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94. 별 무너뜨리기
드레가 발터와 함께 움직여,나드비온과 화광의 전투 현장에서 발견한 몇 가지 유품을 챙겨왔다. 옥으로 세공한 화광의 침통과 나드비온의 낡은 가죽 팔찌였다.
남은 자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은 정보까지 얻어왔다.
나드비온과 화광이 싸운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검은 마법진이 깔려있고, 한쪽 팔이 없는 누군가가 진 가운데 눈을 감고 앉아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 주변으로 데스나이트들이 호위하듯 서 있었다고 했다.
이 정보는 엘프에게도 전달되었다. 그들은 감사를 표했다. 엘란이 가져온 정보와 드레와 발터가 가져온 정보를 정리해 알려주겠다 했다.
네로니아는 그 팔찌를 품에 안고 숨죽여 울었다. 그녀가 처음 사냥한 사냥감으로 만들어 나드비온에게 주었던 가죽 팔찌였다. 그 낡고 헤진 그 조악한 솜씨로 만들었던 팔찌, 몇 번이나 끊어져 다시 기운 자국이 역력한 팔찌였다.
그렇게 한차례, 남은 자들이 울음을 삼키었다.
외성에서 드워프와 전투에서 빠져, 소피아르의 수도였던 소피아의 근방의 몬스터를 정리하던 말간테 군도 루시안에게 합류하였다.
보탄과 필립이 군사 3천과함께 주변의 몬스터들을 죄다 청소해버렸다. 그러던 중 불길한 기운들과 거대한 차원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는바로 루시안을 찾아 나섰다.
대다수의 군병력은 말간테의 국경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3천의 병력이 보탄의 수족이 되어 마음껏 부릴 수 있는 한계였다. 이 병력으로 엘프와 연합해 국경을 수비하고 루시안을 돕고자 소피아까지 온것이었다.
루시안은 여전히 정신이 없었지만,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들도 돌아가는 상황을 알기에, 다 이해를 해주었다.
“모두,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습니까?”
타니엘이 모두가 들리도록 마나를 실어, 퍼트렸다.
“엘란이 정보를 모아왔습니다. 기운들이 솟아난 6개의 장소에 대한 정보입니다. 차원문을 고정하는 3곳은 시체로 만들어진 오벨리스크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이목이타니엘에게 집중된다.
“차원문을 열어젖히는사슬들은 마법진 안에 있는 자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환수입니다. 각자 사슬 하나씩을 맡아, 차원문을열고 있는 것입니다. 차원문의 아래엔 검은 갑주의 인물, 아기아스가 앉아있습니다.”
타니엘은 이외에 마법진의 위치, 각 호위대의 구성과 숫자를 알려주었다. 타니엘이 화살을 하나 뽑아,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정삼각형 하나와 역 정삼각형 하나, 흔히 다윗의 별이라 불리는 그 모양이었다.
“위그드라실님의 전언에 의하면, 저 차원문 속에서 카라함만큼의 힘이 느껴지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거대한 악이 저 차원문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엘프족은 저 차원문이 다 열리기 전에 막아 세우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타니엘이 그려둔 그림에서 역 삼각형의 세 꼭짓점을 가리켰다.
“엘프족의 내부 회의 결과에선 차원문을 지탱하는 이 세 개의 첨탑을 우선 공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기반이 무너진다면, 차원문을 열기 힘들어질 거라는 게 저희의 판단입니다.”
아시카가 말을 받았다.
“확실히, 그렇게 한다면, 차원문을 열어젖히는 이 세 곳에 있는 자들이 매우 힘들어지겠군. 힘도 많이 들어갈 테고 말이야.”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인원을 나누어 세 군대를 동시에 공격하는 게 나아 보입니다.”
라펠라가 의견을 내자, 타몬트와 발터, 루나도 이에 동의를 했다.
“저놈들 정신 못 차리게 밀어붙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나누고 싶으십니까? 루시안님”
타니엘이 루시안에게 직접적으로 물어왔다. 사실 루시안은 지금도 구리에게 신경이 가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있어 걱정만 쌓여가는 중이었다.
“금을 먹는 자가 걱정이시라면, 느껴지는 기운으로 봐서 고비를 잘 넘긴 거로 보입니다. 우선은 이 일에 집중해주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타니엘이 웃으며, 물어오자, 루시안은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죄송합니다. 배치도를 다시 한번 알려주시겠습니까?”
“아기아스를 중심으로 북쪽엔 센바 남쪽엔 언데드 수비군이 있습니다. 동쪽으로 역삼각형의 한 꼭짓점엔 바실, 그 아래엔 정 삼각형엔 암사자 환수가 있습니다.”
