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1부
훈련소 첫 날에는 입소식이 끝난 후 교재를 배부받는 것으로 일과가 끝났다.
숙소건물은 깔끔할뿐만 아니라 갖가지 편의시설이 부족함없이 마련되어 있었다.
일인일실에 푹신한 침대가 놓여있고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전화기가 한 대씩.
냉장고 안에는 생수가 비치되어 있고 복도로 나가면 정수기와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다.
건물 일층의 식당에서 뷔페식으로 저녁식사를 양껏 하고 올라온 방은 이처럼 호텔을 방불케 했다.
"응? 시설이 너무 좋아서 놀랐다고? 당연히 잘 대접해 줘야지. 헌터지망하는 초능력자가 뭐 얼마나 된다고. 홀대했다가 그만두고 나가버리면 손해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잖아."
"계약으로 묶이잖아요."
"그건 수료하고 나서 일이잖아."
"아, 그러네."
흡연실 옆에 있는 휴게실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여기와서 친해진 형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의외로 숙소가 고급이라 놀랐다고하니 그는 당연한 일이라는듯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긴다.
일단 장기계약을 한 후라면 몰라도 훈련소에 있는 동안은 조심스레 대하는게 맞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일단 입소하면 중간에 포기하고 퇴소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이 있긴 한데 훈련소를 수료한 후 헌터로 활동하지 않는건 어쩔수 없다.
신규헌터 교육은 국비교육이니까 개인의 입장에선 시간 외엔 딱히 손해볼 것도 없고.
"그리고 정규 헌터들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장기계약으로 묶여있어도 헌터가 어디 넘쳐나는것도 아닌데 소홀히 취급할 수 있을리가."
"그렇게 좋은 대접을 받는데 인식이 이렇게까지 안 좋을수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아무리 목숨걸고 하는 일이라지만."
"인식 안 좋다고 누가 그래? 요새 어린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아주 선망의 대상인데."
"형, 제가 바로 그 청소년이거든요? 우리반 애들 다 제가 헌터 한다니까 얼마나 말렸는데요."
"네 친구들이 특이한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것 같았지만 앞으로 두달넘게 동고동락할 동기와 쓸데없는 논점으로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려니 하고 만다.
커피를 다 마시고 입에 남은 설탕찌꺼기의 단맛을 혀로 문질러 지우면서 휴게실을 나왔다.
새로 지급된 편안하고 제법 멋지기까지한 생도복에 달린 단추가 형광등 빛을 받아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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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부터 곧바로 교육훈련이 시작되었다.
유사시 군처럼 동원대상이므로 아무리 그래도 기본적인 제식 정도는 배우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비효율적인 짓에 낭비할 시간은 없다는 듯 훈련은 개개인의 상황대처능력을 배양하는데 집중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사격은 왜 배우는겁니까? 게이트 너머에선 총이 아무 소용도 없다면서요?"
"정확히 말하면 괴수를 사냥할때만 소용없는거죠. 그래서 권총사격만 배우고 배점도 작습니다."
실내사격장에서 누군가 불만어린 목소리로 토를 달자 교관이 익숙한 질문이라는듯 여유롭게 대답한다.
"그리고 괴수사냥때도 소용이 아주 없는건 아닙니다. 피니셔 당번을 맡았는데 총기를 전혀 다룰줄 모른다면 곤란하겠죠?"
"그럼 그때 쓸 대구경 총기를 알려주셔야지 권총 사격을 배워서 어디다 씁니까?"
"게이트 너머의 행성은 지구보다 살짝 크지만, 개척된 지역은 무척 작거든요. 요새화된 베이스가 겨우 마흔개 남짓 하니까요."
그 기지들은 북반구의 평야지대와 사막지대, 밀림지대가 만나는 뉴콜롬버스 반도를 중심으로 흩어져 있다고 했다.
그 중 한국이 관리하는 나리기지는 울릉도의 나리분지에 위치한 게이트와 연결되어 있었다.
동아시아에는 다섯개나 되는 게이트가 있으니 남미처럼 빡빡한 편은 아니지만 우리 영토의 게이트로도 외국인 헌터들이 심심찮게 드나든다.
