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7화 〉86화. 각자의 자리에서(2) (87/95)



〈 87화 〉86화. 각자의 자리에서(2)

그로부터 얼마 후, 소피아르 왕성으로 흑마법사들이 쓸만한 재료들을 들고 왔다. 이번 전투로 죽은 말간테의 1왕자 시마 말간테였다. 시체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시체를 꾹꾹 눌러보며, 이리저리 살펴보던 사르칸.

“이번에도 꽤 좋은 재료가 들어왔군! 바탈은 저 녀석의 교육을 맡아라!”

그의 옆엔 폐인이 되었던 바탈이 자리해 있었다. 폐인이 되어 자살한 바탈을 사르칸이 발견해 되살려낸 것이었다.

아기아스가 자신들의 충복들에게 건네준 힘은 마나가 아닌 그로서도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힘이었다. 충만한 그 느낌. 마나보다 더 묵직하고, 깊었으며, 무언가 본능을 자극하는 그런 원초적인 힘이었다.

아무튼, 충복들은예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1사도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는 사르칸의 앞에 반쯤 걸레가 되어 구겨진 제리코를 던져놨다. 살아 있는 게 용할 정도였다. 미약한 숨소리를 내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녀석이 하도 살려달라고 빌어서 말입니다. 아기아스님은 사르칸 당신이 잘 써먹을 거라며 이쪽으로 주라고 하셨습니다.”

제리코의 상태를 살펴보던 사르칸이 미간을 찌푸린다.

“이건 뭐 햄버거라도 만드실 작정이었습니까? 아주  다져놓으셨군요?”
“아무튼, 난 넘겼으니, 가보겠습니다.”
“잠깐! 도망간 건  놈이 아니었을 텐데요?”
“하 참, 그놈의 팔 하나를 잘라놓고, 제리코를 가지고 노는 동안 도망가버렸지 뭡니까? 다시 돌아가서, 즐거운 사냥을 시작할 겁니다.”

바실이 음흉하게 웃으며, 사르칸에게 팔 하나를 던졌다. 로웰의 깔끔히 절단된 왼팔이었다.

“호오?”

상태가 좋아 보이는 팔을 이리저리 살피며, 사르칸이 이걸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을 하는 사이, 바실은 사냥을 하러 떠났다.

그간 사르칸은 왕궁의 시체들을 뒤져 쓸만한 시체를 골라냈다. 일전에 제리코가 했던 일의 연장선이었다. 사실 제리코보다 더 실력이 뛰어난  그였다. 게다가 아기아스에게 힘을 얻은 지금은 더욱 강력한 개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시체를 이리저리 엮어서 데스나이트와 듀라한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왕궁을 수호하는 병력으로 거듭났다. 로웰의 팔은 쓸만해 보이는 놈에게 달아주었다. 근육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또한, 이번 말간테와의 일전으로 사망한 신선한 시체들이 그에게 도착해 그의 입이 아주 귀에 걸리었다. 그의 앞에선 제리코도 한낱 재료에 불과했다.

“당신은, 특별히 의식 있는 상태로, 감각을최대로 깨워 조립해드리겠습니다.”

피떡이  제리코가 덜덜 떨 정도의 스산함이 감돌았다.

“그나저나, 니겔이 녀석은 소식이  없는 것인가? 아기아스님을 실망하게 해선 안 될 텐데.”

니겔은 신이 났다. 자신의 몸을 채우는 충만한 힘에 기분이 너무나도 좋았다. 거기에 아기아스가 자신을 인정해 임무까지 맡겼다.

“아기아스님! 저 니겔 메시아 거짓된 신을 말살시켜버릴겁니다. 큭큭”

그렇게, 그는 아기아스가 준 포자를 들고, 스발란으로 향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심연의 군세로 새로 태어난 병력들이 함께했다.보기만해도 어둠에 물들것같은 그런 이들이었다.

당연히, 스발란의 경비 병력과 마찰이 생겼다.

“네놈들은 누구냐!”
“하, 귀찮게!”

니겔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그의 뒤에서 나타나 머리에 메이스를 내려쳐 뭉개버렸다.

“머머머뭐야!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니겔은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모두를 모아 놓고, 하나하나 잔악하게 죽였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남은 자에게 포자의 힘을 개방했다. 그의 내면에 축적된 어둠과 분노가 일거에 터져버렸다.

그로부터 시작된 포자의 번식은 급속도로 이뤄졌다. 신자라고 신실하고 마음에 어둠이 없는 자들만 있지 않았다. 작은 어둠, 그 어둠을 포자가 파고 들어가 살살 그 어둠을 깨워 부풀렸다.

추기경이 되고 싶었는데 밀려난 자, 성기사 시험에서 떨어진 자, 차기 교주를 노리던 자, 식당 음식이 맛없어 불만을 채우던 자 등등 모두 무기를 들고 불만을 표출했다.

