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1부
게이트를 넘는 느낌은 여전히 기묘했지만 그리 거부감이 드는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울릉도까지 배를 타고 오는동안 미약하게나마 뱃멀미가 있어서 그게 더 고생이었지.
비행기를 타고 오면 훨씬 편했을텐데 이 작은 섬에는 공항이 하나도 없었다.
긴 활주로 부지가 필요없는 헬기 착륙장은 몇 군데 있지만 그나마 대부분은 군용이었지.
나리분지 게이트와 연결된 한국의 전진기지는 마지막으로 본 풍경에서 거의 변한게 없었다.
생각해보면 실습을 끝내고 나온지 아직 한 달도 채 안 됐으니까 당연한 일이지만, 훈련생 신분이 아니라 현직 헌터 신분으로 오니 느낌이 새롭더라.
“오닉스 헌터즈 3팀, 총원 12명, 지원차량 두 대... 아, 이 분이 화제의 그 신입이군요? 시작부터 측정불가 등급을 받았다는 슈퍼루키.”
“맞아요, 걔가 얘예요. S급이니까 통과비용 할인 들어가는거 맞죠?”
등급 재심사를 받았을 때 노원 센터의 담당자가 S급 이능력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줬는데, 그때 이런 것도 있었던게 뒤늦게 기억난다.
게이트 통과요금이 본인은 무료, 공식적으로 소속된 같은 팀원들은 절반 할인이라고 했나.
그 돈만 해도 한두푼이 아닐텐데.
물론 헌팅팀을 운영하는 대기업이 미쳤다고 그런 잡비를 지원해주지 않고 헌터 개인에게 부담시켜서 마음상하게 만들지는 않겠지.
신일그룹에서 내게 보장한 고액 연봉은 이런 잡다한 혜택까지도 감안한 액수일 것이다.
“바로 서문으로 나간다. 전원 승차.”
외부장갑을 두르고 바퀴도 무한궤도로 된 장갑차 두 대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기지 내에서는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지만 최고 속도는 시속 80킬로미터에 이르는 물건이다.
거의 버스만한 크기지만 이것저것 잔뜩 짐을 싣고 있어서 내부가 겉보기보다 비좁았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윤기정이 전투조끼에 달린 주머니에서 벌써부터 초콜릿 바를 꺼내 우물대다가 내가 빤히 바라보는걸 눈치채고 킥 웃으면서 하나를 더 꺼내 내게 건네준다.
“달라는거 아니었는데요?”
“그럼 뭘 그렇게 봐? 인마, 긴장풀고 먹어. 이능은 우리 중에 제일 센 놈이 바짝 얼어서는.”
“언 것도 아닌데요.”
긴장이 어쩌고 하기 이전에 차 안에서 저렇게 달달한 냄새를 풍겨대는건 아니지 않나?
당장 이 차량 안에만 여섯 명이나 타고 있는데, 앞쪽의 운전석과는 격벽으로 막혀있으니까 그렇다 쳐도 주변 다른 선배들 시선은 생각을 안 하나.
잠시 후 기지 서문을 통과했는지 요란한 엔진음을 내며 장갑차가 가속한다.
강화플라스틱으로 된 작은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내다보니 아직은 잘 정리된 도로 위였다.
조금만 더 나가면 슬슬 승차감이 불쾌해지기 시작한다는걸 나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름대로 길을 닦고 관리하려고 노력은 하는 모양인데, 그게 쉽게 될 리가 있나.
아무리 비교적 안전한 기지 주변이라고 해도 언제 괴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마경인데.
예상대로 몇 분이 채 되지 않아 차체가 위아래로 울룩불룩 요동치기 시작한다.
바퀴가 무한궤도라서 웬만한 험지는 돌파가능하지만 그건 승차감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10분 후 안전지대를 벗어납니다. 지금부터 외부경계를 운용할겁니다.”
“팀장님, 제가 신입이랑 같이 초번 서겠습니다.”
