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90. 미쳐버린 드워프
“저놈 원래 저런 성격이었나? 분명, 엄청나게 분위기 잡던 놈이었는데?”
타몬트가 의아해하든 말든 로웰은 연신 새로 만든 팔을 마음에 들어 해하며, 미친 듯이 골렘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저 호리호리한 체격에도 쇠사슬로 골렘의 발을 잘도 묶는다.
“이런이런, 저런 사람인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이거, 너무 당황스럽군요.”
“할배, 쟤 올 때 내가 꼴 보기 싫어서 한 대 쳤는데, 그때 맛이 가버린 거 아니야?”
“이런이런, 그게 문제였다면, 매우 심각한 겁니다.”
골렘들은 속절없이 밀려났다.
아돌렌의 주먹에 가슴이 우그러지고, 찌그러지고, 구르카의 레이피어 벌집이 되어 나뒹굴었다. 수인족의 발톱에 찢기고, 엘프들의 활과 정령술에 부서져 내렸다.
화광에 얻어터진 골렘은 완전히 망가져 고칠 수도 없었다. '뻥' 하고 뚫려버린 가슴, 핵이 완전히 나가버린 탓에 폐기해야 했다. 거기에 무인들의 주먹과 무기에 너덜너덜해진다.
용인족의 주먹에 맞은 골렘도 마찬가지였다. 힘의 균형 자체가 맞지 않았다. 드레이크 다크의 꼬리와 물기 공격에 당해버린 골렘들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드워프들이 부지런히 작업 망치와스패너를 들고 돌아다니며 골렘들을 두드려댔다. 나름대로 고쳐본다고 난리를 쳤지만, 역부족이었다. 고친 만큼 부서지고 손 쓰기 힘든 상태가 너무나도 많았다. 작업 망칠 던져버리는 이들도 보였다.
먼저 보낸 골렘들이 힘을 못 쓰니, 다른 골렘을 내보낸다. 인간형 골렘 대신 거미 형태의 포를 든 골렘들이었다. 마나를 모아서 포탄처럼 방출하는 대포였는데, 작업 망치를 치켜든 채 의기양양해 보이는 것이 꽤 자신 있는 모양이었다.
포를 맞은 성벽이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건물이 부서져 내렸고, 땅이 푹 파여 들었다. 간단한 베리어 따윈 그냥 다 박살 내버렸다.
“저것들은 우리 내가 처리하겠네.”
아시카가 황금색 마나를 불러일으켰다. 날아오는 마나 포탄들을 일거에 멈춰 세우고, 그대로 힘을 다시 되돌려보내 버렸다. 그리고는 거대한 황금색 구를 형성해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었다.
거대한 황금구가 대포들을 분쇄하며,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냈다. 주변이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휘말린 드워프들과 골렘들이 산화해버렸다.
“쟤들 엄청나게 당황해하는데?”
발터의 말처럼, 저쪽은 난리가 나 있었다. 자신 있어 하던 마나포 골렘이 그냥 사라져버렸으니, 공황상태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용인에 무인, 수인, 엘프가 합쳐지니, 적들이 그냥 정신을 못 차리네.”
“우리가 할 일이 있나 모르겠다.”
“오랜만에 몸 풀러 왔더니, 힘쓸 일도 없구나?”
“누님, 쉬엄쉬엄합시다. 하하”
루시안 일행이 손을 놔도 알아서 쭉 밀고 올라간다. 그 진격이 멈춘 것은 불그스레한 수염에 망치를 든, 붉은 망치 부족이었다. 가니스터가 그 선두에서 섰다. 그들의 몸에는 검은 기운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전에 시마와 바탈과 싸웠던, 그런 기분이 드는데? 생명체와 싸우는 느낌이 들지 않아.”
끊임없이 밀려드는 붉은 물결과 몇 번 손을 섞어본 타몬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겉으로는 똑같은데, 통증은 전혀 못 느끼는 것 같네요.”
그들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검에 팔이 날아가도, 마법에 맞아 하반신이 분리되어도 말이 없었다. 머리가 날아가도 몸은 그대로 움직여댔다.
“제자 놈아! 이것들은 강시인 것이냐?”
“생기가 전혀, 안 느껴지십니까?”
“그래, 이미 생을 놓아버린 자들이다!”
화광이 말을 하면서 손바닥으로 드워프를 쳤다. 드워프의 몸이 부풀더니 ‘퍽’ 터져나갔다.
“내 기운과는 확실히 상극이구나!”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스승님!”
“이런 고얀 놈!”
화광이 웃으면서, 드워프들을 치워나갔다. 옆에서 드레가 화광의지키고 있었다. 그가 있는 한 문제는 없을 거로 보였다. 그는 작은 화살을 쏘아 드워프의 머리를 박살 내버렸다. 일전에 발터가 썼던 편전이었다.
