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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1부 (9/110)



〈 9화 〉1부

이름모를 헌터팀과 만난  가게에서 나온 후에도 나는 전진기지 안을 구경하고 돌아다녔다.
북부의 유흥가를 제외하면 삭막한 병영도시라 별로 볼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넓이가 꽤 되는 탓에 숙소로 돌아온 것은 자정이 거의 다 되어서였다.
고된 하루를 보냈으니 다들 곯아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교관  한 명이 아직 깨어 숙소 일층 로비에 마련된 소파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최지호 훈련생, 이제야 들어옵니까?"

"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하하하."

"술냄새도 나는군요. 남는 시간에 뭘 하든 그건 개인자유지만 너무 풀어진것 아닙니까? 내일도 이른 시간에 출발할텐데 피로때문에 자기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수도 있어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참. 대단히 위력적인 이능을 각성한건 알겠지만 실습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들어가봐도 됩니까?"


그는 영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자면 대충 너댓시간  수 있는건가.
아무리 순조로웠더라도 전투는 육체적인 피로도 피로거니와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을 주는 법이지만 타고나기를 강인하게 타고났는지 나는 멀쩡했다.
사실 전생에서도 군대는 다녀왔지만 '전투'라고 불릴만한 경험을 겪어보지는 못했으니 어쩌면 처음부터 내게 그런 재능이 있었을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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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 나는 내 만용을 후회하며 하품을 했다.
전투의 피로가 어쩌고 긴장이 저쩌고 하기 이전에 나는 그냥 잠이 많은 편이었다는걸 잊은 것이다.
복도 끝의 간이욕실에서 소독약 냄새가 나는  물로 세수를 하니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았다.

"지호야, 바로 내려오래. 늦었어."


"지금 나가요."


숙소 앞의 공터는 그리 좁은 편은 아니었지만 서른명의 훈련생도가 도열하니 꽉 차게 보였다.

간단한 인원점검 후 출발한 강릉 훈련소의 실습생 제대는 어제와 정확히 같은 루트를 밟았다.
사실 어제처럼 맘모스는 차치하고서라도 수십여에 달하는 유니콘 무리를 사냥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고, 보통은 하루종일 필드를 돌아다니며 전투를 해도 어제의 절반에도  미치는 성과를 내는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물론 어제는 선행정찰 단계에서 운이 좋았던 덕에 빠르게 괴수무리를 조우한 편이지만 막상 조우한 후에도 전투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맘모스같은 대형괴수의 경우 애초에 섣불리 훈련생 레벨의 사냥팀이 손댈만한 상대가 아니고.

"후우, 그럼 이렇게 계속 헤매야 한다는거네요."


"인내심도 헌터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단어부터가 전사가 아닌 사냥꾼을 뜻하는 단어 아닙니까?"


어제와 달리 지루하게 이어지는 행군에 지쳤는지 불평을 늘어놓는 훈련생들에게 교관이 단호한 목소리로 잘라 말했다.
평가 항목  하나라는 말에 다들 입을 다문다.
그때 멀리서 정찰조가 돌아오는 소음이 들렸다.
이제야 오늘 첫 개시를 하는구나.
연락을 받은 수석교관이 다급하게 지시한다.


"정찰조가 거대괴수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보고된 적이 없는 미지의 괴수 하나. 일단 대 거대괴수 진형으로 맞되 언제든 후퇴할 수 있도록."


"예?"

"안 배웠습니까? 아니면 못 들었습니까?"

"아,아닙니다.  거대괴수 진형!"


그래도 어제 한번 실전을 겪었다고 두번째인 오늘은 훨씬 더 일사불란한 움직임이다.
내 옆에 붙어 유사시 함께 대피할 준비를 하는 신체강화 능력자는 강호찬 아저씨였다.
목숨을 맡기기엔 영 못 미더운 아저씨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수 없지 뭐.
그러나 나는 이 상황에서도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고 있었다.
시간이 그동안 또 많이 지났으니 내 에테르 칼날은 더욱 강해졌을테고 저 거대괴수가 지금껏 보고된  없는 괴수라고 해도 충분히 잡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이다.

"온다!"


"공격이 하나도 안 박히는것 같은데... 저거 방어막 뚫을수는 있나?"


"최지호! 지호 초능력이 방어막 관통이라고 하지 않았어? 일단 지호 공격까지 보자."

이렇게 나만 바라보는 느낌, 부담스럽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은 기분이다.
어느새 수십여미터 앞까지 짓쳐온 거대괴수는 마치 거미처럼 동체 좌우에 달린 다리를 혐오스럽게 꿈틀거리며 기어오고 있었다.
아니, 앞에서 봐서 몰랐는데, 다리가 수십여개나 되니 거미라기보다는 지네에 더 가깝겠네.
나는 어림짐작으로 지네괴수의 대가리가  이능 사정거리인 십오미터 안쪽으로 들어왔을때 곧바로 에테르 칼날을 정중앙에다 날렸다.
촤악, 종이가 찢어지는듯한 소리와 함께 정면부가  벌어지며 청록색 액체가 터져나온다.


"됐다!"

