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1부 (6/110)



〈 6화 〉1부

교관의 권유를 거부하고 원거리 클래스 B조에 잔류를 선택했지만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애초에 초능력자의 이능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 함부로 표준화하기가 곤란하다.
그래서 이능훈련소의 커리큘럼은 훈련생 개개인에 맞추어 초능력의 효율적인 활용을 연구한다기보다는 범용성높은 교육을 중심으로 만들수밖에 없다.
예컨대 야지에서의 생존요령이라던가, 괴수의 특징 및 약점이라던가, 체력단련 같은것들 말이다.

"마지막 왕복 한번! 힘내요, 할 수 있어!"

"허억, 허억, 죽겠네 진짜."


"안 죽어요  죽어."

출발점에 도착하자마자 삐익 호루라기소리가 울리고 다음 라운드가 시작된다.
20미터 셔틀런은 하루걸러 하루씩 저녁먹기 전에 수행했는데, 왕복 오십번을 넘기는 사람이 우리 조에는 나밖에 없었다.
운동선수들처럼 백번을 넘기는건 바라지도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사실 다들 열심히 하는것 같지도 않다.
최선을 다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는건 나밖에 없는것 같아.
나도  측정때 적당히 엄살을 부렸어야 했는데.
곧이곧대로 죽을똥살똥 뛰었으니 이제와서 그때보다 못 뛰겠다고 주저앉을수가 없는 것이다.


저녁먹기 전에 셔틀런을 시키는건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항상 밥때가 기다려지는건 식사가 굉장히 훌륭했기 때문이다.
생도식당은 뷔페식으로 운영되었는데, 식사시간도 여유로운 편이고 질도 상당히 높았다.

"으으, 그나마 밥이라도 맛있게 나오니 망정이지, 먹는것도 시원찮았으면 살이 엄청 빠질뻔했어."


"아저씨는 살 빠지는게 좋은거 아녜요? 하하하."

접시 위에 육회며 초밥, 튀김 등을 수북하게 쌓아 식탁으로 가져오면서 힘들었다고 엄살을 부리는 저 아저씨는  기억에 서른번 남짓 뛰고는 제일 먼저 힘들어 죽겠다고 쓰러진 아저씨다.
기름지고 입에 당기는 음식만 잔뜩 골라온걸 보니 여기서 다이어트를 하고 나가긴 글렀다.
자연스럽게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우리는 간단히 통성명을 했다.
그는 신체강화계열의 각성자 강호찬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체력단련은 일과 후 조별구분없이  함께 모여서 시키니 꼭 공격계열 초능력자라는 법은 없지.
아니, 그런데 잠깐.
지금  아저씨, 신체강화계열 이능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달리기가 힘들다고 엄살을 부린거야?

"지호 넌 매사에 참 열심이더라. 그런데 사실 훈련소 성적은 아무 의미도 없어. 헌터는 급수랑 경력이 전부니까 말이야."


"그래도 실력을 키워야 더 안전하게 일하죠."


"에이, 거 사고율 몇 프로나 된다고. 예전이라면 모를까 요샌 위험한  별로 없다던데."


영화보면 꼭 아저씨같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사고 당해서 죽더라구요, 하는 말을 속으로 삼킨다.
사실 나도 경험이 없고 아는게 없으니 어쩌면 그의 말이 맞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래도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나와 달리 사회경험도 있을테니 뭔가 더 주워들은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도 나이만 따지면 서른 더하기 열아홉이지만, 전생의 경험은 이쪽에선 별 쓸모가 없는 것이다.


"헌터들 많이 만나보셨나봐요?"


"그럼. 내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게이트 근처에서 장사하던 사람이었거든.  나이에 뒤늦게 이능을 각성해서  마음 먹고 정리했지만 말이야."


울릉도의 물가는 엄청났고  중에서도 게이트 부근에 형성된 유흥가는 아예 미쳐돌아가는 수준이었지만 드나드는 헌터들은 아예 돈에 신경을 쓰지 않는것 같더란다.
장사를 하면서도 부러워하던 차에 초능력을 각성했으니 망설임없이 헌터업계에 뛰어든 것이다.
음식을 입에 쓸어넣으며 자기 사연을 늘어놓던 아저씨는 이내 내 사정에도 관심을 보인다.


"지호는 학생이라고 했지? 대학생도 아니고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했다며? 어쩐 일로 그 나이에 벌써 이쪽으로 올 생각을 했어?"

"수능을 망쳐서요. 홧김에 신청했죠."


"뭐? 으하하, 그것 참 유감이구만."


집에 빚이 있어서라거나  좋은 가정형편 때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라는 이유를 댈 수는 없어서 적당히 둘러댔다.
사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
전액장학금 받고 인서울 대학에  성적이 나왔으면 그냥 대학엘 가지 여기 와서 괴수 때려잡는 훈련을 받고 있지는 않을테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단순히 훈련생도들에 대한 대접이 좋아서 그러는게 아니라 전투훈련을 받고 괴수학을 공부할수록 내 초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까닭이다.

