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3화 〉92. 또 하나의 이별 (93/95)



〈 93화 〉92. 또 하나의 이별


“구리야!”

루나와 라펠라가 달려가 구리를 확인한다.  사이에 아주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팔은 부러져 뒤틀렸고, 복부에 거대한 멍 자국이 보인다.

“쿨럭”

구리가 피를 뱉어낸다.이만한 상처를 입은 게 처음이라 당황스럽다.

“사르칸, 계획된 지점들은 어떻습니까?”
“거긴,세 수호자분이 움직이실 겁니다. 차원문을 붙잡아 주실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우리가 딱히 손을 쓸 필욘 없다는 것이군요. 가시죠. 보아하니, 성가실 뿐, 크게 문제가 될 놈들이 아닙니다. 이런 잔챙이들 따위론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선물 하나는 남겨두는 게 좋겠지요.”

사르칸이 웃으며,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렸다. 땅에서 거대한 거미가 튀어 올랐다. 거미는 16개의 겹눈을 부라리며, 루시안 일행을 맛있겠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가서 뛰어놀면 된답니다. 착한, 네튤레 양!”
“참, 친절하신 분입니다.”

그렇게 둘은 다시 사라졌다.

“루나야, 구리한테 이거 먹이고, 뒤로 빠져서 살펴줘!”

루시안이 포션을 꺼내 루나에게 건넸다. 한울 대륙과 아스타리안 대륙의 기술의 장점을 모아 만들어낸 포션이었다. 치료 효과가 상당히 좋았다.

“예, 다들 조심하세요.”

루나가 구리를 업고, 그대로 전장의 뒤편으로 빠져나갔다. 피닉스가 걱정되는지 따라붙었다.

“하, 예전에도 이딴  아니었냐? 갑자기, 툭툭 튀어나와서 성질 긁고 사라지는 거!”

타몬트가 짜증이 많이 났는지, 대검에 오러를 퍼부어 대고 있었다. 저 거미를  동강 내서 그 재수 없는 놈들 얼굴이 구겨지는 걸 보고 싶은 거였다. 타몬트가 대검을 높이 들어 올리고 그대로 오러가 깃든 검을 그대로 내리그었다.

원래대로라면 오러에 의해 두 동강 나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깡’하는 소리와 함께 거미의 비웃음만 샀다.

“케케케케”
“와, 이젠 거미한테까지 조롱을 받아야 해?”

거미는 연신, 타몬트의 공격을 앞다리를 척 들어서 막아버렸다.

“이 새끼, 왜, 이렇게 단단해?”
“이건 제가 공격해보죠.”

발터가, 테라나이트 화살을 꺼내 들었다. 화살에 푸른 오러가 맺히었다. 활의 시위가 최대로 늘어지다가 쏘아진다.

거미는 이번에도 얕잡아보며, 앞 다리를 ‘척’하고 들었다. 하지만, 하마터면 머리가 뚫릴 뻔했다 거미가 당황했다. 다리를 뚫고 화살촉이 튀어나온 것이다.

“타몬트 형, 오러 마스터 별거 없네요. 킥킥”
“뭐? 이게 진짜!”

타몬트가 화딱지가 나서 대검의 날에 집중강화를 했다.

“망할, 거미 새끼 같으니라고!”

스걱하는 소리와 함께, 거미의 앞다리 두 개가 잘려 떨어진다.

“켁케케케”

당황해서 뒤로 후다닥 몰려나더니, 꽁무니로 새끼 거미들을 뽑아낸다. 배가 붉은 게 특징인 조그마한 거미들이었는데. 발터와 타몬트 가까이 가더니 폭발하기 시작했다. 작아도 위력만큼은 발군이었다.

라펠라가 거상을 일으켜 세워 방패로 작은 거미들을 쓸어서 위로 던져버렸다. 방패를 쓰레받기처럼 써버린 것이었다. 거미는 또 한 번 당황했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꽁무니에 총구를 들이민 루시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도 정화해주지. 가라!”

백린폭발탄이 다시 한번 거미에게 쏘아졌다. 꽁무니에 붙은 불은 배를 타고 상체로 번져나갔다. 거미가 불을 끄겠다고 폴짝폴짝 뛰었다가 분수대로 뛰어들었다. 불이 꺼진 것 같아서 나왔는데,  크게 불이 일어난다. 결국, 산채로 새까맣게 타 재가 되어버렸다.

“다들 괜찮아요?”

루시안은 일행이 무사한 걸 확인한 후, 구리에게 향했다. 루나가 구리를 데리고, 빈 민가에 데려다 둔 상태였다. 포션을 마신 탓에 몸의 상처는 많이 나아 보였다.

하지만, 구리의 표정은 좋지가 않았다. 어두웠고, 매우 의기소침해 있었다. 바실한테 무기력하게 공격당한 게 컸다. 벨가의 일로 그가 너무나도 미웠다. 자기 손으로 굴에 주먹 한 대는 꽂아주고 싶었는데, 무기력한 자신을 마주하고 나니 시무룩해진다.

“구리야?”
“.....”
“형! 나 그거 쓸래요. 줘요.”

