴 치우는데 쓰면 낭비도 그런 낭비가 어디 있겠어?”


“그래, 우리  공격조 애들 이런거 하라고 데려온거야. 안 그래?”

“와, 이거 서러워서 살겠나. 우린 그냥 풀 베고 벌레잡는 역할이라 그거죠?”


원거리 공격조의 조장 박우진이 장난스레 투덜거렸지만 다들 그게 효율적인 방법이 맞다는데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순서를 정한다.
이능을 한계까지 발현하여 완전히 탈진하면 회복에 걸리는 시간이 더 늘어나는데다 신체에 영향을 끼쳐 꼼짝없이 드러누워 있어야 하기에 단순한 도보이동에도 지장이 간다.
그러니 공격이능을 가진 헌터들이 탈진하지 않도록 교대로 길을 개척하는 수밖에 없다.
3팀의 열 두명 중 공격조가 나까지 해서 일곱명이니 내가 빠지는건 상당한 부담일 것이다.


“저 지속력 생각보다 안 딸려요. 제 몫은 해야죠.”

“너 없을때도 열한명이서 잘만 다녔어. 요정의 숲도 처음 와보는건 아니거든.”


“그래 인마. 형이 농담으로 엄살부린거지, 여섯명이서 여유있게 로테이션 돌릴 수 있어. 의욕 넘치는건 좋은데 효율을 생각하자고 효율을. 팀장님 말마따나 너무 아깝잖아.”

“예, 그러시다면야 뭐...”

에테르 칼날은 3초의 짧은 쿨타임만 있지 소모값이 없어서 아무리 사용해도 과부하가 걸려 탈진할 일은 없지만, 어쨌든 선두에 서서 위협요소를 일일이 처리하는건 고된 일이다.
빼주겠다는데 굳이 나서서 고생을 자처할 이유는 없지.
물론 한 팀으로 계속 함께하다보면 근시일내에 소모값이 없거나 최소한 지속력이 어마어마하게 높다는 것쯤은 밝혀지겠지만 그건 그동안 이능이 성장했다고 하면 될 일이다.
첫 각성 시에 C급으로 판정받은 내가 훈련소를 수료하자마자 S급으로 재판정받은 일을 두고 초기판정에 실수가 있었다느니 성장성이 규격 외라느니 말이 많으니까 다들 이번에는 위력이 아니라 지속력 측면에서 급격한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팀 동료들을 속이는 셈이긴 한데, 다른 헌터들도 다들 비장의  수쯤은 숨기고 있을걸.
면목없는 표정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후방에  서니 전담 실더인 윤기정이 낄낄댄다.


“아이고, 우리 여린 막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네가 제일 큰 일 하는거라니까?”


당연하지, 사실상 데미지 딜링은 나한테 전부 맡기는건데. 나도 알아.
그래도 최소한 여기서 미안한 척은 해야지.
사람 감정이라는게  그렇게 논리적으로 움직이는게 아니잖아.
원래 이럴땐 받을건 넙죽 받더라도 ‘액션’이 중요한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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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에 숲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원정대의 이동속도는 비교도   정도로 느려졌다.
장갑차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하는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앞서서 길을 트는 공격조 인원이 위협요소를 확인하고 제거하느라 지체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한시간이 조금 넘게 지났을까.
로테이션이 세 번 돌아 네 번째로 개척임무를 맡은 박우진이 징그럽게 꾸물거리는 덩굴에 화염탄환을 흩뿌려 불태우다가 돌연 뒤에서 잡아당기는 서슬에 끌려가며 경호성을 지른다.


“휴우, 나무가 무슨 촉수를 저렇게 뻗냐. 요정의 숲이라니, 네이밍도 참 언밸런스... 어엇?”