에테르 칼날은 확실히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능력을 반복사용하면서 익숙해져 자연히 강해지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증가폭이 너무 크다.
나는 이제 전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던 게임 속 환영검사의 스킬뿐 아니라 그때 선택했던 마력증폭 특성까지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깔끔히 비운 접시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벌써 다 먹었냐고 놀란다.
나도 입이 짧은 편은 아닌데 이 아저씨는 정말로 가리는것 없이 엄청나게 먹는구만.

"운동도 열심히 하는것 같던데 먹는게 부실하면 오래  버텨. 내가 소싯적에 노가다 좀 뛰어봐서 알지. 입맛이 없어도 우겨넣어야 하는거야."


"충분히 배불리 먹었어요. 아저씨가 너무 많이 드시는 거라니까요."

"음, 그런가? 생각해보면 그런것 같기도 하고. 나도 원래 이렇게 대식가는 아니었는데, 이능각성 후에 허기를 참을수 없게 되었거든."

"아, 그러고보니 피지컬계열 각성자였죠 아저씨?"


육체강화쪽 초능력자는 열 명중 두셋 정도가 저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던 것 같다.
난 부작용이 없는 이능이라 참 다행이네.
음, 정말로 없는건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근데 너 운전은 좀 하냐? 보충 안 받아도 돼? 생각있으면 같이 연습할래?"


"전 됐어요. 아저씨는 면허 있을거 아녜요."

"면허가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전투지원차량 면허는 새로 따야 하는데."


"그래도 따로 연습까지 할 필요 있어요? 얘기 들어보면 운전하던 사람은 금방 감 잡는다던데."

"나 장롱면허야. 아무튼,  같이 안 한다고?"

"네. 전 괜찮을것 같아요."


내가 전생에 운전 짬만 몇 년인데.
전투지원차량은 종류에 따라 자동차라기보다는 바이크에 가까운 형태인 것도 있었지만 다루기에 좀  까다로웠을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수료 전까지 시험을 통과하는건 여반장일 것이다.

---------

두달하고도 반이나 되는  시간이 금세 흘렀다.
내가 에테르 칼날의 발출에 익숙해져 사거리 내 시야가 닿는 목표는 순식간에 정확히 베어낼 수 있게 되고 체력도 좋아져 20미터 셔틀런을 칠팔십여 번이나 감당해낼  있게 될 즈음, 우리 기수는 마지막 주차의 실전훈련기간에 접어들게 되었다.

"휴우. 땅에 발 디디니까 좀 살것 같네. 파도칠때마다 배가 꿀렁꿀렁거리는게 아주 죽는줄 알았어."

"그러게 멀미약 드시라니까."

"약 먹으면 졸립잖아. 괴수랑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데 최고의 컨디션으로 임해야지."

우연히 식사자리를 동석한 이후 친해진 삼십대 중반의 강화형 각성자, 강호찬이 헤쓱해진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통 신체강화계열은 멀미도 잘  하는데,  아저씨는 좀 특이한건지 아니면 그냥 엄살인지 오는내내 속이  좋다고 투덜거렸다.


나리분지 한켠에 있는 게이트는 강철 구조물로 뒤덮여있어 밖에서는 실체가 보이지 않았다.
게이트가 하필 외딴 섬인 울릉도에 열린 덕분에 한국은 게이트 보유국 중에서는 외계의 침공을 받았을때 피해가 무척 적은 편에 속했지만, 그래도 기초적인 방어설비를  해놓을수는 없겠지.

"게이트 너머에서는 저희가 여러분을 조금 강압적으로 대할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위험해서 그런거니까 모두들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예!"

"지시에  따라주신다면 아무런 부상없이 다들 안전하게 복귀할 수 있을겁니다. 그럼 진입!"

"자, C조부터 차례로 들어갑니다! 다음은 A조, B조 순으로 진입하세요."

"통과시 잠깐동안 이물감이 들 수 있어요. 놀라지 말고 한번 이능을 발현하면 바로 사라집니다."

"거기! 줄 서요!"

훈련소장의 간단한 훈시가 끝나고 게이트 건물로 들어서니 훈련생도들을 통제하는 교관들의 목소리로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내가 속한 B조는 마지막으로 진입하기로 되어있다.
방어나 육체강화계열 이능을 각성해 백병전 수업을 쌓은 C조가 선두,  뒤를 치유 및 지원조인 A조와 화력조인 B조가 따른다.
물론 게이트 안쪽의 거점은 안전이 확보되어 있겠지만 만일을 대비하는 차원에서뿐만이 아니라 훈련생도들에게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라도 언제나 즉시대응태세로 진입하는게 기본이었다.