루시안도 총을 들어 쏘아냈다. 그의 총에 드워프들이 터져나간다. 이걸 저지하면서도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든다.
저 붉은 물결의 드워프들이 전부 언데드라면, 드워프 전체가 이미 멸족했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 것일까?”
그때, 뒤에서 루시안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형!”
“어? 구리야! 피닉스도 왔네, 괜찮은 거야?”
“삐루르르”
구리의 상의에 몸을 집어넣고 얼굴만 내밀고 있던, 피닉스가 멀쩡하다는 듯이 울어 보인다. 깃털의 윤기도 돌아왔고, 상태도 괜찮아 보였다.
“형, 피닉스가 말해줬는데요. 금색 털의 드워프가 공격했데요, 피닉스도 죽을뻔했다고 했어요.”
“뭐? 금색?”
“응!”
“삐루르르”
“피닉스가 많이 슬퍼하고 있어. 드워프 들이 다 죽었데요.”
“흠, 금색 털이라면 쿠드비온일 텐데…….”
그때, 붉은 물결 뒤로 검은 물결이 들이닥쳤다. 다들 탑승형 골렘을 타고 있었다. 검은 모루 일족 드워프들이었다. 이들은 방어건물의 달인들이었다. 족장인 바하프는 아기아스의 본성을 공사 중이었다.
탑승형 골렘의 크기는 보통 골렘보다는 작았지만, 보통의 인간들에겐 충분히 위협적인 크기였다. 기다란 배틀 해머로 연신 찍어 내렸다. 아시카가 드래곤 피어를 뿜어냈다. 사체들이었음에도, 마나 그 자체의 구속력에 멈칫거렸다.
일거에 밀어버리겠다는 듯이 모두의 공격이 드워프들에게 퍼부어졌다. 그러자 검은 털의 드워프들이 두꺼운 방패를 들어 세웠다. 그 방패 위로 마나베리어가 펼쳐지며 공격들을 전부 막아버렸다.
“하필, 거북이 같은 검은 모루라니!”
나드비온이 짜증을 내며, 몸의 근육을 부풀렸다. 그의 손톱에 짙은 붉은 기운이 맴돈다. 그대로 달려들어 신형이 사라졌다가. 검은 모루의 골렘 앞에 나타나 발톱을그어버렸다.
골렘이 그대로 부서져 내렸다. 방어막도 함께 말이다. 그렇게 틈이 생긴 곳으로 수인들이 몰려 들어갔고, 엘프들이 그 뒤를 따랐다. 용인족과 무인들은 정면에서 그들을 막아 세우고 있었다.
“루시안? 이쪽에 다 몰려 있을 필욘 없어 보여. 우리가 빠져도 문젠 없어 보이니 이대로 내성 쪽으로 이동하자.”
수인과 엘프는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있어, 연락할 수 없었기에, 아시카와 화광에게 내성으로 향하겠다고 알렸다. 아시카가 마법으로 외성벽을 박살 내 길을 열어주었다.
“가게나! 뒤는 맡기고 말이지”
드워프 전선엔 은빛의 물결이 추가되었다. 방어형 골렘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직 방어 위주로 만들어진 골렘들이 앞을 막아 세우고 나섰다. 호기롭게 들어갔던 수인족들이 다시금 밀려나고 있었다.
루시안 일행은 아돌렌, 쿠르카와 함께 아시카가 뚫어준 길을 따라 움직였지만, 이내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나스팔라벨 족장님?”
무표정한 나스팔라벨, 역시 그도 같은 상태로 보였다. 거대한 망치를 등에 다가 걸치고 앞에 나서있었다. 그 뒤로 갈색 털을 한 워해머 일족의 드워프들이 망치를 들고 무표정한표정으로 뒤를 가득 메웠다.
“드워프 연합장이란 당신도 당해버린 겁니까?”
대답 없이 망치만 들어 올려 공격해 들어올 뿐이었다. 땅이 깊게 패어 들어간다. 주변으로 충격파가 퍼진다. 드워프만 상대하기엔 좋은 포션이 있었다.
“발모제를 뿌릴 테니까, 하나하나 잡아서 정리하세요.”
“몸 좀 풀려 했더니, 또 김빠지게 하네”
타몬트가 대검을 들고 나아가려던 몸을 뒤로 뺐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루시안이 던진 포션이 드워프 사이에 떨어져 내린다. 무언가 불길함을 느끼고, 망치로 후려쳤지만, 그 덕분에 공중에서 포션이 깨져나가며 주변으로 액체들이 더 고루 퍼졌을 뿐이었다.
액체에 이어 분말 형태의 발모제도 루나의 마법의 도움을 받아 흩뿌렸다. 고루고루 잘 퍼져 날아갔다.
“너도 참 별짓 다 하는구나.”
타몬트가 분말로 된 발모제에 감탄을 자아냈다.
