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1부 (2/110)



〈 2화 〉1부

미친 소리같겠지만 나는 전생을 기억한다.
내가 전생에 뭐였냐면, 청사에 빛나는 위인도 아니고 역사에 이름 한줄 남긴 악당도 아닌 그냥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최후의 순간도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급살을 맞았으니 영 멋없고 허무한 죽음인 셈이다.


물론 어쩌면 전생의 기억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모두 내가 상상해낸 망상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선 설명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은걸.
기억의 연속성도 유지되고 있으니 말이야.
게다가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나름대로는 삼십여년간 살아온 소중한 인생의 추억인데 그걸 부정해버리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오래지않아 환생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호야, 어제 기도는 많이 했냐? 그럴듯한 초능 하나 각성시켜달라고?"


"바란다고 바라는대로 되는거냐 그게."

무엇보다도 이렇게 미쳐돌아가는 세상에서 전생을 기억하는 놈 하나 있다고한들 뭐 이상한 일이겠어?
반별로 모여 줄을 서서 대절버스를 기다리며 나누는 잡담은 게임이나 만화의 설정이 아니었다.
오늘 우리 학교는 단체로 이능각성검사를 받으러 초능력자 관리센터 견학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전생도 현생도 나는 다행히 한국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태어난게 다행이라는 뜻이 아니라 전생과 같은 나라에서 태어난게 다행이라는 뜻이다.
겉은 아기라도 속은 서른먹은 청년이니까, 외국에서 태어났다면 도저히 다른 아기들처럼 백지상태에서 언어를 모국어로 자연스레 습득할수 있을거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전생과 같은 나라에 태어난 덕분에  배우는게 느리고 어쩐지 어눌한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배움이 빠른 수재로 자랄수 있었으니 행운이지.

하지만 여길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이라고 해도 되는건지는 약간 애매한 것 같다.
 5퍼센트의 확률로 일어나는 초능력의 각성은 20세기 중반부터 수십년간 이어진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래서인지 현대사도 내가 알던 것과는 미묘하게 달라 역사공부를 할때 애를 먹었지.
아예 모르는 것보다 다르게 알고 있는게 시험공부   더욱 장애가 되지 않던가.
예컨대 과거 군사정권기에 초능력자에 대한 생체실험 등의 인권유린이 얼마나 극악했는지, 그런 독재를 종식시킨 시민운동과 혁명에 가담한 초능력자들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며 많은 역할을 했는지를 연도별로 외우는건 고역이었다.
막상 서기 기준으로 연도는 내가 죽을때보다 오히려 더 앞서있는데 말이지.
이래서야 전생에 살던 세계와는 비슷하기만 하지 아예 다른 세상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능 각성하면 레이드 쪽으로 진로 잡을거야?"


"미쳤냐. 뭐가 아쉽다고 목숨내놓고 일해?"


"돈이 아쉽지 병신아."


"난 공부 열심히 해서 의대 갈거거든? 아, 치유 계통 각성하면 그건 유용하겠네."

전투계열 이능을 각성한 초능력자들은 정부뿐만 아니라 각종 대기업에서 돈을 아끼지 않고 데려가는 귀중한 인재들이지만 사회적 인식은 별로 좋다고 보기 힘들었다.
나쁜 시선으로 본다기보다 그냥 '고생하는구나' 내지는 '위험한 직업이네' 정도의 시선이었다.
아니,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잖아 목숨을.
차라리 지구가 외계 괴물들의 침략을 받는 입장이면 군인이나 소방관처럼 목숨걸고 우리를 지키는 수호자로서 존경이라도 받을텐데 엄밀히 말하면 침략하는건 이쪽이니까.
그러게 그 외계 괴물놈들은 왜  지옥같은 행성에 발을 함부로 디뎌서는.
말하자면 군인이라기보다는 용병이니까 시선이  안 좋은 것도 어쩔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항상 사람이 부족해 돈은 잘 번다더라.

"의대는 무슨. 우리 반에서 의대 갈만한 우등생은 반장밖에 없지.  모의고사 몇 점이나 나왔냐?"

"그러는 지는. 누가 보면 나보다 공부 잘 하는줄 알겠어?"

아무리 역사가 많이 달라서 공부하기가 까다롭다고 해도 난 아주 태어날때부터 전생의 삼십년 기억을 생생하게 갖고 살아온 몸이다.
애매한 중간 성적을 받던 전생과 달리 나름대로 상위권 성적을 꾸준하게 유지하는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최상위권 애들이나 간다는 의대는 어림도 없지만 애초에 진지하게 뱉은 말이 아니다.

"버스 왔네. 휴우, 피곤해서 혼났네. 가는 중에 잘거 생각하고  샜는데."

"한시간도 안 걸리는 길인데 그걸 믿고?"

"센터 가서도 대기하는 시간 있을거 아냐."

그야 평균적으로 대여섯개 학교의 학생이 한꺼번에 검사를 받으니까 재수없으면 저녁때까지 대기할수도 있겠지.
생각해보면 참 졸속행정이란 말이야.