“암사자가, 나드비온님, 화광스승님과 싸운 자라고 하셨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때, 네로니아가 다가온다. 그녀의 팔엔 나드비온의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어차피, 사람도 많잖아? 난,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어!”
“너 혼자서는 무리란 걸 잘 알 건데?”
타몬트가 그녀를 막아 세웠다.
“네로니아? 일단, 이 세 곳의 처리가 우선입니다. 이 세 곳을 무너뜨리면 분명 그들의 힘이 더욱더 많이 소모될 테고, 원하던 복수의 때가 더욱 가까워 질 겁니다.”
네로니아가 얼굴을 구기며, 입술을 깨물었다. 꼭 말아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드레가 나섰다.
“언데드 수비군 쪽을 저와 저 수인족 소녀가 함께 맡겠습니다. 가장 빠르게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 곳인 데다가, 이 바로 옆이 그 암사자 환수가 있는 곳입니다. 저도 갚아줄 것이 있습니다.”
아시카가 지원을 자처했다.
“넨, 다류 너희 둘이 저들을 돕거라.”
“예, 족장님.”
아시카를 늘 따라다니던 이의 이름이 다류였던 모양이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럼, 저도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구르카 할배, 여기 잠깐 돕고 갈 테니까 몸조심하고 있어!”
“이런이런, 걱정하지 말고 잘 다녀오시길 ”
엘란과 아돌렌이 합류했다.
“우리 말간테 군은 수적인 우위가 있으니, 다수를 상대하는 게 맞겠지. 말간테 군은 언데드 수비군으로 향하겠네. 필립! 전 병력에게 이를 알리게”
“예, 왕자님!”
네로니아 쪽은 걱정이 없어졌다. 많은 병력도 병력이지만, 필립이 있으니, 안심이 되는 기분이다.
“저와 일행은 바실을 맡겠습니다. 꼭 갚아주어야 할 것이 있으니 말입니다.”
루시안이 바실을 맡겠다 나섰다. 저 문을 열고 나올 구리에게도 설욕의 기회가 필요했다. 벨가의 복수도 해야 했고 말이다.
“그럼 남은 한 기둥은 우리가 맡아야겠군요.”
아시카가가 테란페와 타니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시카의 뒤엔 다크 드레이크 다크와 겐이 서 있었다. 그리고 구르카가 이곳에 합류했다.
그리고, 드디어 문이 열렸다. 그새 훌쩍 자라버렸는지 훤칠한 키와 긴 녹색 장발을 한 구리가 걸어 나왔다. 어엿한 미청년이 되어 나타났다.
“형, 저, 오래 걸렸죠?”
구리가 해맑게 웃는다. 외견은 달라지었을지언정, 저 미소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피닉스가 구리의 어깨에 날아가 앉아 구리의 볼에 머리를 비빈다.
구리에게도 간략히 현재, 상황과 작전을 알렸다.
“제 일행은 바실을 처리 후 코끼리 환수 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제 일행은 사르칸 처리 후 악어 환수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난 암사자 그년만 죽이면 되는 거야.”
“말간테 군은 수인족 소녀를 따라가겠습니다.”
로웰이 손을 들었다.
“나는? 난 왜 빼고 말하는 건데?”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굳이 합류하고 싶지 않아서다. 영 떨떠름한 표정들에 로웰이 충격을 받아 눈동자에 지진이 일어난다.
“어이! 넌 내가 관리하겠다. 따라와!”
“히잉, 그건 좀!”
아돌렌이 로웰의 뒷덜미를 잡아 들었다. 아돌렌의 키가 워낙 큰 탓에 옷걸이에 걸린 옷처럼 공중에 대롱대롱 들려있었다. 로웰은 내려달라고 떼를 썼다.
“아돌렌 아저씨, 잘 부탁드려요.”
라펠라가 골칫덩이를 맡아준 아돌렌에게 감사를 표했다.
“잠깐! 이번 작전명을 하나 세우는 게 어떻습니까? 결의를 다지는 느낌도 들게!”
타몬트가 들떠서 제안했다. 딱히 나쁘진 않았다. 각자 의견을 내보지만, 딱히 이렇다 할 게 나오질 않았다. 그러던 중 루나가 마법 하나를 말했다.
“9 서클 화염계 마법 중폴링 스타라는게있어요. 별 무너뜨리기.”
폴링 스타는 다수의 작은 운석 파편의 비를 내리게 하는 초광역 공격 마법이었다. 워낙에 무지막지한 마나를 잡아먹는 통에, 대규모 전쟁에서 다수의 마법사가 연계해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것마저도 마나의 한계로 거의 사장된 마법이었다.
