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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1부 (10/110)



〈 10화 〉1부

실습평가를 끝으로 모든 훈련일정이 끝났다.
나는 원래 애매한 공격 사정거리때문에 안정성 면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실습때 보여준 이능 파괴력 하나만으로 모두 뒤집어버렸다.
미발견 거대괴수의 방어막을 일격에 전부 상쇄시키는 것을 모두가 목격한 덕분에 일약 이번 기수 최고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것이다.

"교관 말마따나 방어막 관통형 능력인줄 알았지."

강호찬이 내게 캔커피를 건네며 부러워한다.

"그것만해도 희소성있는 이능이니까  놈은 앞으로 참 잘 나가겠다 싶었는데, 세상에, 그냥 거대괴수의 방어막을 전부 깎을 정도로 위력 자체가 강한거였다니."

"다행이죠. 만약 진짜 관통형 능력이었으면 그때 우리 중 누구 하나는 죽었을거에요."


"하나만 죽었겠냐. 운 좋게 급소를 찾아내 의외로 금방 끝났을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혼자서 의미없는 난도질만 하다가 전멸했을수도 있잖아."


"뭐, 결국 사상자없이 잡았으니까 됐죠. 미발견 괴수 발견보상금도 나왔고 사냥기록이랑 부산물도 꽤 비싸게 팔릴거라고 하던데."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한 푼도 못 받을텐데."


"그건 그렇죠.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강릉 훈련소 생도들이 실습중에 겪은 사고는 이미 협회와 정부에 보고가 올라갔고 나리분지 게이트와 연결된 전진기지 근처를 정부 소속의 공무원 헌터들이 다시 한번 훑고 있는 중이었다.
뭐, 그 사람들이 고생하는건 고생하는거고.
수료식을 앞둔 우리는 보상금이며 판매금이 얼마나 나올지, 그걸 정작 싸운 사람들에게는 분배하지 않고 운영자금 충당하는데 보태는게 얼마나 부당한지에 대해 떠들어댈 뿐이다.


"그러게. 가자. 마지막날인데  분 늦었다고 꼬투리 잡진 않겠지만."

다 마신 커피캔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약간 남아있던 갈색 액체 몇방울을 휘날리며 날아들어간 캔이 안에 들어있던 금속 깡통들과 부딪혀 쇳소리가 들린다.

수료식은 간단하게 끝났다.
강릉시장을 비롯해 국회의원, 인근 명사들이 서넛 올라와 지루하게 축사를 늘어놓고 훈련소장이 수료증을 수여한 후 이능력자 관리부에서 나온 공무원이 정식 헌터자격증과 게이트 출입증을 받는 절차가 전부니까 길어질 이유가 없다.
수료식을 하는 이유의 절반 이상은 식순이 끝나고 기념연회에서 벌어진 각축전이 아닐까.


"이번 기수 수석이시죠? 디아이 헌터스 인사과의 박종성 대립니다."


"뭐 인원 얼마나 된다고 수석을 따지겠어요. 최지홉니다. 전 명함을 아직  파서..."

"예, 알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헌터자격을 신청하셨죠? 크으, 그런 패기있는 인재가 계속 나와야 하는데 말입니다."


"메트로 가디언의 전수일 팀장입니다. 여기 제 명함도 받으시죠. 정말 감탄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거의 혼자서 거대괴수를 사냥하셨다고 하던데, 그 무용담을 듣고 싶네요."


"오닉스 헌터즈의 김수현 팀장입니다..."


실습때 미발견 괴수와 조우하는 초유의 불행을 맞닥뜨렸으면서도 단순히 생환하는데 그치지 앉고 아예 아무 피해도 없이 첫 사냥에 성공한 이번 기수는 업계의 관심을 받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원정기록이 공개된 이상  관심의 대부분은 내게 쏠릴 수밖에 없다.

"뛰어난 이능을 각성하는건 행운이지만 이능력자들 모두가 그런 용기를 보여주지는 못하죠. 거대괴수에게 맞서 달려들다니, 보통 사람들같으면 상상도 하기 힘들 일입니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내가 대단한 용기를 발휘했다고 하기는  애매한데.
실습에 나선거야 필수 커리큘럼인데다 남들도 다 하는거니까 딱히 위험을 감수했다고 할 수도 없고 미발견 거대괴수에게 공격을 가한 것도 나름대로 에테르 칼날의 위력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였다.
더욱이 도망친다고 무사히 도망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 선택의 여지도 달리 없었던데다 이능의 사거리가 원거리치고 짧다는거지 아무튼 15미터의 안전거리가 있었으니 '달려들었다'는 표현에도 적잖은 어폐가 있는 셈이지.
요컨대 이능 자체의 위력이 규격 외였을뿐 위기에 처했을때의 자세가 검증된건 아니다.


"혹시 향후 거취는 정하셨습니까? 저희 오닉스 헌터즈는 업계 최고의..."

"오닉스가 어떻게 업계 최곱니까?"


