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0화 〉89. 소피아로 모이는 이들(2) (90/95)



〈 90화 〉89. 소피아로 모이는 이들(2)

“그러니까? 네놈이 이 사태의 주범인 아기아스를 따르던 개새끼란 건가?”

프란츠가 검을 뽑아 로웰의 목을 겨눴다. 예리한 검날에 목이 살짝 그어져, 피가 흘렀다.

“정확히는 버린 주인을 물어버리려다가 삶아지고 있는 강아지지. 팔 없는 강아지.”
“저택을 이따위로 부숴놓은 대가도 받아내야 하고, 침입한 죄도 물어야 하니, 거기 아돌렌과 구르카,  개새끼를 데리고 아기아스의 잔당을 뒤쫓아라!”
“나는 왜!”

로엘이 고함을 쳤다.

“내가 어떻게 도망을 쳐왔는데, 거기로 다시 날 끌고 들어가?”
“이런이런, 길 안내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그놈들이 어디 있는지  테고.”

그건 사실이었다. 그놈들이 어딨는지 파악하고 그곳만 피해 다녔으니까.

“망할, 루시안 새끼, 한 방 먹이랬더니 버려두는 거야 뭐야!”
“뭐라고 했냐? 루시안?”
“이런이런, 그 이름이  여기에서 나옵니까?”

로웰이 떨떠름해 하며 말을 이어간다.

“호오, 그런 일이!”
“이런이런, 라펠라님의 친구들이라니, 이참에 거들어드리지요.”
“거기 가선  무너뜨려도 뭐라 하진 않을  아닌가 맞지? 할배?”

로웰은 이들과 함께 가도 되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다.

제리코와의 전투가 있고 난 뒤 루시안 일행은 소피아의 외성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제리코가 당한 걸 알았는지, 성벽의 경비가 삼엄해지고, 거대한 뼈의 장벽이 솟아 나버렸다.

게다가 몬스터는 어찌나 많이 나타나는지, 외성을 몇 겹으로 둘러싸고 비키질 않는다.

“진짜, 마음 같아선 미스텔지아 불러서 한방 갈겨버리고 싶긴 한데.”
“그거 딱 3방이라며.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외성에서 지진 부진한 싸움을 이어가던 날이었다. 갑자기, 외성벽을 둘러싼  외각의 성벽이 무너져내렸다.

“뭐야? 적이야?”

타몬트가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뿌옇게 일어난 먼지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제자 놈아 여기 있었구나!”
“화광 스승님? 드레? 여러분들이 왜 거기서 나옵니까?”

그들은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무인들이 제물로 쓰였다고 듣긴 들었습니다만, 그 수가 그렇게나 많았습니까?”
“우리를 따라온 이들도  복수를 위해서 따라온 것이다.”
“그런데 오다가 방패든 적이랑 만났다고 하셨습니까?”
“오랜만에 몸을 움직였더니, 삭신이 다 쑤시는구나.”

드레가 설명해준 대로면, 이곳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화광일 것이다.

외성 밖은 빈집들이 많았다. 적들이 눈에 불을 켜고 노려봐서 그렇지. 지내기에 불편함은 없는 곳이다. 가끔, 몬스터들이 달려들거나, 시끄럽게 하기는 해도 말이다..

그리고, 루시안 일행의 뒤로 익숙한 이들이  나타났다. 이번엔 보탄과 필립, ,엘프와 수인족들이었다.

“루시안! 오랜만에 보는군요. 일전에 편지를 보낸 후로 너무 뜸했습니다.”
보탄이 루시안을 보자 반갑게 인사를 해온다.

“안 그래도, 보탄 왕자님 아니면 필립 백작님에게 서신을 보내려고 했습니다.”

루시안이 발터를 불렀다. 발터는 시마 말간테의 시신이 담긴 관으로 안내해줬다. 루나가 부패하지 말라고 얼음 마법을  밑에 깔아두었다. 시체를 꿰맬 자신은 없어 잘린 시체를 최대한 그럴듯하게 두었다.

그들에게 그간의 일을 전했다.

“안 그래도, 1차 전쟁이 패배로 끝나고 나서 장례를 치르고자 했네. 형님의 시신을 찾으려 애썼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지. 아버지께선, 포로라도 잡혀 있으리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계시긴 하셨지만…….”
“왕자님, 시마 왕자님의 시신은 부상자들과 전령 편에 본국으로 송환시키겠습니다.”
“필립 백작이 신경을 좀 써주시길 바랍니다.”

보탄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엘프와 수인족의 진영으로 향했다. 갑자기, 몰려들어 인사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나드비온에 네로니아, 타니엘, 테렌페, 엘란까지 다 한 막사 안에 모여 있었다. 한 차례 인사가 지나고, 나드비온이 목소릴 쫙 깔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수인족에서 배신자가 나왔더군. 라블이란 자 기억하나 루시안?”
“그게 누구였죠?”

루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전에 자네와 대수림의 입구에서 마찰이 있던 묘인족일세.”
“아! 대충 기억이 날듯하네요.”