"잠깐, 저거 아직 움직이는데?"

"머리가 잘려도 움직인다고?"


"저기가 머리가 아니었을수도 있지. 피해!"

누가 봐도 저기가 대가리구나 싶게 생긴 부분을 정확히 베어서 도려냈는데도 괴수는 단지 고통에 몸부림칠뿐 죽어 고꾸라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후경련이 아닌가 싶었는데 사후경련으로 저렇게 발광을 할 리가 없다.

"대체 어디가 급소인거야?"

나는 삼초의 쿨타임이 지날때마다 지체하지 않고 칼날을 날렸다.
여러개의 다리가 잘려나가고 몸통에도 깊게 상처가 패이며 청록색 체액이 튀어나왔지만 거대괴수는 여전히 쓰러지지 않고 날뛰었다.

"뭐해요? 빨리 공격해요!"


"방어막이 너무 단단해. 여기까지 올 동안에 전혀 타격을 못 줬잖아. 어서 피해!"

"그 방어막 이제 없으니까 빨리 치라고! 아저씨도 그 권총이라도 쏴요. 방어막  걷었어요."


강호찬이 나를 안아들고 몸을 날린다.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로 괴수의 다리가 묵직하게 떨어지며 쾅하고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내 외침에 산개해서 물러나던 원거리 공격계열의 생도들이 이능을 쏘아냈다.
콰직, 단단해 보이는 갑각이 찌그러진다.
화염이 휩쓸고 지나가니 그을린 자국도 남는다.
뚜렷한 타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방어막은 작동하지 않는 것을 모두 알아차렸다.


"됐다! 방어막이 모두 까였어! 잡을수 있어!"


"반전! 반전! 있는대로 때려부어!"

"피니셔! 피니셔 뭐 합니까?"


신체강화나 방어계열 헌터들이 공격계열 헌터들을 하나씩 맡아 방어해주는 것은 안정적으로 전열을 형성해 전투하기 어려운 형태의 괴수를 상대로 많이 쓰이는 전술이라 훈련소 과정에서도 비중있게 가르쳤기 때문에 우리는 훈련생도치고는 제법 숙련된 움직임을 보일수 있었다.
괴수의 움직임이 둔화되자 B조 생도를 맨투맨으로 맡아 방어해주던 C조의 생도들 중 여유가 생긴 사람은 지급받은 리볼버를 난사하기도 했다.

"됐다! 성공했어!"

애초에 괴수가 무서운건 외계행성에서 그들에게 생기는 보호막 때문이다.
보호막이 깨져나간 이상 그저 특이하게 생긴 짐승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여섯살짜리 여자애가 사냥용 대구경 총으로 불곰을 사냥했다고 뉴스에 나오는 세상이다.
이능을 제외한 물리력을 무효화하는 방어막이 없는  아무리 단단해봐야 갑각이나 가죽 따위로 버텨낼 화력이 아니다.
거미나 지네를 닮은 괴수는 우리가 반전하여 공격을 개시하고 겨우 일분여만에 만신창이가 되어 무너져내리고는 생기를 잃었다.

"끝났습니다. 전장 정리하고 괴수사체 수습해서 돌아갑시다. 부상자 있습니까?"


괴수가 체액을 흩뿌리며 쓰러진 이후로도 잠깐동안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있던 수석교관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나선다.
다행히 사망자나 중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잘려 떨어지는 괴수의 다리에 맞아 타박상을 입은 경상자는 있지만 기성 헌터팀도 아니고 훈련소 실습조가 준비없이 아직 보고되지 않은 거대괴수의 습격을 받은것치고는 양호한, 아니 믿을수 없을만한 성과다.

"이틀 연속으로 거대괴수를 마주치다니... 도대체 울릉도 전진기지 근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서식지도가 하나도 안 맞잖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야. 자칫하면 전멸이나 그에 준하는 피해를 입을뻔 했어."

"이건 바로 보고해야겠어. 여기서 더 이상 실습을 이어나가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야."

생도들이 거미괴수의 사체를 분리하여 차량에 싣고 있을때 교관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를 했다.
그들이 하는 말을 지나다니며 언뜻 들으니 오늘같은 일이 흔하게 벌어지는건 아닌 모양이다.
새로운 괴수는 다달이 발견되어 데이터베이스가 갱신되지만 그건 미탐사지역의 이야기고, 전진기지 코앞의 사냥에서 발생하는 일은 아닌 것이다.

"그나저나 방어막이 다 까였는데도 완전히 제압하는데 몇 분이나 걸린건 문제가 있는데..."


"맞다. 오늘 피니셔를 누가 맡기로 했지요?"


괴수를 상대하는데 핵심은 방어막을 이능력 발출로 깎아내는 것이지만 방어막이 없어진다고 괴수가 저절로 죽어나자빠지는건 아니다.
당장 지구에 게이트가 생기고 처음 침공을 받았을때도 지구로 건너온 괴수들에게는 방어막이 없었지만 인류가 상황파악을 하고 대처할때까지 적지않은 민간인 희생자들이 나왔으니까.
특히 거대괴수 중에는 일반적인 개인화기로 제압하기 곤란한 단단한 녀석들도 있다.
그래서 사냥팀은 주로 신체강화계열을 피니셔로 지정해 대구경 화기를 소지하게 한다.

