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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1부 (12/110)



〈 12화 〉1부

입단식과 뒷풀이 파티에서 통성명을 한 3팀의 팀원들은 다들 첫인상이 좋았다.
동료로 인정받기 전까지 텃세 비스무리한게 있지 않을까 내심 각오를 했던게 다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훈련에서, 나는 그들이 얼마나 노련한 전투원들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지호! 뒤로 빠져. 너무 앞으로 나와있잖아. 거리조절에 신경써!"


"예!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을 만들지 말라고! 실전이었으면 방금 위험했어. 실드 다 깎는다고 괴수가 저절로 죽어 나자빠지는게 아니잖아. 맞아 아니야!"

출근하자마자 앞으로는 말을 편하게 하겠다고 했을때, 상급자니까 당연한거 아니냐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더랬다.
말 편하게 한다는게 이렇게 군대 후임 다루듯 하겠다는 뜻인줄은 몰랐지.
뭐, 알았어도 별수 있었겠나 싶기도 하지만.
전생의 트라우마가 느껴지는 말투나 훈련방식과는 별개로 오닉스 헌터즈 3팀의 전술훈련은 훈련소에서 받은 기초훈련과는 전혀 다른 퀄리티를 자랑했는데, 신입인 내가 봐도 그 유용성을 바로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고 실전적이었다.
특히  명의 탱커진은 방어진형을 순식간에 형성하는 솜씨가 대단했다.
두 명은 몸이 단단해지는 이능력을 갖고 있었고 한 명은 전면에 일시적으로 방어막을 형성하는 이능을 보여주었는데, 방어막의 지속시간은 수초 남짓했지만 팀장의 콜에 따라 순간적으로 펼치는 속도가 무척 빨라서 그 숙련도를 짐작할만 했다.
오래도록 호흡을 맞추던 이들의 사이에 섞여들어가 따라가는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군대가 엿같은건 훈련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내무생활과 작업때문.

"아이고, 고생 많았어. 힘들었지?"

"예, 뭐..."


"일단 호흡 맞추는데만 익숙해지면 편해질거야. 지금은 처음이라서 그런거지. 잘 배워둬."

"예. 안 그래도 몇 시간  했지만 한눈에 봐도 알차고 유용한걸 알겠어요."


"하하하, 오닉스 내에서도 우리 3팀은 합이 정교하기론 최고지. 그간 고등급 괴수사냥에 나서지 못한건 어디까지나 실드를 중화할 위력이 좀 부족해서 그랬던건데, 이젠 지호 네가 있잖아. 자자, 많이 먹고 편히 쉬어. 오후엔 전술강의를 할테니까."


고액의 연봉도 연봉이거니와 이렇게 공사구분이 철저히 되는데 싫을게 뭐가 있겠는가.
오전 일정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몰아치던 강경호 팀장은 언제 그랬냐는듯 온화해진다.
나는 막 조금씩 마음 속에서 비집고 올라오려던 미세한 불만을 말끔히 지워냈다.
사실 불만을 가질만한 건덕지도 마땅치 않았던게, 훈련내용 하나하나가 합리적이고 실전적이라서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만한 구석이 없었다.
뭐, 훈련중에 큰 소리로 윽박지르고 몰아붙이는거야 당연한거고.
무엇보다도, 훈련이 힘들다고 불만을 가지기엔 무료로 제공된 점심식사가 너무 맛있었다!
원래 밥만  먹여주면 다른건 웬만해선  괜찮게 느껴지는 법이다.
헌터훈련소에서 주는 밥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뭐 차원이 다르구만.
어디 가서 사먹으려면 한두푼으로는 안  퀄리티의 식사 앞에서 나는 행복했다.


"오늘이 특히 잘 나온 편인가요, 아니면 항상 이 정도는 나오는건가요?"


"헌팅 팀에서 먹는데 돈을 아낄  같아?"


"그럼. 몸 쓰는 일인데 먹는게 부실하면  되지. 만약  먹고 싶은게 있으면 저기 건의함에 신청해. 웬만한건  반영해줄거야."

여기서 더하거나  것이 있을까 싶은 호화로운 뷔페를 돌아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칼퇴근이 보장되지만 할  있다면 저녁도 여기서 먹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아, 오늘은 첫 날이니까 환영식 겸 해서 저녁에 회식을 한다고 했었나.
어제도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입단식을 열었는데, 이거 환영행사가 너무 많은게 아닌가 싶다.

한시간 가량의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에는 이론강의를 들었다.
괴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외계행성의 지리와 환경에 대한 지식, 각종 행동 프로토콜은 물론이고 이능력에 대한 이론까지 배워야 했다.
마치 학교를 다시 다니는 기분이었다.
정기적으로 초빙되는 이계학 전공의 교수가 하는 강의는 훈련소에서 벼락치기로 배운 간단한 이론교육과는 그 퀄리티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세계적으로 이능력에 대한 연구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추세입니다. 그에 따라 성과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예컨대 십여년 전만 해도 국내에 이백여 명이 넘게 있던 S급 능력자는 현재 이 자리에 계신 새내기 헌터분까지 해서 마흔여섯명밖에 남지 않았죠. 측정가능한 범위가 올라가서 기존의 S급 이능력자들이 A+급으로 세분화되어 내려간겁니다. 그 중 일부는 꾸준한 실전과 훈련으로 이능을 개발하여 다시 판정불가 등급을 받기도 하지만, 흔한 케이스는 아닙니다. 이능의 성장이라는건 근육의 성장과는 비교도  수 없을만큼 더디거든요.”