국경이라는건 지구에서나 의미가 있지 외계행성에선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원정동선을 짜다보면 꼭 들어간 게이트로 나오라는 법도 없으니 기지는 관리국가와 상관없이 다양한 국적의 헌터로 붐비며, 당연히 치안도 좋지 않다.
"마흔두개의 요새에 전세계의 헌터들이 죄다 몰려드니 사냥경쟁이 치열하죠. 그러다보니 경쟁을 피해 장거리 원정을 가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멀리 나갈수록 위험해지니까요."
이쯤되니 교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한 생도들의 얼굴에 불안과 공포가 어린다.
"아, 물론 만약의 사태를 위해 가르치는거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적어도 기지 안의 치안은 국제조약을 통해 안전하게 유지됩니다."
기지 밖으로 나가면 보장할 수 없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내가 그 조약을 인터넷으로 좀 관심있게 봐서 아는데, 지구의 게이트 인근에서 벌어지는 범죄에는 엄청나게 민감하지만 게이트 너머 기지의 범죄는 가중처벌규정만 있지 반쯤은 포기상태던데.
지구가 차원게이트를 통해 침략을 받았을때, 쏟아져나온 괴수들은 게이트의 위치에 따라 엄청난 민간인 피해를 입히기도 했지만 오래지않아 압도적인 화력 앞에 간단히 쓸려나갔다.
사실 맹수든 뭐든 생명체가 만병지왕인 총 앞에서 무슨 힘을 쓰겠어?
그리고 탐사로봇을 먼저 보내 외계행성의 환경이 지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발견한 후 환희에 차서 게이트를 넘은 원정대는 참혹한 실패를 겪었다.
지구로 넘어온 괴수들은 사냥감일 뿐이었지만 외계행성에서는 당시 인류가 가진 어떤 화력과 물리력도 전부 무효화하는 불가사의한 방어막을 가진 포식자였기 때문이다.
뭐, 곧 그 방어막이 초능력에 반응하는 것이 밝혀지고 원정에서 성과를 거두며 오늘날에 이르렀지만.
하지만 게이트 너머에서 초능력으로만 상쇄할 수 있는 방어막을 갖는건 어디까지나 토착종들이다.
헌터 훈련소에서 권총사격을 가르치는데 시간을 따로 할애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치안이 확보된 기지를 떠나 사냥에 나서면 괴수뿐만 아니라 다른 헌터들과의 마찰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총은 개인적으로 구비해도 상관없지만, 아마 큰 돈을 쓸 필요는 없을겁니다. 게이트 너머에서는 총기규제가 사실상 없다시피해서 정부에서도 아예 기본 보급장비에 권총과 탄약을 포함시켰거든요."
"그게 이겁니까?"
사대 앞에 놓인 내 손바닥만한 리볼버를 가리키며 어이없다는듯 물어보니 교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경찰장비와 일원화를 했거든요. 작지만 괴수한테 쏠 것도 아니니 화력은 충분할겁니다."
"아니, 위력 문제가 아니라 리볼버잖아요."
"만약을 대비하는 차원이지 사실상 쓸 일이 별로 없다니까요? 장전해놓고 방치하기는 리볼버가 자동권총보다 오히려 좋습니다. 튼튼해서 고장도 잘 안나고 오래 놔둬도 잘 나가고. 어차피 우리나라에선 총기소지가 안 되니까 복귀전에 기지에 맡겨놓고 돌아오게 될겁니다. 그러다보면 장기간 관리없이 방치하기 십상이죠."
실린더를 여니 묵은 화약냄새가 훅 풍겨왔다.
내 옆에 서있던 아저씨가 마치 서부극에서 나오는 주인공처럼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걸고 휘릭휘릭 멋들어지게 돌리니 사방에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아, 그렇지... 징병제 국가가 아니니까 여기서 군필은 나밖에 없겠지...
저래도 되는건가 싶어서 교관을 바라보니 아직 장전해놓지 않아서 괜찮다고 손을 내젓는다.
저거 제대로 된 교관 맞나?
"그래도 저런 습관 들이는것 자체가 위험한거 아닌가... 경고 한마디는 해야하지 않나요?"