괴수의 사체를 정제해 만든 고효율의 바이오디젤을 태워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삼사십분쯤 달리니 서울 외곽의 초능력자 관리센터 건물이 보였다.
전국의 오십여개 관리센터  가장 규모가 크고 상주인원이 많다는 노원 센터였다.

"자, 주민등록증 다들 가져왔지? 자기 이름 불리면 저 안으로 들어가면 돼. 검사실 들어가기 전에 여기다 서명하고."

말이 검사실이지 사실상 각성 촉진설비가 되어있는 시술실에 가깝다.
스무 명에 한 명 꼴로 타고나는 이능인자를 자극하여 초능력을 각성시킨다고 하는데 자세한 원리는  모르겠다.
딱히 정부에서 비밀로 하는건 아니고 관련 논문도 다 공개되어 있지만 아무리 쉽게 풀어썼다는 자료를 봐도 무슨 소리인지 통  알아듣겠더라.
 지금뿐만 아니라 전생에도 문과였다고.


"청수고등학교? 일반부터 대기실 들어가요."


"오, 우리 학교가  순서인가본데?"


"잘됐네. 지루하게 기다릴 필요가 없어서."

마침 삼학년 일반이었던 나는 반 학생 삼십여명과 함께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들어갔다.
발열, 오한, 구토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주의사항을 들으며 각종 동의서에 서명하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내 차례가 되었다.


각성 유도시술을 하는 기기는 인터넷이나 신문, 티비 등에서 여러차례  바와 똑같이 생겼지만 그 크기는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내 체구가 별로 큰 편이 아닌데도 여유가 많이 남지 않으니 덩치큰 사람은 웅크리고 들어가겠네.

"잠깐 따끔하실거예요."


나는 불안한 눈으로 내게 주사되는 푸른 용액을 바라보았다.
괴수의 피라느니 초능력자 통제를 위해 자폭기능이 달린 나노머신이라느니 온갖 흉흉한 뜬소문이 난무하는 수상쩍은 물건이다.
내 시선을 눈치챈 직원이 피식 웃었다.

"걱정마세요. 인체에는 무해한거예요. 왜, CT 찍기전에 잘 보이라고 바륨용액 마시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원리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 네."

마시는거랑 혈관에 다이렉트로 주사하는거랑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여직원의 예쁜 얼굴에 홀린 나는 간단히 납득했다.
하긴, 유의미한 부작용이 있었으면 무슨 사단이 나도 진작에 났겠지.
전국민 대상으로 인위각성을 한 역사가 얼만데.


용액을 주사하고 얼마쯤 지났을까.
내 몸에 여러 갈래의 전극으로 연결된 기기가 우웅하고 진동한다.
직원은 통상적인 과정이라며 안심하라고 한다.

"저기... 따끔따끔하는 것도 원래 그런건가요?"


"어디가 따끔거리시는데요? 아무래도 자기장을 강하게 쓰다보니 피부에 자극은 갈 수 있는데."

"그런가요? 으윽,  몸이 따갑고 아픈데."


"어머, 혹시 각성 전조증상일지도 몰라요. 드물지만 이능 각성시에 신통을 겪는 경우가 있거든요. 정확한건 결과 나와봐야 알겠지만."

여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온 몸 곳곳에 따끔거리던 통증은 점점 심해지다가 내가 참지 못하고 이걸 말하고 진통제 처방이라도 받아야하나 고민할 즈음에는 기이하게도 씻은듯이 사라져 오히려 개운한 느낌만이 남았다.


"수고하셨어요. 나가서 기다리세요."


"어? 바로 결과가 나오는게 아니에요?"


"분석시간 십분 좀 넘게 걸려요. 금방이죠."


과연 그 말대로 대기실로 나가니 앉아서 근처의 잡지를 집어들기가 무섭게 내 이름이 불린다.
어라?
그런데 여기 있는 다른 애들은 아까부터 기다렸다고 하던데 왜 나부터 부르지?
아까 들어간 검사실과는 다른 방으로 안내되면서 나는 뒤늦게 내가 각성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이사항이 없는 애들은 따로 통보받을 필요도 없이 대기실에서 하릴없이 과자나 까먹으며 우리 학교 애들이 전부 검사를 받을때까지 기다리다가 돌아가는 시스템인 것 같다.
방에 들어가니 딱 봐도 한눈에 의사인 것을  수 있는 아저씨가 가운을 걸치고 있다가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최지호 학생? 이능각성을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어... 그런데  아까랑 전혀 다른 점을 못 느끼겠는데요."

"아마 그럴거예요. 신체강화형이 아니라 방출형 능력인 것 같거든요. 저 뒷쪽 문으로 들어가면 테스트 룸이 있습니다. 그 전에 여기 동영상 보고 설문조사 좀 할거에요. 부담갖지 말고 직관적으로 바로바로 체크하세요."

설문조사라기보다는 심리테스트에 가까운 이십여개 문항을 풀고나니 다른 직원이 들어와 나를 데리고 테스트 룸으로 향한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테스트 룸은 텅 빈 공간에 단조로운 표적만 세워져 있는 곳이었다.


