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88. 소피아로 모이는 이들
아칸다 대륙을 떠난 후, 아시카에게 안부를 전한다고 해놓고 미루었다. 바쁘기도 했고, 신경 쓸 일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아시카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반가웠다.
- 루시안! 오랜만이군, 나를 잊지는 않았겠지?
예, 로드님 잘 계셨습니까?
로드라는 말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군.
하하, 이젠 적응하시고 익숙해지실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여전하군, 루시안! 하하, 실은 내가 연락을 한 이유가 있다네, 혹 아기아스란 자가 깨어난 것인가?
루시안이 착잡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렇습니다. 아기아스가 깨어나, 정신이 없는 상황입니다. 벨가님께서도 영면에 드셨습니다.
아, 그랬군. 그랬어.
아시카의 목소리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연신, 탄식을 뱉어낸다.
무슨 일이 있으신 겁니까?
일족에서 추방한 자들을 일정 간격으로 관찰하고 확인해오고 있었는데, 이들이 갑자기 사라졌다네. 그래서 마법으로 확인을 해보니 아기아스 교단이었다네. 그들이 일족에게 무슨 위협이 될지 몰라 확인을 하였지.
아, 그 부분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아기아스의 봉인을 푸는 데제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교단의 배신자에게서 그리 들었습니다. 그 후로, 저도 워낙에 정신이 없는 터라 연락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시카가 말이 없다. 이내, 그가 깊게 한숨을 내쉬는 게 들렸다.
용인족을 한낱 제물로 삼았다는 것이군? 우리가 아주 우스워 보였던 모양이야.
......
미약한 인연이나마, 벨가님의 인연도 인연, 환수족의 큰 어르신의 죽음을 그 후예들이 외면하수도 없는 노릇. 자네에게 입은 은혜를 갚을 겸 우리도 힘을 보태겠네.
아시카님!
잠시, 반지를 들어 보여주겠나?
루시안이 반지를 들어 보이자, 반지에서 황금빛의 기운이 서리고 포탈이 열린다. 반가운 얼굴들 뜻밖의 얼굴도 보였다.
구리와 드레이크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규웅귱!”
“이름을 다크라고 지었다네. 우리 일족에 아주 잘 적응해서 살고 있지. 자네들에게 간다는 걸 알았는지 가겠다고 떼를 써서 말일세”
그리고, 겐과 넨이 인사를 한다. 그 뒤엔 아시카의 그림자였던 용인이 보인다.
그들은 그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룻밤을 보냈다.
“이렇게 도움을 주러 오셔서 감사합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갚아야 하지 않겠나?”
한편, 니겔은 스발란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의기양양해서 소피아로 향하고 있었다. 소피아르의 수도 소피아, 이젠 아기아스 교단의 점령지가 되어 버린 곳. 그가 탄 배가 쥬나 항구에 닿았다.
쥬나 항구도 황폐해지긴 마찬가지였다. 갖은 몬스터가 날뛰면서 기반시설이다.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인기척도 없을 것 같은 그곳에 도착한 배가 있었다.
치렁치렁한 하얀 옷을 입은 백발의 수염을 늘어뜨린 노인과 등에 활을 찬 사내, 각자 무기를 찬 무인들이 내렸다.
“예전에 제물로 쓰였던 자들이 입은 옷과 같은 거네?”
니겔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귀가 아주 밝은 인물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
무복 차림에 활을 들고, 허리춤엔 단검과 목에는 피리가 걸려있었다. 그가 활을 겨누고 니겔을 추궁한다. 통역 아티펙트지만 뜻은 충분히 전달되고 있었다.
“허? 감히, 나한테 무기를 들이밀어?”
니겔은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아기아스에게 돌아가 칭찬받을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어디서 굴러들어온 개뼈다귀 같은 놈들 때문에 기분이 상해버렸다.
방패와 메이스를 꺼내 들고, 히죽 웃었다.
“일단, 내 기분이 상해버렸으니, 풀고 나서 이야기해줄게!”
그가 검은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 뒤로 서 있던 병력도 검은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들의 몸을 타고 매캐한 탄내와 짙은 혈향이 느껴진다.
“드레, 이놈들 혈향이 매우 짙구나!”
“화광 선생님, 이 자들이 분명, 사라진 무인들에 대해 아는 게 틀림없습니다.”
다른 무인들도 이에 동조했다.
“그래, 이 노구가 어디까지움직이는지 확인해 보아야겠구나, 못난 제자 놈도 찾아야 하고 말이지.”
뒤에서박규가 슬쩍 고개를 내민다. 그는 무서운지 배에 타 있었다. 내렸다가 분위기를 보고후다닥 다시 배에 올라탔다.
“마지막으로 확인된 게 소피아로 가는 거였답니다. 상단에서 알려온 정봅니다.”
“길은 박규 네놈이 안내하거라! 자, 그럼 놀아 보자꾸나.!”