"거 교관이 괜찮다는데 웃고 넘기면 되지 뭘 그리 따지고 들어? 학생이 뭘 안다고?"
"최소한 사격장 안전규칙은 알죠. 아저씨가 지금 얼마나 생각없는 짓을 하는지도요. 총이 얼마나 무섭고 위험천만한 물건인지 알아요?"
"그렇게 겁이 많으면서 여긴 왜 왔대? 겨우 요만한 권총에 겁을 집어먹을거면 괴수랑 맞닥뜨리면 아예 오줌이라도 싸는거 아냐?"
"아니, 이 아저씨가..."
이건 뭐 말이 안 통하네.
말다툼이 길어지니 그제야 교관이 개입해 말린다.
숙소에서 생활하면서도 느끼는거지만 교관들은 딱 가르칠 것만 가르치고 나머지는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는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하네.
여긴 전생으로 따지면 신병훈련소라기보다는 사설 군사기업이나 용병단의 훈련소에 가까운 것이다.
돈 많이 버는것에 혹해 헌터를 하겠다고 지원하는 사람이면 기본적으로 마초적이고 허세가 있는 성격일 가능성이 높겠지.
그러니 은퇴한 헌터인 교관들도 멋모르고 물리적 충돌로 번지는 수준까지 가지만 않으면 굳이 생도들끼리의 기싸움에 관여치 않는 것이다.
참 성의없는 태도지만 봉급쟁이가 다 그렇지 뭐.
"그쯤 합시다. 자, 각자 사대에 서세요. 표적은 30미터 거리에 있습니다. 리볼버는 피스톨과 달리 그립이 충격을 흡수하는 구조가 아니라서 생각보다 반동이 강할 수 있으니 신경쓰시구요."
"예."
실탄을 쓰는 훈련을 하는데 이렇게 느슨한 분위기라니, 전생의 예비군도 이렇진 않았는데.
다행히 함부로 총구를 휘두르거나 하는 고문관은 없는 것 같았지만 나는 훈련 내내 느슨한 사격장 군기때문에 본능적으로 드는 불안감을 억눌러야 했다.
그런 불안감과 별개로, 권총사격은 한번도 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무척 재미있는 훈련이었다.
육안으로 형태가 뚜렷이 보이는 가까운 표적을 쏘고도 반도 못 맞췄지만 계속 쏘다보면 늘겠지.
내게 대거리를 했던 삼십대 가량의 아저씨는 내 바로 옆 사로였는데 나보다도 성적이 안 좋았다.
슬쩍 훔쳐본 바로는 표적이 멀쩡한 가운데 구석에 두어개의 구멍이 나있었는데 좁은 탄착군을 형성한 것도 아니고 띄엄띄엄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영점이 안 맞아서 그래 영점이."
"그래도 최소한 탄흔이 몰려있긴 해야죠."
"어린 놈의 자식이. 야, 너 뭐 좀 알아? 어디서 총 좀 쏴봤냐?"
내가 전생엔 현역때 일등사수였어 인마.
권총은 다뤄본 적이 없어서 낯설지만 최소한 사격의 기본원칙은 알거든.
"아저씨보단 제가 잘 쏜 것 같은데요."
이제 막 영점사격을 해놓고서 똑같은 초심자들끼리 네가 잘 쐈니 내가 잘 쐈니 하며 다투는 꼴이 교관에게는 퍽 우스워 보였겠지만 도토리 키재기를 해도 엄연히 우열은 나뉘는 법이다.
난 명백히 그 아저씨보단 잘 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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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격훈련이 성적을 겨루기보다는 패스 논패스 형식에 가까웠던 반면, 2주째의 이능력 활용훈련에서 나는 단연 두각을 드러내며 동기 생도들은 물론 교관진까지 경악하게 했다.
바람소리도 없이 무형의 칼날이 가르고 지나가면 짚단이고 플라스틱이고 심지어 합금강판이고 할것 없이 서걱서걱 잘려나갔던 것이다.
"대체 절삭력이 얼마나 강한거야?"
"이능등급은 종합 D+급이라고 하던데."
"뭐? 내가 현역때 B급 이능을 몇번 본 적이 있는데 파괴력이 저것만 못했어."
"뭔가 심각한 패널티가 있나?"
