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83화. 악의 발호 (2)
대수림 상공, 차원문이 열린다. 까만 식물 하나가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훌쩍 뛰어내려 대수림에 뿌리를 박아넣는다. 그리고는 주변의 기운을 대차게 빨아올린다.
급격히 자라난 나무에 버섯들이 올라온다. 검은 버섯들이 포자를 뿜어낸다. 동물이 포자를 들이켜자, 포자들이 동물의 체액을 빨아드려 균사를 뿜어낸다. 균사가 촉수로 변해 육체를 뚫고 표면을 뒤덮는다.
겉으로 드러난 촉수에서 다시 버섯이 돋아나며, 포자가 퍼진다. 빠르게 대수림을 잠식해 들어간다.
위그드라실의 말에 엘프와 수인들이 무기를 들어 올렸을 땐, 대수림의 절반이 포자에 잠식된 상태였다. 루시안 일행과 타니엘을 비롯한 엘프와 수인, 드워프들이 합류를 해, 촉수를 제거해 나갔다.
촉수에 이미, 목숨을 빼앗긴 상태. 더 이상 촉수에 유린당하지 않게 죽여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모든 이들이 나서서 적들을 처리하고, 또 쓰러지고 있었다. 시체가되어 촉수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동료의 모습들이 그들을 더욱 비참하게 하고 있었다. 울분을 담아, 내지르는 무기로 분노를 터트린다.
“소각처리를 해도 되겠습니까?”
루시안은 모두 태워버리고자 했다. 문제는 저 반대편 자기가 위그드라실인 양 고고히 서서서. 악의 포자를 뿜고 있는 저 나무였다. 울분과 분노, 절망과 회화는 모든 부정적 기운을 진미라도 되는 듯 빨아들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오염은 태워 정화해야겠지요.”
타니엘이 입술을 짓씹으며, 결심을 내린다.
타몬트가 오러를 개방해, 거대한 대검을 든 수호자를 만들어냈다. 자신의 앞으로 대검을 휘둘러, 경계를 그엇다, 그리고는 대검을 ‘쾅’하고 박아넣었다. 그가 생성해낸 오러의 막으로 포자들이 부딪힌다.
그러자, 앞서나가 싸우던 이들도 눈치를 채고, 그 경계의 뒤로 몸을 물렸다.
라펠라도 거대한 방패를 든 거신을 불러일으켰다. 타몬트 옆에 방패를 세우고 오러의 벽을 세웠다. 하나둘 그들에게 동조해 방어벽을 세웠다.
비산폭발형 포션이 흩뿌려지듯이 날린다. 인화 물질이 들어간 화염 포션까지 사방으로 뿌려진다. 폭발이 터지고, 불길이 치솟는다. 생기를 빼앗기고, 마른 육신이 장작처럼 불타오른다..
“루나가 없는 게 아쉽긴 하네요.”
“그러게, 마법으로 팡팡 해버려야 하는데”
루시안은 천천히 글리세이드 탄을 장전했다.
어둠 속에서 푸른 빛을 내는 발광 언데드와 니트로엑시드, 비트리올, 연금강화제를 연금플라스크에서 반응시켜 만드는데, 이때 빙결 포션을 희석한 액체에 담가 반응시킨다. 극도로 불안정하고, 잘 꺼지지도 않는다. 폭발력도 강하다.
탄에 마나를 불어넣어, 불안정성을 극대화한다. 그리고는 겉을 살짝 코팅해 발사 시의 충격을 완화했다.
대구경 권총에서 크고 묵직한 총성이 터지고, 탄이 닿은 곳에서 고열의 빛이 터진다. 주변을 게걸스럽게 탐하듯 공기를 한껏 빨아들였다가 뱉어낸다. 불의 기둥이 치솟으며,주변을 짓밟아 버린다.
촉수들이 살아 있는 양초가 된 듯 까맣게 타들어가고, 폭발의 충격으로 이리저리 튕겨 나간다.
한발, 두 발 숲의 경계를 그어버리듯이 탄은 계속 쏘아지며, 오염을 불사라 새까만 대지만을 남겼다. 탄이 터지고, 시체가 타는 매캐한 냄새가 퍼진다. 생기를 잃은 초목과 시체를 연료 삼아 맹렬히 몸집을 불려 나간다.
타니엘이 엘프들을 모아, 바람의 정령을 불러내, 화마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경계를 그어버렸다. 오염되어 까맣게 변했던 숲이, 붉은 폭군 아래 정화가 되어갔다.
그 불을 몸에 짊어진 채 달려오는 적들이 보인다. 발터가 화살을 들어 하나하나 저격해 나간다. 엘프들이 그 뒤를 따라 화살을 먹여주었다. 불타는 그대로 땅에 박혀, 재로 화했다.
루시안은 천천히 걸어 나가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악의 나무를 향해, 총탄을 갈겼다. 한발 한발 가지를 불태우고, 포자를 태어나간다.
“키에에에엑!”
루시안을 막아 세워보려 하지만, 발터의 화살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총탄이 날아들었다. 나무의 몸에 여러 발의 탄이 꽂혀 들어간다. 포자가 녹으면서 부글거리며 끓는다.