화광의 치렁치렁한 소매가 부풀어 올랐다. 그의 손에 흰색의 기운이 몰려든다. 그의 나이가 가장 많았기에, 만만해 보였던 모양이다. 화광에 적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날아오는 날붙이를 그대로 손으로 튕겨내고는 빈틈에다가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손바닥을 맞은 곳이 뻥 뚫리며, 그대로 구멍이 나버린다. 내부를 타격하고말고가 아닌 그대로 뚫고 지나가 버린다. 괴랄한 위력에 적들이 볏단 쓰러지듯 나뒹군다. 그들이 간과한 것 그들은 한울 대륙의 무인들이라는 점이었다.
개개인의 무력이 뛰어난 자들로만 추려 왔었다. 드레의 검에 냉기가 휘감아 돈다, 날에 스친 자들의 피부가 서서히 얼어붙는다. 그의 단검은 교활한 뱀 같았다. 팔을 휘감고, 무기를 휘감아 목과 심장을 집요하게 노렸다.
화광과 니겔이 맞붙었다. 화광의 장이 그대로 니겔이 자신해 마지않던 방패를 두드린다. 충격이 방패를 타고 내부를 뒤흔든다. 화광의 수가 자유자재인 데가 처음 보는 것들이라 당황하기 시작했다.
화광이 품에서 7촌 길이의 장침을 꺼내 왼손의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이 노인네가, 노망이 났구나? 고작 그런 바늘로 무엇을 하는 거야!”
“나중에 후회하지나 말거라!”
화광의 바늘에도 하얀 기운이 맴돌았다. 기운은 청아한 듯 순수했으며, 깨끗하고 맑았다. 선기(仙氣)였다. 신선의 기운. 그가 단순히 약초술에 통달해 약선이라 불리는 게 아님이 드러났다.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약침이니라! 무릇, 기운의 지나침은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고 하였으니, 불어난 기운을 육체가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건 독이 될지니.”
화광이 재빠르게 움직이며, 니겔의 몸에 약침을 꽂아 넣었다. 단단한 갑주와 방패를 두르고 있음에도, 그의 침은 무른 두부에 꽂히듯 쑥쑥 들어갔다. 그가 장침을 꽂아 넣을수록 니겔은 힘이 넘쳐나는 것을 느꼈다.
“흐흐, 힘이 넘쳐난다, 이 상태면 바실 녀석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버릴 수 있을 것 같아! 크아아 힘에 취한다!”
미친듯한 힘의 충만함에 취해 전투도 잊고 그 극락에 취해있는 니겔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화광의 침이 마지막 혈자리에 꽂히자, 그의 체내에서 기운들이 폭증해 날뛰기 시작했다. 니겔은 그런 큰 힘을 다룰 능력이 없다. 진정시키지도 못하고 다스리지도 못한다.
“으으으으”
몸의 뼈 마디마디, 관절, 혈관 오러의 통로가 되는 오러 로드 등이 과하게 부풀어 오른다. 기운들이 미쳐서 날뛰면서 내부를 무자비하게 헤집어 나갔다. 니겔의 눈에 실핏줄이 터져, 눈이 벌게지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으으으아아악”
그가 무릎을 꿇은 채 방패와 메이스를 던져버리고 괴롭다는 듯이 땅 위를 뒹군다. 온몸이 뒤틀리듯이 혈관이 튀어나오고, 뼈가 제멋대로 휘어진다. 격한 고통에 손톱이 다 빠져서 피로 범벅이 되었다.
“아해야. 내가 묻는 것을 잘 대답해 보거라. 그럼 그 고통을 줄여줄 터이니.”
“꺼어어억꺽꺽 제발, 뭐든지 말할 테니 으흐흐 악”
“한울 대륙의 무인들은 어디로 갔느냐?”
“커어어억, 모두, 아기아스님의 제물로끄으으윽”
화광이 침하나를 빼고, 다른 자리에 침을 다시 찔렀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내부를 휘젓던 기운이 힘이 살짝 빠졌다. 약간의 평온함이 찾아왔다.
“모두 죽었다는 것이냐? 그 아기아스란 자는 어디에 있느냐?”
“모두 죽었다 으으윽. 아기아스님은 소피아에”
“내 제자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네. 악인은 살려두어봤자 다시 그짓을 반복할 뿐이라고.”
화광이 손에 기운을 불어넣어니겔의 머릴 붙잡았다. 서서히 힘이 들어가자 니겔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른다.
“안돼에에 제발으으으으악!”
머리뼈조각과 뇌수, 뇌 파편들이 주변으로 튀어 나간다. 화광의 몸엔 아무런 이물질도 묻지 않았다. 손을 털며, 화광이 일어선다.
“가자꾸나. 제자 놈도 나쁜 놈도 다 소피아란 곳에 있다고 하니”
“이런 이런, 왜 자꾸 이곳에 나타나는 거랍니까?”