"글쎄. 그렇다기엔 너무 멀쩡한 얼굴로 연사를 하는데. 봐, 저게 어디 힘이 달리는 얼굴이야?"
"아, 유효사정거리때문인가?"
"음... 그럴수도 있겠네. 아예 근접 공격능력은 아닌데 원거리형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해."
교관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적당한 간격을 두고 에테르 칼날을 뻗어 표적을 자르다가 되었다 싶을때 손을 들고 물러났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종일 할 수도 있지만 그랬다간 각성 당시 측정한 바와 너무 많이 달라져 쓸데없이 시선을 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능이란게 각성한대로 평생 가지고 가는것도 아니니까 그새 발전했다고 하면 시비를 걸 사람은 없겠지만 그러기엔 아무래도 텀이 너무 짧지.
"최지호 교육생, 이능의 유효 사거리가 애매하니 일단 근접전 교육을 이수하긴 해야합니다. C조에 합류하는게 어떻겠습니까?"
"예? 아니, 교관님. 그건 좀..."
절삭력과는 별개로 15미터라는 사정거리는 확실히 내게 만만찮게 부담스러운 위험요소였다.
개체별로 천양지차지만 기본적으로 괴수는 인간보다 빠르고 힘 세며 야성적이다.
그러니 사정거리가 짧은 초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중 방어능력이 딸려있지 않은 공격능력만 가진 사람은 보통 처음부터 헌터업계에 발을 들이지도 않는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괴수에게 타격을 주는 화력은 먼 거리에서 투사할수밖에 없으며 근접전 훈련이라는 것은 곧 탱킹 훈련이다.
공격형 이능 각성자에게 그런 훈련을 받으라고?
"탱커 하라는게 아니라 훈련만 받으라구요. 어차피 여기서 배우는건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며 화력을 투사하는 요령이에요. 그런데 15미터면 코 앞이니까 거리유지 훈련이 큰 의미가 없죠."
그럼 탱킹훈련은 받는다고 의미가 있겠냐.
아무리 단단한 표적이라도 차별없이 썰려나가는걸 보며 웅성거리던 동기들이 교관과 내 대화를 듣고 안타깝다는듯 한숨을 내쉰다.
아마 내가 오래지않아 포기하고 퇴소해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가능하면 여기서 훈련을 받고 싶습니다. 거리를 조절하며 화력을 투사하는 요령은 오히려 제가 가장 절실한 것 같은데요."
"물론 제가 강제할 권한은 없으니 그래도 되지만 중급 이상 괴수들의 속도를 생각해봤을때 15미터는 일, 이초면 닿을 근거리나 다름없어요."
"아뇨. 그냥 여기서 훈련받겠습니다."
미쳤냐, 그런 괴물들하고 살 맞대며 싸우게?
교관의 곤란한 눈치를 보면 아무래도 사정거리가 너무 짧아서 진형을 짜기가 난감한 것 같은데, 자기 귀찮다고 사람을 죽을 자리로 보내려고?
훈련 마지막 주간에는 울릉도 게이트를 넘어가 실제로 괴수를 사냥하는 실습이 있다.
물론 안전을 고려하여 이미 개척된 곳에서 충분히 조사된 괴수를 상대로 진행하지만 그런다고 사고가 안 생기는 것은 아니라서 전국적으로 매년 십여명이 훈련소 수료전 실습에서 목숨을 잃는다.
하필 여기 강릉 훈련소에서 하필 이번 기수에 사고가 터질 확률은 극히 낮지만 그래도 아닌건 아닌거지.
"지금 C조로 편성되면 실습도 C조 소속으로 받게 되는것 아닙니까? 훈련계획표 보니까 따로 팀을 짜는 절차가 없던데요?"
"실습... 크흠. 그렇죠. 미처 생각을 못 했네요. 그리고 마지막 주의 사냥실습은 훈련소 인원 전원이 하나의 원정대를 꾸려서 나가도록 되어있습니다.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는 알겠지만 저희도 예비헌터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왠지 궁색한 변명으로 들리는 교관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대열로 돌아왔다.
동기 훈련생들의 미묘한 시선이 쏟아진다.
주목받는걸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