푸른 빛이 넘실거리는 게이트를 통과하니 교관이 미리 경고했던대로 잠깐동안 온 몸을 옥죄는듯한 불쾌한 이물감이 들었지만 두어번 호흡하는 사이에 금방 사라진다.
동기들 중 몇 명은 채 적응하지 못했는지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이능을 발현했다.
하늘을 향해 불덩이나 광선 등이 뻗어나가는 것이 꽤 볼만한 광경이었다.
주변을 보니 게이트 건물은 건물이라기보다는 그냥 초소 주변에 벽 세우고 지붕 얹어놓은 정도였다.


"와아... 진짜 멋있는데?"


게이트가 설치된 건물을 빠져나오자마자 누군가의 감탄성이 흘러나온다.
그 말대로 야트막한 언덕 위에 위치한 게이트건물 정문에서 보이는 주변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강철 컨테이너와 이삼층 정도 되는 낮은 건물들이 거점기지를 형성한 가운데 외곽에 보이는 방벽 너머로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괴수의 방어막은 초능력자의 이능으로만 뚫을 수 있으니 중간중간 기관총이 거치된 초소에서 소총을 둘러매고 경계근무를 서는 병사들은 아마 외국과의 분쟁을 대비해 세워놓은 것이리라.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지만, 초창기에는 지구와의 통신수단이 인력말고는 전무하다는 점을 이용한 습격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게이트 활성화 시간 안에 증거를 안 남기고 기지 인원을 싹 몰살시키면 본국으로서는 심증가는 곳이 있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게이트 안정화기술이 초보적이던 시절 몇 시간이나 걸리던 당시의 활성화 시간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지 불과 십여분 걸리는 지금은 불가능한 얘기다.


"저기 봐. 훈련소에서 실습 왔나봐."

"어느 훈련소지? 인원이  적어보이는데?"

근처를 지나가던 헌터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다.
어느 회사 소속인지는 몰라도 차림새를 보면 꽤나 노련해보이는 모습이다.
정신없이 주변을 구경하며 줄지어 교관을 졸졸 따라가는 모습이 귀엽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미리 예약된 숙소에 짐을 풀었다.
게이트 안이니 지구의 숙소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아쉬운대로 있을건 다 있더라.
원정실습은 사흘 일정이고 기지를 거점으로 삼아 멀리 나가지는 않게 되어있지만 일이 항상 계획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각기 비상식량과 구급킷 등을 소지해야 했다.
별로 무거운 무게는 아닌데다가 부피도 의외로 작아서 거슬린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다들 첫 실전에 긴장해서 설령 불만이 있더라도 곧이곧대로 토로할 정신상태도 아니었고.


"야영할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짐 버리지 말고 챙기세요. 저녁때 돌아와서 그대로 있는지  확인할겁니다."

"예."


"좋아요, 안전하게 실습 마칠수 있도록 합시다. 교관님들은 맡은 제대에서 눈떼지 마시고, 정찰이 돌아오는대로 출발합니다."

숙소를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강철로 된 거대한 기지정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문 밖으로도 도로는 닦여있었지만 길은 넓지 않았고 군데군데 장애물과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어 전장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괴수가 출몰하는 지역에서 대단한 공사를 벌일수도 없었을테니 이 정도가 한계겠지.
정문 바로 앞쪽의 차고지에서 합금강판을 덕지덕지 두른 장갑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빌리는데도 수백만원 돈이 깨지는 차량이다.
외계에서 쓰이는건 장비며 소모품이며 가격대가 만만한게 드물었다.
초창기에 세 번이던 전투실습과정이 훈련소 과정 통틀어 마지막 주차에 한번만 하고 수료하도록 규정이 변한 것은 높은 사고율도 사고율이지만 예산 문제가 가장 클거라는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상부에 삐죽 나온 총탑은 당연히 괴수가 아니라 다른 팀의 습격에 대비한 무기였다.
국제법이야 어쨌든 필드로 나서면 현실적으로 법과 공권력의 보호를 기대하기 힘든 것이다.

장갑을 둘러 움직임도 둔하고 승차감도 별로 좋지 않은 차량 안에 몸을 싣고 평야를 달리기를 약 두시간, 더 작고 빠른 차를 타고 앞서서 정찰을 나갔던 교관들이 돌아와 괴수무리를 발견했으니 전투준비를 하라고 알린다.
훈련받은대로 장갑차를 가로로 세우고 바리케이트로 삼을 간단한 장애물을 꺼내 설치했다.

"유인조, 출발하세요. 저희가  지켜보면서 상황 통제할테니까 침착하게 배운대로만 하면 됩니다."


유인조가 출발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의 시야에도 이,삼십여마리는 될법한 괴수무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자기 키만한 합금방패를 들고있는 강호찬 아저씨가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떨리는 마음을 달래려 심호흡을 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