"자, 티비나 책, 신문 같은데서 요령은 많이 봤죠?  안의 기운을 끌어내 쏘아낸다는 느낌으로 표적에 초능력을 사용해 보세요."


"그게, 말은 많이 들었는데..."

막상 해보라면 말처럼 간단히 되는게 아니다.
팔을 앞으로 내밀고 손에서 뭔가 나가는 상상을 하면서 용을 쓰다가 제풀에 지쳐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가 문득 눈을 비빈다.
방금 잘못 본건지는 모르겠는데 표적을 날카롭게 베고 지나가는 흐릿한 이미지가...
서걱.
표적을 무형의 칼날이 날카롭게 베어낸다.


"오, 바로 그거예요! 생각보다 더 위력이 강하네요. 아, 혹시 지금 머리가 아픈가요? 아주 약간 지끈거리는 것도 놓치지 말고 말해야 해요."

"아뇨. 괜찮아요. 와, 이게 이렇게 나가는거구나. 신기해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칼날이 베고 지나가니 표적은 간단히 두조각이 나버린다.
이쪽 세상에서도 어느덧 십구년 가까이를 살았지만 초능력자의 이능은 아무리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위력과 사정거리, 체력부담 등의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테스트가 이어졌다.
테스트가 이어지는동안 점점 요령이 붙어서인지 곧 능숙하게 이능을 사용할  있게 되었다.

"사정거리는 15미터... 신기하네요. 위력만 보면 더 뻗어나갈 수 있을것 같은데 그 밖으로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니. 뭐, 그것만 해도 짧은건 아니죠. 최대 연사속도는 분당 20회 정도."


분당 20회면 3초에 한번 나가는거라고 봐야하나.
나는 문득 기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사정거리 15미터에 쿨타임 3초... 왜 익숙하지?
 스펙을 내가 어디서 봤더라?


"중요한건 위력과 지속력인데, 위력은 C급이네요. 막 각성한 초능력자치고는  강한 편이에요. 지속력은 주관적인거라 정확한 측정은 어려운데, 음, 지금은 머리가 안 아픈가요?"

"아, 네. 지끈거리는게 더 쓰기가 힘들겠네요."

"그 느낌을 기억하세요.  상태에서 더 사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수도 있으니까요. 지속력은 D급정도네요. 종합 D+급은 충분하겠어요."

사실 나는 전혀 머리가 아프지 않았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더 칼날을 쏘아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짐짓 꾀병을 부려 측정을 끝낸 것은 마음 속에 걸리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생생한 전생의 마지막 순간.
천둥번개가 요란한 밤에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정전이 되었고, 라이터를 찾으려다가 뒤로 넘어져 뇌진탕으로 죽었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지금보니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니, 설령 그게 맞다고 해도 중간에 뭔가 중요한 과정 하나가 더 있었을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되질 않는다.
내가 각성한 이능은 아무리봐도 절묘한 우연이라고 치부하기 힘들 정도로 그때 하던 게임에서 골랐던 캐릭터의 스킬과  빼닮은 것이다.

"에테르 칼날... 분명 1레벨 쿨타임이 3초에다가 툴팁상의 사정거리가 15미터였지."


자원소모가 없는 스킬이었으니 내 생각대로라면 지속력이 무제한일수도 있다.
환영검사 자체가 노코스트 캐릭터였으니까.
게임스킬이 초능력으로 발현하다니, 말이 되나 싶지만  될건  뭐야.
그럼 죽고나서 환생하는건 말이 되는 것이며 외계 행성에 넘어가 괴수사냥을 하는건 말이 되는건가.

"수고하셨습니다. 차편이 준비되어 있으니 귀가하셔도 좋습니다."


"어? 우리 학교 애들은 벌써  돌아간건가요?"


"네. 뭔가 문제라도..."


"그럼 제가 각성한걸 애들이 다 알겠네요?"


"그렇겠죠? 최지호 학생 말고도 청수고등학교에선 다섯 명이 이능을 각성했네요. 비율이 평균보다 많이 높은데요? 거기 풍수가 좋나."

직원 아저씨의 재밌지도 않은 농담을 뒤로 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테스트 룸을 나왔다.
반 친구들의 부러움에 찬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부가 오글거리는것 같다.
건물 출입구로 안내하면서 직원은 마치 보험을 파는 영업사원처럼 치근덕댔다.

"혹시 헌터자격증은..."

"신청 안 해요."

"그래요. 부모님하고 잘 상의해서 결정해봐요."


"아 상의고 뭐고 안 한다니까요."


"너무 그렇게 장담할수만도 없는거예요. 사람 일 어떻게 될줄 알고. 학생이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편한 일일수도 있잖아요?"


퍽이나 그렇겠다.
그렇게 좋은 일이면 이렇게 갓 각성한 학생을 설득할 정도로 사람이 부족하지도 않을거아냐?
돈 많이 벌면 뭐해, 안전한게 제일이지.
의대 갈거라는 말은 솔직히 농담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평범하게 대학을 가면 갔지 외계행성으로 레이드를 가는 일은 없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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