구리가 말하는  일전에, 받은 앵겔러의 구슬이었다. 보라색 구슬. 안에 든 힘이 강하기도 했고, 그 뒤로 정신이 없었기에 방치하고 있던 마지막 남은 환수의구슬이었다.

“이번에, 벨가님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약한힘으론 아무것도 지켜낼 수가 없다는걸.”
“일전에도, 힘이 너무 커서, 피닉스와 나눴잖아. 말하는 게 온전히 하나를 다 흡수할 생각인  같은데, 맞아?”

구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겠어?”

구리는 흔들림 없는 눈으로 각오를 루시안을 바라보았다. 결심을 마친 모양이다.

루시안은 아공간에서 앵겔러가 준 보라색 구슬을 꺼내, 구리에게 건네주었다. 피닉스가 걱정된다는 듯 루시안의 머리 위에 앉아 날개를 퍼덕였다. 루시안은 피닉스를 쓰다듬어주고는 피닉스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이젠 구리가 온전히 이겨내야 할 시간이야.”
“삐루르르”

피닉스가 걱정되는지 자꾸 뒤를 돌아본다.

한편, 드워프 들과의 일전을 벌이고 있는 외성 밖 전황은 드워프의 일방적인 패배로굳어져 가고 있었다.용인족, 드레이크, 엘프, 수인, 무인들까지 그들의 힘은 드워프의 골렘 부대를 압도해나갔다. 긴 세월 동안 앞으로 나아간 자와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린 자의 차이였다.

드워프의 일전에서승기를 잡았던 그들에게 나타난 건  명의 환수들이었다. 암사자, 악어, 코끼리의 거대한 환수형태로 나타난 그들이 뿜어내는 위압감은 상당히 남달랐다.

“어차피 시간벌기잖아, 그놈들 차원문을 조작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 했잖아.”
“셋이서 놀기엔 장난감이 약하다 그건가?”
“맞아, 바로 그거야 크론!”

악어와 코끼리가 암사자를 바라본다. 네가 나가서 놀으라는 거였다.

“좋아! 날뛰어보자고!”

발톱이 크게 자라난다. 한번 베이면 그냥 동강 날듯이 서슬 퍼렜다. 무인들이 호기롭게 나선다. 몸에 호신강기을 두르고 무기를 꼬나쥔  달려들었다.

암사자가 움직이기 편하도록, 인간 형태로 바뀌었다. 이렇게 해놓고 보니, 수인족과 상당히 유사했다. 반인반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벨가나 구리가 완전히 인간의 형태를 취했던 것과는 달랐다.

씨익 웃던 그녀가 파리 잡듯이 툭툭 무인을 쳐댔다. 뒤에서 있던 악어와 코끼리도 인간의 형태로 팔짱을 낀 채 구경에 나섰다.

무인들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이었다. 무기를 놓지 않으려는 그 이상한 고집 때문에 무기 채로 들려서 피떡이 되기 일쑤였다. 그들의 피가 흩뿌려지고, 내장 조각이 여기저기 날린다.

엘프와 수인들의 수뇌부들이  만큼 따라온 수인들과 엘프들이 있었다. 그들도 무인의 뒤를 따라 참전했다. 엘란이 그들의 선봉에 나섰다.

로웰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가 뒤에 서 있는 드레와 화광에 부딪혔다. 그에게 엘프와 용인족, 드레이크의 눈이 쏠린다.

“환수라고, 환수! 못 이겨, 난 루시안한테 가볼 테니까. 힘들 내라고!”

로웰이 웃으며, 부리나케 몸을 빼버렸다.

“저저 저런 고얀 놈! 드레, 네가 가서 루시안을 도와주거라, 이 노구는 여기에서 저들을 상대할 터이니!”
“화광 선생님!”
“이게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이대로 죽어 등선 한다면 그걸로도 족하지 않겠느냐?”

화광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껄껄 웃었다.

“어서, 가거라!”

드레가 묵례를 하고 자리를 떴다. 그가 떠나자, 화광은 표정을 굳힌 채로 모두에게 일렀다.

“남은 분들은 가서 루시안을 돕는  낫지 않겠습니까. 이곳은 노구가 막아 세울터이니, 다들 믿고 가시길 바랍니다.”

아시카를 비롯한 용인족이 고개를 끄덕였고, 타니엘과 테란페도 이에 동조했다. 그리고, 리오나에게 맞아 기절한 엘란을 등에 업고는 자리를 떴다.


나드비온과 네로니아는 이곳에 남기로 했다.

“야, 쟤들 빠지는데?”
“놔둬, 우리 목적은 이곳의 정리와마법진 설치다. 저런 귀찮은 짓은 사르칸과 바실이 할 거다.”

악어 크론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코끼리 센바도 고개를 끄덕였다.

“남는 놈들하고 재밌게 싸워보라고, 몸도  겸 눈요기는 해야 할 거 아니야.”

센바가 짓궂게 웃어 보였다.

그렇게 엘프와 용인족, 드레, 바실이 루시안 일행의 뒤를 쫓았고, 화광과 나드비온, 네로니아 외 수인과 엘프들이 남았다.