“배치도도 딱, 별이네!, 우리가 이 별을 떨어뜨려서 아기아스의 얼굴에 처박아버리는 거지! 좋네! 크크크”
타몬트가 흡족한 듯이 웃었고, 다들 그에 동조를 했다.
“그럼, 작전명, 별 무너뜨리기, 폴링 스타 시작하겠습니다. 모두들 살아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죽지 말고 꼭살아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루시안이 나서서 말을 꺼내자, 모두 비장한 표정으로 각오를 다졌다.
일행의 현 위치는 아기아스 기준, 남서쪽이었다. 일단 모두 언데드 수비군이 있는 남쪽으로 이동 후, 각자의 할당 지역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보탄의 말간테 군이 선두를 맡아 돌진했다. 수많은 언데드 들이 나서서 그들을 맞이했다. 앞에는 일반적인 구울 좀비 스켈레톤들이 그 뒤로 스펙터 같은 유령 몬스터들이 자리했고, 그 뒤를 데스나이트와 듀라한이 채웠다.
그들 뒤에는 리치들이 자리해 있었으며, 검은 기운이 폴폴 나는 기사가 본 드레이크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탄의 군마가 달려나가 언데드들을 짓밟고, 창으로 꿰어 밀어 부쳤다. 그 뒤를 따라 넨과 아돌렌, 네로니아의 육탄 공격이 시작되었다. 다들 근접 공격이 특기였다.
그리고 그 뒤를 다류의 어둠 속성 마법과, 로웰의 사슬공격이 이어졌고, 엘란의 투창 및 화살 그리고 늑대무리 소환이 이뤄졌다. 가장 후미에선 드레가 하나하나적들을 저격해 고꾸라트렸다.
타니엘을 필두로 한 무리가 사르칸이 있는 북서쪽으로, 루시안 일행은 동북쪽으로 이동해 나아갔다.
말간테의 병사들이 그들의 앞길을 열기 시작했다. 그들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언데드의 숫자가 까마득하다. 얼핏 봐도 3배가 넘어 보인다.
“말간테의 병사들은 길을 열어라!”
기병대가 한차례 언데드를 말굽으로 찍고 나가면, 일반 병사들이 창과 검을 쥐어들고 달려들었다. 그들이 몬스터들의 시선을 붙잡고 언데드들을 밀어내면, 그 뒤로 무수한 화살들이 앞의 몬스터를 쓸어내 버린다.
많은 이가 피를 흘리고 스러져 길을 열어두면, 각 무리가 그 길을 따라 각자의 길을 향해 내달렸다.
그들 뒤로 불덩이가 떨어진다. 시체들이 다시금 일어나지 못하도록 불이 붙는다.
“정말, 많은 이가 스러져 가네요.”
루나가 착잡하게 웃었다. 그들의 앞에서 길을 열던 이들의 피들이 여기저기 묻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내 그들의 앞에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보였다. 6층 높이의 방첨탑, 새하얀 해골들의 눈이 일행을 바라본다. 그 오벨리스크를 지키고 있는 바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커다란 톱햇에, 하얀 장갑에, 지팡이, 그리고 금사슬 달린 외눈알 안경. 그리고 비릿한 웃음, 깔보는 듯한 시선. 변한 것 하나 없는 그 모습 그대로 였다.
“이런 벌레들이 이곳에 들어오다니요, 전 관객을 원하는 것이지, 벌레는 원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뒤로 돌아가시지요. 벌레는 손도 대기 싫습니다.”
타몬트가 욱해가지고 소릴 쳤다.
“이 망할 족제비 같인새끼까 뭐? 벌레? 네놈 얼굴이 벌레 면상이다! 캭, 퉷,”
미동도 없을것같은 바실의 얼굴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 상당히 기분이 나빠보였다.
“하, 귀가 썩어버릴 것 같습니다. 일전에도 뱀년 하나 죽이는데 어찌나 울고불고 떼를 쓰던지 말입니다. 큭큭. 그년의 심장을 제 손으로 뜯어내질 않았습니까?”
이젠 아예 도발을 해온다.
구리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바실을 노려 보았다. 바실은 아무도 덤벼들지 않자, 입맛을 다셨다.
“정신적으로 좀더 자란 모양입니다.애새끼 마냥 날뛰던 벌레들이 말입나다.”
바실이 클로버 카드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지팡이를 바닥에 톡톡 두드렸다. 그가 있던 자리 주변으로 동그란 무대가 형성된다. 바실은 뒤로 훌쩍 뛰어, 높은 단에 선다. 허공에서 의자를 꺼내 앉는다.
“자, 벌레들이 준비한 공연을 구경해보실까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