스발란 섬 곳곳에 피가 흩뿌려졌다. 한번 퍼져나간 어둠은 다시 또 다른 어둠을 불러일으켰다.  앞에서 가족이 죽고, 친구가 죽어 나가니, 없던 어둠도 생겨났다.

“거짓된 신을 모시는 자, 그들 모두의 목을 베어 그 죄를 사하여주어라! 진정한 신이 나타났으니, 경배하라! 찬양하라! 위대한 신은 단, 하나 일지어니!.”

포자가 무르익고 스발란이 혼란에 휩싸이자, 니겔과 병력들은 학살을 시작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죽여나갔다. 그저 살인을 즐기듯, 천천히 목숨을 살려두면서 고통을 주어 죽였다.

스발의 이들은 신전을 구분 짓지 않고, 누굴 모시는지도 따지지 않고 뭉쳐 항전해 나갔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무참히 밀려 나갔다. 신전이 불타고 무너져내렸다.

결국, 그들은 스발란을 탈출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일단 여기를 벗어나는  우선이었다. 니겔은 더욱 신이나 날뛰었다. 보고하는 것도 잊은 채.

랑기어 교단이 있는 섬으로 떠날 계획을 세우던 루시안에게 새로운 정보가 전해졌다. 라이야 상단의 알텐이 들고 온 정보는 소피아르에 아기아스의 교단이 들어섰다는 것이었다.

“언데드의 잦은 출몰, 차원문으로 인한 몬스터의 범람, 드워프가 벌린 일이 결국 아기아스에게 좋은 일이 되어버린건가?”

게다가, 드워프를 보았다는 제보도 있었다. 가장 찝찝한 정보였다.

“그들이 수도에 있다면, 우선 가서 직접 확인해보는  빠르겠지.”

섬으로 가는 것보다는 일정도 줄었다. 배가 쥬나 항구에 있었기에, 거기까지 가서 배를 타고 다시 섬으로 가야 했다. 원래의 일정대로라면 말이다.

루시안의 수도행에는 발터가 가장 먼저 합류했다. 짐을 꾸리던 그의 방으로 직접 찾아왔다.

“날 빼고 가려고?”
“짐이나 챙겨라. 수도로 갈거야.”

이어, 루나가합류했고, 타몬트도 끼어들었다.

“누님은 힘들 것 같네. 강해 보이던 사람이 한번 무너지더니 일어나질 못하네.”
“시간이 필요한 거죠. 자신의 신념, 버텨오던 믿음을 다시 세울 그런 시간.”
그리고 그들이 수도로 출발하려는 아침, 새벽의 이슬을 맞으며 누군가 달려왔다. 이슬 반, 땀 반의 구리였다. 그의 뒤에서 은호도 모습을 드러냈다.

“형, 너무 늦었지?”

구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게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미소다.

“출발하기 전에 씻고 가야 하겠는데?”
“헤헤”

구리가 머리를 긁적인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평소처럼 그렇게. 다시 단장을 후다닥 마치고 뛰어나온다. 머리도 안 말리고 뛰어나왔다. 루시안이 구리의 머리를 말려주었다.

잠시 후, 모두가 떠나기 시작한 때에, 구리가 가려던 발걸음을 잠시 멈춘다. 마녀의 숲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벨가님, 다녀오겠습니다.”

이동 마법진은 전부 부서져 사용이 불가했다. 말을 타고 달렸다. 수도로 갈수록 몬스터가 많아졌다. 여전히, 꾸준하게도 차원문에서 튀어나오는 모양이었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달렸다.

무기가 몬스터의 피로 범벅이 되고, 몬스터의 피에 몸이 적셔졌다. 씻고 말리고, 야영하고, 다시 싸우고. 그렇게 나아갔다.

소피아르 수도 입성을 위한 마지막 관문, 수도의 거대한 성벽이 보인다. 성문을 뒤로하고 누군가 막아섰다. 검은 갑옷 차림의 두 기사와 이번에 세 번째쯤 되는 제리코였다. 얼굴에 누더기처럼 꿰어진 자국이 얼핏 보인다.

“끌끌끌, 다시 보는구나! 저번에 환영받은 건 돌려줘야겠지?”

제리코가 루시안을 향해서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그 끝에 어둠의 기운을 끌어모아서 쏘아냈다. 루시안은 가볍게 총으로 막아냈다

“버림받았다고 와서 하소연할 땐 언제고, 아기아스 편에 붙어먹고 있는 거지?”
“끌끌, 1사도가 아기아스님한테 힘을 받아서 무척이나 강해졌더군. 나도 그 힘이 탐나서 말이야.”
“한 마리가 더 있던 거로 기억하는데?”
“아? 로웰? 그 자식은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게 뭔가? 자기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놈한테. 1사도에게 맞아 뒈져버렸으면 좋겠군. 끌끌”

1사도라면 일행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아기아스의 봉인을 푼 자이자, 벨가를 죽인 자, 아기아스의 파편이었던 자. 그게 1사도 바실 보머였다. 구리가 주먹을 꽉 말아쥔다.