“야, 혹시, 혹시 그것도 분말로 되는 거야?”
“그건, 저번에 오크 때 한번 써먹은 후론 봉인했어요.”
“......”
없다는 말은 안 했다. 봉인했을 뿐이다. 봉인.
드워프와의 일전을 위해 잔뜩힘을 주기가 무색하게도 다들 불어난 털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수인족보다는 덜 예쁘지만 나름 봐줄 만한 갈색 털뭉치들이 생겨났다.
위엄있게 나타났던 나스팔라벨도 마찬가지였다. 도끼를 든 채로 공이 되어버렸다. 다들 어떻게든 풀어보겠다고 힘을 쓰고 있다.
“아주, 예쁘게 포장이 되어버렸네?”
“저걸(?)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렇게 돼버린 이상, 누군가 깎아줘야 탈출이 가능할 거다.
“한쪽에 잘 쌓아두고, 안쪽으로 이동하시죠.”
일행들은 성 한켠에 털 뭉치들을 잘 쌓아뒀다. 나스팔라벨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치워놓고 다시 길을 나서려는 데 또,누군가 앞을 막아 세웠다. 제발 한 번에 나타났으면 좋으련만, 꼭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
“이런 미친, 인간 놈들 재수 없는 위선자들 감히, 내 동족을 털공으로 만들어!”
눈이 살짝 맛이 간 쿠드비온이 나타났다. 말도 횡설수설하고, 그 뒤로 보이는 드워프들이 검은 기운을 폴폴 날리고 있었다. 숨기지 않고, 아기아스의 편이라는 걸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다.
피닉스가 구리의 품에 얼굴을 숨긴다. 아직, 그때의 공포가 남아있는지 몸을 잘게 떤다. 구리가 잘 다독이며 진정시켰다.
“당신이,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맞습니까? 모든 드워프 일족을 죽이고, 피닉스도 공격하고 그들의 시체를 병사로 제공한 게 당신이 맞느냐는 말입니다.”
라펠라가 쿠드비온에게 따져 물었다.
“하, 그 위선자 계집년이군! 네년이 그렇게 옹호하던 인간들 덕분에 아기아스님이 이렇게 세상에 다시 나오지 않았더냐! 역시, 인간은 위선자야. 없어져야 할 벌레들이지! 난 그 벌레를 없애버릴 거야! 남김없이 작은 벌레 큰 벌레 상관없이.”
그의 눈동자가 서서히 검게 물들어간다. 그의 등으로 버섯들이 돋아난다. 버섯들의 균사가 그의 몸을 휘감아 돌아 촉수처럼 변해간다..
묻는 말에는 대답 안 하고 자기 말만 늘어놓으니, 라펠라가 재차 따져 물었다.
“당신도 위선자 아닙니까? 결국, 인간 탓이나 하며, 만달리안에 숨어든 겁쟁이 드워프들, 제국에게 복수하겠다는 알량한 계획이나 세우다가 결국 힘에 굴복한 겁쟁이, 도망자, 배신자들.”
쿠드비온의 목이 기괴하게꺾이며, 부릅뜬 눈으로 라펠라를 째려본다.
“아니야, 난 그런 놈이 아니야! 난 내 손으로 일족을해방했어! 어차피 아기아스에 죽을 놈들, 멍청한 인간 손에 놀아날 놈들 내 손으로 구원을 해준 거야! 구원! 자비를 베푼 거란 말이다! 네놈들 인간들에게도 베풀어줄 그 자비! 히히히”
점점 헛소리가 심해지고 있었다. 등에 달린 버섯으로부터 검은 포자들이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상대방의 어둠을 살라 먹고, 그 크기를 키우는 포자. 하지만 일행에겐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 그 포자들.
위그드라실의 녹색 기운이 일행을 감싸고, 그 기운에 닿은 포자들이 타들어 소멸해버린다.
“히히히익! 잡기 술이 많아! 잡놈들이라 그런가? 인간을 정화하자! 모두, 용광로의 힘으로 인간을 불태운다.! 정화하라! 정화하라! 망할! 인간 노옴들!”
포자가 안 먹히자 일족을 내보낸다. 용광로 일족의 언데드 드워프들이 불꽃이 튀는 망치를 들고 달려든다, 무표정하게 그저 쿠드비온이 시키는 대로 공격만 해댄다,
신체가 잘려나가고 터져나가도 공격만 한다. 정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일들의 연속이었다.
쿠드비온이 망치를 높이 치켜든다. 망치에 붉은 화염의 기운들이 넘실넘실 거린다. 그가 망치를 땅에 내려찍자, 찍힌 불의 기운이 퍼지며, 쇳물이 튀어 오른다.
“모두 녹여서 새로 정련해주마, 뼈까지녹여서, 다 태워서 순수하고 아름다운 주괴가 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