방금 전까지 박우진이 서있던 자리의 땅 아래에서 큼직한 꼬챙이가 불쑥 올라온다.
미리 낌새를 느끼고 박우진을 잡아당겨 구해낸 탱커 강승호가 달려들어 경로를 가로막았다.
그 와중에도 그가 버티고 선 뒤쪽의 내 시야는 가리지 않는 최적의 위치였다.
대기업 헌팅 팀의 중견헌터가 되려면 이 정도는  해야하는건가.
속으로 감탄하면서 얼른 두어걸음 앞으로 나서서 괴수의 일부분으로 추정되는 촉수기둥을 사정거리인 15미터 안에 넣는데, 녀석이 공격실패를 인지했는지 땅으로 다시 기어들어간다.


“왼쪽으로 약간만  비켜줘요!”


혹시 조준이 흔들려 프렌들리 파이어가 날지도 모르겠다는 걱정 때문에 그렇게 소리치며 지체없이 날린 에테르 칼날이 정확히 노린 위치로 날아가 깔끔하게 촉수를 베어냈다.
역시 방어막은 있는지 없는지도 체감이 안 될 정도로 저항감조차 없었다.
거의 사람 키만한 꼬챙이가 잘려나가고 녹갈색의 체액이 뿜어져나오는 순간 우거진 나무 사이로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저 멀리 앞쪽에서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괴성이 메아리친다.
뒤로 잡아당기는 서슬에 날아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던 박우진이 한 박자 늦게 자기가 서있던 자리를 보면서 기겁을 하고 묻는다.


“주,죽을뻔 했네. 그리고 이건  무슨 소리야? 팀장님, 요정의 숲에 저런 괴수도 있었어요?”

“성큰이야.  중심부에서나 출몰하는 녀석인데... 대체 안쪽에 무슨 일이 있는거지?”

심각한 상황에 걸맞지 않게 그만 푸웁하고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야 땅에서 저렇게 생김새도  닮은 촉수가 솟구쳐 사람을 꿰어죽인다면 바로 연상되는 이름이긴 한데... 아무래도 네이밍을 한 최초 발견자가 게임 마니아였나보다.
확실히 박우진의 말마따나 요정의 숲이라는 이름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살벌한 숲이구만.


“온다, 다들 준비해. 특히 기정이, 너 정신 똑바로 차려!”

“왜 나한테만...”


볼멘 소리를 하면서도 윤기정은 내게 다가와 몸을 긴장시키면서 눈을 바쁘게 굴린다.
주변 지형을 파악해 회피경로를 여럿 시뮬레이션하고 있는 것 같다.
이윽고 앞쪽에서 소란이 일더니 우거진 나무와 수풀 사이로 거대한 동체가 시야에 들어온다.
체고는 약 3미터 가량, 사람보다 두  정도 컸지만 실제 사이즈는 겨우  정도가 아니었다.
뒤쪽으로 몸통이 길게 이어지는데, 정면에서 마주보는 우리가 한 눈에 추측하기는 어렵지만 지네처럼 다리가 여러개 달린 것으로 보아 고등급의 거대괴수임에 분명하다.
막상 위압적인 본체를 목도하니 불안감이 드는지 누군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괜찮을까요? 저거  눈에 봐도 보통 단단한 놈이 아닌데...”

“성큰의 약점은 눈과 눈 사이야. 뇌가 작아서 거길 정확히 맞추지 않으면 꽤나 오래 버티며 난리를 부릴테니까 한 방에 끝내야 해. 수호야, 믿는다.”

“맡겨만 주십쇼.”

본체가 다가오기도 전에 이미 사람 키만한 대구경 라이플을 들고 사격준비를 마치고 있던 피니셔 한수호가 후우, 숨을 내뱉더니 망설임없이 격발하고, 총소리가 숲을 쩌렁쩌렁 울린다.
흉측한 대가리의 정중앙, 사람이었다면 미간즈음 되어보이는 위치가 퍼억 터져나갔다.
제법 단단해보이는 갑각이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었지만 자그마치 60구경의 대괴수 전용탄.
탄두 중량도 중량이지만 거의 어린애 주먹만한 합금탄피 안에 화약이 가득 들어간 총알이다.
웬만한 두께의 강철 강판도 관통할만한 위력의 괴물이 겨우 생물체 갑각을 못 뚫을리 없지.
뒤에서 누군가 헛바람빠지는 소리를 냈다.