그  가장 내 흥미를 끄는건 역시 이능력의 분석에 관한 강의였다.
아직 이능력이 발현하는 기전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지만 적어도 수십여년간 쌓인 풍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된 귀납적, 경험적 연구의 수준은 상당했던 것이다.
강사는 미국의 유명한 S급 이능력자 ‘포터’의 예를 들며 이능운용에 대해 설명했다.
다른 아공간 능력을 측정할때처럼 부피와 무게를 기준으로 용량을 측정하려고 했는데 한도 끝도 없이 계속 들어가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측정불가의 이능력자.
과장  섞어서 흔히들 ‘지구를 담을 수도 있는’ 포터라고 하더라.
전투에 쓸만한 이능력은 아니었지만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였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
사실 나도 전부터 기왕 이능력을 각성할거면 그렇게 안전하게 돈을 벌  있는 능력을 각성하기를 바랐었는데, 그만큼 비전투 이능 중 활용도가 높기로 첫 손에 꼽는 케이스였다.
음, 물론 내가 불평해선  되겠지.
근거리에서 살 맞대고 싸우는 이능이 아닌게 어디야.

“흐아,  잤다. 이론교육은 받을때마다 마치 학창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라니까. 아, 그러고보니 지호는 막 고등학교 졸업했다고 했지? 익숙하겠네. 큭큭큭.”


“예, 뭐... 근데 목 안 아프세요? 아까 보니까 디스크 터질 것 같은 자세로 주무시던데.”


“신체강화 각성자가  정도로 아프면 은퇴해야지 인마.”


문제는 훈련과 달리 가만히 앉아서 지루한 강의를 듣는 시간이 딱 점심시간 직후라는 것.
그래도 첫 날이니만큼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트필기를 하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로 하나같이 꾸벅꾸벅 졸지 않는 사람이 없다.
1팀이 원정을 나가있으니 회사에서 교육을 받는 헌터들 죄다 모아봐야 쉰도 채 안 되니 강단에 선 강사의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건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기색이다.
심지어 강사도 그냥 기계적으로 자기 할 강의만 하고 나간다.


“뭐라고 할까, 굉장히 형식적이네요.”


“그럴만도 하지. 솔직히 괴수 방어막의 구성이 어떻고 세계 이능력자들의 현황이 어떻고 이런걸 우리가 알아봐야 사냥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 나라에서 필수로 이수하라니까 회사에서도 돈 들여서 하는거지. 아까  교수님도 수업엔 별 관심 없을걸? 우리가 자기네 대학 외계학이나 괴수학과 학생도 아니고 말이야.”

“매일 이런걸 배우나요?”

“아냐.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하고 금요일에만 있어. 그리고 이번주가 유독 그런거지. 원래 은퇴헌터나 군인이 와서 생존술같은걸 가르칠 때도 있고, 저번주엔 원정관련 국제법을 배웠거든. 똑같이 지루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실용적인건 다들 열심히 공부하려고 하는 편이야.”

열심히 노트에다 필기까지 해가면서 성실한 자세로 귀를 기울이던게 다 억울해지는구만.
강사가 날 기특하다는듯한 눈이 아니라 신기하다는듯한 눈으로 본 것도 이해가 간다.
분위기를 보니 비유하자면 예비군들 모아놓고 하는 이론교육쯤 되는 위상인 것 같은데, 그걸 열성적으로 받아적고 있으면 그야 뿌듯하기보단 신기하게 느껴지겠지.

두어시간의 강의, 아니 사실상의 식후 오수시간이 지나면 다시 오전과 같은 전술훈련.
앞서 서너시간 합을 맞춰봤다고 나도 이번에는 그럭저럭 팀의 호흡에 따라붙을 수 있었다.
한편, 잠시 고민하던 강경호 팀장은 조금 변형된 전술을 요구했다.
탱커 셋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 전원이 피니셔 역할까지 수행할  있도록 열병기 화력을 대폭 증강하는 방안이었는데, 다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연습을 시작한다.
몇 차례의 모의전투로 호흡을 맞추다가 잠시 쉬는 틈에 선배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졌다.
신체강화 이능력자인 윤기정은 이능력을 차치하고서라도 팀에서 가장 몸이 날랬는데, 덕분에 위기상황에서 최중요 전력인 나를 마크하여 붙들고 피신하는 역할까지 맡은 선배였다.
우정 중 제일은 전우애라던가.
반나절에 불과한 시간이지만 몇 가지 상황대처 훈련에서 그에게 붙들려 이리저리 뛰고 구르며 몸을 부대끼다보니 훨씬 더 친근해진 느낌이다.