“그래서, 네 자리는 거기로 잡았다는 거군? 이제 마음 놓고  있겠네?”
“끌끌끌, 이런 싸가지 없는 놈! 시마! 바탈! 가서, 저놈들을 찢어버려라”

제리코가 앞에선 기사 둘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지팡이를 내리쳐 소환체를 불러냈다. 검은 연기 덩어리의 사념체들이었다.

“가서 녀석들에게 괴로움을 선사해라!”

바탈과 시마는 검을 뽑아 들고, 검은 오러를 피어 올렸다. 검은 사념체들이 빠르게 날아들어 일행들 몸을 통과하며 날뛰었다.

“하하하, 환각과 공포에 시달리며 괴로워해라!”
“......”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무일도 없었다. 구리가 사념체를 손으로 턱 잡더니 두 쪽으로 찢어버렸다.

제리코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야,  이건  솜뭉치야 뭐야?”

타몬트가 이죽거리자, 제리코의 얼굴에거센 경련이 일어났다. 그의 살을 꿰었던 실이 투툭하고 끊어진다.

“이런, 젠장할! 시마! 바탈, 뭐 하는거야! 당장, 죽여버리라고!”

둘이 검을 치켜들고 돌진해온다.

“루나와 발터는 뒤에 저 맛간 흑마법사를 상대해줘.”
“끌끌,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 난 제리코 푸센이다. 맛간 흑마법사가 아니라!”

그가, 거대한 어둠의 구를 던져댔다. 지팡이로 땅을 내리찍으며, 일전에 파논에서 보았던   누더기 몬스터들이 튀어나온다.

“또, 야?”
“내 이름은 제리코다! 제리코 푸센! 너희들의 뇌리에 공포로 각인될 이름이지! 끌끌”
“말 많은 악당이 가장 먼저 죽는 건 아는지 모르겠네?”

발터가 거대한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제리코는 코웃음을 치며 소환해낸 누더기 시체를 자신의 앞에다가 세웠다. 그리고, 여유를 부리며 검은 장막을 둘렀다. 뒤에 장막은 그냥 한번 쳐본다는 듯이 말이다.

당장 날아올  같던 화살은 여전히 시위에 있었다.

“끌끌 뭐냐? 화살도 못 날리는 애송이었나?”

그때, 땅에서 흙의 손아귀가 솟아올라 제리코를  붙들어 잡는다. 그가 위험을 감지하고 몸을 비틀면서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했지만, 흙은 단단히 굳어버린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런, 망할 놈들,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당장 놔라!”

발터는 시위를 최대로 당기고, 화살에 오러를 듬뿍 실었다. 그리고, 팽팽하던 시위를 놓았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려 퍼진다. 풍압만으로도 주변이 짓눌린다. 화살의 궤적을 따라 땅거죽이 일어난다. 그 힘이 체감된 제리코가 당황해하며, 방어막을 연달아 세운다.

“이런 젠장!”

그가 세웠던 몬스터의 벽을 갈아버리고, 방어막을 무참히 부숴버린다. 제리코의 목을 노리는 맹수처럼 매섭게 달려든다.

화살은 그의 복부를 뚫고 그대로 그의 몸을 끌고 날아갔다. 성벽에 제리코의 몸이 걸렸다. 마치, 곤충 표본이라도 된 듯 그렇게 성벽에 걸렸다.

“크허헉!”

통증이 복부를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제리코가 비명을 지른다.

그 비명에 시마와 바탈의 시선이 잠시, 제리코에게 향했다. 그 틈새를 노리고, 타몬트의 대검이 둘의 허리를 노렸다.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검으로 대검의 경로를 차단해버린다.

루시안은 자신이 청산이라고 이름 붙인 포션을 꺼냈다. 한울 대륙에서 만들었던, 산공독과 블루 스모그의 혼합액이었다. 마나를 기반한 에너지라면 분명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마나에 상극인 극독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멀쩡했다.

최루탄도 던져보았지만, 멀쩡했다.

“뭐지? 야, 이놈들 이상한데?”
“루시안 형, 환수의 기운이에요!”
“뭐라고? 이런.”

루시안이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 구리는 두 팔을 거대화해 둘에게 주먹을 날렸다. 시마와 바탈은 칼을 들어 주먹을 막아냈다. 환수의 기운을 두른 주먹이었다. 기세를 더욱 피어올려 둘을 밀어낸다.

타몬트의 오러를 두른 대검의 칼날이 구리의 왼쪽, 시마의 옆구리로 찔러 들어간다. 루시안도총에 오러를 불어넣어 구리의 오른쪽 방향에 있는 바탈을 공격해 들어갔다.

구리가 주먹을 짧게 끊어쳐 칼날을 살짝 튕겨낸다.  틈으로 재빠르게 그들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둘의 몸이 충격으로 움찔했다. 바로 목을 틀어쥐어 꺾어버리려고 했는데, 칼을 들어 올려 칼날로 막아 세운다.

“상대는 거기만 있는 게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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