그, 못 배운 멍청한 묘인족. 그때, 부들거리며 억지로 사과를 했었다.

“아무튼, 그때의 일로 불만을 느끼고 있다가, 아기아스 교단의 꼬임에 넘어가 버렸지.”
“교단에요? 흠, 지금까지, 수인족을 본 적이 없는데요?”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 정보 팔아먹던 묘인족? 그놈 뭐, 어떻게 됐겠냐. 제물로 쓰였겠지.”
“너는?”

 달갑지 않은 인물이다.

“난 로웰 맥스라고, 이름 정돈 기억해주지?”
“반 존대로 이죽거리던 건 이제 버린 모양이야?”
“너 같으면 죽음이 눈앞에서 아른아른 거리는데, 이죽거리고 싶겠냐?”

둘이 눈싸움을 하고 있으니, 같이 온 구르카와 아돌렌이 라펠라를 찾았다.

“저, 라펠라 아가씨가 보이질 않는군요?”

타몬트가 둘을 데리고 한쪽으로 빠져, 전후 사정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둘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어?”

그때, 구리가 무언가를 느낀 듯 밖으로 뛰쳐나가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하늘 높이 팔을 굽힌 채로 들어 올렸다. 구리의 팔에 푸석푸석한 깃털을 한 피닉스가 날아들어 팔에 앉는다.

구리가 살짝 쓰다듬어주니, 쓰러지듯이 구리 품 안으로 기대 잠들어버린다. 은호가 폴짝 구리 머리 위에 올라타 피닉스를 내려다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피닉스였다. 윤기가 흐르던 털이 엉망이다.

“구리야, 피닉스 깨어나면 밥부터 먹여.”
“알았어요, 형”
루시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드워프족에 있어야 할 아이가, 저리 허겁지겁 날아왔다는 건….”

발터가 말을 받았다.

“드워프족에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거지.”

갑작스럽게 약속이나 한 듯 한자리에 모여버리니, 약간 정신이 없어졌다. 수습은 안 되고 일만 계속 커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 정신없는 와중에, 듣고 싶었던 그리운 목소리까지 들린다.

“루시안! 내가 너무 늦었지?”

라펠라가 말에서 내린다.

“누나!”
“아가씨!”

구르카와 아돌렌이 라펠라와 포옹을 하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한편, 외성 밖으로 많은 이들이 모여들고 있는 때에, 외성 안에서는 아기아스가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고대 전쟁 시 그의 손발이 되어주었던 세 환수를 어둠의 비술로 되살려냈다. 거기에 쿠드비온이 차원문 이동장치를 들고 왔다. 큼지막한 기기를 골렘의 등에 실어서 말이다. 거기에 추가적으로.

“드워프족을  손으로 끝내버렸습니다. 나스팔라벨을 필두로,  드워프 족장들의 시체입니다. 아기아스님께 선물로 드립니다.”

방심하고 있던 이는 죽이기 매우 쉽다. 쿠드비온의위치는 원로 드워프. 그의 말은 매우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스팔라벨을 모함해 그의 자릴 좁혀놓고 몰아세우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그는 드워프 일족의 불씨를 꺼트리고, 일족의 대장간마저 없애버리기로 했다. 이미 살짝 맛이 가버린 그에겐 일족은 자신의 이상을 방해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자신을 버리고 간 나스팔라벨이 인간들을 돕겠다고, 군사를 모은 것만 해도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피닉스를 공격했고, 일격을 먹이지 못한 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무사히 드워프의 화산지대를 폭발시켜 대장간과 화로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드워프가 살던 만달리온이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무너져내렸다. 족장들을 하나둘 독살시켰고, 나스팔라벨의 심장에 단검을 꽂아 넣었다.

“인간을 없애버려야 해! 인간이 문제야. 탐욕스러운 인간.”

쿠드비온이 가져온, 차원문 이동장치가 설치되었고, 아기아스의 힘에 의해 강화되어버렸다.

아기아스가 흡족해했다.

그리고, 쿠드비온이 가져온 시체는 사르칸이 챙겨다가, 언데드로 되살렸다. 이들은 바로 외성벽의 보수 및 방어시설건설에 투입되었다.

그리고, 바실도 돌아왔다.

“아기아스님, 다녀왔습니다. 급히 호출이 온 탓에 놓치고 말았습니다.”
“네가 찾던 배신자의 기운이 밖에 느껴진다.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3명의 환수들도 그 자리에 나타났다. 아기아스가 불러일으킨 존재는 사자, 코끼리, 악어 환수였다. 인간의 형태일 때는 3m 정도였지만, 본체는 소피아르의 성벽 높이보다 컸다.

“암사자 리오나, 악어 리온, 코끼리 센바 인사를 하라, 여기엔 내 손발이 되어주는 이들이지.”

“오랜만에 아기아스님을 다시 뵙습니다.”

셋이 입을 모아 말했다.