"누가 규모 말했습니까? 일선 헌터분들에 대한 대우와 각종 복리후생이 최고라는거죠."

물론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시시콜콜하게 따져가며 스스로 값어치를 깎아먹을 필요는 없지.
군말없이 특급 유망주 대우를 즐기기로 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사실상 무한대라고  수 있는 에테르 칼날의 위력을 감안하면 지금 당장 어느 기업 소속의 헌터팀과 함께 원정을 나간다고 해도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할수 있을걸?
전술이니 괴수학이니 하는 것도 다 효과적인 사냥을 위해 배우는거니까 이것 저것 가릴것 없이 죄다 썰어버릴 수 있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그냥 명함만 주고 가시죠. 여긴 워낙 혼잡해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에 적합한 자리는 아니잖습니까. 저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구요."

"언제든 편하실때 연락주시죠. 훈련소를 이제 막 수료하셨으니 여유는 충분하니까요."


"제가 돈이  급해서요. 휴식은 짧게 가져가고 바로 일자리를 알아보게 될  같네요."


"돈 걱정은  하셔도 될것 같은데요. 하하하."


바로 취직해서 일을 할 예정이라고 하니 스카우터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수료식 파티에서, 나는 거의 열 장 가까이 되는 명함을 받았다.
주머니에 넣으니 불룩하게 티가 나는데 그만큼 기대받는 유망주라고 생각하니 뿌듯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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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현관을 들어서며 감개무량한 목소리로 외치니 날 태워온 아버지가 뒤에서 쿡쿡 웃는다.
그러고보니 훈련소 정문에서 만날때부터 많이 의젓해졌다느니 어른스러워졌다며 칭찬하시는게 영락없이 군대에서 휴가나온 아들의 모양새다.

"어서 와. 우리 지호, 많이 힘들었지?"

"아뇨, 별로 힘든건 없던데요. 운동도 되고 밥도 아주 잘 나와서 오히려 좋았어요."

이건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한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뷔페식으로 나오는 식사는 꽤나 호화로웠고 훈련도 개인별로 다 조절해서 시켰으니까.
심지어 휴식시간 보장에다 일과 끝나면 자유시간에 놀 거리도 은근히 충실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이쯤되면 군대 한번 더 가는셈치고 간다는 기존의 각오가 무색한 상황인 것이다.


"맞다, 아버지. 혹시 아는 변호사나 법무사 있어요? 회사를 골라 계약을 해야 하는데 이런건 전문가 도움을 받는 편이 낫다고 해서요."

"음, 그래. 건너건너 어떻게 알아보마."

"휴우. 지호야,  진짜 꼭 그거 해야겠어?"


"자격증 받고 일정 기간내에 최초원정 안 나가면 무효가 돼서 훈련소 또 가야돼요. 벌금도 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너무 걱정마세요. 사냥 실습 나가보니까 크게 위험할 일도 없더만."


실습훈련때 예기치않은 사고가 생겨 하마터면 죽을뻔 했다는 이야기는 안 하는게 낫겠지.
여전히 걱정스러워하시는 어머니를 안심시켜드리기 위해 입을 다물기로 했다.
설마 게이트 너머에서 벌어진 사소한 사고가 이쪽 뉴스에 나올리도 없을테니까.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 하룻밤을 느긋하게 보낸 후 나는 아버지가 소개해준 사무실을 찾았다.
보통의 내 나이 또래 혈기왕성한 청소년 같았으면 혼자 알아서  수 있다며 괜한 객기를 부렸을지도 모르지만  전생에 계약서를 가볍게 봤다가 제대로 데인 경험이 있어서 아버지에게 동행을 부탁드렸다.
친분이 있는 분이라니까 별일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거니까.

"아이고, 선배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 놈의 벨로시랩터 영혼석이 변질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셨다고 들었는데..."


"운이 없었지 뭐. 관리소홀로 잘린건 잘린거지만, 다행히 책임소재를 소명하는 과정이 좀 애매해져서 빚더미에 올라앉지는 않을  같아. 회사에서 구상권 청구하긴 했는데, 소송해야지."


"잘 됐네요.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게 어디 선배님 잘못이었습니까? 독박쓰신거죠. 재판은 걱정마십쇼. 제가 최저수임료만 받고 전력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술 한잔 하면서 하자고. 여기가 우리 아들. 처음 만나지?"

"오, 네가 지호구나? 만나서 반갑구나."

"안녕하세요."


언뜻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버지 학창시절 후배분 같은데 아버지는 공대를 나오셨으니까 변호사라면 아마 고등학교 후배겠지.
몇마디 나눠보니 괴수 및 게이트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탁월한 전문가같아서 믿음이 간다.

"대단한 성능의 이능력을 각성했다면서? 에이전시 업계에선 소문이 자자하던데?"


"운이 좋았죠."

"그럼 이능력이 죄다 운이지 뭐 별다른게 있겠냐. 내가 선배님 전화를 받고 짧은 시간이나마 좀 알아봤는데, 계약금만 최소 삼억 이상을 기대할 수 있을것 같구나. 초봉도 억대부터 시작할거야."