“아, 맞다. 아까 촉수 잘려나갔지? 그 때 방어막 다 상쇄됐겠네.”


“난 성큰 본체 보는거 처음이거든? 와, 저만한 사이즈의 거대괴수 방어막을 단숨에 깐거야?”

“뭘 새삼 그러냐. 지호 쟤 훈련소에서 맘모스랑 아라크네도 일격에 잡았다고 했잖아.”

“아니, 말은 들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실감이 확 나네. 팀장님, 성큰이라고 했죠? 저거 사냥한 기록은 있습니까? 잡힌 적 없는 놈이면 인센티브에 추가금 붙는거 맞죠?”


“아쉽지만 벌써 여러번 잡힌 놈이야. 그런데 내가 알기로 희생자 없이 이렇게 깔끔하게 잡은 적은 없어. 휴우, 지호랑 수호, 수고했다.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놈이 원래 이렇게  외곽까지 기어나오는 놈이 아니라서 예측하지 못 했다며 잠깐 자책한  팀장은 선두에서 죽을뻔한 위기를 넘긴 박우진에게 다가가 일으키며 사과한다.
숲 최심부의 괴수들이 돌아다니는걸 알았다면 절대로 공격조원을 앞에 세우지 않았겠지.
진입 전에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긴장을 풀지 말라고 강조했지만 정작 팀장 본인이 기존의 데이터만 믿고 방심을 한 셈이니 표정이 어두울만도 했다.


“팀장님, 일정보다 한참 이르지만 철수하는게 맞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더 들어가면 위험할 것 같은데요. 애초에 미개척지역 탐사를 목적으로 나온게 아니잖습니까?”

“음, 하지만 괴수가 기존에 파악된 서식지를 벗어나는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고, 겨우 한 마리가 중심부를 벗어났다고 해서 꼭 이곳 생태계에 전반적인 변화가 있으리라고는...”

“쓸데없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무슨 탐사대 공무원들도 아니고. 제가 죽을뻔했다고 그러는게 아니라, 뭔가 심상치 않아요.”


잠깐 최선임인 공격조장 박우진과 강경호 팀장의 의견이 대립했지만 이내 의견이 모인다.
위험한 징조가 보였는데 그걸 무시하고 계속 진행하는건 바보짓이지.
팀장도  이능의 공격력이 예상보다 더 대단해서 잠깐 유혹을 느꼈을뿐 예정대로 탐사할 것을 강권할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좋아. 철수하자. 왔던 길로 그대로 돌아간다.”

“예. 우선 저것부터 해체하고...”

“그냥 예인로프 연결해서 끌고 가. 해체한다고 해체해봐야 어차피 전부 실을만한 사이즈도 아니잖아. 갑각이 단단하니까 땅에 끌린다고 상하거나 하진 않을거야.”

길게 이어진 거대지네의 시체를 질질 끌면서 장갑차는 아까보다 더  엔진음을 냈다.
수십톤짜리 궤도차량이 움직인 흔적은 너무나 선명해서 왔던 길을 되짚어 가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같았다.
그리고 얼마나 되돌아갔을까.
우리는 어떤 흔적도 없이 다만 울창하게 펼쳐진 숲을 보면서 멈춰서야 했다.

“분명히 방금 전까진 길이 있었는데.”

“수호야, 나침반 확인해라. 우리가 동쪽에서 진입했으니까 그쪽으로만 나가면 되거든?”

“어... 팀장님. 요정의 숲이 이 행성의 극지방에 있었나요?”

“뭐?”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내보이는 나침반의 바늘은 팽이처럼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아, 진짜.  탐사되어서 괴수 서식지도까지 팔고 있는 지역이라며?
아무 걱정할 것 없다고 하더니 이게 무슨 지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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