“그동안 익숙해졌던 메인 택틱을 하루아침에 바꾸는건데, 괜찮아요?”


“얘는 무슨 말을 하는거야? S급 이능력자가 새로 들어왔는데  중심으로  전술을 재편하는건 당연한  아니니? 당장 전제 자체가 달라졌잖아. 나도 정확히는 못 들었는데, 너 훈련소 실습때 거대괴수 방어막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며?”

“어... 네. 맘모스하고 신형괴수, 전에 들으니까 아라크네라고 명명했던데, 아무튼 방어막은 일격에 다 깎았어요. 아라크네는 급소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화력으로 밀었는데...”

“그 정도 되는 위력의 이능이 있는데 자잘한 사냥감 몰아서 잡는건 낭비지. 우리 3팀은 앞으로 거대괴수 위주로 사냥을 하게 될걸? 지호 네가 방어막을 상쇄하면 나머지 팀원들이 총탄을 쏟아부어서 잡는거지. 애초에 위쪽에서도 그러려고 스카웃했을걸?”

다음 원정은 남쪽 고원지대로 대부분 탐사가 끝난 지역이었지만 아마 한두번 경험이 쌓인 다음에는 미발견 지역 탐사같은 위험한 일을 맡게 될 확률이 높다며 잔뜩 겁을 준다.
하긴, 아무리 기업이 쓸데없는 리스크를 싫어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중시한다고 해도 있는 능력을 놀릴 이유는 없으니 착실하게 한계치까지 뽑아먹으려 드는게 당연하다.
신규지역 탐사에서 가장 위험한건 역시 미발견괴수, 특히 거대괴수였던 것이다.
순식간에 두터운 방어막을 상쇄할 수단이 있다면 그런 위험을 최소화할  있겠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이온음료를 한모금 마시다가 문득 생각나는게 있어 물어본다.

“어, 그런데 혹시 대인전투같은건 훈련 안 하나요?”

“대인전투? 사람하고 싸우려고? 에이, 그런걸 바랐으면 군대나 경찰에 갔어야지. 이능력관리부 직속으로 무슨 특공대가 있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거기선 대인전투를 훈련한다더라.”

“아뇨, 딱히 싸우고 싶다는건 아니고... 훈련소에서 격투랑 리볼버 사격을 배우는 과정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혹시 필요한건가 싶어서 여쭤본거예요.”

“에이, 그건 기본 호신술 겸 해서 가르쳐준거지. 사실상 형식적으로 시늉만 했을걸?”


실탄사격도 커리큘럼 내내 쏜걸 다 합치면 백여 발이나 했는데 시늉만 했다는건  과장이지만 확실히 가르치는 교관들도 그렇고 별 열의가 없어보이긴 했지.
훈련장 외곽에 마련된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그렇게 잡담을 하고 있는데 분석실에서 넘겨준 리포트를 읽던 강경호 팀장이 다가와 나를 부른다.


“최지호, 혹시 이능발현할 때 특이한 감각이 있지 않았나?”


“예?”


“여기  신체능력에 대한 데이터를 보면, 다른건  평범한데 이능으로 칼날을 뻗을때마다 순간적으로 반응속도가 빨라지고 움직임도 민첩해지는 현상이 발견됐는데...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현상은 아니거든. 아무래도 네 이능력의 일부인  같아.”

“오, 셀프 버프인가? 우리 막내 아주 로또가 제대로 터졌네.”

부럽다면서 싱글거리는 윤기정에게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이능력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게  많지만 내 이능은 전생에 했던 게임 캐릭터의 스킬이 그대로 발현된 것이 거의 확실하니까.
가만있자, 에테르 칼날의 스킬 스펙이 15미터 거리의 적에게 칼날을 뻗고, 음, 명중시 공격속도인가 이동속도인가 헷갈리지만 아무튼 뭔가 짧은 추가효과가 있었던 것 같은데.


“훈련용 더미를 이능으로 잘라낼때마다 관측된거야. 정확한 측정을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어. 출근 첫날부터 미안하지만 혹시 오늘 퇴근 좀 늦게 해도 되나?”


“추가근무 수당은 주나요?”


“당연하지. 야근수당이 문제겠냐, 신체  이능력 데이터 제공하는거 하나하나마다  가격이 매겨질텐데. 계약서 안 읽어봤어?”


“연봉하고 연금만 봤죠. 그 두꺼운걸 언제 다 읽어요?”

사내 분석팀에서 교외에 따로 떨어진 연구소에 연락을 했으니 일과 끝나고 함께 가서 측정을 하자고 하기에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데이터 제공 명목으로 돈 몇 푼을 더 주는 것도  주는거지만 나도 궁금했으니까.
측정불가 판정으로 최고등급을 받아 호사스런 대우를 받고는 있지만 그래도 기왕 목숨걸고 헌터노릇을 할거면 하나라도 더 메리트가 있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당장 다음주에 잡힌 원정에도 아직 따라갈지 어떨지 모르는데 확실히 정밀측정을 해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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