"뭐? 그렇게나? 내가 알기로 법정수습기간이..."


"에이, 그거야 규정일 뿐이죠. 누가 일일히 신경쓴답니까?  일년동안 정식 연봉은 제한이 있지만 보너스라던가 이런저런 명목으로 다 맞춰줄겁니다. 헌터들 몸값이야 오르면 올랐지 떨어질 일은 없어요."


대리인 선임계약서에 서명하면서 나는 변호사의 말을 주의깊게 들었다.
몸값이 높다는 말이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다.
언제는 어디 험한 일 하는 사람들이 펜대 굴리는 사람들보다 높은 보수를 받던가.
목숨걸고 일한다고 꼭 위험수당 제대로 챙겨받는것 같지도 않더라.
나는 수료식 파티에서 받아온 스카우트 담당자들의 명함 한무더기를 모두 넘겨주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고맙지. 아무 염려말고 부자될 생각만 해. 선배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지호 이 녀석이 받아야지. 내가 뭐 아들놈한테 얻어먹을 것도 아니고."

"그래도요. 자식농사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던데 선배님은 이제 걱정할게 없잖습니까."


걱정할게 없긴 뭘, 하고 투덜대면서도 아버지는 기분좋은 미소를 내내 지우지 않으셨다.
특별히 선망하며 가고 싶은 대기업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런건 전혀 없고 조건만 잘 맞추면 어느 곳이라도 괜찮다고 하니 신명수 변호사도 일이 까다롭지 않게 되어 좋아하는 기색이다.

"그래, 이름값이 뭐가 중요하겠어. 잘 생각했다.  많이 주는 곳이 오히려 각종 복지혜택도  되어있는 경우가 많아. 그만큼 게이트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는 기업이란 뜻이거든."


"돈만 많이 받으면 사실 대부분의 복지는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하하하."


"그런가? 아무튼, 내가 무리한 원정 안 다니고 평판 괜찮은 곳들 잘 골라서 정리해 보고할게. 내 번호 등록해놓고 전화 잘 받으려무나."

"알겠습니다."

대리인 선임계약을 마치고 변호사 사무실을 나오며 아버지는 괜히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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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수 변호사가  에이전트 역할을 하느라 바쁜 동안, 나는 이능력센터에 가서 재측정을 받았다.
보통 별다른 사유가 없는 재측정은 유료에다가 적지않은 가격을 청구했지만 내 경우에는 훈련소의 보고를 받은 이능력자 관리부에서 직접 요청한 재측정이라서 당연히 무료였다.
종합 D플러스 판정을 받은 초능력이라기엔 아무리 봐도 납득이 가지 않는 성과니까.

"위력은 C급판정을 받았었는데 유니콘과 맘모스, 신형 거대괴수의 방어막을 모두 일격에 무효화하는 것은 말이 안 돼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어쩔 수 없는데요."


실제로 일이 벌어진걸 나보고 어떡하라는 말이냐, 뭐 그런 뉘앙스로 대꾸하니 측정담당관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다문다.
나는 아마도 전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던 게임의 스킬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되는  이능력에 대해, 그냥 밀어붙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실 나도 잘 모르는걸 가지고 숨기고 자시고 할 이유도 여유도 없지.

"둘 중 하나겠죠. 측정이 잘못되었거나 최지호 씨의 이능이 뛰어난 성장잠재력을 갖고 있거나."


"급속성장형 이능이면 등급판정에 이익이 있나요?"


"아무래도 그렇죠. 물론 현재 검증가능한 성능만으로 매기는게 원칙이긴 한데, 플러스 하나는 더 붙는다고 봐야죠. 음... 근데 그럴 필요도 없겠네요."

"예?"


센터장은 모니터를 들여다보다가 막 인쇄된 검사지를 내게 건네면서 말했다.
아까 위력측정을 할  센터에 준비된 강판을 몇 개나 잘라낸 후 한참을 대기하라고 하기에 더 단단한 표적을 준비하려고 그러나 싶었는데 이내 상담실로 안내받은 차였다.
센터장, 그러니까 자그마치 4급 공무원이 직접 기다리고 있을때부터 나도 내심 눈치챘던건지도.


"위력을 S급으로 상향조정합니다. 아시겠지만 현 등급제 하에서 S는 최종등급이에요. 측정불가, 혹은 측정이 의미가 없을 수준이란 뜻이죠."


"종합등급은요?"


"당연히 S급이죠. 말했잖아요, 측정불가라고. 축하합니다. 국내에 S급 이능력자는 오십여명이 채 안 되는걸로 아는데, 몇 년만에 저희 센터에서 나올줄은 몰랐네요. 혜택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야 하는데... 이게 워낙 많아서요."

그러면서 서랍을 열고 뒤적거리더니 서류뭉치 속에서 양식 하나를 꺼내 내민다.
받아보니 무슨 안내문이었는데 간단한 축하메세지와 함께 여러가지 혜택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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