윤기정이 재빨리 자원하더니 승낙을 얻어내고 내게 손짓했다.
훈련소에서도 기본적으로 배우긴 했으니 나도 능숙하게 해치를 열고 그를 따라 올라간다.
바깥으로 나오니 쿠르릉하며 무한궤도 돌아가는 소리가 한층 더 요란하게 들린다.
원래 궤도차량이라는게 정숙성같은건 처음부터 포기하고 만드는거니 어쩔 수 없지.
달리는 장갑차의 중앙에 보초를 설만한 자리가 있어 올라가 앉았다.
“훈련소 실습때는 정찰조를 따로 운용했지? 일선에선 안 그러는 경우가 많아. 헌터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좀 갈리긴 하는데, 비효율적이라는게 슬슬 대세가 되고 있거든.”
“전 잘 모르겠던데요. 정찰조가 괴수를 발견해서 미리 연락해주면 편할 것 같은데.”
“예전에는 다 그렇게들 했지. 하지만 팀의 전력만 충분하다면 이렇게 감시만 세워놓고 이동하는게 시간도 절약되고 전력을 분산하지 않는만큼 돌발사태에 대처하기도 편해. 정찰조가 쓸데없이 위험부담을 지는 문제도 없고 말이야.”
훈련소에서도 슬슬 커리큘럼 업데이트를 해야지, 너무 옛날 정석만 가르친다며 혀를 찬다.
내가 볼 땐 오닉스 들어와서 배운 것도 실용성이 더 높아보이긴 하지만 별 차이 없던데.
장갑차 내부와 연결된 통신기를 옆에 두고 그렇게 잡담을 하면서 얼마쯤 더 갔을까.
어느덧 길이라고 부를만한건 사라지고 우리는 인적없는 초원을 달리고 있었다.
윤기정이 슬슬 교대할 시간이 됐다며 무전기를 들고 투정을 부리는걸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문득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정이형, 잠깐만요. 저것 좀 봐요.”
“그러니까 5분쯤 일찍 교대한다고 뭐가 덧나는... 어? 뭔데?”
“저거 괴수 아녜요? 멀어서 확신하긴 어렵지만 로튼 이글하고 생긴게 똑같은데.”
내 말에 급히 목에 걸고 있던 쌍안경을 들어 내가 가리킨 쪽을 보던 윤기정이 돌연 환호한다.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나보네.
물론 여기서 움직이는걸 발견했다면 당연히 원정나온 헌터 아니면 괴수겠지만 멀리서 실루엣만 보고 정확한 종까지 맞춘건 어디까지나 어젯밤 한국 전진기지 부근에서 자주 출몰하는 괴수에 대해 설명한 도감을 몇 번이나 들여다 본 덕분이다.
통신을 받은 장갑차가 멈추고 뒤에서 따라오던 두 번째 차량도 차간거리를 바짝 붙인채 멈추더니 안에서 쏟아져나온 팀원들이 능숙하게 장비를 꺼내 자리를 잡는다.
강한 놈은 아니지만 육상괴수가 아닌 비행괴수다보니 방심할 순 없다.
“이번 원정은 운이 좋구만. 시작부터 작고 비싼 놈이 걸리고 말이야. 하하하.”
신이 나서 저렇게 떠드는걸 보면 별로 위협적으로 느끼지는 않는 모양이지만.
이윽고 강경호 팀장의 지시에 따라 60구경이나 되는 총기를 꺼내 장갑차 위에 자리를 잡고 엎드린 피니셔가 신중한 표정으로 스코프를 들여다보더니 호흡을 멈추고 격발했다.
타앙, 귀를 찢는 소리와 함께 그의 어깨가 뒤로 훅 밀린다.
5,6백미터 쯤 되어보이는 거리는 저격하기에 곤란할 정도로 먼 거리는 아니지만 상대는 꽤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으니까 아무나 맞출만한 표적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팀 피니셔인 한수호는 굉장한 명사수였던 모양이다.