뿌리를 들어 올리고, 나뭇가지를 치켜들어 공격해온다. 화염 포션을 던져 버렸다. 인화 물질과 발화제가 끈적하게 붙어 불이 일어난다. 뿌리가 타닥거리며 타들어 간다.
몸에 계속해서 탄이 박혀 든다. 주변이 매캐한 탄내가 가득하다. 열기로 호흡이 곤란할 정도이다. 그러나 루시안은 검댕 하나 묻지 않았고, 힘겨워하지도 않았다. 묵묵히 탄을 쏟아낼 뿐이었다.
두 자루의 총을 들어, 마나를 최대한 불어넣어 폭발력을 극대화한 탄을 쏘아낸다. 마나 회복제를 털어 넣으며, 다시 탄을 장전하고 쏘아낸다.
탄에 맞은 자리가 숯이 되고 재가 되어 흩날린다. 무성한 가지도, 무수히 많던 버섯들도 녹아 없어지고, 뿌리는 다 타버렸다. 서서히 몸이 허물어진다. 나무의 육신을 삼킨 불은 계속 타올랐다. 마지막 포자 하나 세포 하나까지 태워버리겠다는 듯이.
대수림의 절반이 새까맣게 타버렸고, 많은 엘프와 수인들이 죽어 나갔다.
“쿠드비온님, 드워프 쪽은 이상이 없습니까?”
“그쪽도 난리지. 허나, 여기보단 조금 더 나은 상황이라네. 방어에 달인들이 있거든!.”
“대륙은 넓고, 일일이 다 신경 쓸 수도 없는 상황이라 난감하네요.”
타몬트가 대검을 등에 메고, 어슬렁거리며 다가온다.
“랑기어 교단이라고 했잖아, 본 거지가. 거길 털어버리자.”
“그래, 제나르와 말간테는 내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을 거야. 제국은 알아서 하겠지. 소피아르? 아기아스가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멍청한 곳이잖아. 봉인지를 공격해 들어오다니, 도대체 뭔 생각인 거냐고!”
라펠라가 울분을 터뜨렸다.
“일단은 마녀의 숲으로 돌아가죠. 구리에게 의사를 물어봐야겠습니다. 계속 나아갈 것인지, 멈추어 설 것인지.”
“앞으로의 싸움에 구리가 필요할 거라고 보는 거냐?”
“저희의 편에 서 있는. 가장 강한 환수니까요.”
“아기아스를 다시 봉인하는 것은 힘들 겁니다.”
엘프들에게 뒷수습을 지시한 타니엘이 천천히 다가온다.
“그게무슨 말씀이십니까?”
“두 번의 봉인이 깨졌습니다. 점차 봉인에 드는 힘이 많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에서는 환수의 목숨으로 봉인을 했습니다. 그 환수는 당시의 가장 큰 힘을 지녔던 자였습니다.
쿠드비온이 짧은 탄식을 내뱉는다.
”아! 그를 봉인할 힘이 모자란다는 것이군. 그를 없애야 한다는 건데, 그게 가능했다면 그때에 했을 테지. 방법이 없기에 봉인을 한 거 아닌가.“
”흐음.“
답이 보이질 않는다. 암울한 상황이다.
그때, 타니엘과 루시안의 귀걸이가 울렸다. 위그드라실의 부름이다.
”다 같이 가시죠.“
타니엘이 앞장을 섰다. 그 뒤를 나스팔라벨과 쿠드비온 뒤따른다. 멀찍이 있던 네로니아가 슬쩍 끼어든다. 그녀는 루시안 일행을 보더니, 얼굴을 찡그린다. 루시안이 총을 들어 살짝 흔들어 보인다.
부들거리는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려 잰걸음으로 나아간다.
”사귀냐?“
타몬트가 짓궂은 표정으로 어깨를 툭 치며 나아간다.
”에휴!“
그렇게 라펠라도, 발터도 루시안도 위그드라실에게 향했다.
<아기아스가 이렇게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으리라곤 생각을 못 했네요.>
<벨가는 잘 보내셨나요?>
”구리가 많이 힘들어합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보이지 않았군요.>
<아기아스를 물리칠 방법은 하나입니다. 그의 내면에 잠든 카라함을 일깨우는 것.>
”예?“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갑자기, 카라함이라니?
<의아하신 줄 압니다만, 그의 내부부터 무너뜨려야 합니다.>
<두 번의 봉인이 성공했던 건, 내부 싸움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카라함이 굴복했다 들었습니다. 아기아스가, 공간의 권능을 깨우쳤다고.“
<단편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겠지요.>
<허나, 카라함은 탐욕스러운 자입니다. 쉽게 포기할 자가 아니지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의 내면으로 들어가, 카라함을 직접 깨우는 것입니다.>
<그 통로는 제가 열 수있지만, 지금은 힘이 모자랍니다.>
<그의 힘을 받은 자들, 차원문들을 통해 그의 힘을 조금이나마 깎아내어야>
<그 방벽이 약해집니다. 그리고, 약해진 그 장벽으로 길을 만들 겁니다.>
”흠. 차원문을 닫을 방법이 있는 것입니까?“
<나스팔라벨 그리고 쿠드비온. 차원문 이동장치를 이용하면, >
<발생하는 차원문을 한곳에 고정할 수 있습니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쿠드비온이 떨떠름하게 대답한다.