“이 셋은 고대 전쟁 당시, 나를 도와 최전선에서 싸우던 이들이다. 이들과 너희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제리코와 니겔처럼 싸우다 아무도 죽이지 못하고 죽는 무능한 모습은 보이지 않길 바란다. 최소 하나의 목숨이라도 거둬라! 알겠나?”
“예, 아기아스님!”

드워프들의 합류로 성벽의 방어가 더욱 올라가 버렸다. 방어를 담당하던 바하프와 베리겐의 합류가 가장 문제였다.

다시, 루시안 일행의 진영. 이곳에 모인 수뇌부들이 가장 큰 막사에 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금, 현재 가장  문제는 역시, 저 로웰이었다.

“역시, 프란츠님은 이곳에 두 분을 보내는  목적이었네요. 저 로웰은 여기서 죽여버리든지 상관없다는 것일 테고요.”
“나한테 왜 그러냐? 야! 나도 그냥 시킨 대로 했다고! 싸움이 좋아서 그랬다니까?”

로웰이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을 했다. 모두가 눈살을 찌푸리며 째려봤다.

“닥쳐라, 널 여기에서 바로 묻어버릴 수도 있어.”
“야! 내가  하면 되냐, 나한테 바라는  있을  아니야!”
“팔도 없는 네가 뭘 하겠다는 거지?”
“못할 게 뭐냐고! 그러니까, 내 몫을 해라 이거지?”

그때, 정찰을 서던 수인족 하나가 다급히 들어온다.

“골렘, 골렘 부대가 진격해오고 있습니다.”

로웰이 벌떡 일어선다.
“내가 앞장선다! 나도 도망 다니기 지쳤다고! 망할 바실 새끼 에잇!”

그가 짜증을 내며 막사를 나가버린다.

“괜찮을까?”

발터가 우려를 표하자, 타몬트가 발터의 등을 툭툭 친다.

“야, 딴마음 품으면 죽여버리면 되는 거야. 여기에서 도망치는 게 가능할  같냐?”
“하긴, 그렇네요.”

루시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 못다 한 말이 있는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빠르게  일을 마무리 짓고 늘어지게 잠을 자고싶네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기를 들고 전투 준비를 한다.

“야,  골렘 어디서 많이  골렘인데?”
“만달리안에서 루시안 오빠가 드워프 장로와 만들었던, 그 골렘이에요.”

선두에는 거대한 골렘이 10여  뒤에는 작은 골렘이 약 100여 기가 달려오고 있었다. 작정하고 골렘을 뽑아낸 것 같았다. 게다가, 골렘 사이사이로 몬스터들이 몸을 숨긴  달려오고 있었다.

“드워프 이놈들!”

나드비온이 화를 내며, 몸을 부풀렸다.

“가운데 방향은 말간테, 수인, 엘프가, 좌측은 용인족 한울이, 우측은 저희와 유라즈 가문이 맡기로 하죠.”
“저 가운데에서 설치는 저놈은?”
“신경 쓰지 마시죠, 뭐 도움도 안 될 겁니다.”

루시안도 그렇고, 다른 일행들도 로웰에 대한 신뢰가 없다. 직접 맞부딪힌 일도 없거니와, 바실에게 처맞고 다니는  영 믿음직스럽지가 못했다.

“내가, 이래 보여도, 전직 2사도란 말이야! 그가 허공에서 기다란 사슬이 달린 낫을 뽑아 들었다. 사슬의 끝엔 추가 달려있었다.

“내가 아무리 처맞고 다닌다고 해도, 난 로웰 맥스다.”

그가 사슬을 몸에  바퀴 휘감았다. 왼팔이 없어 자세가 어설펐다. 균형감각도 완전히 어그러진 상태다. 오른팔로 낫을 휘둘러 선두에 선 골렘의 목에 사슬을 걸었다.

염동력을 이용해 몸을 들어올린  그대로 골렘에게 날아가 착지했다. 오른손에 염동력을 집중시켜 그대로 골렘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목덜미가 우묵하게 들어간다. 한참을 내리쳐 찌그러진 틈으로 손을 밀어내, 골렘 외장재를 뜯어내 버린다.

안에 들어가 있는 하이드로골듐을 염동력으로 뽑아냈다. 골듐을 자신의 마나 로드와 연결하고, 뼈와 잇고, 신경과 혈관에 이었다. 거기에 골렘의 외장재를 뜯어 염동력으로 형태를 빚어 왼팔을 만들었다.

“쟤 뭐하냐?”

타몬트가 어이없게 그걸 쳐다봤다. 다들 싸우는 와중에 목덜미에 앉아서 이 상한 짓을 하고 있으니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그가 완성된 팔을 들어 올렸다.

“크하하하 아주 잘 만들어졌어! 날 무시하지 마라! 난 로웰 맥스다!”

모두를 벙찌게 만들었다. 공격하던 골렘도 그를 이상하게 바라보았고, 그에게 목덜미를 물어뜯긴 골렘도 뒤에서 조종하던 드워프들도. 모두가 싸움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뭐! 뭐, 어쩌라고! 왜 날 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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