첫 발에 명중에 성공했는지 날아가던 로튼 이글 무리가 기수를 돌려 이쪽을 향한 것이다.
“됐다. 기정아, 지호 확실하게 지켜라. 쟤 몸에 생채기 나면 너 가만 안 둘거야.”
“염려 마십쇼. 내가 우리 공주님은 철저히 보호할테니까.”
낄낄거리는 웃음이 번지는데, 놀리는건 알겠지만 대응하기가 곤란한 나도 그만 웃어버렸다.
그래, 공주님 취급이라도 해주는게 어디냐.
신입으로 들어가면 일 년 정도는 천덕꾸러기 신세라던데 이렇게 애지중지해주면 나야 고맙지.
로튼 이글 무리는 총 여섯 마리였는데, 무리를 이끌던 선두의 대장은 덩치가 상당히 컸다.
거의 황소만한 크기의 독수리가 날아드는 모습은 제법 위압감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원거리, 자유공격. 탱커들 각자 판단대로 방어합니다.”
훈련때 복잡한 상황설정과 지시를 하던 강경호 팀장은 막상 실전이 되니 믿을 수 없을만큼 느슨한 지시를 내리고 칼을 뽑아든다.
저거, 단어만 저렴하게 바꾸면 그냥 ‘알아서 잘 해라’라는거 아냐?
그런데 다들 알아서 잘 한다!
사거리 안에 들어오는대로 이능을 발현해 정확하게 공격하는 원거리 공격진도 그렇고, 방패를 꺼내거나 방어이능을 발현하며 로튼 이글의 동선을 가로막는 탱커들도 그렇다.
감탄하던 나는 선두의 가장 큰 로튼이글이 내 사거리 안에 넉넉하게 들어온 것을 파악하고 에테르 칼날을 뻗어 정중앙을 베어냈다.
서걱.
세차게 쏟아지는 다른 화려한 공격들을 견뎌내며 밀고 들어오던 녀석의 방어막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상쇄되면서, 놈은 날아드는 기세 그대로 두 쪽으로 갈라졌다.
빠르게 날아가는걸 옆에서 맞추라고 하면 좀 힘겨웠겠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치고드는 표적을 맞추는건 아직 초보인 나로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대가리부터 꽁무니까지 세로로 반쪽이 되어버린 시체에서 피와 내장이 쏟아진다.
날아드는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이미 동력을 잃고 관성적으로 움직이는 그 잔해조차 꽤나 빠른 속도로 우리 쪽으로 흩뿌려져 전방 탱커들의 옷을 더럽혔다.
물론 전투중에 그런걸로 투덜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으윽, 옷 다 버렸네. 목만 깔끔하게 베어낼 수는 없냐?”
아, 하나 있었네.
나는 윤기정의 볼멘 소리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나머지 로튼 이글 무리에 시선을 고정한다.
선두의 우두머리를 잃고도 내리꽂히는 기세는 변함이 없다.
셋, 둘, 하나, 오케이, 쿨 다 됐다.
속으로 셋을 세는 사이에 벌써 방어진에 부딪혀오는 선두에게 힘차게 일격.
마찬가지로 몸의 중심선을 노렸는데 이번에는 살짝 빗나갔는지 작달막한 대가리는 반으로 쪼개지지 않고 다만 몸통이 비스듬하게 잘려나간다.
그런데 두 조각이 되어 떨어지는 그 녀석 바로 뒤에서 달려들던 놈도 칼날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는지 날개 끝부분이 살짝 잘려나가 너풀거리며 발광을 한다.
그리고 다음 순간, 타앙, 아까 들었던 총소리와 함께 놈의 대가리가 산산히 터져나갔다.
반쪽이 났든 깃털 하나만 상했든간에 방어막은 통째로 상쇄된 셈이니 한 방 감이지 뭐.
그나저나 우리 피니셔, 실력 진짜 좋구나.
거리는 가깝지만 이 상황에서 저 작은 대가리를 자신있게 노리다니.