"그게... 너무 당황해서 잊어버렸습니다."

"아니, 처음에야 그랬다쳐도 반전하여 사냥재개를 지시한 후에는 다들 훈련받은대로 움직이던데."


"총기를 장갑차에 놓아두었는데 나올때 깜빡하고 미처 꺼내질 못했습니다."


오늘 피니셔 당번을 맡은 C조원이 쭈뼛거리며 손을 들고 고개를 푹 숙인다.
확실하게 거대괴수의 숨통을 끊기위해 60구경 이상의 대구경 연발화기를 쓰는데, 당연히 무겁고 큼지막해서 들고 다니기 거추장스럽다.
물론 거대괴수인 것을 보고서도 내릴때 챙기지 않은 것은 변명의 여지없이 잘못이지만.
교관은 혀를 끌끌 차면서 별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지만 아마 어마어마한 감점요인이 되리라.
만약 우리 중 실전평가에서 낙제점을 받는 사람이 나온다면 저 아저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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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소 실습조는 새로이 발견된 거미인지 지네인지 모를 형태의 괴수 사체를 마지막 조각까지 전부 모아서 싣고 전진기지로 돌아왔다.
전투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이전에 사냥감을 만나지 못하고 헤매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정작 복귀한 시간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송 교관은 생도들 인솔해서 지구로 복귀하세요. 난 전진기지 사령부에 신규발견 괴수에 대해 보고하고 돌아갈테니. 아, 생도여러분, 여러분의 실습성적은 지난 이틀간의 퍼포먼스를 기준으로 매기겠지만 불합격 인원은 없을겁니다."


기지 주변의 괴수 서식지도와 분포도가 공유되고 명확한 목표를 설정한 후 원정계획을 철저히 짜서 출발하는 사냥방식이 확립된 후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는 경험은 아무리 헌터라고 해도 흔하게 겪기 힘든 경험이다.
미개척 지역을 탐사하는 경우에는 일반적인 사냥 원정과 달리 가성비를 생각지 않고 대규모 개척단을 조직해 떠나니까.
오늘처럼 기지 근처에서 미발견 괴수와 맞닥뜨리는 일은 거의 없는 일이지.

"휴우. 드디어 돌아가네. 진짜 죽는줄 알았어."

"그러게. 내가 생각했던 사냥과는 너무 달라."


"훈련소 수료하고 라이센스를 따더라도 계속 할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네."

"형, 걱정말아요. 오늘같은 일은 거의 없대요."


게이트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훈련소 동기들의 표정을 보면 다들 오늘 거미형 거대괴수를 만나 겪은 충격으로 실습점수 따위에 정신을 쏟을 여유가 없어보인다.
물론 그 와중에도 한두번의 공격으로 거대괴수의 방어막을 날려버린 내게 쏟아지는 관심어린 시선은 줄어들지 않았다.

"최지호씨...라고 하셨죠? 덕분에 살았어요."


"첫날 유니콘이랑 맘모스 잡을때부터 알아봤지. 지호 얘가 진짜 제대로라니까?"


"이능 등급이 어떻게 되세요?"

"종합 D+급에 위력만 따지면 C급 받았어요."


"뭐? 말도 안 돼. A급 고위 헌터들도 거대괴수의 방어막을 그렇게 간단히 상쇄하진 못하는데."

"아까 교관들도 엄청 놀랐더라구요."


첫날 유니콘과 맘모스를 일격에 잡아낼때는 이능이 방어막을 관통하는게 아닌가하는 추측이 있었지만 오늘 거미형 거대괴수에게는 다른 헌터들의 공격은 물론 총기까지 통하는걸 모두가 봤으니 방어막을 내가 모조리 상쇄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능 자체의 위력이 어마어마하다는 뜻이니 위력등급 C급이라는 소리에 믿지 못하겠다는듯한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교관님은 성장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종류가 아닌가 추측하시던데요."

"대단하네. 그럼 더 강력해진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위력이 더 올라가는게 의미가 있나? 거대괴수의 방어막을 한두번만에 상쇄할 정도면..."

"더 세면 더 좋은거지 뭘. 야, 지호야. 나중에 대기업 가서 팀장 달면 나 잊지마라. 응? 동기들끼리 끈끈한 정, 알지?"

"아저씨 참 주책이네요."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조금씩 분위기가 밝아져서 게이트를 통과할 즈음에는 웃고 떠드는 분위기가 되었는데, 다분히 의도적인 웃음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충격에서는 다들 벗어난 모습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누구 죽은 사람이 있는것도 아닌데 좀 위험했다고 해서 아직까지도 겁을 먹고 기가 죽어있으면  되지.
게이트 넘어가서 헌터 하겠다고 자원한 사람들인데 말이야.
게이트를 통과해 마주한 울릉도 나리분지의 풍경은 정겹고 평화롭게 보여서 나도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예정보다 이르게 실습일정을 마친 강릉 훈련소의 훈련생도들은 그렇게 지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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