”그렇습니다.“
<애초, 목적은 그것이었을 테지요? 봉인을 유지시킴과 동시에, 한편으론>
<차원문의 범람 시, 이걸 제국에 몰아버리겠다는, 피의 복수를 하겠다는 계획>
쿠드비온이 고개를 떨궜다. 모두의 눈이 쿠드비온에게 향했다.
”하, 그게 목적이었다고?“
”피해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받질 않습니까! 이게 복수입니까! 학살입니까! 정녕, 드워프가 원하던 게 이것이었습니까?“
라펠라가 화가 나 소리쳤다.
쿠드비온이 표정을 굳히며 대답했다.
”난, 솔직히 인간 따위는 다 죽어버려도 괜찮네. 탐욕스러운 인간은 해가 될 뿐이야. 그게 내 본심일세, 인간은 언제나 그래왔지. 위선적인 종족, 탐욕의 종족. 세상에 가장 폐를 끼치지만, 자신들이 있어 대륙이 유지된다고 믿는 역겨운 종족! 그때, 인간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더 쉬운 기회가 주어졌겠지. 그렇게 많은 이가 죽지도 않았을 테고!.
분노에 차 소리치는 쿠드비온. 속에 저런 마음을 품고, 겉으론 인자한 가면으로 루시안 일행을 대했었다니. 그가 분노의 숨을 뱉어낸다.
“이번에도, 인간은 역시 인간이었어, 봉인지를 공격해? 미친 거 아닌가? 거기 계집, 너도 분노했지? 너도 봤을 텐데, 인간의 어리석음을, 그로 인해 벨가님이 네놈들이 추모하던 벨가님이 저리되시질 않았냔 말이야! 인간이 과연 살아야 할 종족인가? 인간은 해충이야. 죽여 없애버려야 할 해충! 위선자 같은 놈들!”
라펠라는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그녀는 손을 바르르 떨었다. 자신이 버텨온 것들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은 무엇을 위해 분노했고, 무엇을 위해 싸워왔는가?
“자네도 똑같은 위선자일 뿐이란 걸. 깨달아야 할 것이야!”
쿠드비온이 차갑고 냉소적인 말투로 라펠라에게 쏘아붙였다.
“그만하시면 되었습니다. 쿠드비온 족장.”
나스팔라벨이 쿠드비온을 말리고 나섰다.
<당장, 쿠드비온 족장을 멈추세요! 포자에 감염되었습니다!>
<이리도 음흉하게 자신을 감추다니!>
쿠드비온이 알게 모르게 흡수한 검은 포자가, 그의 부정적 감정, 분노와 인간의 혐오에 동조해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와 동화되어 하나가 되려 하고 있었다. 분노와 파괴만을 위한 감정을 가진 이로.
그의 눈이까맣게 물들어간다.
루시안이 바로, 마취탄을 쏘아 넣었다. 약 기운이 퍼져 든다. 그걸 힘으로 이겨 내려다보니, 점점 잠식이 가속화되어버린다.
“이런! 잠시 잠드시게, 쿠드비온 족장!”
나스팔라벨이 솥뚜껑 같은 커다란 손으로 쿠드비온의 두터운 목을 내리친다. 쿠드비온의 몸이 바로 무너져내린다. 목뼈가 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될 정도였다.
라펠라는 멍하니 주저앉았고, 쿠드비온은 타몬트가 쇠사슬로 돌돌 감아놨다.
<더욱 강해졌습니다. 마음속 어둠을 극대화하다니요.>
<여러분들의 축복을 더욱 강화해드리겠습니다. 정신방벽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일전에 이곳에서 타니엘이 건네주었던 반지를 강화해주었다.
<저는 이제 힘을 아껴야 합니다. 기회는 한 번입니다>
<타니엘은 새로운 세계수의 묘목을 키워주세요.>
“알겠습니다. 위그드라실 님”
나스팔라벨이 나섰다.
“일단, 모든 차원문을 벨가님을 저리 만든 죄를 물어 소피아르에 몰아버리겠네. 이건, 자네들의 의견을 받지 않을 것이야. 드워프는 과거의 미련에서 벗어날걸세.”
그가 그 말만 마친 채, 쿠드비온을 버려두고는 이동 주문서를 찢어 사라졌다.
“저, 고가의 물건을!”
“타몬트 형, 좀.”
타몬트가 머리를 긁적인다.
<최초의 차원문, 그것만큼은 옮겨지지 않을 겁니다.>
<그 자리에 남아, 계속 악을 토해낼 겁니다.>
<차원문을 닫는 건, 환수의 힘이 필요합니다. 구리가 필요합니다. 루시안>
“하지만…….”
<그가 슬픔에 져서, 외면하는 순간, 사태는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