“이건 뭐, 다 늙어빠진 노인데 둘에, 고양이 한 마리, 잡졸들? 이걸로 나랑 놀아주겠다고?”

리오나는 빠르게 이동하며, 엘프와 수인들을 도륙해 나갔다. 그들을 압도하는 힘과 빠르기로 짓밟아나갔다. 네로니아가 주먹을 뻗어, 수인족의 목을 부러뜨리려는 리오나를 저지했다.

그리고  옆에서 나드비온의 발차기가 들어갔고, 화광은 장침을 들고 리오나의 뒤를 점했다. 리오나는 가볍게 수인족의 목을 틀어쥔 채 네로니아의 주먹이 날아오는 경로에 그 수인을 들이댔다. 네로니아가 주먹을 비틀어 수인족을 피하려 하자, 그녀를 꼬리로 감아 나드비온에게 던져버렸다.

그 틈으로 화광의 대침이 꽂혀 들었다.

“그런 바늘 따위가!”

선기를 두른 바늘이 두부에 파고들듯 부드럽게 들어간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혈자리가 존재하질 않는다.

“뭐지? 네놈들은? 살아 있되 살아 있지 않은 것인가?”

리오나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틀어쥔 수인을 둔기처럼 휘둘러 화광을 내리찍었다. 화광이 내공을 일으켜, 막는다. 수인족의 몸이 수박 터지듯 터져나가 흩뿌려진다.

엘프들이 화살을 쏘아내면 그걸 다시 잡아 되돌려 목을 꿰뚫어 버리고, 수인족의 발톱을 잡아 그들의 심장에 꽂아 넣었다. 수인족과 엘프를 학살하다시피 다 죽여버리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그걸 제지하려던 나드비온과 네로니아는 번번이 수인족과 엘프를 방패로 내세우는 리오나의 공격을 고스란히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약한 네로니아의 피해가 컸다.

“나드비온이라고 했나?”
“그렇다.”
“그, 어린애는 뒤로 루시안에게 보내고, 이곳은 우리 둘이서 마무리 짓는  어떠한가?”

나드비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네로니아의 몸에 화광의 손이 혈자리를 짚어, 점혈을 해버렸다. 나드비온이 루시안의 냄새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그녀를 집어 던져버렸다.

눈이휘둥그레지는 네로니아, 점혈로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가면, 루시안이 풀어  게다.  가거라.”

화광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눈으로 욕을 하면서 그렇게 날아갔다.

“저승길이 외롭진 않겠군.”
“난 저승길이 아니라 선계로 간다네.”
“이거 괜히 나만 억울해지는 것 같군,”

나드비온이 먼저 리오나에게 덤벼들어 갔다.

“내가 봐주는  알지? 재밌는  보여달라고?”

그녀의 표정은 잠자리 날개를 뜯는 어린아이 같았다.

“좋아, 보여주지. 꽤! 아플 거야.”

나드비온이 기운을 최대로 일으킨다. 목숨을 담보로 불태우는 공격으로온몸의 피가 끓어올라 핏빛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나드비온의 공격이 리오나의 뺨을 스친다. 첫 유효타. 이후 리오나의 몸에 하나둘 타격이 쌓여 들어갔다.

“하, 이거 재밌는데?”
“그리고, 나만 있는  아니거든.”

그녀가 아차 싶었지만, 이미 그녀의 등에는 화광의 장이 작렬해있었다.

“커억!”

등을 타고 몸을 뒤흔들어버리는 충격이 퍼진다. 몸이 순간적으로 제어권을 잃고 비틀거린다. 나드비온이 리오나의 어깨를 잡고 그대로 짓눌러 뼈를 부서뜨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짧게 연달아 끊어치는 화광의 장이 리오나의 등을 후려갈긴다. 장을 맞은 자리부터 피부가 하얗게 죽어가며,  전체가 거세게 떨린다. 등으로부터 시작된 균열이 몸 전체로 퍼져나간다. 도자기에 금이 가듯 쩍쩍 갈라져 간다.

둘은 승리를 자신했다. 하지만,

“흐흐. 어때, 내 연기 좋았어?”

리오나가 비릿하게 웃으며, 어깨를 붙잡고 내리누르던 나드비온의 심장에 기괴하게 비틀린 오른손을 찔러 넣었다. 그녀의 손톱에 나드비온의 심장이 꿰어져 등 뒤로 튀어나왔다. 아직도 벌떡이는 심장을 그녀가 손아귀에 틀어쥔다.

“잘 가라고, 늙은 고양이!”
“이런 제길, 커어억!”
‘퍽’하는 소리와 함께, 심장이 터진다. 나드비온의 안광이 서서히 사그라든다.

리오나가 나드비온의 심장에 손을 찔러넣기전, 이상을 눈치챈 화광이 선천 진기를 불태워 쌍장을 날렸다. 그녀의 몸 안에 흐르는 기운들의 흐름을 틀어버리고,선기를 심었다.

“먼저 가시게, 나도 곧 뒤따라 갈 터이니! 자네의 덕이면 능히, 선계에 오를 것이네. 같이  수 있을 테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