세 마리 남은 로튼 이글이 도망칠 생각은 않고 광분하여 달려들지만 내 앞에서 방패를 들고 있던 윤기정은 마치 철벽처럼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그 돌격을 정면에서 받아냈다.
그의 장담대로, 나는 조금의 위협도 느끼지 않았다.
빗나가지 않도록 집중해서 한 마리, 서걱.
셋, 둘, 하나, 다시 한 마리, 셋, 둘, 하나, 마지막 한 마리까지.
“상황종료. 우와, 역시 S급이 괜히 S급이 아냐. 안 그래?”
“누가 아니랍니까. 아무리 로튼 이글이 방어막 단단한 놈들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저렇게 단숨에 터져나가는걸 보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요.”
“이거 우린 필요도 없는거 아냐? 그냥 탱커 붙여서 보내놓으면 알아서 다 할 것 같은데.”
애초에 피해가 나올만한 난이도의 전투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더 수월하게 끝났다며 다들 환호하는 가운데 원거리 공격조의 박우진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으며 중얼거린다.
그들의 실력이 결코 낮은건 아니었지만 모름지기 괴수사냥을 한다고 하면 우선 이능력을 쏟아부어서 방어막을 상쇄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화염을 손가락만한 크기로 뭉쳐 기관총처럼 연달아 쏘아내던 그의 이능력은 최대 사정거리가 백여미터나 되어 방금의 전투에서도 거의 6,70미터 바깥에서부터 연신 명중타를 꽂아넣었는데도 불구하고 접근을 허용할때까지 선두의 방어막을 다 상쇄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그게 정상이라고는 하는데, 신입이라고 들어온 놈은 한번 이능을 발현할때마다 한 놈씩 거침없이 베어버리니 허무하게 느껴질만도 했다.
강경호 팀장은 원거리 공격조가 느끼는 비애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해체작업을 지휘하기에 바빴는데, 사체에서 마석과 꼬리깃, 부리만 뽑고 나머지는 그냥 버리라고 지시한다.
“팀장님, 통째로 챙기는게 낫지 않습니까? 고기랑 가죽도 꽤 값이 나갈텐데...”
“이제 막 출발한 참이잖아.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값 나가는 것만 챙기자. 위석도 꺼내지 말고 그냥 둬. 여기서 내장 까뒤집고 하는거 솔직히 하기 싫잖아?”
“큭큭큭, 우리 팀장님이 언제 이렇게 통이 커지셨대? 적은 돈이 아닐텐데.”
“예감이 좋다. 응? 지호가 일격에 다 상쇄하는거 봤지? 거대괴수도 비교도 안 될만큼 수월하게 잡을 수 있을거야. 자자, 서둘러. 다 챙겼으면 미련 갖지 말고 내버려두고 타라고.”
나중에 버릴 때 버리더라도 일단 챙기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 싶긴 한데...
확실히 저 시체의 배를 갈라 주물럭거리며 위석을 찾는건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이긴 했다.
가만있자, 그나저나 여섯 마리면 수익이 얼마나 나오는거지?
로튼 이글의 부산물의 시세에 대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굴려보다가 이내 포기하고 ‘아무튼 적지 않은 액수’라는 막연한 결론만 내린 후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한번 원정을 다녀오면 성과급이 무지막지하게 쏟아진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모두 승차했지? 출발하겠습니다. 감시조는 교대해서 우진이랑 승호가 서고.”
로튼이글 무리를 발견하고 전투를 위해 멈춰선지 겨우 이십여분 만에 게눈감추듯 빠르게 사냥과 뒤처리까지 끝마친 우리는 다시 장갑차를 출발시켰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진행방향 저 멀리에 희끄무레하게 푸르스름한 숲의 형체가 보이는 것 같다.
요정의 숲까지는 아직 반나절 이상은 더 달려야 한다는데 저게 벌써 보이다니, 대체 이 황량한 평야는 얼마나 넓은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