“쿠르카 할배, 이 집터가 안 좋은 거 아니야?”
또다시 무너져내린 담벼락과 이번엔 벽이 허물어져 내린 저택의 일부분. 이 사태의 원흉은 저 둘이었다.
“로웰! 어디까지 도망가나 볼까요? 왼쪽 팔을 뜯어갔으니, 이젠 오른쪽 다리를 내놔 보시겠습니까? 하하, 가운데 다리는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미친 새끼가!”
로웰이 악다구니를 치며, 필사의 도주를 감행했다. 마녀의 숲에서 루시안 일행과헤어지고 나서 얼마 안 되는 시점에 저 미친 바실이 그들의 뒤를 쫓아왔다.
중간에 제리코를 먹이로 던져주고 왼팔을 버리면서까지, 도망을 쳤는데도 다시 발견되어버리고 말았다. 미친 듯이 도망치다 보니 도착한 게 여기였다.
다들 도망가는데 저 둘은 느긋하게 싸움을 구경 중이었다.
“야이, 미친놈들아 그렇게만 보고 있지 말고 돕든가!”
그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로웰은 일부러 그들의 저택 깊숙이 움직이며, 집안을 부수고 다녔다. 부순 건 정확히 바실이었지만.
“이런 이런, 가주님이 아주 짜증을 내시겠군요.”
“할배 어째? 잡아?”
그때, 라펠라의 큰 오빠 루번과 작은 오빠인 프랑크가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저택에 도착했다. 시내에 나갔다가 하인들이 미친 듯이 달려와 알린 결과였다.
“두 분은 뭐하십니까? 저택이 모양이 되어가는데 말입니다!”
“이런이런, 저번에 사주님께서 무기를 꺼내지 말라고 하셔서 말입니다. 도련님들의 명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일전에 집이 부서졌을 때, 가주 프란츠의 명이었다. 무기 뽑지 말라고, 그때, 무너진 건물 대부분은 아돌렌의 짓이었다. 무기 자국이 너무 선명했다.
“하, 자꾸 어디서 벌레들이 기어 나오는 겁니까!”
바실은 자꾸, 이상한 놈들이 주변에 나타나자 신경이 곤두섰다. 클로버 카드를 뿌려 병사를 소환했다.
“망할, 저택 같으니! 로웰이 더 도망가지 못하도록 다 부숴버려라!”
거기에, 이 소란이 계속되자, 가주인 프란츠가 근위 기사단을 이끌고 나타났다.
“어떤 놈이! 제국에서 난동을 피우는 것이냐!”
황제가 미쳐가도, 자신의 딸을 악적이라고 공표해도, 그는 그저 자기 일을 해나갈 뿐이었다. 게다가 황제는 정신이 오락가락했던 말을 번복하기 일쑤였고,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우겨댔다. 그 덕에, 라펠라의 사건이 유야무야되었다.
“미친 황제가 언제 다시 문제로 삼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가 저택에 도착했을 땐 난장판이었다. 두 아들은 구경 중인 집사와 아돌렌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고, 외팔의 사내는 뒤를 쫓는 마술사 복장의 사내를 필사적으로 피해 저택을 활보하고 다녔다.
게다가 희한하게 생긴 것들이 저택을 마구잡이로 부수고 있었다.
프란츠가 그대로 말을 달려 클로버 카드 병사를 둘로 갈라버렸다. 보랏빛의 오러가 피어오른다. 그의 성명 절기인 바이올렛 소드가 펼쳐졌다.
“하, 자꾸 귀찮게 왜 이러는지, 전부다 죽여버려야 하나?”
그때, 바실에게 사르칸의 통신이 들어왔다. 바로, 소피아로 복귀하라고.
“지금 적들이 코앞까지 도착해있습니다. 제리코와 시마, 바탈은 죽어버렸습니다. 니겔과의 소식도 완전히 끊겼습니다. 아기아스님을 보좌할 분이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가야지요”
그가 다시 로웰을 놔주어야 한다는 것에 짜증을 부리며, 몸을 돌렸다.
프란츠는 자신이 상대하던 병사들이 죄다 사라지자 의아해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 마술사 복장의 사내는 사라진 상태이었다.
외팔의 사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구르카! 아돌렌! 지금 저택을 봐보게! 이 꼴이 이게 뭔가!”
“그 적이 나타나도 무길 뽑지 말라고 하셨잖습니까?”
프란츠가 이마를 짚었다. 어질어질하다.
“평소엔 내 말은 듣지도 않던 자들이 왜 이렇게 말을 잘 드는 건가?”
“이런이런, 아돌렌을 말리지 못한 제 잘못이 큽니다. 가주님”
“하, 그런데, 저자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서 난리를 피운 것이란 말인가?”
모두의 눈이 로웰에게 향했다. 로웰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안녕하십니까. 로웰 맥스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